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59
59화
인공이 데려온 사람들을 보는 순간 놀람과 설렘이 교차했다.
‘설마 저 사람들이 전부 검도를 배우겠다고 온 건 아니겠지?’
이럴 때 가장 필요한 건 포커페이스. 서둘러 좁혔던 미간을 활짝 펴고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음, 아닐 거야. 아무렴 아니고말고. 잘하면 저들 중에 한두 명은 입관 서류에 사인을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그것도 잘하면.’
일단 그렇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용하가 한 첫 번째 노력이란 게 고작 이런 것이었다.
“형님! 아, 아니. 사, 사범님!”
형님이라 내뱉었던 말을 주워 담으며 대충 얼버무렸다.
그러자 인공은 자기가 데려온 사람들 들으라는 듯 평소보다 다소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네, 관장님. 저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저 좀 잠깐 볼 수 있을까요? 잠깐이면 되는데.”
“아,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네, 긴히 드릴 말씀이…….”
“저 같은 미물에게 말입니까? 이거 더없는 영광입니다. 검기가 신의 경지에 오른 우리 김용하 관장님께서 무슨 볼일이 있으시길래, 이렇게 친히 이 몸을 찾으시는지요.”
인공은 괜히 너스레를 떨어가며 자기가 데리고 온 예비 수련생들을 향해 용하를 치켜세웠다.
그런 인공이 사람들 눈에는 허세를 부리는 듯했지만, 지금 그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 카페의 존재 이유가 돼 줄 여러 회원님! 그러면 여기서 잠깐만 기다리고 계세요. 이 몸은 관장님께서 찾으시니, 잠깐 사무실에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삼삼오오 막 모여있지 말고, 오와 열을 각지게 맞추고 질서 있게들 앉아 계시구려. 괜히 관장님한테 밉보이지 말고. 아시겠습니까?”
어린 수련생들 다루듯 말하는 인공인 반면.
“넵!”
예비 수련생들은 입을 모아 절도있게 대답했다.
그 광경을 보는 용하는 더욱 확신이 섰다.
‘음, 저 정도면 빠져나가는 일은 없겠군. 어떻게 저렇게 사람들을 잘 감았을까?’
사무실로 들어가는 순간, 참고 참았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입이 짝 찢어졌다. 곧 뒤따라 들어온 인공과도 죽이 척척 맞아 서로를 보며 숨죽여 깔깔거렸다.
“형님, 어디서 저렇게 훌륭한 고객 아니, 수련생들을 모아 왔습니까?”
“그것이 뭐 그리 궁금한 것이냐? 뭐가 중요하다고.”
“제가 항상 목말랐던 게 바로 수련생들 아니었습니까. 왜 일전에 무림에서 말씀드렸잖아요. 워낙 수련생이 안 모여, 밤에 대리운전까지 했다고.”
“장담하건대, 앞으로 수련생 모집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니, 미래를 위한 커다란 일에 전념하도록 하게.”
“아, 형님! 듣던 중 반가운 말씀입니다. 그나저나 수강료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아, 그거? 그냥 월 50이라고 했는데…….”
그 순간 용하는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왜, 아냐? 너무 작아? 다시 말할까? 100이라고.”
숨이 다 막혔다. 머리당 100이라니. 게다가 지금 대기하고 있는 예비 수련생들 가운데 반만 입관 서류에 사인을 한다 해도. 용하는 혼자만의 생각에 취해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것도 아냐? 그럼 대체 얼마를 원하는 건데? 말만 해. 부르는 대로 다 받아 줄 테니까.”
인공의 말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월 수강료는 대충 눈치 봐서 10만 원 정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50만 원이라니. 왠지 수련생을 상대로 사기 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만약 저 사람들이 전부 입관 서류에 사인을 한다 가정하고, 머리당 50이면… 총 스물다섯 명이니까…….’
이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용하는 저도 모르게 계산기부터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곧.
“헉!”
‘천, 천이백오십(1,250만 원)!’
턱이 떨어질 만큼 입이 크게 벌어졌다. 누군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했다. 용하는 쩍 벌어졌던 입을 겨우 닫으며 생각했다.
‘인공, 역시 사이즈가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아랫배에 힘을 주고 호흡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님! 월 수강료가 50이라고 하니까, 저 사람들이 뭐라 그러던가요? 내겠다고 하던가요?”
“지금 50만 원이 문제야? 용하 자네가 개방에서 보았던 기의 실체만 제대로 보여준다면, 게다가 그것을 자기들이 배울 수 있다는 확신만 생긴다면 몇백이라도 아낌없이 낼 사람들이야.”
