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38
기수는 공주의 의견에 동의했다.
도망친 제갈민, 숨어 있는 한귀비에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자기 머릿속에 들어 있는 태화각.
그곳을 감시하면 얼마든지 역모에 대한, 사도들의 우두머리인 주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것이다.
공주가 말했다.
“아! 감시와 첩보 수집이라면 동창이 최곤데… 화양문에 잠시 들렀다 가자. 염백호를 데리고 가야겠어.”
탁지연이 손을 내저었다.
“어디에도 들리면 안 돼. 접촉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우리 행적이 의심받을 가능성도 커지는 거야.”
공주는 탁지연의 말에 곧 동의했다.
적이 조직 관리하는 방식을 보면 굉장히 신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쪽에서도 조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만으로 감시를 할 수 있을까?”
그러자 춘매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우리가 어디 출신인지 그새 잊었나보네.”
“아! 맞다.”
공주는 사매들을 믿기로 하고 기수에게 말했다.
“아예 난주를 멀리 우회해서 아무도 못 보게 낙양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궁주 생각은 어때?”
그러나 그수는 뭔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궁주. 내가 하는 말 들었어?”
“응? 아! 그래… 적이 우리에 대해 알고 있으니까 변장도 해야 될 거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거야?”
“적 말야. 백호 4진이 방위에 대한 호칭이라면, 서쪽 지역에만 적어도 80명 정도는 배치되어 있다는 뜻이잖아. 그걸 네 방향으로 곱하면…”
“320명?”
“그게 최소한이지. 만약 이들 이후에도 청탑산 혹은 다른 장소에서 배출한 부하들이 5진, 6진 더 있다면 그 수가 얼마나 될지 모르는 거야.”
공주를 비롯한 사매들의 표정이 굳었다.
직접 싸워봤기 때문에 그들이 얼마나 큰 위협인지 실감하는 것이다.
공주가 중얼거렸다.
“도대체 얼마나 오랜 세월 준비를 한 걸까?”
황궁에 비빈을 집어넣을 정도였으니, 그 철저함에 기가 질렸다.
정말 기수가 느닷없이 찾아와 그녀의 정체를 밝혀내지 않았다면 멍하니 있다가 한 순간에 꼼짝없이 나라를 빼앗겼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스럽게 고마움을 느낀 공주는 약간 촉촉한, 그러면서도 뜨거운 시선으로 기수를 바라봤다.
기수가 흠칫하여 물었다.
“왜 그런 눈으로 보는 거야?”
“응? 아, 아냐. 궁주가 쓰는 그 독심술… 생각할수록 신기해서.”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하핫!”
공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물었다.
“그런데… 궁주. 혹시 잠자리에서도 우리 마음을 읽는 거야?”
“으잉?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생각해보면, 궁주는 내가 원하는 걸 신기하게도 잘 알아차리고 해줬던 것 같아.”
다른 사매들도 동시에 기수를 쳐다봤다.
다들 의심하는 눈빛이었다.
아무리 사랑하는 남자라고 해도 자기 마음을 읽히는 게 기분 좋을 리 없을 것이었다.
기수는 손을 내저었다.
“염정구심술은 고수를 상대로 쓰면 진기 소모가 심해. 난 강기막 유지하기도 버거운데 너희들 상대로 왜 그런 걸 하겠어?”
“그럼 가려운 데만 골라서 긁어주는 건 뭐야?”
“그건 내가 노력하는 거지.”
“노력?”
“너희들 각자의 반응을 살피고 개별적 특징을 전부 기억하는 거야. 그리고 거기 맞춰서 해주는 거지. 너희들 설마… 지금까지 내가 되는 대로 막 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럼 섭섭한데…”
풍매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와! 궁주가 그 정도로 노력한단 말야?”
“당연하지!”
널리 미녀를 이롭게 하는 건 타고난 사명인데, 그걸 대충 할 수야 있나.
정말 한 번을 스트로크 해도 심혈을 기울여 각도를 정하는 것이다.
이른바 장인정신이라고나 할까.
춘매가 눈웃음 지으며 말했다.
“그게 정말인지 확인해보고 싶은데?”
그러자 다른 사매들도 다리를 비비 꼬았다.
기수는 씩 웃었다.
