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312
#닥터 플레이어 312화
“다시 보시니 어떻습니까?”
사실 로즈가 이번에 레이몬드를 본 건 페닌슐라 행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마안(魔眼)으로 레이몬드를 다시 살피는 게 목적이었다.
로즈는 곧바로 말했다.
“야망이 이전보다 훨씬 거대해졌어.”
“더 말입니까?”
“그래.”
로즈는 막대 사탕을 꺼내 물었다.
‘이전에 봤을 때도 야망이 있었지.’
정확히 어떤 종류의 야망인지는 마안으로도 알 수는 없지만, 짐작되는 건 있었다.
당연히 환자와 백성을 위한 야망일 것이다.
‘그런데 이전보다 야망이 비교도 안 되게 커졌어. 훨씬. 도대체 얼마나 환자와 백성을 생각하면?’
마안으로 확인한바 이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센 야망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사실 돈 욕심이 더 늘어난 것일 뿐이지만, 로즈는 이렇게 생각했다.
‘남을 위해 이런 야망을 품을 수 있다니. 터무니없군. 황홀할 정도야.’
로즈는 실소했다.
더구나 그는 환자와 백성을 위해 두 거인과 맞서 싸우겠다고 천명했다.
도대체 얼마나 환자와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크면?
터무니없어 황홀할 정도였다.
지켜보는 것만으로 몸이 찌릿찌릿할 정도로.
하지만 칼스는 회의적인 음성으로 말했다.
“저자는 당장 페닌슐라 왕국에만 가도 꺾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도 알아. 그럴 가능성이 높지. 무릎 꿇린다고 했지만. 쉽지는 않을 거야.”
로즈는 부정하지 않았다.
물론 레이몬드가 대단한 건 안다.
하지만 페닌슐라 왕국은 지금까지 레이몬드가 활약한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다.
대륙의 중심 강대국 중 하나.
꺾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뭐, 그래도 상관없어. 난 왕자님을 사랑으로 응원하는걸. 왕자님이 실패해서 돌아오면 청혼하면 돼.”
“……농담하지 마십시오.”
“진담이라니까? 덕질할 수록 점점 더 빠져드는 걸 어떻게 해? 워낙 사랑스러우셔야지.”
로즈는 오도독 사탕을 깨물며 레이몬드가 힘내도록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기로 하였다.
[VVVIP 고객님,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왕자님에게는 힐러 론의 로즈가 있으니까요.왕자님을 사랑으로 응원하는 로즈가♥♥♥♥♥]
* * *
이후, 레이몬드는 휴스톤 왕국 수도에서 시간을 보냈다.
일부러 페닌슐라 왕국 쪽에는 기별도 하지 않았다.
왕족으로서의 관심이 꺼지길 기다린 거다.
모두의 관심이 시들해질 무렵, 때에 맞춰 힐러로서 데뷔할 것이다.
그러며 수도에서 환자들을 치료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몇몇 해프닝이 있었다.
일단 백성들.
“왕자님, 저희를 버리시면 안 됩니다!”
“제발, 우리와 함께 있어주세요!”
“우리는 이제 왕자님 없으면 못 살아요!”
레이몬드가 휴스톤 왕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갈까 봐 다들 노심초사한 거다!
백성들뿐이 아니었다.
재상 갈먼을 비롯한 수많은 귀족도 전전긍긍하였다.
“소문 들었습니까?”
“왕세자 전하께서 페닌슐라 왕국의 적통이셨다니.”
“왕세자 전하께서 페닌슐라 왕국의 왕위 계승 서열 1위가 되면, 그러면 앞으로?”
귀족들 모두 레이몬드가 휴스톤 왕국을 버리고 페닌슐라 왕국으로 갈까 걱정하였다.
“큰일입니다.”
“우리 휴스톤 왕국에는 왕세자 전하가 꼭 필요한데.”
“하지만 말릴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 말이 옳다.
모든 건 레이몬드의 뜻에 달려 있다.
갈먼을 비롯한 이들 모두 직접 말은 못 하고 레이몬드가 자신들 곁에 있기를 바라며 눈치를 살폈다.
그런 귀족들의 반응에 레이몬드는 묘한 얼굴을 하였다.
‘참…… 모두에게 무시당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또한, 가장 묘한 마음이 든 건 바로 이 사람의 반응이었다.
국왕 오든!
“……이야기는 들었다.”
국왕 오든이 검은 얼굴이 되었다. 그는 커다랗게 충격받은 얼굴이었다.
