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151
제 151화
딸이 무사히 집에 들르자 궁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빠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제갈린도 궁귀에게 휴가를 내려주었다.
“우리 딸 왜 이리 말랐지. 고생해서 그런가. 일단 뭐 먹자. 각연아.”
궁귀의 시력이 떨어지긴 했다.
왕각연의 볼따구를 보았으면 절대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을 텐데.
상단의 일을 돕는 거나 공손가의 호위 무사 일이 결코 안전한 일은 아니나, 소가주 공손현은 괄괄하고 씩씩한 여자애를 곁에 두고 먹이는 걸 좋아했다.
사촌 동생 공손영을 먹이듯 왕각연도 잘 먹였다.
활동량이 어마어마한 무인이다 보니 살찔 일은 없으나 혈색이 나빠질 일도 없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뺨을 두고 궁귀는 왜 우리 딸이 이렇게 병든 닭처럼 비실비실해졌냐면서 미친 듯이 먹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왕각연도 고향집(?)의 맛에 단 한 번도 싫다는 소리 없이 먹기 시작했다.
부녀상봉은 그렇게 먹을 것으로 시작했다.
그건 꽤 정석적인 상봉이었다.
그것과 별개로 진천희는 공손현, 공손영과 사업 이야기 겸,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 사람은 온돌방이 있는 따뜻한 다실에 앉아 유호가 준 곶감을 하나씩 쥐었다.
“와, 그러면 공손가 후계 구도는 정리가 된 건가요?”
“하아…… 일단은 그리될 것 같습니다.”
타는 미련으로 공손현이 말했다.
아직도 그녀는 공손가의 가주는 태양지체인 공손영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문이 평안하면 그걸로 좋은 일이죠. 말씀을 들으니 공손영 소저…….”
공손영이 빠르게 말했다.
“누나. 그렇게 부르기로 했잖아.”
공손영은 진천희가 자신에게 격식을 차리지 말았으면 했다.
“…네, 공손영 누나는 어차피 가주에 관심이 없다고 사방에 알리고 다녔던데.”
먼 곳에 있는 의원 귀에까지 들릴 정도면 이미 강호 바닥에는 몇 바퀴 돈 이야기라는 거다.
그렇게 진천희는 묵을 대로 묵은 소문의 먼지를 탁탁 털었다.
언니 공손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네. 그렇습니다. 아둔한 제 동생이… 사방에 말하고 다녔지요.”
“그게 뭐 잘못된 거야? 내가 그러면 좋다고 해? 그러면 언니가 나 가주 시킬 거잖아.”
“영아.”
“에이, 안 해. 공손가 내 대에서 끝내고 싶으면 시켜 보든가. 그리고 언니도 말 놔. 언제까지 그럴 거야.”
“…….”
그렇게 공손현은 공손영에 의해 하나씩 고집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그 또한 인생이지.’
진천희는 작게 속으로 미소 지었다.
그리고 한켠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제삼자가 보았을 때 공손영은 정말 가주 자질이 아니었으므로.
“말을 이어 가자면 왕각연, 그 아이는 참으로 대단한 아이였습니다. 마치 우리 영이 어릴 때를 보는 것 같더군요.”
“언니.”
“알았어. 앞으로 할 이야기는 편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진천희가 답했다.
“저야말로 바라는 바지요.”
공손현은 그렇게 진천희에게 말을 놓았다.
그건 공손현에게 있어 몇 없는 경험으로, 진천희가 그만큼 특별한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게 공손현에게 지난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러했다.
왕각연은 진천희에게 추천서를 받고 공손가로 향했다.
운룡표국 일도 나쁘지는 않았으나 부친인 궁귀를 의식해서인지 어려운 일을 주지 않았고, 이대로면 아빠 품에서 계속 곱게만 자랄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한창 피 끓는 나이.
왕각연은 이번에는 공손가로 향했다.
“첫 인상부터 눈에 띄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지. 산채 두령의 목을 따서 소금에 담가 오더구나.”
“…….”
진천희는 3초간 말을 잃었다.
이윽고 간신히 이성을 차려서 말했다.
“요즘 방식은 아니군요.”
