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432
제 431화
‘스승님도 마찬가지고.’
그 스승님의 태산 같은 육체가 잠깐 휘청일 정도면 말 다 했지.
스승님 정도의 무공이면 차라리 무림 혈사 속에서 검강을 줄기줄기 날리며 다 때려죽이는 게 더 편하실 거다.
원래 사람은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게 훨씬 어려운 법이니까.
‘우리의 일이란 본디 쏟아진 물을 도로 담는 일이지.’
물 대신 생명을 도로 담으려고 애쓰는 일이다.
‘백린의각이 치료한 환자가 어제 151명인가. 후유증은……. 최대한 없도록 처치를 해 보려고 했지만 모르겠다.’
2019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에 응급실이 521개가 있다.
대충 하루 50여 명 정도 온다고 했을 때…… 이 의학 수준으로 151명은 당연히 오버다.
현대 의학은 통계의 의학이지만, 기계의 의학이기도 했다.
그게 없다. 없어. 없다고!
하려면 코일부터 발명해서 트랜지스터까지 가야 해. 최소한.
결국 환자 맥 잡는 것도 사람이 해야 하는 상황.
심지어 지구라면 관공서마다 벽에 걸려 있는 AED(Automated external defibrillator) 같은 게 여기 있을 리가 없다.
그런 걸 써야 하는 상황이 오면 오행신공 뇌기를 익힌 의원이 올라타서 수동으로 해야 한다.
‘전문가가 쓰는 게 따로 있긴 한데.’
핵심적인 원리는 같다.
전기가 필요하다는 것.
그러다가 너무 많은 뇌기를 사용하면 자칫 주화입마가 올 수 있으니 그 의원은 운기 행공하며 쉬어야 한다.
이게 동서양 퓨전의 맛이지. 허허허.
‘그리고 그 미친 짓으로 사람을 살리고 있는 게 내 일이고.’
다른 의각과 나누어 하고 있다고 해도 명백한 과로이고.
일단 나아지면 지역 큰 의각으로 호송할 수 있겠으나, 이 전선(戰線)에서 환자 호송은 무리다.
“남하하는 숙신족의 병력이 삼십만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진짜인가요?”
군의를 붙잡고 병사가 물었다.
그때 옆에 누워 있던 장수가 답했다.
“뭘 걱정하나, 우리도 그만한 병력이 있는데. 황상께서 제국을 굽어살피실 걸세.”
모르겠다. 몽골 제국이 어떻게 알차게 주변 국가를 발라먹었는지 알고 있는 지구인으로서는 저 수신족의 칸이라는 작자가 몽골 제국급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이게 지옥이지.’
끝나고 어떻게 통계를 내고 어떻게 논문을 쓸지 골자는 잡혀 간다.
이 지옥이 어찌 되었건 이 논문을 완성하고 나면, 다음 전쟁 때는 그걸 읽은 군의들이 더 잘 활용하겠지.
미친 소리지만 그랬다.
그게 인류가 발전하는 방식이었으니까.
문자의 발명 이후, 인류는 계속해서 앞의 기록자의 글을 읽고, 뒤의 기록자가 다시 글을 남기며.
글이 쌓이고 쌓여 강을 이루고, 마침내 바다가 되었다.
다음 군의는 자신보다 낫기를 바랐다.
이 시행착오를 그가 겪지 않기를.
그러니 기록할 수밖에.
부디 한 명의 병사라도 더 살려 집에 돌려보낼 수 있기를.
* * *
닷새가 더 지났다.
백린의각, 화주의각, 그리고 다른 의각 및 중소 규모의 의방에서 소집령으로 온 의원들이 스스로를 갈고 갈아 어쨌든 부상병들을 치료해 나가고 있다.
물론 완치했다는 게 아니다.
일단 숨은 붙여 놨다는 뜻이다.
사지를 자를지, 말지부터 고민해야 하는 게 이 바닥인 판국에 완치는 경상 환자에게나 있는 사치다.
그리고 처치를 완료한 환자도 밤에 갑자기 상태가 급변하는 경우가 있다.
사람 몸뚱이라는 게 기계와는 달라서 의원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통계가 있는 거고.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정신을 본받아서 이 순간에도 통계를 계속해서 집계하고 있다.
