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373
#닥터 플레이어 373화
라이나는 기가 죽었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의지를 다잡았다.
상대가 누구든 레이몬드처럼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아직 확실한 일은 아니야. 그러니 조금 더 신중하게 정보를 수집하자.’
라이나는 그렇게 결심하고는 다른 용건을 꺼내었다.
바로, 레이몬드가 의뢰한 일이었다.
-아, 그리고 전하께서 의뢰한 마약 검사 결과가 나왔어요.
“……!”
라이나가 의미심장한 음성으로 말하였다.
-검사 결과를 보니, 이거, 자유 도시 연합이 발칵 뒤집히겠는걸요?
라이나가 간단히 수정구로 검사 결과를 이야기해 주었다.
역시나 네 명의 군주 모두 마약 검출 반응 양성이었다!
심지어 그 밑의 유력자들도 우수수 양성으로 나왔다.
라이나의 말대로 자유 도시 연합이 정말 발칵 뒤집히게 된 것이다.
* * *
자유 도시 연합에서도 마약은 불법이었다.
정상적인 국가 중 마약이 합법인 나라는 대륙에 어느 곳도 없었다.
다만, 자유 도시 연합에서 마약이 횡횡할 수 있었던 건, 각 도시의 군주들이 주동하여 마약을 눈감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백히 불법적인 일이다.
따라서 아무리 군주라도 마약을 투약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파장이 적지 않았다.
“이제 되었습니다. 이제 저들 군주들은 끝장입니다.”
소른이 기쁜 표정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이렇게 증거를 확보하다니.”
소른은 거듭 레이몬드에게 감사 인사를 하였다.
반면, 레이몬드는 다소 걱정이었다.
그는 말했다.
“증거를 확보하긴 했지만…… 저들이 순순히 고개를 숙일까요?”
레이몬드는 상대 군주들이 당연히 잘못을 부정하려고 들 거로 예상했다.
물론 증거가 나왔으니, 마약 투약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정도였다.
단순히 마약을 투약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저들을 몰락시키기는 역부족이었다.
‘자유 도시 연합에서 마약 투약 형량이 6개월 정도였던가? 그나마 그것보다 훨씬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될 텐데.’
소른도 마찬가지의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게 나오겠지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방법이 있습니까?”
“이제 우리 게이볼그 가문은 놈들이 마약 유통에 관여했다는 증거를 확보할 겁니다. 단순한 마약 투약을 넘어, 유통에 손을 댔다는 게 밝혀지면, 저들이 군주라도 사형입니다.”
소른은 눈빛을 빛냈다.
“지금껏 게이볼그 가문이 마약 사태를 눈 뜨고 볼 수밖에 없었던 건, 저들 도시에 간섭할 수가 없어서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군주들과 유력자들이 모두 마약을 투약했다는 게 확인되었으니, 개입할 명분이 생겼습니다.”
“음…… 그렇군요. 하지만 만약 저들이 궁지에 몰리면 군사를 일으켜 저항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충분히 가능한 걱정이었다.
하지만 소른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우리 게이볼그가와 다르게 저들 군주들은 각 도시에서 절대 권력을 누리는 게 아닙니다. 군사를 일으키려면 다른 이들의 동의가 필요하지요.”
소른은 설명을 이어갔다.
“하지만 각 도시에는 군주들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경쟁 가문들이 있습니다.
그들 경쟁 가문들에게 이번 일은 커다란 호재일 테니, 군주들이 경거망동하게 놔두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우리를 도우려 들겠지요.”
소른은 말을 이었다.
“이미 우리 게이볼그 가문은 물밑에서 그들의 경쟁 가문과 조율을 끝내놓은 상태입니다.”
레이몬드는 말을 알아들었다.
각 도시에서 그들과 경쟁하는 가문들과 협력해 군주들의 손발을 묶겠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렇게 하면, 수월히 군주들을 일망타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마약을 근절하는 걸 넘어, 자유 도시 연합의 권력 구도가 게이볼그 가문 중심으로 개편될 거야.’