“연배 있는 무인들은 여전히 그렇게 하지만 그래도 그런 건 원수에게 전해 주지. 거기다가 사파의 방식이기도 하고.”
정파의 대문을 두드리며 내가 산채 두령의 목을 땄다고 소금 상자에 담아 오는 10대 아이를 보며 공손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리 각연이가 궁귀 아저씨를 닮긴 했구나.’
특히나 일을 칠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치는 것이 붕어빵이다.
“어쨌거나 실력이 참 좋더구나. 덕분에 상단 사람들이 목숨을 몇 번이나 구했는지 모르겠어.”
“애칭으로 부르는 건……?”
“우리 영이 어릴 때 같아서 많이 예뻐해 주고 있단다.”
공손영도 적군의 목을 베어 소금 상자에 담아 왔을까.
진천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예전에 보던 삼국지 이후로 이런 이야기를 또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셋은 쌓인 이야기를 하며 왁자지껄 차를 마셨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후.
슬슬 본론으로 넘어갈 때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왜 온돌이 아니라 청옥(靑玉)이에요?”
온돌은 건축이고 청옥은 기껏해야 보드게임 아닌가.
움직이는 액수가 다르다.
당연히도 공손상단에서 온돌도 입찰하리라 생각했는데 청옥만 건드렸다.
공손현이 말했다.
“건축도 나쁘진 않지. 하지만 사람이 그 집에서 대를 이어 살진대 수리와 증축, 개축을 할 생각을 하니 골치가 아프겠더구나. 우리 공손상단은 지금 확장보다는 안정적인 것을 소소하게 팔아야 할 때라는 판단이 들었지.”
이 시대의 사람들은 집을 허투루 짓는 법이 없었다.
한번 집을 지으면 그 집에서 죽을 때까지 사는 게 당연한 시대였다.
그 부분도 공손현은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녀가 말했다.
“거기다가 우리 공손상단은 표국과 연계되어 있지 않기에 그렇게 무거운 자재를 옮기려면 비용이 많이 들지.”
이런저런 계산이 들어 있던 모양이었다.
공손현이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타표국, 보타상단에서 온돌에 탐을 낸 건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지. 공반하라는 자가 상단주라 들었는데 상당한 실력자더구나. 좋은 경쟁자가 되겠어.”
공손현어(語)로 ‘경쟁자’는 번역하면 ‘목 잘 간수해라’는 뜻이 되겠다.
상단 경쟁은 칼만 없을 뿐이지 전쟁터가 따로 없다.
아니, 칼도 쓴다. 많이 쓴다.
그래도 아직은 보타상단은 보타표국에서 나온 갓난아기.
공손상단과 정면으로 싸울 정도는 아니다.
기억해 두겠다는 뜻 정도만 되겠지.
“그에 비해 청옥은 장인들을 고용하기도 쉽고 대나무 수급만 원활하면 계속 만들어낼 수 있으니 쓸 만하단다. 거기다가 큰 문파의 장문인들께서는 대나무가 아닌 옥이나 흑석으로 만든 것을 원하시니 맞춤으로 깎아 드린다면 그 또한 이윤이 남겠지. 거기다가…….”
공손현의 눈이 빛났다.
“직접 해 보니 꽤 재미있더구나.”
“와, 해 보신 거예요?”
“백린의각 분타에 온 것을 조금 해 보았지. 아주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구나. 아무리 머리를 써도 결국 기연패 한 장에 뒤집히는 부분이 특히.”
공손영이 씨익 웃었다.
“내가 언니보다 운이 좋더라고.”
태양지체의 미소가 너무 밝다.
진천희가 말했다.
“이윤은 삼 할.”
“독점?”
“네. 대신 놀이패를 어떻게 쓰는지 의보에 게재할 거고, 의각 분타에서도 꾸준히 구매할 예정이에요.”
이쪽 장인들은 의각 전문 장인이지 놀이패 전문 장인이 아니다.
진천희의 의뢰를 받아 청옥을 여러 개 생산하긴 했으나 이러한 일의 전문성은 공손상단 소속의 장인이 더 나을 터였다.
“좋은 거래가 되겠구나.”
그리 말하며 곶감을 물었다.
