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191
기수와 다섯 사매는 북경성 서쪽에 자리 잡은 산으로 올라갔다.
가다가 쉬고, 적이 시야에 들어오면 다시 달아나는 식으로 동창 무사들과 금의위 병력을 유인하는 움직임이었다.
동창 무사들은 만경전장과 성 밖 싸움에서의 피해상황을 파악하고 적이 보통내기가 아니란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일단 금의위 병력을 동원해서 산을 포위했다.
그리고 인원이 충분히 모이기를 기다린 후 한꺼번에 함성을 지르며 올라갔다.
감히 겁도 없이 동창을 건드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엄청난 인원이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포위작전은 그들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산 중턱에서 일대 혼란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혼란의 원인은 기문진이었다.
선두가 사라지고, 후미는 끊겨서 앞뒤로 연락이 되지 않으니 도망자들을 잡기는 커녕 자기들 앞가림도 못할 상황이었다.
그 시간. 산에서 한참 떨어진 객잔.
기수와 사매들은 성공을 자축하고 있었다.
추매가 기수의 잔에 술을 가득 따라주며 말했다.
“지금쯤 진에 갇혀서 버둥대고들 있겠지?”
“간단하게 만든 거라서 오래 버티지는 못할 거야. 후후…”
설매가 기수에게 바짝 당겨 앉으며 말했다.
“그래도 저들이 알아차리긴 하겠지?”
“당연하지.”
“양칠 오빠는 정말 대단해. 어떻게 무극환혼진 펼쳐놓을 생각을 했어?”
“내가 얘기 안 했나? 천재라고….”
“호호호!… 맞아, 맞아.”
동창에서 기문진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되면 하매가 전면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사자매들을 피해 숨고 싶겠지만, 그 진법에 대해 아는 사람은 천하에 딱 일곱 명 뿐이었다. 동창 진영엔 그녀가 유일하니 잔뜩 열 받은 동창이 그녀를 그냥 놔둘 리가 없는 것이다.
애써서 찾아다닐 필요 없이 하매를 끌어낼 수 있고, 더불어 진유룡도 내상이 다 나았다면 자기가 손 댄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함께 나설 것이었다.
만경전장을 털고 산으로 올라가서 기문진을 보여준 것은 바로 하매를 끌어내는 트랩이었던 것이다.
6명이 한참 신나게 술을 마시고 있는데 험악한 인상의 사내 4명이 다가왔다.
검을 찬 행색을 보아하니 다들 무림인이었다.
그들은 꽃같이 아름다운 미녀가 객잔으로 들어오자 동시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런데 미녀가 하나가 아니라 모두 5명이나 되었다.
모두들 죽립을 쓰고는 있었지만 얼굴의 드러난 반만 보아도 하나 같이 경국지색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미녀들이 남자 한 명을 에워싸고 있으니 세상이 참으로 불공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술도 취했겠다, 열 받은 김에 시비를 걸려고 2층으로 올라온 것이었다.
그들은 가까이에서 죽립 벗은 5명의 미녀들을 보고 입을 쩍 벌어졌다.
동시에 기수에 대한 질투심이 폭발했다.
“야! 너희들 뭔데 이렇게 시끄럽게 떠들어? 여기 전세 냈어?”
말도 안 되는 트집이지만 어쨌거나 싸움을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동매가 일어섰다.
“너희들은 뭐냐?”
“오호! 이 아가씨가 우리를 상대할 생각이신가?”
한 놈이 껄렁한 걸음걸이로 다가오자 동매가 그를 향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한 걸음만 더 디디면 넌 죽는다.”
“푸하하!.. 이 미친년이 별…”
순간, 동매의 소매가 펄럭였고, 사내는 이마에 표창이 박혀 뒤로 넘어갔다.
그러자 나머지 세 명이 깜짝 놀라 검과 칼을 뽑아들었다.
“사, 살인이다!”
“무슨 짓이냐! 이 친구는 발걸음을 떼지도 않았다.”
그러자 동매가 말했다.
“욕을 해도 죽인다.”
세 사내는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방금 표창 던지는 솜씨를 보고 여인이 고수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 당신들은 누구시오?”
동매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우리는 혈매궁이다!”
그러자 기수가 검지로 자기 얼굴을 연속해서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궁주야. 내가…”
“혀, 혈매궁….”
기수가 말했다.
“그래. 너희들 친구 시체 떠메고 지금 떠나면 방해한 죄를 용서해주겠다. 아니면 함께 표창 맛을 보던가.”
그들은 시선을 교환한 후 즉시 움직였다.
