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393
#닥터 플레이어 393화
‘괴사가?’
오른 다리 발목 부위가 시커멓게 변하고 있었다.
‘설마, 독?’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기드온 대공은 폭발에 휘말리며 전신에 수많은 상처를 입은 상태인데, 지금 발목의 병변은 다른 부상 부위와 확연히 달랐다.
‘혹시 별장이 폭발할 때, 파괴 마법뿐 아니라, 독도 섞여 있었던 건가?’
그런 것 같았다.
원래 기드온 대공의 실력이라면 이렇게 쉽게 독에 당하지 않았겠지만, 강력한 파괴 마법이 한꺼번에 터져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체내에서 일정 시간이 지난 후, 독성이 발현된 거고.
‘무슨 독이지? 괴사 독?’
독은 기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누어진다.
대표적인 게, 신경 독, 용혈독으로 각각 마비와 출혈 증상을 일으킨다. 특정한 장기에 손상을 주는 독도 있다.
기드온 대공이 지금 당한 독은 침투한 부위에 강렬한 괴사 작용을 일으키는 종류로 보였다.
‘정확히 어떤 독인 거지?’
하지만 짐작할 수 없었다.
레이펜타이나에는 마법, 연금물의 부산물이 다양하게 존재했고 따라서, 지구보다 훨씬 많은 종류의 독성 물질이 있었다.
따라서 개개의 독을 추정해 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추정해내도 지금 당장 해독약을 구할 수도 없고 말이다.
독의 증상에 따른 보존적 치료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조직에서 괴사를 유발하는 독성 물질을 제거해야 해!’
레이몬드는 이를 악물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무슨?”
기드온 대공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독성이 어마어마하게 강한지 실시간으로 괴사가 진행하고 있었다.
“엘무드, 구급 키트! 소독약! 마취약!”
“네, 주군!”
괴사 독은 강렬한 독성을 지닌 물질이 체내에 들어와 근처 조직에 괴사를 유발한다.
그러니 어떻게든 빠르게 독성 물질을 제거해 줘야 했다.
레이몬드는 재빠르게 상처 부위를 소독 후 국소마취를 하였다.
그리고 메스를 들어 발목의 상처 부위를 길게 쨌다.
하지만 상처 내부를 들여다본 레이몬드는 길게 신음을 흘렸다.
‘이미 액화되어 주변 조직으로 스며든 상태야.’
심지어 괴사 범위가 급속도로 주변으로 넓어지고 있었다.
레이몬드는 이 독의 끔찍함을 눈치챘다.
‘무시무시한 독성. 거기에 액화되어 연조직으로 스며든 독극물이 끝없이 주변으로 퍼지고 있어!’
눈 깜짝할 사이에 발목 밑 부분의 발바닥은 모조리 독에 먹혀 버렸고, 윗부분은 종아리까지 괴사가 진행되었다.
‘어떻게 이런 끔찍한 독극물이?’
레이몬드는 희게 질린 안색으로 생각했다.
마법, 연금물의 부산물 중 괴사를 일으키는 독극물은 흔하다.
하지만 지금 기드온 대공이 당한 독은 다른 일반적인 괴사 독과 달랐다.
특히 주변으로 퍼지는 양상이 지극히 비정상적이었다.
‘보통의 괴사성 독은 근처만 괴사시키고 끝나는데, 이렇게 다른 부위로 번지며 광범위한 괴사를 일으키다니?’
레이몬드는 퍼뜩 한 가지 사실을 짐작했다.
이건 누군가 일부러 살상용으로 개발한 독극물이다.
아마 별장에 함정을 판 놈들이 만든 독이라.
‘설마?’
순간, 레이몬드는 섬뜩한 가정이 들었다.
‘그놈들?’
놈들.
로드를 뜻한다!
지금껏 레이몬드와 숱하게 얽혔던 지긋지긋한 놈들!
놈들이 지금껏 벌였던 일들을 떠올리면 이런 독극물을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했다.
‘빌어먹을. 어떻게 방법이?’
