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013
제 1013화
이쯤에서 시간을 살짝 돌려보자.
진천희가 유호 냉장고를 막 판매하려고 하던 그 시점.
무월이 진천희에게 면담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그래요. 무월 외총관, 말씀해 보시죠.”
“요리 대회를 추진해 보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유호 냉장고를 알려야 하니까요.”
TV도 일간 신문도, 유튜브도 SNS도 없는 이 세계에서 광고 수단은 굉장히 한정적이었다.
그나마 할 만한 것이 축제와 풍문을 이용하는 정도인데, 그도 반응이 느리고 쉽지 않은 편이다.
‘이런 시대에 대회를 이용한 마케팅은 꽤 유용하겠네.’
당장 지구 별에서도 보면, 브랜드 마케팅을 위해 대회를 여는 일이 흔하지 않나.
라면 같은 식품으로 유명한 회사의 농신배 바둑 대회 같은 것들 말이지.
특히나 이 농신배 바둑 대회는 국제전으로 진행하며 한중일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대회 중 하나.
‘무월, 제법 머리를 잘 굴리는걸?’
여기서부터는 조사나 기억이 아닌 발상의 문제라 할 수 있었고.
무월이 데리고 있는 삐약이들이 제법 머리가 핑핑 돌아가는 애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월은 계획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서 대회 명칭은 유호냉장고배 냉음식 요리 대회가 어떠십니까! 냉장고를 이용하는 요리 대회입니다!”
“오오오……. 괜찮군요.”
“냉장고라고 해봐야 소빙정처럼 바로 얼음을 얼리는 것이 아니니 냉장고에 식재료를 담아 와서 미리 얼려둔 것들을 담아 냉음식을 만드는 형태겠지만요.”
진천희가 만든 이 냉장고는 얼음 만들기가 쉽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팟인팟을 기반으로 강호식으로 개량한 형태다 보니.
얼음을 얼리기 위해서는 가장 위 칸에 물을 놓고 최소 삼 일은 냉장고 문을 닫아놓거나 아니면 여는 것을 극히 주의해야만 얼음이 맺히기 시작한다.
다습한 지역은 삼 일이 뭐냐, 닷새도 기다려야 하는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하에 만들어 둔다는 빙고(氷庫)를 쓰는 것도 아니고(빙고도 겨울에 얼린 얼음을 여름까지 보존하는 형태가 대부분이다), 소빙정을 쓰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얼음이 맺히는 것은 이 시대에 혁명 오브 혁명.
내부 반응이 매우 좋다.
“꽤 그럴듯하겠는데요?”
기획서에는 이렇게 써있다.
1. 각 요리사들은 한 달 전에 숙소와 유호 냉장고가 주어진다. 그 유호 냉장고를 한 달 정도 연구할 기회가 주어지는 셈.
2. 한 달 후, 요리사들은 유호 냉장고에 미리 다듬은 식재료를 넣고 손을 뗀다.
3. 경기 당일 참가자들의 냉장고를 대회장으로 배송!
4. 그 냉장고들 안에 있는 재료로 싸운다!
‘음, 옛날에 봤던 어느 프로그램이 생각나는군.’
그것도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요리사들이 맛있는 음식을 하는 내용이었는데 말이지.
“대회 이름은 ‘천하제일! 유호 냉장고를 부탁해.’로 하죠.”
“……그냥 ‘유호냉장고배 천하제일 냉음식 요리 대회’로 하시면 안 됩니까?”
쓰음, 너무 현대적인가.
하긴 ‘무림 꿈나무를 가려 보자!’ 대회가 아니라 ‘용봉지회’라고 부르는 이 시대에 유호냉부는 너무 이질적으로 보이는 걸지도.
“알겠습니다. ‘유호냉장고배 천하제일 냉음식 요리 대회’로!”
그렇게 대회명은 결정!
* * *
하지만 강호 사람들은…….
“빙호지회가 열린다고 하오!”
“빙호지회가 뭐냐고? 대충 무슨 따로 대회 이름이 있긴 한데 복잡해서 다들 그렇게 부르오.”
그랬다. 그것도 길다고 빙호지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빙호(氷狐).
얼음 여우.
유호 냉장고의 원형은 남아있으나 이미 한참 멀어진 이름.
결국 백린의각 사람들도 하나둘씩, 빙호지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이후 천하 각지의 하오문과 개방을 포섭, 그리고 백린의각 분타들과 백린 편의점까지 끼어들어 광고를 하기 시작했다.
“천하제일 빙호지회! 최고의 숙수를 가리자!”
