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iple of the Three Kings RAW novel - Chapter (524)
삼왕의 제자-524화(524/525)
524
마침내 모든 것을 이해한 이로운이었다.
자신이 혼돈이라는 사실도, 자신이 겪어온 시간들도.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인 이로운은.
“스승님.”
검왕을 향해 입을 열었다.
“또 반복할 것이냐?”
안타까움에 물어오는 검왕.
그러한 검왕을 바라보는 이로운의 얼굴엔 표정 따윈 없었다.
“무의미한 세계입니다.”
결국.
“이곳 또한 다른 것이 없습니다.”
이로운은 지금껏 반복해오던 수많은 선택을 또다시 하려는 것이었다.
꽈악.
검왕이 주먹을 쥐었다.
“정말 그리 생각하느냐?”
다시 물었다.
어차피 이로운을 상대할 방법은 없었다.
혼돈을 마주했던 삼왕, 세계의 왕들은 언제나 혼돈에 꺾였다.
혼돈이란 그런 것이었다.
마주할 수 없는 절대의 힘이자, 세계의 원천.
그야말로 신이라는 이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존재라고.
“저만큼이나… 스승님께서, 스승님들 또한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이로운이 말했다.
“왕이 태어난 세계. 그 결말이 어찌 되었는지.”
자연스레 태어난 왕들, 그들에게 힘을 부여했던 혼돈.
그리고.
“결국 왕을 배척하고, 저들끼리 싸우며 자멸했습니다.”
결말은 언제나 같았다.
기억에 의존하며 과거에 매몰된 것이 아니었다.
“보셨겠지요.”
지금, 현재 또한 마찬가지였다.
“은은 무왕의 존재를 지우고, 그 존재를 부정했습니다.”
혈교, 하오문, 무왕의 존재를 어렴풋이 기억하며 그를 기다리는 자들도 있었지만 결국 그들은 그들의 왕을 잊고 현재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남은 세력마저 잃을 정도로 멍청했다.
무림협회란 곳은 그마저도 잊고 지운 채 묻어두었다.
“게헨나는 스스로가 마왕이 되겠다며 저들끼리 상잔을 벌였습니다.”
마왕을 오래도록 기다린 몇몇 존재가 있다지만 그뿐이었다.
게헨나는 그 어느 곳보다도 빠르게 멸망을 향해 나아가며 서로를 깎아 먹고 있었다.
“아인하트는 어떻습니까?”
검왕의 출신, 아인하트는 어떠했는가.
“스스로를 왕이라 칭하며 당신을 사칭하는 그곳이….”
이로운의 눈빛, 표정, 목소리가 변하고 있었다.
혼돈의 기억을 각성했으나 남아있던 인간성이….
-정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느냐?
울려 퍼지는 목소리.
콰아앙-!
그것은 절대자의 목소리이자 세계의 목소리였다.
-이 곳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라져야 할 마땅한 곳이지. 그러니….
이로운의 눈이 번뜩인 순간.
쩌어어엉-!
그를 묶어두던 본데노의 봉인진이 산산이 부서졌다.
“……!”
검왕의 말대로였다.
마왕과 본데노, 두 천재가 모든 것을 쏟아부어 만들어낸 봉인진은 혼돈이라는 존재를 단 한 순간 붙잡는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 찰나의 대화가 가장 신에 가까운 초월자들이 바라던 유일한 것.
그리고 이어진 순간.
푸슈우욱!
검왕의 팔에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이미 에스펜시아를 놓은 채 전투 의지를 버렸던 검왕이었다.
본능적으로 피해 팔 하나를 잃었지.
-멸망의 시간이다.
정말로 이로운은 검왕의 존재를 지우고 죽이려 들었다.
끝.
세계의 마지막 순간이….
쿠오오오오!
마침내 도래한 것이다.
“큭!”
재빨리 뜯겨져 나간 팔을 지혈한 채 검왕이 멀쩡한 다른 손을 내뻗었다.
채에엥-!
떨어졌던 에스펜시아가 되돌아와 그의 손에 붙들렸다.
“그렇다면 언제나 그랬듯 발버둥 치겠습니다.”
아까 전의 이로운은 자신의 제자.
그리고 지금의 이로운은 자신의 스승.
그리고 혼돈과 멸망이라는 이름의 재앙이었다.
* * *
검왕이란 이름의 초월자, 그는 지금 이 세계에서 그 누구보다 강력한 초월자라 할 수 있었다.
“…….”
신음을 삼키며, 눈빛을 쏘아내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넝마나 다름없었다.
뻗어 나오는 혼돈의 힘에 유린당하는 일개 인간.
검왕이란 존재는 혼돈이라는 존재 앞에 그저 그런 존재로 격하되었다.
“이번에도….”
혼돈을 상대할 수는 없다.
그 어느 때고 실패한 것이었다.
꽈악.
두 눈을 감은 검왕.
“실패인가.”
삼왕, 그들은 혼돈에게 맞섰던 존재들이자.
-왜 그리 열정적인 거지? 너희라면 잘 알 텐데. 너희 또한 나와 같다.
혼돈이라는 존재와….
-너희의 세계를 멸망에 처하려 했던 것이 너희이다.
비슷한 인간들.
그리하여 그들은 혼돈에게 인정받아 자격을 갖추었다.
혼돈과 마찬가지로 혼돈의 틈에서 영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러니 이 세계 또한 같은 결말을 맞이해야 한다.
혼돈의 힘이 줄기줄기 뻗어 나오고 있었다.
이제 끝이 도래할 것이다.
“…니까.”
검왕의 흐릿한 목소리가.
“같으니까.”
점차 또렷해졌다.
온 얼굴과 몸이 피범벅이지만, 검왕은 흔들림 없는 눈으로 혼돈을 응시하며 말했다.