“좋아. 내가 각 개인별 특징을 전부 외우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주지. 그 전에 우선 마을을 찾아 객잔을 잡고 변장부터 하자.”
아홉 사람은 고원을 내려가 마을이 있음직한 방향으로 경공을 시전했다.
목욕통 있는 객잔을 찾아 방을 잡고, 기수는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했다.
오랜만에 많은 피를 봐서 그런지, 좀처럼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8명 모두가 항복할 때까지 좀 강하게 몰아붙였다.
“제발 그만! 우리의 몸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고 있다는 거 인정할 테니까 제발…”
공주가 애원하자 기수는 다른 상대를 찾았다.
“아투사. 넌 괜찮지?”
“켁! 켁!…”
아투사는 목소리가 안 나온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기수는 좌우를 돌아보다가 죽은 척 하는 사매들 사이에서 탁지연을 발견했다.
“지연아. 넌 좀 더해도 되지?”
“안 돼! 더 이상은…”
탁지연은 기어서 도망갔다.
그러나 그렇게 뒷모습을 보이면 기수가 어떻게 참는단 말인가.
안 그래도 사매들 중 힙이 가장 예쁜데, 그렇게 실룩 샐룩하면서 도망치면….
“넌 원래 살인한 후에 흥분하잖아. 이리 와!”
“꺄악! 살려 줘!”
그러나 다른 사매들은 누구도 그녀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
마치 사자에게 한 마리가 희생되면 나머지 영양 무리는 안심하는, 아프리카 초원 같은 분위기였다.
나중엔 공주가 나서서 말렸다.
태화각을 감시하는 중차대한 임무가 있으니 일찍 끝내고 자야 한다는 이유였다.
다행히 기수도 일의 심각성을 알기에 더 고집부리지 않았다.
8명이 한 자리에 모여 공동으로 하얀 미소 이벤트를 한 후 몸을 씻고 한데 어울려 코~ 잤다.
낙양까지 가는 중에 일행의 모습은 매일 달라졌다.
기수와 탁지연, 그리고 역용술을 집중적으로 익혀 그럭저럭 얼굴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공주까지 3명이 남장을 하고, 나머지 6명은 변장술로 얼굴을 바꾸었다.
행색도 이것저것 시도해보면서 몸에 익히다가 그 중 제일 어울리는 걸로 골랐다.
결국 낙양에 도착할 즈음엔 9명의 떠돌이 장사꾼 행렬이 만들어졌다.
옷만 상인처럼 입은 게 아니라 짐까지 하나씩 져서 꽤 그럴듯 해 보였다.
기수는 태화각을 찾아갔다.
건물은 성 밖의 약간은 치안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동네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온갖 종류의 상점들이 모여 있고 사람들의 왕래도 많아서 누가 지나가도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의 거리였다.
태화각은 낡고 곰팡이가 피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읽기도 힘든 간판을 달고 있었다.
건물도 낡아서 골목 분위기를 더욱 구질구질해 보이도록 만들었다.
기수 일행은 일단 그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깨에 수건을 걸친 점소이가 웃으며 다가왔다.
“어서 오십시오! 뭘 드릴까요?”
“이 집은 뭘 잘 하나?”
“뭐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온갖 산해진미를 다 맛볼 수 있습니다.”
“고기는 뭐가 있지?”
“삶은 양고기와 돼지고기가 있습니다.”
“그것하고 술 좀 가지고 와.”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기수는 객잔에 들어오면서부터 기감을 끌어올려 건물 안의 사람들을 확인해 보았다.
노반과 점소이 두 명, 그리고 주방에 두 명.
다른 손님 한 무리를 제외하면 그들 다섯 명이 전부였고, 숨소리만 듣고 판단하기엔 모두 다 무공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기수는 2층 쪽을 올려다봤다.
방이 여러 개 있지만 손님은 없었다.
자기라고 해도 이웃 객잔들이 모두 차서 잘 곳이 없지 않는 한 이 허름한 객잔에 방을 잡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강불귀의 기억에 따르면 지령 받는 방식은 간단했다.
정해진 날짜가 되거나 동네 어귀에 표식이 새겨지면 이곳으로 왔고, 2층에서 총관이라 부르던 30대 남자를 만나 직접 전달사항을 들었다.