“혈매궁. 잊지 않겠소.”
지금은 자기들이 3명이고 상대는 6명이라 상황이 불리하니 일단 물러났다가 동료들을 불러 모아 복수하겠다는 의도였다.
기수가 그들을 향해 전표 한 장을 던지며 말했다.
“이건 장례비로 써.”
종이가 휘지도, 펄럭이지도 않으면서 날아오는 것을 보고 사내들은 더욱 놀라서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났다.
그들이 떠난 뒤에도 기수와 사매들은 객잔을 떠나지 않았다.
어차피 자기들의 행적을 알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설매가 기수 허벅지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오빠. 우리 성공했으니까 축하연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하고 있잖아.”
“아잉. 술 마시는 거 말고….”
기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돼. 너희들 너무 시끄러워서 객잔 같은 데서는 민폐야, 민폐.”
“조용히 할게. 응? 응?”
손이 자꾸 위로 올라왔다.
“여기서 시작했다가 방금 도망간 애들이 패거리 끌고 오면?”
“아이! 속상해. 그냥 다 죽여 버릴 걸.”
동매가 말했다.
“일단 여기를 나가서 다른 장소를 찾아보자!”
그 말에 사매들이 동시에 일어섰다.
다들 설매, 동매와 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기수는 잔을 꽉 잡고 일어서지 않았다.
“그냥 좀 편히 밥 먹고 자면 안 될까? 이 시간에 어딜 또 간다고…”
그러나 춘매와 설매가 양쪽에서 기수의 팔을 끼자 그는 질질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동매는 점소이를 불러 계산을 했다.
그녀 역시 만경전장에서 가지고 온 전표로 셈을 치렀는데, 그것은 행적을 드러내려는 의도였다.
점소이가 두 여인에게 부축 받은 기수를 보고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손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나 좀 구해줘.”
“예? 뭐라고 하셨습니까?”
설매가 손으로 기수의 입을 틀어막았다.
기수는 점소이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면서 오른손을 귀에 대서 전화 거는 시늉을 해보였는데, 과연 그가 알아듣고 경찰에 신고할지는 의문이었다.
밖으로 나온 사매들은 객잔을 찾았다.
그러나 방금 나온 곳 말고는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동매가 말했다.
“이럴 바엔 아예 산으로 올라가자.”
“산으로?”
“동창에서 본격적으로 나서면 이제까지보다 훨씬 강한 자들이 올 거야. 그러니까 기문진을 몇 군데 더 만들어두는 게 안전하지 않겠어?”
“그거 좋은 생각이야!”
설매가 말했다.
“그리고 산에선 소리 좀 질러도 누가 듣는 사람 없겠지?”
그녀에게 여전히 입을 틀어 막힌 기수는 황당했다.
‘야! 내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냐? 나 궁주야! 궁주라고…..’
아무도 기수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한밤중에 느닷없이 산으로 올라가면서도 사매들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빼어난 경공술로 단숨에 중턱까지 올라간 뒤 동매가 말했다.
“저기 계곡 어때?”
“좋다! 물이 많으니까 씻기도 좋겠네.”
이번에도 기수 의견은 묻지 않았다.
계속 무시당한 기수는 오기가 발동했다.
‘오냐! 너희들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기수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사매들이 꺅! 꺅! 거리며 도망 다닐 정도로 강력한 파워를 밤새 과시했다.
물가에서, 물속에서, 나무둥치를 붙잡고, 낙엽 모아놓고 그 위에서, 모닥불 피워놓고 불 옆에서 쉬지 않고 노력한 끝에 먼동이 터올 무렵 5명 모두에게서 항복을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기수는 물에 들어가 몸을 씻은 후 뿌듯한 기분으로 떠오르는 태양을 봤다.
‘내가 이겼다!’
그리고 흡족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는데, 사매들이 배시시 웃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이겨도 이긴 것 같지가 않은 밤이었다.
어제 사 온 건량을 나눠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운기조식도 한 6명은 기문진 만들기에 적당한 자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기수는 열심히 지형을 살폈다.
상대가 동창이니까 백업 플랜을 준비해둬서 나쁠 건 없을 것이었다.
무극환혼진을 제대로 구성하려면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여야 하겠지만, 현재 혈매궁의 인원 구성으로 봤을 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다들 경공 능력이 있으니까 상대의 감각을 현혹시킬 정도면 충분했다.
그래도 일거리를 덜려면 장소를 잘 찾아야 했다.
설매가 투덜거렸다.
“계속 돌아다니기만 할 거야? 잠시 계곡으로 내려가서 쉬자. 응?”