“당신과 우리가 같으니까. 이러는 것입니다.”
또였다.
짙은 슬픔과 안타까움.
그들이 이로운을 보며 내비추었던 감정은 스스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로운을 향한 가녀린 마음이 아닌….
“그것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하며, 지독한지 아니까.”
혼돈을 바라보며 느꼈던 연민의 얼굴임을.
지금 이 순간 내비치고 있는 것이었다.
“세계를 끝장내었던 우리는, 우리의 세계에서 지워지고 잊혀졌습니다. 그리고 당신 또한 당신을 추앙하는 세계를 제 손으로 멸망시켰지요.”
검왕은 울부짖듯 말했다.
“외롭지 않습니까?”
지금 그는 검왕이 아니었다.
무왕, 마왕.
그와 뜻을 함께했던 삼왕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일렁.
정말 혼돈의 눈에도 검왕의 양 옆에 그들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세계를 구하기 위해 이 짓을 반복해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혼돈에게 부여받은 기회.
그것으로 혼돈을 상대하기 위해 계획을 짜고 수 차례 그것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세계를 구한다는 원대한 목적 따위가 아니었다.
“당신을… 당신을 구하려는 것입니다.”
혼돈.
“언제까지 그 외로움과 고통 속에 살 것입니까?”
그 하나의 존재를 구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다.
“이제는 해방되십시오. 이제는 제발…!”
검왕은 말했다.
아무런 표정 없는 혼돈은 천천히 땅에 내려앉았다.
파슷.
순식간에 검왕의 눈앞에 선 혼돈.
“……!”
검왕은 순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흔들리고 있음을.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성공…할 수도….’
마침내 이 기나긴 싸움에 종지부를 찍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쩔그럭.
다시금 에스펜시아를 놓았다.
아니 이번에는 다시 그것을 잡지도 못하게.
‘지금껏 고마웠다.’
에스펜시아의 존재를 소멸시켰다.
마침내 처음으로 내보인 혼돈의 틈, 지금이야말로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승부의 순간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이어.
화아아아-!
검왕은 뿜어내던 자신의 힘을 완전히 개방했다.
그때였다.
“신마!”
검왕이 세워둔 벽 너머, 이곳으로 달려오고자 안간힘을 쓰던 혼돈, 아니 이로운의 동료들이 들이닥쳤다.
* * *
들이닥친 존재들은 이로운이라는 이름의 인간의 동료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이미 초월의 영역에 들어선 자들이었다.
알 것이다.
눈앞의 존재가 자신이 알던 존재와 다르다는 것을.
그럼에도.
“신마!”
그들은 혼돈을 지키며 섰고, 검왕과 본데노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
흔들린다.
“그는 너희가 알던 존재가 아니다.”
검왕은 지친 목소리로 그들을 향해 말했다.
“그는 혼돈이라는 존재로, 이 세계를 멸망시킬 존재이다.”
그럼에도.
“지키려 서 있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아는가?”
하지만.
“닥치십시오.”
하세민은 그런 검왕을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이 신마의 스승님을 알기에 예를 갖추는 것뿐입니다.”
번뜩이는 하세민의 주먹은 서슬 퍼런 살기를 어김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멍청한 것들. 닥쳐올 재앙을 지키려 스스로를 바치는구나.”
검왕의 말에.
“그래서 어쩌란 말입니까.”
이산후는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검왕의 말대로였다.
지금 이로운, 아니 혼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이 세계를, 그것을 넘어 지구와 모든 것을 파괴하리라는 것은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고오오-!
자신들이 알던 이로운이라는 존재 또한 느껴지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이분을 모시기로 선택했고, 이분을 지키고자 맹세했습니다.”
포르지아.
“그 분께서 선택한 일이시라면 함께하는 것이 기사된 도리.”
이들은.
“저희는 주인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스러지겠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검왕을 대적하며, 혼돈의 편에 선 것이었다.
“멍청한 것들.”
그들을 욕하는 듯한 검왕.
그러나.
“…….”
그 얼굴엔 연민과 안타까움이 그대로 서려 있었으며, 그것은 그들의 무지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보셨습니까.”
혼돈.
“아니, 보았느냐.”
그 속에 있을 이로운을 부르짖는다.
“네 기억을 되짚어보거라. 어디서도 이러한 자들이 있었다. 세계를 멸망에 치닫게 하고, 너에게 대적하는 존재들만이 있던 것이 아니다.”
어떠한 세계에서도.
“너를 지키고, 너를 사랑하는 이들이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계획이다.
삼왕이 세웠던 계획.
사실상 그들의 모든 것을 걸고, 그 모든 시간을 할애하며 만들어낸 계획이었다.
혼돈은 혼돈으로 태어나, 혼돈으로 살아가며 그 어디에도 융화되지 못했다.
때때로 인간을 흉내 내며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를 써보았지만, 그럼에도 혼돈은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인간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것이 어떠한가.
무왕의 제안이었고.
-과연….
검왕은 수긍했다.
-과연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
마왕은 반신반의했지만.
-적어도, 혼돈께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배신당하며 또한 치유 받는, 그러한 인간의 생애를 살아본다면 그때나마 외롭지는 않으시겠지.
마왕의 말에 설득되었다.
혼돈을 인간으로.
인간의 생애를 살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그들의 모든 것을 걸고, 만들어진 무대가 바로 이 지구라는 곳.
그리고.
“이로운. 그것이 너의 이름이지 않느냐.”
그것이 이로운이라는 존재라는 것을.
“그러니 부디 기회를 주거라…!”
검왕은 애원했다.
그것은 세상의 멸망을 막기 위한 것도, 자신의 목숨을 애걸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부디 단 한 번, 인간의 생애를 살아보거라!”
혼돈이라는 존재가 인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소리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