‘아리마가 페닌슐라 왕국의 왕세녀였다니?’
아리마. 레이몬드의 친모를 뜻한다.
물론 국왕 오든은 그녀가 보통 신분이 아닐 것임을 눈치는 채고 있었다.
하지만 설마 페닌슐라 왕국의 왕세녀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리고 더욱 충격인 일이 있었다.
“네, 할아버님을 뵈었습니다.”
“……그래.”
레이몬드가 페닌슐라 왕국의 왕위 계승 서열 1위의 왕자라는 것.
페닌슐라 왕국으로 훌쩍 떠날 수도 있는 것이다.
국왕 오든은 레이몬드가 정말로 페닌슐라 왕국으로 떠날까 초조해 보였지만,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말릴 자격조차 없었으니까.
‘그러게 평소에 잘 좀 해주지.’
레이몬드는 피식 웃었다.
물론 페닌슐라 왕국으로 아예 떠날 생각은 없었다.
그가 가려는 건 어디까지나 돈 벌러 원정 출장 가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오든이 노심초사하는 게 왠지 고소해서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님께서 매우 쓸쓸해 보이시더군요.”
“……!”
오든의 눈동자가 흠칫 떨렸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손자로서 일평생 쓸쓸히 있으셨던 그분의 곁에 있어야 하는 게 아닌지.”
“…….”
가족으로서 할아버지의 곁에 가는 걸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오든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기를 반복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치였지만,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는 자격 없는 못난 아버지.
이런 부분에 대해 어떤 말도 할 자격이 없었으니까.
‘당신이 진즉 나를 가족처럼 대했으면, 이런 이야기를 하지도 않았겠지.’
레이몬드는 고소한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뭐, 진짜로 갈 생각은 없으니 고개를 저으려는 순간, 오든이 뜻밖의 이야기를 하였다.
“……미안하다.”
“……!”
레이몬드는 흠칫 인상을 찌푸렸다.
“네가 휴스톤 왕국을 떠난다고 해도, 뭐라고 너에게 할 말이 없구나. 다만, 하나만 명심하거라.”
“……무엇입니까?”
“어떤 선택을 내리든, 나와 휴스톤 왕국은 너에게 영원히 감사하며, 너의 편에 설 것이다.”
“…….”
“페닌슐라 왕국에 가면 부디 조심하여라.”
레이몬드는 입을 다물었다.
오든에게 저런 이야기 듣는 것.
거북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밖에 나오니, 소피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피아?”
“…….”
소피아는 어딘지 화가 난 얼굴이었다.
원래도 얼음 같은 표정이 더욱더 싸늘했다.
‘……뭐야. 나 너 때문에 잔뜩 고생하고 돌아왔다고.’
레이몬드도 살짝 화가 났다.
그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저런 얼굴이란 말인가?!
그런데 소피아가 의외의 발언을 하였다.
“관두세요.”
“뭐?”
“저 때문에 위험 감수하는 것 그만두시라고요!”
“……!”
레이몬드는 흠칫하였다.
소피아가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건 처음이었다.
소피아는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입술을 하얗게 깨물었다.
“……다 들었어요. 카탈 왕국에서 겪으신 일. 어떻게 그런 위험한 일들을…….”
“…….”
“하. 그 소식을 듣고 제가 어떤 심정이었는지. 만약, 오라버니가 죽거나, 잘못되었으면. 저는…….”
소피아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한편, 그녀의 격렬한 반응에 레이몬드는 놀랐다.
‘……쟤 왜 저래? 평소답지 않게. 뭐 잘못 먹었나?’
곧 이유를 깨달았다.
소피아는 레이몬드가 오로지 자신을 위해 그런 위험을 감수했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사실 널 치료해 일을 다 떠넘기려는 흑심이었는데.’
레이몬드는 헛기침하였다.
소피아도 자신이 과민했다고 여긴 건지 주먹을 꽉 움켜쥐고는 말했다.
“……물론 착각하지는 마세요. 그저 휴스톤 왕국의 최고 은인이자 왕세자인 오라버니가 잘못되면 큰일이니 걱정하는 것일 뿐. 다른 의미는…….”
늘 나오는 소피아식 발언이었었다.
레이몬드는 장난기가 들어 물었다.
“……그러니까, 날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네, 맞아요.”
소피아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귀엽네.’
레이몬드는 헛기침을 하였다.