기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멀리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발견했다.
“인가가 있나? 가보자.”
경공을 시전하여 도착한 곳은 자그마한 산골마을이었다.
집 한 채가 불에 타고 있었고 마을사람들이 불을 끄려고 물동이를 날랐는데, 마당엔 시체도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기수가 묻자 마을 노인이 경계하는 빛으로 훑어본 후 대답했다.
“산적들이 내려와서 우리 식량을 털어갔습니다. 양씨네는 줄 수 없다고 버티다가 저렇게 변을 당하고 말았구려. 쯧쯧….”
“산적이라고요?”
기수는 눈살을 찌푸렸다.
녹림72채라면 이미 여러 차례 만나서 싸운 적이 있었다.
이전에 백리세가 공격에 합류했다가 삼황맹과 함께 북서쪽으로 이동했다고 들었는데 북경 근처에 산적이라니 앞뒤가 맞지 않았다.
“산적들이 자리 잡은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저기 보이는 게 소항산입니다. 옛날부터 산채가 있었는데 한동안 조용하다가 갑자기 두 달 전부터 다시 산적들이 출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녹림72채 소속이라고 볼 수 없었다. 녹림72채가 하나로 뭉쳐서 움직이니까 그 틈에 빈자리를 차지한 패거리 같아 보였다.
‘틈새시장을 노린 벤처 창업이란 말이지?…’
노인과 얘기하는 사이에 불길은 잡혔다.
하지만 죽은 사람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기수는 괜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 마을엔 초행이고 마을사람들과 일면식도 없지만 그들이 순박한 산골 농민이란 사실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살림살이도 궁색해 보였다.
‘이런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털어먹냐?’
특히 어린아이들이 비쩍 마른 게 영 보기 안 좋았다.
기수는 충동적으로 노인에게 말했다.
“돈을 좀 드릴 테니 장례도 치르고 집집마다 식량도 좀 사다 드십시오.”
노인은 기수가 내놓는 금원보와 은원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무, 무슨 돈을 이렇게 많이….”
“산적들이 다 털어갔으면 당장 오늘 밥 지어먹을 식량도 없는 것 아닙니까?”
“하, 하지만 이건 너무 많습니다. 이 정도 돈이면 우리 마을 전체가 삼사 년은 먹고 살 겁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가진 것 없는 저희들에게 덕을 베풀어주시니 참으로 감사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돈이나 식량 가진 걸 알게 되면 산적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기수가 그들에게 말했다.
“소항산엔 더 이상 산적이 없을 테니까 걱정 말고 식량을 사 오십시오.”
마을사람들은 모두들 기수일행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오늘부터 굶을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는데 살 길이 생긴 것이다.
기수는 그들과 작별하고 바로 소항산으로 향했다.
사매들이 따라붙었고 춘매가 물었다.
“어쩌려고 그래?”
“무극환혼진 펼칠 장소를 찾고 있었잖아? 산적소굴이라면 꽤 괜찮을 거 같은데? 산속에서 이슬 맞으며 밤샐 필요도 없을 것이고.”
사매들도 기수의 의견에 동의했다.
소항산은 멀리서 보는 것보다 험준한 편이었다.
물론 혈매궁의 6명에겐 별 장애가 되지 않았다.
중간쯤 올라가자 망을 보던 산적이 줄을 잡아당겨서 소리를 내는 게 보였다.
기수는 주변을 둘러본 후 말했다.
“여기 마음에 든다. 적이 올라오는 게 훤히 보이잖아. 기문진까지 더하면 꽤 그럴듯한 은신처가 되겠는걸.”
여섯 사람이 거침없이 올라가자 산적들이 경보 울리는 소리가 점점 요란해졌다.
중간에 창을 들고 쫓아오는 자들도 있었지만 경공에서 워낙 차이가 났다.
여섯 명은 산 정상 부근에 만들어진 산채로 들어가는데 성공했다.
나무를 엮어 만든 담 안쪽에 의외로 넓은 공간이 있었고, 수십 채의 집까지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있는 걸로 보아 예전에 지은 건물들 같았다.
“웬 놈들이냐!”
우렁찬 호통과 함께 험악하게 생긴 거한이 마당으로 나섰다.
그의 뒤를 따라 무기를 든 부하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는데 전부 다 합해도 60여명 정도에 불과했다. 기수는 딱 보고 두령 한 놈 말고는 제대로 무공 익힌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간파했다.
“네가 이 산채의 두령이냐?”
기수의 질문에 사내는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난 5명의 미녀들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산적 패거리 전체가 정신을 못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