비록 그분처럼 통계와 정치 쌍수 무기는 못 휘둘러도, 그래도 한 손 무기라도 휘둘러 봐야 하지 않나.
점심 동안 밥을 입에 넣으며 동시에 서류를 넘겼다.
종이로 된 서류가 아닌, 죽간본 위에 흑탄으로 급히 휘갈겨 쓴 기록들이다.
“닷새 동안 이천여 명 정도를 치료한 셈이구나.”
“네. 백린의각을 포함한 의원의 수는 총 사백여 명. 한 명당 다섯을 치료한 꼴이지만, 이게 사망률이 각 막사마다 차이가 크니 그런 식으로 생각하기는 어렵네요.”
“그래도 기본 부술 자체는 꽤 보급이 되어서 일반 의원들도 상처 정도는 꿰맬 수 있게 되었으니 다행이지.”
허나, 그 이상의 중증으로 들어가면 현재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백린의각뿐이다.
흑전의각 쪽 핵심 인력은 들어오지 않은 것 같다.
‘……혈생노괴 님. 이러시깁니까.’
가슴을 쳐 봐도 어차피 마교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곳 아닌가.
혈생노괴 님 입장에서야 수족처럼 부리던 상의원들 떼놓고 연구하기 싫으시겠지.
크윽. 이게 이기주의다. 이기주의지.
근데 사람 팔을 세 개로 만들고 눈도 세 개로 만들고, 콧구멍도 세 개로 만드시는 그분께 이기주의 가지고 뭐라 할 게 아니다.
이미 매드 사이언티스트 대마두 아니신가.
대마두한테 도덕성을 읊어 봐야 아이고, 의미 없다.
스승님이 말했다.
“의원 인력이 앞으로 세 배 정도 더 오지 않는다면 불어날 환자를 전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구나.”
“얼마나 늘어날까요?”
“적어도 오천에서 일만 명 이상의 환자가 단번에 생길 거란다. 그것도 다음 번 전투 이후에. 그보다 더 많은 이가 죽을 것이고.”
“…….”
끔찍하다.
적벽대전 백만 대군 이야기를 활자로 접했을 때는 ‘우와, 많구나!’ 하고 말았지.
거기에서 부상병이 몇이나 생겼을까 하고 고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그래도 군사(軍師)가 유목민들과의 전투 요령을 빨리 습득하고 있는 모양이더구나.”
불행 중 다행이네.
다시 아득아득 견과류 막대를 씹는 진천희를 보며 스승, 제갈린이 말했다.
“천희야. 모든 죽음에 책임을 지려 하지 말렴.”
“……알고 있어요.”
“그래. 머리는 알고 있겠지. 허나, 가슴은 모르는 거 같아 말하는 거란다. 너는 기이하게도 타인의 죽음에 대해 죄책감이 강한 아이니까. 허나, 이 일은 일개 군의(軍醫)가 책임질 일이 아니지.”
“그러면 누구의 책임일까요.”
“모두의 책임이지. 우선 제국은 유목민의 동태를 알면서도 그들을 가르고 찢어 놓지 않았지. 만약 제국이 유목민들을 이간질하거나, 미리미리 토벌을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겠지.”
“……어, 그거…… 되게…….”
“선악의 문제가 아니란다, 희야. 이건 힘의 원리지.”
평화롭게 외교로서 전쟁을 막는 방안도 있지 않았을까.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스승님은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혼인을 이용해서 조절하는 방법도 있었겠지. 전통적으로 제국이 그래 왔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정세를 파악해야 가능한 법이고, 무엇보다 숙신족을 중심으로 한 연맹은 스스로 왕국을 만들려 하고 있단다.”
“영구적인 확장을 하려는 것이군요.”
“그래.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기후의 비옥한 땅과 항구가 필요하고. 필연적으로 제국의 영토 일부를 점령해야겠지. 그러니 정략혼 같은 평화적인 방법은 결국 불가능했을 거란다.”
어찌 되었건 피를 보게 된다는 뜻인가.
진천희는 생각에 잠겼다.
“스승님께서는 잘 아시네요.”