“물론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아니,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말을 버벅대다가 소피아는 확 얼굴이 붉어져 흥, 하였다.
원체 감정이 격해져 있던 상태였던지라 평소와 다르게 도도한 페이스를 보이지 못하는 그녀였다.
“어쨌든 그런 바보 같은 짓은 다시는 하지 마세요.”
소피아는 딱딱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만약 저 때문에 페닌슐라 왕국에 가는 거라면 그만두세요.”
‘……너 때문이 아니라, 돈 벌려 가는 건데?’
물론 소피아를 치료하는 건 이번 페닌슐라행의 목적 중 하나였다.
드래곤 하트를 대체할 물건을 얻기 위해 실벤느 왕녀를 찾아가야 했다.
하지만 그건 여러 목적 중 하나. 이번에는 돈 버는 게 가장 큰 주목적이었다.
‘황금을 산만큼 벌어올 테니, 기다리렴. 우리 왕실도 사치 좀 부려보자.’
빚 저당 잡힌 예술품 따위 다 갈아치우고, 진짜 화려하게 꾸며볼 거다.
그런 마음으로 말했다.
“소피아 너뿐만 아니라, 큰 ㄷ…… 아니, 큰 뜻을 실천하러 가는 거야.”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대신, 부탁이 있어요.”
“조심하라고?”
“네, 맞아요. 물론 이건…….”
“딱히 좋아해서 하는 걱정은 아니라고?”
“…….”
소피아의 얼굴이 옅게 붉어졌다.
희미한 변화였지만, 원체 하얀 얼굴이었던 지라 훤히 보였다.
레이몬드는 쿡쿡 웃음을 지었다.
‘……이러니 조금 동생 같네.’
레이몬드는 문득 이렇게 생각했다.
오든이든, 소피아든.
앙금이 풀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나아질지도 모르겠다고.
그렇게 레이몬드는 페닌슐라 왕국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마경, 랜필드 숲.
훗날, ‘혈로(血路)의 사냥 대회’라 일컬어지는 사건이 일어날 장소였다.
* * *
랜필드 숲.
하늘을 찌를 듯한 울창한 숲이 시커멓게 놓여 있었다.
섬뜩한 기운이 숲 깊숙한 곳에서 기분 나쁘게 흘러나왔다. 안에 서식하는 마물들이 뿜어내는 기운이었다.
하지만 숲 외곽은 전혀 다른 분위기가 펼쳐져 있었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웃고 떠들고 있었다.
온갖 진귀한 음식, 술, 값진 보석 장식.
마치 화려한 연회장같이 야외가 꾸며져 있었다.
실제로 연회장에나 있을 법한 악단 및 무희들이 흥겨운 음악과 춤을 선보이고 있었고, 귀부인들도 옹기종기 모여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녹음의 사냥 대회.
페닌슐라 귀족들의 최대 유희가 시작되려는 참이었으니까.
“드디어 대회 시작이군요.”
“과연 이번 대회 때는 누가 가장 좋은 성적을 낼지 기대되는군요. 역시 기드온 대공이시겠지요?”
녹음의 사냥 대회는 마물을 사냥하는 대회였다.
보통은 휘하의 기사들이 마물을 사냥하지만, 기드온 대공은 이검 격 소드 마스터로서 최우선 우승 후보였다.
“그나저나…… 소문 들었습니까?”
“무슨 소문 말입니까?”
“휴스톤 왕국의 레이몬드 왕세자 말입니다.”
그 말에 귀족들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현 국왕인 페이안 7세의 새로운 적통이 출현한 것이니까!
더구나 평범한 인물도 아니었다.
“설마 전 왕세녀 라스텔 전하께 아들이 있었다니. 그것도 휴스톤 왕국의 왕세자.”
“성자라고 불린다지요?”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하지만 심각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피식 웃었다.
“왕위 계승 서열 1위면 뭐합니까? 어차피 차기 왕위는 기드온 대공과 로드리고 후작에 의해 결정될 텐데.”
이미 페닌슐라 왕국의 실권은 그 두 인물에게 다 넘어가 있었다.
국왕의 새로운 적통이 나타나도 큰 의미는 없었다.
일부 귀족들은 레이몬드가 얻은 명성도 폄훼했다.
“어차피 성자란 명성도 작은 왕국들에서 쌓은 것 아닙니까? 작은 왕국들에서 운 좋게 얻어걸린 것이겠지요.”
작은 왕국들.
페닌슐라 귀족들의 오만한 시선을 보여주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