“정말요?”
“이 사람이 내가 비싼 밥 먹고 흰소리할 사람으로 보인다는 거야, 뭐야?”
“형님! 대체 저 사람들 정체가 뭡니까? 돈이 그렇게 많아요?”
“아아, 저 사람들! 우리 카페 운영진들하고 열혈회원들이야. 뭐 꼭 돈이 많아서가 아니고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대단한 사람들이거든. 뭐, 능력도 수강료 낼 정도는 되고.”
“그러니까 형님 말씀은, 월 50만 원을 내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거란 말씀인 거죠?”
“실은 저 사람들도 다들 체육관 가지고 수련생들 지도하는 사람들이야. 아마 수련생 수가 이삼백 명씩들은 되니까, 수강료 걱정은 안 해도 돼.”
“아아, 그래요…….”
이 어려운 시국에 수강생이 이삼백 명이라니, 존경스러웠다. 겉으로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시큰둥하게 대답했지만, 속은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제 21세기에서도 내 인생에 꽃이 피려나 보다. 인공이라는 보배를 만나다니.’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다.
“근데 형님! 형님이 말씀하시는 카페라는 게, 뭐 하는 카페입니까?”
“아, 카페 이름? 스트리트 무공 스님들. 줄여서 ‘스무스’!”
“아아, 스무스. 카페지기가 누군데요?”
“최강땡추인공!”
인공은 자랑스럽게 카페 닉네임을 읊었다.
“형님이 카페지기세요?”
더욱 믿음이 갔다. 그동안 지긋지긋했던 21세기. 더는 구질구질하게 살 필요가 없어졌다.
“아아, 대충 알겠네요. 무공 마니아 카페, 스무스에 카페지기가 형님이시다!”
“그래서! 꼽냐?”
“꼽다니요, 형님도 참, 무슨 말씀을 그리 험하게 하십니까? 이왕 줄이는 거, 카페까지 넣어서 ‘스무스카’라고 하지 그랬어요.”
“스무스카? 그거 괜찮은데! 그것도 하나 만들까? 레이싱 마니아들 회원으로 모아서 수퍼카 팔면 돈 좀 되겠는데.”
얼핏 농담 내지는 말장난 같았지만, 인공의 발상은 초월적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살짝 눌러주는 게, 앞으로 해야 할 큰일들을 생각하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형님, 정말 왜 그러세요? 뭐, 돈독이라도 오른 겁니까?”
“돈독? 올라야지! 암, 올라야 하고말고.”
“형님! 너무 속물근성 드러내지 마세요. 형님의 그 시커먼 속, 다 보입니다.”
“그깟 속 좀 보이는 게 뭐가 대수야. 돈이 전부라는 가치관이 팽배하는 지긋지긋한 21세기. 이거 확 찢어버리려면, 이 악물고 벌어야지. 그러는 네 녀석도 돈에 한 맺힌 놈이잖아. 그러니 돈독 올라야지. 그것도 아주 많이.”
“좋아요! 그럼 나가서 저 사람들 의구심을 풀어줄까요.”
용하는 인공의 생각이 무엇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자진해서 선뜻 나섰다.
두 사람이 사무실에서 나오자, 지루함을 달래며 기다리던 예비 수련생들은 기대감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인공이 그들 앞에 서서 공지사항을 전했다.
“여러분! 잠시 후 김용하 관장이 기의 실체가 무엇인지 여러분에게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이 알고 있던 기란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그저 관념에 불과했습니다. 다시 말해 관념으로서 그냥 믿고 인정할 뿐이지, 실체가 존재한다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때였다. 예비 수련생 가운데 한 사람이 결연히 입을 뗐다.
“그래서! 최강땡초인공 님 말씀은, 저기 계시는 김용하 관장님이란 분이 기의 실체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는 말씀입니까?”
“빙고!”
얼핏 짓궂게 보일 수 있으나 인공의 말 한마디는 의미심장했다. 덕분에 자칫 술렁일 뻔했던 실내는 순식간에 정리가 되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사범님, 커튼 좀 쳐 주시겠습니까.”
인공은 간결하게 예를 갖추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실행에 옮겼다.
“사범님, 출입구 쪽 조명만 남기고 나머지는 좀 꺼 주시겠습니까.”
이번에도 인공은 간결하게 예를 갖추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어스름해진 실내는 마치 작은 영화관 같았다. 잠시 긴장감이 흘렀다.