레이몬드는 게이볼그 가문의 숨겨진 목표를 눈치챘다.
미스헬트 대공은 이번 기회에 게이볼그 가문에 반기를 들었던 군주들을 모조리 숙청 후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이들을 군주 삼으려는 것이다.
‘……뭐, 내게 호의적인 게이볼그 가문이 잘 되면 나한테도 좋은 일이니.’
이미 게이볼그 가문은 자유 도시 연합에서 레이몬드가 의술을 전파하는 걸 전격적으로 밀어주기로 하였다.
그러니 게이볼그 가문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레이몬드가 자유 도시 연합에서 돈 버는 미래도 탄탄대로였다.
“그러면 이제 저들 군주들이 실제로 마약을 유통했다는 증거를 확보하는 게 관건이겠군요.”
“네, 반드시 해낼 겁니다.”
소른은 의지를 다졌다.
다만, 레이몬드는 끝까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들이 쉽게 증거를 들킬까?’
썩어도 준치라고, 명색이 군주들이다.
그런데 마약을 유통했다는 증거를 쉽게 발각되게 놔두지 않았을 것 같았다.
‘만약 게이볼그가에서 증거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면 난 끝인데. 원탁 위원 중 네 명을 적으로 돌리게 되는 거니.’
레이몬드는 식은땀이 흘렀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게이볼그가를 믿을 수밖에.
“이제 저들은 그릇된 일을 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소른의 자신만만한 말을 들으며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그렇게 일이 잘 풀리길 바라며.
이후, 전격적으로 일이 진행되었다.
게이볼그 가문은 긴급으로 시민 대회의를 소집하였다.
시민 대회의.
자유 도시 연합은 모든 도시와 시민이 동등하다는 기치로 탄생하였다.
작금에 와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는 기치이지만, 어쨌든 건국 이념 자체는 그러했다.
시민 대회의는 그런 이념 아래에 생긴 정치 행사로, 자유 도시 연합에 커다란 문제가 생겼을 때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의견을 결정하는 회의였다.
물론, 이것도 최근 들어서는 형태가 크게 변했다.
이전에는 정말 수많은 시민이 모여 다수결로 사안을 결정했다면, 지금은 시민을 ‘대표’하는 군주와 유력 귀족들만 모여 회의하는 것이다.
보통 대도시는 10명. 그 밖의 군소 도시는 3명 정도가 대표로 참여하였다.
자유 도시 연합은 7개의 대도시와 수십 개의 군소 도시로 이루어진 터라 200명에 가까운 대규모 인원이 회의장에 모이게 되었다.
“갑자기 시민 대회의라니?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각 도시에서 급하게 모인 유력자들이 웅성웅성 당황한 얼굴을 하였다.
“게이볼그 가문에서 소집한 거니, 분명 커다란 일일 텐데.”
“혹시 철의 제국에서 침공의 기미라도 있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국경에는 전혀 이상이 없는데…….”
다들 짐작이 안 된다는 얼굴이었다.
시간이 지난 후, 단상에 소른이 나타났다.
미스헬트 대공은 먼 거리를 움직일 체력이 되지 않아, 소대공인 그가 대리로 나선 것이다.
“게이볼그가의 대표 소른입니다. 이렇게 참석해 주신 모든 시민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본 게이볼그가는 최근 놀라운 사실을 확인하게 되어 이 회의를 소집하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사실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이 자유 도시 연합에 끔찍한 질병이 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
사람들이 놀란 얼굴을 하였다.
“전염병이 돌고 있다는 말입니까?”
“하지만 우리 도시에는 어떤 소문도?”
“우리도 특별히 역병이 번진다는 소식은 없었는데?”
다들 고개를 갸웃했다.
소른은 그런 그들을 보다가, 의미심장한 음성으로 말했다.
“네, 모두 처음 듣는 소식일 겁니다. 이 병은 쉽게 겉으로 드러나는 병이 아니어서요.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병입니다. 그것도 아주 오랜 기간, 자유 도시 연합을 좀 먹고 있지요.”