“오오오! 유호 빙고를 사용한다 하오!”
참고로 유호 냉장고란 단어도 거의 삭제 중이다.
빙고(氷庫).
어쨌든 유호는 남았으니 괜찮을지도…….
“빙호 빙고를 이용해 요리를 해야 하다니… 호오? 괜찮을지 모르겠구려.”
그리고 어느샌가 유호 냉장고의 유호라는 이름조차 스리슬쩍 사라지고 빙호라는 명칭이 붙기 시작했다.
유호 냉장고라는 명칭 중에 남은 게 없는 수준이다.
애초에 강호의 별호는 자기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법.
진천희가 천우의 별호를 어떻게든 정파답게 만들고자 장포 바람 휘날리게 싸웠지만 잘 안 되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천하제일 빙호지회! 예선에 출전할 자들은 여기 명단을 작성하시오!”
각 지역 백린의각 분타와 금혈방 분타에서는 예선 심사를 진행했다.
예선자들은 예상 이상으로 많았는데, 그 줄이 건물 밖을 넘어 한 바퀴를 돌 정도.
예선 주제는 단 하나.
자유 요리.
가장 자신 있는 요리를 들고 와서 심사위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가의 싸움이다.
“왜 이렇게 많이 몰렸는지 아주 죽겠군……. 이러다 예선만 일주일 내내 하겠소. 다른 분타들도 마찬가지요?”
“왜 아니겠소. 본디 황궁에서 주최하는 천하제일 요리 대회 명예인 ‘황룡대숙수’! 그 칭호를 이 대회에서도 내린다 하지 않소!”
황룡대숙수!
이는 천하제일 요리사라는 증거.
황상들께서 슬그머니 숟가락을 얹었다.
일찍이 진천희와 만두 대결을 뛰었던 금봉혈미 종리철산도 만두로 우승하여 황룡대숙수의 문양을 받은 바가 있다.
황룡대숙수가 될 수 있는 기회!
비록 황궁에서 주최하는 대회는 탈락하였다 하더라도, 이 신문물인 빙호빙고를 이용하면 다르리라!
그 마음에 기대를 품은 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소식을 들은 누군가가 있었다.
어느 노인이 주방에 앉아 있다.
커다란 주방에는 무엇 하나 낡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그 손질만큼은 반들반들할 정도로 깔끔하게 이루어져 있었고.
그 앞에는 근육질 거구의 남자가 달궈진 철 냄비를 맨손으로 잡고 흔들고 있었다.
“홀홀홀. 네 ‘스승’이 이번에 요리 대회를 연다더구나. 아마도 네 스승도 출전할 테지…….”
“…….”
노인의 말에 근육 거구의 사내가 대답 대신 냄비를 휘두른다.
촤아아아악!
황금색 볶음밥이 마치 가을 이삭처럼 출렁거린다.
그것은 풍요의 상징.
황금색 파도가 진한 불향을 만들며 출렁인다.
근육질의 사내가 답했다.
“그렇군요. 아버님. 그렇다면 이번에는 제가 스승님께 보은을 할 때군요. 스승을 뛰어넘는 것이 바로 제자로서 해야 할 일!”
그는 그릇에 볶음밥을 덜고는 거대한 화과를 내려놓는다.
터엉!
화과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 소리가 흡사 천 근과도 같았고.
거구의 사내는 요리사라기보다는 강호인에 가까운 몸을 하고 있었다.
아니, 강호인도 이런 육체를 갖기 어려웠을 터.
“제가 나가서. 스승님을 꺾고 천하제일이 되겠습니다!”
그의 눈이 마치 기계처럼 번쩍인다.
그랬다.
진천희의 제자를 자처하고. 현재 천하백대고수의 최말석에 끼어들었으며, 본래는 천하십대숙수를 목표로 했던 이.
마개조 숙수 엄 숙수!
그가 진천희의 손에 마개조된 육체를 꿈틀거리며 각오를 다진다.
그야말로 조각상 같은 거대한 근육이었다.
노인, 제갈린의 은인인 엄 노사가 말했다.
“그래. 강호에서 스승께 바칠 수 있는 최고의 효(孝)란 결국 청출어람이니! 이번에 그분을 뛰어넘어 진정한 청출어람이 무엇인지 보여 주거라!”
엄 숙수 출진!
그리고.
천하 각지의 숨은 요리의 고수들이 준동하기 시작했다.
“천하진일광 진천희……. 네놈이 금봉혈미 철산을 이겼다지? 허나 그놈은 황룡대숙수 증표를 받은 이들 중에서 최약체. 나 면검식도(麵劍食刀)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닐진저…….”