“생각보다 많이 단걸?”
“스승님 입맛으로 만들었거든요.”
진천희를 만난 이후, 제갈린은 단 걸 특히 잘 먹었다.
자연히 이런 다과류도 단 것으로만 올라오고, 곶감도 당도가 중요해졌다.
“……맛있어.”
돌아가는 길에 몇 개 더 집어 드려야겠다.
* * *
“그래? 그렇게 거래를 했다고?”
스승님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진천희는 그런 스승님께 거래 내용과 앞으로 의보에 실을 내용, 지역 분타에 어떤 식으로 일을 진행할지를 소상히 알렸다.
제갈린이 말했다.
“과연 그런 거래라면 이쪽이 손해 볼 것이 하나도 없지. 과연 우리 희구나. 의술도 천하일절인데 상재(商才)까지 있으니.”
그 말에 진천희의 얼굴이 홧홧했다. 아니나 다를까 제갈린이 말했다.
“어서 이 일을 의보에 실어야겠구나! 생각해 보면 그렇지. 강호에 칼만 쓸 줄 아는 놈이야 모래알처럼 많지만 문파를 경영하고 이끌 수 있는 인재는 많지 않은 법!”
이러다가 또다시 제갈린의 팔불출이 폭주할 것 같았다.
진천희는 다급하게 스승님을 뜯어말렸다.
“어차피 상단이 움직이면 모두 다 알게 될 일입니다. 거기다가 의보로 가짜 온돌을 쓰게 되면 어떤 위험이 닥치는지도 게재하면서 알리게 될 터이니 괜찮을 거예요.”
먹히나?
스승님이 생각에 잠기다 말했다.
“후, 안타깝구나. 다른 장문인들에게 제자 자랑을 크게 할 수 있는 기회였건만.”
그랬다.
진천희는 여전히 ‘스승 친구 제자’였다.
한국의 ‘엄마 친구 아들’과 비슷한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남궁운도 나 때문에 엄청 혼났댔지.’
-백린의선 제자 소백룡은 그 나이에 벌써 협을 이룬다구나!
-소백룡이 그 나이에 내공이 일 갑자에 이르렀다고 전서를 보냈다더구나!
…이제 이 갑자라는 건 다행히도 스승님이 다른 곳에 떠벌리고 다니진 않으셨다.
남궁 가주께서 알게 된다면 남궁운은 또다시 잔소리를 듣게 될 것이었다.
본의 아니게 무림의 후기지수에게 큰 짐을 주고 있는 진천희였다.
당아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래. 우리 당아. 대단하구나… 용봉지회 우승자라니……!
-다, 당아야. 그보다 맑은 공기를 좀 더 마시는 게 어떠니?
-당아야. 피라니, 봉인이라니. 우리는 정파란다. 당아야. 지금이야 그런 마음이 들겠지만 어른이 되면…….
-스무 살 되기 전에 죽겠다니! 그런 말이 어디에 있니! 당가에 그런 마공은 없단다!
-흑염룡의 봉인이 풀린다니. 그 말을 용봉지회 한복판에서 외치는 건 말리고 싶구나.
-꼭 하고 싶으면 조용히 초식 이름처럼 말하는 건…….
-아니, 나는 당연히 당아 편이지. 그런데… 아빠가… 해… 봐서 그래.
-당아야. 아빠도 해 봤어. 그런데 별로 안 좋더라. 당아야.
…소문을 현대식으로 재구성해 보자면 대충 이런 이야기들이 들린다.
당가는 자손을 끔찍하게 예뻐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지구도, 무협 세계도 사람 사는 건 똑같다.
혈편왕 당아는 질풍노도를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그랬기에 당가는 굳이 진천희를 끌고 와서 당아와 비교할 기력 같은 건 없었다.
그들은 사춘기에 잉태된 딸의 흑염룡을 제어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어찌 되었건 진천희의 온돌과 청옥이 강호 전역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보타상단과 공손상단이 이윤을 얻을지는 두고 봐야 할 일.
진천희는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그래도 비누보다야 많이 팔리겠지.’
그저 비누 사업으로 망한 손해액을 메꿀 수 있으면 다행이겠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