“하하, 이 스승이 그래도 제갈세가의 마지막 가주가 아니더냐. 군략과 병법을 위해서는 상대를 알아야 하는 법. 저들은 기본적으로 유목 부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유목이란 결국 초지가 중요할 터. 어쩌면 모두 불태우고 전부 초지로 만들어 버리고 싶어 할 수도 있겠구나.”
“아예 농업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군요.”
스승님은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된 책사가 있다면 말리기야 했겠지. 허나, 글쎄다. 아마 원하는 농지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전쟁을 멈추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진천희는 살짝 놀랐다.
지구에서도 몽골은 충분한 영토를 얻었었다.
그곳에서 내정을 우선으로 하며 나라의 기틀을 다질 수도 있었을 터.
허나, 전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서쪽으로, 서쪽으로.
대규모 도시 학살이 이루어졌고, 항복했던 국가와 피난민들도 죽였다.
당시의 문헌을 조금 발췌하면, 항복한 사람들을 끌어내서 사살하거나 사냥감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많았다.
그 시대 동양에 대한 서구의 공포와 과장이 섞여 있다고는 하나, 적어도 강제 징용과 약탈은 한 것 같다.
인터넷에서야 ‘인간은 환경오염의 주범이니, 사람을 대량으로 학살한 칭기즈칸은 진정한 환경 보호자다.’라는 식의 농담이 돌아다닐 수도 있지만, 그것도 너무나도 오래된 역사책 한 줄이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이긴 하지.
‘역사서에서만 봤을 때는 멋있어 보였는데 말이지.’
정복자의 상징 같은 존재 아니었나.
‘칭기즈칸의 기상!’
그런데 그 무림 행성의 환경 보호자 2가 지금 이웃으로 있다는 거군.
‘연약한 진천희는 죽을 거 같다.’
그냥 무림 별에 떨어진 것만으로도 극한의 의사 생활을 하고 있는데, 저쪽 전선(戰線)에는 궁극의 환경 보호론자가 탄소 배출을 막기 위해 화살 비를 쏘고 있다.
‘일단…… 스승님의 추측이 지구사(史)적으로는 맞지.’
아마 이 도시를 점령한다고 해도 정복은 끝나지 않을 거다.
많은 이들이 죽을 거고.
도시가 불타겠지.
스승님이 말했다.
“만리장성이 왜 생겨났더냐?”
만리장성.
삼국시대 이전, 그러니까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이 만든 거대한 성벽.
세부적인 부분은 지구와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건 같을 거다.
유목 부족은 평지에서는 강하지만, 성벽에는 약한 편이다.
말 타고 성벽을 오를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그것도 일정 이하의 수준에나 그렇지.’
보병과 공성 병력까지 뽑아 버리면 답이 없다. 그리고 숙신족은 실제로 뽑았다.
지금 진천희의 예상대로 그들이 투석기에 진천뢰 담아서 쏘고 있는 거면 답이 없는 거고.
“그러면 이 전쟁은 어떻게 해야 끝날까요?”
“저들 유목 부족이 패하고 물러가거나, 제국이 패해서 나라가 바뀌거나……. 그러나, 어느 쪽이든 피가 많이 흐르긴 할 게다.”
‘원작 소설에서는…… 어땠더라.’
북방 유목 민족으로 민초가 시름에 젖어 있고, 민심이 혼란스럽다는 묘사는 있었다.
이민족이 난세를 일으켜 황도로 향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원작에서는 은왕야가 죽었을 터이니, 금왕야 혼자서 분전하고 있던 모양이다.
지구에서는 금나라가 멸망하는 데 23년 정도 걸렸고, 송나라는 그래도 45년 걸렸다.
무림 행성에서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행복 회로를 돌려 보면 지구 역사와는 달리 어쩌면 진짜로 끝까지 버텨 냈을 수 있을 수도 있고.
당시 여하륜은 기본적으로 군대도 안 가고, 관무불가침을 잘 이행하는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그냥 혈선교 잡고 등선하고 완결했다.
‘……도움이 안 되는군.’
애초에 지존천마에는 이 세계의 조세 제도도 안 쓰여 있지 않았나.
천마는 세금도 안 내니까.
“강해지고 싶네요.”
진천희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