실눈의 미중년이 날카로운 중식도를 숫돌에 갈며 중얼거린다.
“후후후. 금봉혈미. 네놈과는 언젠가 결판을 내고 싶었다. 이번에는 나 선식어옹(仙食漁翁)의 요리로 네놈을 끝장내주지!”
분명 노인으로 보이지만, 건장한 체구에 근육을 가진 숙수가 낚싯대로 거대한 냄비 안을 휘저으며 포부를 밝힌다.
그렇다.
심지어는 황궁 주최 천하제일 요리대회에도 움직이지 않았던 천하의 요리 고수들이 모두 모이기 시작했다!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쿠구구구구구-
풍운을 부르는 유호냉장고배 냉음식 천하제일 요리 대회!
곧 개막!
* * *
후룹.
“또 재미있는 일을 벌이는구나. 하지만 제법 좋은 발상이다. 곧 있으면 수확기이니, 그 전에 크게 축제를 한번 하면 좋은 일이지.”
“그렇죠?”
오랜만에 스승과 제자가 마주 앉아 차를 마신다.
격무 속에서 흔치가 않은 짧은 여가.
진천희는 눈을 감고 다향을 즐긴다.
제갈린이 말했다.
“그래. 다만 이 스승은 일이 있어 다녀올 데가 있으니……. 너는 행사를 준비하고 잘 치르려무나.”
“맡겨주세요! 그런데 어디로 가시나요?”
“소림사.”
“네?”
의외의 이름이 나왔다.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예전에 제갈세가가 남겼던 것을 후대인 내가 돕기를 원한다더구나.”
“무슨 일인지는 가봐야 아시는 건가요?”
“대충 짐작은 간다. 아마도 진법의 수리를 부탁하는 거겠지.”
제갈세가는 그쪽에서도 진법을 도운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제 그것을 스승인 제갈린이 물려받게 된 것.
“그렇군요. 그러면 스승님. 무탈히 다녀오세요!”
“음.”
그렇게 다과 시간이 끝나고 제자는 밖으로 나간다.
제자가 완전히 멀어지기를 제갈린은 한참 기다리다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유호.”
“네.”
그림자 속에서 유호가 나타난다.
분명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사람이 나타난 것임에도 제갈린은 익숙한지 전혀 동요가 없었다.
“천년소림……. 그 아래 참회동에는 여러 가지 마물들이 갇혀 있었다지?”
“아마도. 천기가 찢어지면서 그것들을 가두기 어려워졌을 겁니다.”
“그런 부분에서는 참으로 답답한 분들이야. 그것들이 과연 불가의 이치로 계도가 가능할까.”
“글쎄요. 그 옛날 미후왕도 결국 계도한 적이 있으니까요.”
미후왕 손오공.
그는 삼장법사의 계도 아래 투전승불이라는 법명을 가진 부처로 추앙받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미후왕은 제대로 계도가 된 것일까?
그것에 대한 진실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알 수는 없지만 그저 인간은 설화와 전설로 그 흔적을 더듬을 수밖에.
“그런가. 부처라…….”
제갈린 잠시 부처라는 말을 음미했다.
부처.
저들 소림사뿐만이 아니라, 불가(佛家)에 속한 이들이 전부 따르는 대스승이자 초월적인 존재.
그러나 도가의 옥황상제와는 확연히 다른 성향과 격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이다.
허나, 인간은 깨달음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도가에서 부르는 신선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른다.
아득한 자들은, 그저 지나치게 아득하여.
그 편린만으로도 인간의 이성은 너무나도 쉽게 부서지지 않던가.
“소림은 마지막까지 자비를 바라는가.”
제갈린의 마지막 말이 은은하게 허공을 울렸다.
“주인님께서는 소림에서 무엇을 하실 겁니까.”
“…….”
제갈린은 답하지 않는다. 이윽고 그는 남은 차를 삼키더니 입을 열었다.
“모든 것은 희를 위해서일세.”
목소리에서 칼날이 느껴졌다.
제자가 말세를 준비하듯, 스승 역시 말세를 준비한다.
‘허나, 주인님의 선물은 보통 사람은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뿐이지.’
소림이 그런 제갈린을 어찌 상대할지 유호는 궁금해졌다.
‘세계의 뒷면을 품고 있는 소림, 그곳에 제갈세가 선조가 무언가를 장치해두었다. 지금 제갈린을 불렀다는 것은 필시…….’
그때 멀리서 목소리가 울렸다.
“유호! 유호호호호호호–!”
“?!”
미친놈의 미친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