하지만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다.
밖에서 동태를 살피던 구호 기사 한 명이 뛰어와 외쳤다.
“큰일입니다! 불길이 이쪽 동굴로 번지고 있습니다! 당장 피해야 합니다!”
“……!”
모두의 안색이 굳었다.
지금 그들이 있는 동굴은 얕은 깊이였다.
불길이 주변까지 오면, 그대로 휩쓸린다.
정말 연기가 조금씩 동굴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금세 유독 가스가 들어차게 될 것이다.
“주군, 어서 움직여야!”
“냐옹!”
엘무드와 미엔이 재촉했다.
다행히 근처에 셔트폰과 다른 닥터 그리폰이 대기 중이다. 피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선뜻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기드온 대공은?’
함께 데려갈 수는 있다.
정원에 여유가 있으니까.
문제는 다리였다.
지금 기드온 대공은 시시각각 다리의 괴사가 번지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 종아리 중간 윗부분까지 올라온 상태다.
저게 어디까지 번질지 모르지만, 기세를 봤을 때 쉽게 멈출 것 같지 않았다.
어쩌면 골반까지 퍼질 수도 있었고, 만약 그렇게 괴사가 광범위하게 번지면 기드온 대공은 무조건 사망한다.
‘지금 여기서 손을 써야 해.’
그런 레이몬드의 마음을 눈치챈 엘무드와 미엔이 다급히 외쳤다.
“안 됩니다, 주군! 당장 피해야 합니다!”
“냐옹! 냐옹!”
반면, 크리스틴은 그저 어두운 얼굴이었다.
“소용없어요. 보세요. 이미 마스터는 마음을 굳혔어요.”
정확한 이야기였다.
레이몬드는 기드온 대공을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일단, 힐러로서 환자를 위하는 마음.
그게 발목을 붙잡았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더욱 중요한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이대로 기드온 대공을 포기하면, 난 망해.’
아까 말했듯, 기드온 대공이 죽으면 레이몬드가 이번 일을 덮어쓸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그때, 기드온 대공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왜 절 살리려는 겁니까? 전 당신의 적인데.”
“……말했듯, 대공과 함께 페닌슐라 왕국의 미래를 이끌어가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하.”
기드온 대공은 헛웃음을 흘렸다.
“거룩한 바보라더니. 정말 바보 같군요. 제가 전하의 입장이었으면, 전하가 죽든지 말든지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날을 세우는 기드온 대공이 답답해 레이몬드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전 당신이 아니니까요.”
“……!”
그는 기드온 대공이 아니었다.
지닌바 성품이나 인격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입장이 달랐다.
그는 가난뱅이에 가진 것은 빚더미밖에 없었다.
즉, 그는 절박했다.
‘이제 간신히 떼돈을 벌 기반을 마련했는데, 네가 죽으면 다 날아간다고! 반드시 당신을 살려 떼돈을 벌겠어!’
한편, 기드온 대공은 레이몬드의 ‘다르다’란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우뚝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대공. 전 당신을 살리고 싶습니다. 절 믿어주십시오.”
“…….”
레이몬드는 기드온 대공의 눈빛에 적개심이 다소 옅어졌음을 놓치지 않았다.
“……방법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다만, 대공께서 동의해주셔야 합니다.”
“무엇입니까?”
레이몬드는 잠시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추가적인 괴사 진행을 막기 위해 다리를 잘라야 합니다.”
“……!”
다리를 자른다.
치료적 절단을 뜻한다.
의사로서 가장 고르고 싶지 않은 선택이지만, 지금은 다른 치료법이 없었다.
‘다리 윗부분을 고무줄로 묶어도 괴사가 진행하는 것을 멈추지 못해. 지금으로서는 괴사가 더 진행하기 전에 자르는 수밖에 없어.’
나중에 독의 정체를 알아내고, 따로 해독 방법을 알아내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지금은 이 방법밖에 없었다.
문제는 과연 기드온 대공이 이 방법을 따르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거부할 가능성이 컸다.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는 찰나.