“오늘 이렇게 저희 체육관에 방문해 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시전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 당부드리겠습니다. 제가 시전이 끝나고 자연체로 돌아올 때까지 지금의 이 상태를 유지해 주십시오. 가장 정숙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가장 확실히 기의 실체를 관찰할 수 있다는 말씀드리며 곧 기의 운용을 시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꼴깍!
―꿀렁!
―울컥!
여기저기서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난무했다.
최대한 있어 보여야 한다. 한 방에 뻑이 가게 해야 한다. 그래야 토를 못 달지.
‘자세가 장설 형님만큼만 나와 준다면 게임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용하는 최대한 기억 속에서 장설의 기수련 광경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모션그래픽 그리듯 그대로 따라 했다.
여기저기서 “태극권이잖아!”라는 얼핏 비난이 섞인 말이 나직하게 새 나왔다.
“쉿!”
인공이 보인 단 한 번의 액션으로 실내는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하지만 시전에 몰입한 지금 용하에게 그런 것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
염두에 둔 것이라고는 기억 속 저편에 가려진 장설의 태극권의 초식을 끌어내려는 노력이 전부였다.
그때였다. 온몸의 기(氣)가 말초신경으로 옮겨 가는 게 느껴졌다.
‘이게 아닌 것 같은데……. 우선 단전으로 기가 모여야 하는 거 아니었나?’
갑자기 불안해졌다. 만약 실패한다면 모든 게 끝나고 만다. 수련생은 물론 인공까지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잠시 자연체로 돌아왔다가 다시 첫 번째 초식을 시전했다. 그제야 잠시 잊었던 한 가지 관건이 떠올랐다.
매 초식마다 축적된 기운은 단전에 가두어 둬야 했는데, 중요한 과정을 빼먹은 탓에 마지막 기운만 말초신경으로 새 나갔던 것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던 건지 깨닫자 조바심이 생겼다. 조바심은 곧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기(氣)란 평정심 없이 절대 운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운기조식으로 마음의 안정부터 되찾자.’
예비 수련생들의 눈에 보이는 용하의 태극권 초식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시간이 자꾸 지연되자, 인공은 의아했다. 하지만 속내를 감춘 채 예비 수련생들의 표정을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보고자 하는 기의 실체가 공개되는 게 자꾸 지연되자, 적잖이 지루한 기색들이었다.
‘저 녀석이 대체 왜 저러는 거야?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예전에 개방에서 봤을 땐 몇 초식 안 하고 바로 축구공만 한 기의 결정체를 만들어 냈잖아.’
바로 그때였다. 약한 플라스마가 용하의 온몸을 휘감았다. 인공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직시했다.
‘뭐야? 지난번하고 완전히 다르잖아. 아니지! 어쩌면 그때는 이 과정을 내가 미처 못 봤을 수도 있지.’
온몸을 휘감던 플라스마가 용하의 손아귀를 향해 빠르게 옮겨 갔다. 그렇게 모여든 플라스마는 용하의 손아귀에서 그 세력을 키우며 강한 전류로 변환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목도하는 예비 수련생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탄성을 질렀다.
우여곡절 끝에 용하의 시범은 별 탈 없이 끝을 맺었다.
예비 수련생들은 앞다퉈 입관 서류에 사인하고는 그 자리에서 폰뱅킹으로 수강료를 이체시켰다.
텅장이었던 용하의 계좌가 통장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게 얼마 만인가. 통장에 잔고가 생기다니.’
감격의 순간도 잠시, 그동안 밀린 대출이자가 소리 소문도 없이 빠져나갔다. 원리금 균등상환이어서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형님! 이를 어쩌죠? 은행에서 대출이자를 빼 가 버렸네요.”
“왜? 그게 뭐가 어때서? 그러라고 수강생 모아서 돈 벌려고 하는 거 아니었어?”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형님하고 상의도 하기 전에 돈이 비어버리니까 죄송해서 그렇죠.”
“미안해할 것 없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금전관리 해주면 난 자네하고 경제공동체가 된다 해도 흔쾌히 허락할 거야.”
“지금처럼이라면 어떤……?”
“아, 그거? 음,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지금처럼 투명하게 얘기해 주는 거!”
인공이 이렇게 관대한 사람이었다니, 가슴이 다 뭉클했다.
이대로 아무 탈 없이만 가 준다면, 대출 빚은 원리금 균등상환이니 자연스럽게 갚게 될 것이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미숙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