“도대체 무슨 질병인 겁니까?”
“그건 이 질병을 밝혀낸 은인께서 설명해 주실 겁니다. 나오십시오, 전하.”
한 인물이 등장했다.
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신뢰와 기품이 절로 느껴지는 미청년이 나타난 것이다.
특히, 인상적인 건 눈동자였다.
마치 빛이 나는 듯한 눈동자는 남을 위하는 마음으로 가득한 듯했다.
이제 자유 도시 연합에서도 유명해진 남자의 이명을 사람들이 불렀다.
“가난의 성자!”
“빛의 왕세자!”
페닌슐라 왕국에서 온 빛, 레이몬드!
그가 시민 대회의에서 단상에 오른 것이다.
레이몬드는 잠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저 간단한 몸짓에 불과했지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감탄했다.
그에게서 설명할 수 없는 기품이 느껴졌다.
레이몬드는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으으. 사람들 많네. 이 사람들이 자유 도시 연합에서 제일 높은 사람들이라고? 나중에 VIP 손님이 될 거니, 앞에서 실수하면 안 되는데.’
긴장하고 있었다!
사실, 레이몬드는 원래 단상에 오를 생각이 없었다. 그냥 증거만 내밀고 뒤에서 얌전히 있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소른이 쓸데없는 배려를 해주었다.
‘이번 일의 최대 공로자는 바로 전하입니다. 그러니 응당 나서서 주인공이 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필요 없는데요?
라고 거절하려다가 생각해 보니 영웅이 되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의 명성은 돈벌이에 사용될 테니까.
그런 마음으로 단상에 올라왔는데, 역시나 그의 소심 쫄보 본성은 직위가 올라도 변하지 않았다.
자유 도시 연합에서 제일 높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니, 또 긴장되었다.
특히 네 명의 군주.
마약을 투약한 이들은 본능적으로 뭔가 꺼림칙한 걸 느낀 건지 시선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만 긴장될 뿐.
이제 레이몬드도 과거의 레이몬드가 아니었다.
‘오늘 최대한 멋지고 신뢰 가득한 모습을 보여서, 오늘 모인 이들을 최대 VIP 호구로 만들겠어!’
레이몬드가 긴장을 억누르고 당당히 입을 열었다.
그가 입을 열자, 빛의 왕세자, 강철의 심장, 의사의 카리스마, 언변 등등 온갖 스킬이 그에게 힘을 보태주었다.
“모두 아시다시피 저는 자유 도시 연합 시민들의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건강검진 사업을 시행하였습니다. 그런데 검사 결과 놀라운 사실을 확인하게 되어 소른 소대공님과 상의하여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결과입니까?”
“보십시오.”
레이몬드는 마도구를 이용해 단상에 한 화면을 띄었다.
“모두 제가 피를 채취해 간 걸 기억할 겁니다. 그리고 저는 마탑과 협력하여 피에 내재한 나쁜 성분을 분석하였는데, 놀라운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다들 의아한 얼굴을 하였다.
“도대체 무슨 결과가 나온 겁니까?”
“혈액에서 사람의 몸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물질이 검출되었습니다.”
“……!”
사람들은 놀란 얼굴을 하였다.
“보십시오.”
레이몬드는 마도구를 조작해 화면을 넘겼다.
막대기에 담긴 푸른색의 연금 물질이 보였다.
“원래 이 연금 물질은 푸른색인데, 어떤 특수한 성분의 물질과 접촉 시 붉은색으로 변합니다.”
레이몬드는 말을 이었다.
“제게 검사받은 500명 중 총 73분의 혈액에서 이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73명의 혈액에서 있어서 안 되는 물질이 검출되었다는 뜻이다.
“그 물질이 무엇입니까?”
사정을 모르는 이들이 염려스럽게 물었다.
반면, 네 명의 군주를 비롯해 마약을 투약한 이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확실히 깨달은 것이다.
“잠깐……!”
하지만 늦었다.
레이몬드가 무겁게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