기드온 대공이 말했다.
“자르십시오.”
“……대공?”
기드온 대공은 픽 웃었다.
“뭘 놀랍니까? 잘라야 하면 자르는 거지. 다른 방법은 없는 것 아닙니까?”
생각보다 덤덤한 태도.
이런 끔찍한 치료를 앞두고도 흔들리지 않는다니.
레이몬드는 기드온 대공이 보통내기가 아님을 다시금 느꼈다.
“단, 오해하지 마십시오. 치료를 받는다고 해서 전하와 화의하겠다는 건 아니니. 그러니까, 이건…… 전략적 동맹이라고 하지요.”
기드온 대공은 서늘히 말하였다.
“이번 일을 꾸민 놈들을 잡아 죽여야 하니 말입니다. 그때까지만 전하와 일시적으로 손을 잡도록 하지요.”
그렇게 말하는 기드온 대공의 눈빛에서 섬뜩한 기운이 몰아쳤다.
“놈들은 이 기드온의 분노를 감당해야 할 겁니다.”
레이몬드는 괜히 한기가 들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고개를 젓고는 말했다.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시간이 없었다.
평소 가지고 다니던 응급 키트를 열었다.
촤르륵 수술 도구가 나타났다.
그중 가장 사용하기 싫은 도구, 톱을 꺼냈고, 절단하기 전, 마취를 했다.
워낙 상황이 다급해 전신마취를 할 시간은 없었다.
대신, 척추에 약을 투약해 하반신을 마비시켰다.
이후, 레이몬드는 하반신에 자극을 주어 마취가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했다.
“통증이 있으십니까?”
“……아니요. 먹먹하니, 이상한 감각이군요.”
기드온 대공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과연 기드온이랄까? 곧 다리를 절단할 예정인데, 전혀 동요가 없었다.
레이몬드는 절단 후 출혈을 줄이기 위해 특수 제작한 고무줄로 수술 부위 윗부분을 강하게 묶었다.
그리고 무겁게 말했다.
“눈을 감고 계십시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기드온 대공은 말에 따랐다.
레이몬드는 톱을 꺼내 들었다.
위치는 괴사가 번지지 않은 무릎에서 12㎝ 아래쪽 방향.
다행히 수술 후 의족을 착용하는 데 무리가 없는 위치였다.
만약 무릎까지 절단해야 했으면, 그때는 수술 후 삶의 질이 현격히 떨어진다.
‘의술의 원리와 드워프의 기술을 결합해 특수 제작한 의족을 쓰면 걸어 다닐 수는 있을 거야. 특히, 소드 마스터라 신체 능력이 뛰어나니 재활도 금방 할 수 있을 거고.’
어쩌면 일반인보다 못하지 않은 운동 능력을 보일 수도 있었다.
“뭐 합니까? 어서 하십시오.”
기드온의 재촉에 레이몬드는 잠시 숨을 들이켜고, 그대로 다리를 절단하였다.
서걱. 서걱.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지금껏 수많은 수술을 해왔지만, 다리를 절단하는 건 그에게도 끔찍한 일이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하는 게 환자를 위한 길이다.
곧, 툭 다리가 떨어져 나갔고 혈관에서 울컥 피가 쏟아져 나왔다.
“제자님, 거즈를!”
“네, 마스터!”
크리스틴이 피를 막는 사이, 레이몬드는 철제 지혈 도구를 움직였다.
철컥! 철컥!
철제 집게가 피를 뿜는 큰 혈관들을 결찰하였고, 곧 피가 멈추었다.
“시간이 없으니, 피부를 닫는 건 차후 2차 수술 때 진행하고, 지금은 이대로 드레싱 해 마무리하겠습니다.”
위급할 때 선택하는 개방형 절단이었다.
일단 급히 다리만 잘라낸 후, 피부를 덮는 등 추가적인 처치는 차후 안정적인 환경에서 다시 시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응급 처치를 끝내는 순간, 화악 불길이 동굴 안으로 넘실거렸다.
“주군, 어서!”
“냐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