총관은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고 말로만 지령을 내렸다. 그걸 기억해서 나머지 동료들에게 전달하는 게 강불귀의 임무였다.
기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오고 눈매가 매서운 그 총관이란 자가 이곳에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뒷간 가는 길을 못 찾아 헤매는 척 하면서 주방을 들여다보았는데, 숙수와 보조 모두 그 얼굴이 아니었다.
기수는 소득 없이 자리로 돌아왔다.
‘여기는 단지 접선 장소로만 쓰이는 건가?’
노반을 족쳐보면 뭔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일었지만, 그 생각은 곧 접었다.
조직을 운용하는 그들의 스타일로 미루어볼 때, 노반이 아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일 게 분명했다.
음식이 나오자 일행은 고기를 맛있게 먹었다.
음식 맛은 꽤 좋은 편이라 가게가 유지되는 게 이해가 되었다.
계산을 치르고 밖으로 나온 기수는 같은 골목에 있는 객잔으로 들어가 방을 잡았다.
점소이가 달려나와 일행을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식사를 준비할까요?”
“욕실 딸린 방이 있나?”
“여기 계신 일행이 모두 묵으실 겁니까?”
“다섯 개나 여섯 개쯤 있으면 좋겠는데…”
“지금 빈 건 세 개뿐입니다. 그 중 욕실 딸린 건 하나고요.”
“어쩔 수 없군.”
기수는 그 객잔에 짐을 풀기로 했다.
그리고 노반을 찾아가 말했다.
“일행 중에 병을 얻은 사람이 있어서 완치될 때까지 여기 머물 생각이니까 빈방이 나오는 대로 우리에게 모두 주시오. 방값은 넉넉하게 계산해 드릴 테니까.”
그러면서 선금이라며 은자 세 개를 주자 노반의 입이 쩍 벌어졌다.
“무엇이건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만 하십시오.”
“식사는 방으로 갖다 줄 수 있겠지요?”
“그야 당연하지요.”
“매일 아침과 저녁 두 번 목욕통의 물을 갈아 주십시오.”
“깨끗한 물로 따듯하게 데워서 갈아드리겠습니다.”
“아니. 데우지 마십시오. 찬물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훨씬 쉽지요. 맡겨주십시오.”
그렇게 거처를 정한 기수는 사매들과 작전 회의를 열었다.
“태화각은 단순히 접선 장소로만 쓰이는 것 같아. 우리는 여기 머물면서 거기 드나드는 사람, 특히 2층에 방을 잡고 머무는 사람을 감시해야 돼.”
“아까 보니까 음식 맛이 꽤 좋던데… 그렇다면 매일 밥 먹으려고 드나드는 사람이 굉장히 많을 거 아냐.”
“무공 고수가 나타날 때만 집중해서 관찰하면 돼.”
사매들은 창밖을 내려다봤다.
태화각 입구가 훤히 내려다 보여서 감시엔 제격이었다.
기수는 종이에 붓으로 그림을 그렸다.
“특히 이렇게 생긴 남자를 놓치지 마. 백호 4진에 명령을 내리던 총관이니까.”
“무슨 총관?”
“성도 이름도 없이 그냥 총관이라고만 불렀어.”
“그런데… 여자야?”
“이게 어딜 봐서 여자 같냐?”
그러나 기수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고 절망감을 느꼈다.
경찰 몽타주 비슷하게 될 줄 알았는데 전혀 특징이 살아나지 않았다.
탁지연이 말했다.
“궁주는 그림보다 역용술이 더 낫잖아. 그걸로 보여 줘.”
“아하! 그렇지.”
기수는 즉시 거울을 갖다 놓고 몇 번의 조정 끝에 총관의 얼굴을 만들었다.
“바로 이렇게 생긴 사람이야. 절대 놓치면 안 돼.”
춘매가 말했다.
“아! 인상 참 더럽네…”
공주도 동조했다.
“한 대 때려주고 싶다. 적어도 쉽게 잊기는 어려운 얼굴이야.”
기수는 사매들 모두와 한 차례씩 시선을 맞춘 후 역용을 풀고 말했다.
“이 자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어. 백호 4진은 세상에서 사라졌으니까. 하지만 태화각이 접선 장소인 건 확실하고, 모든 지령을 기록 없이 말로만 전달하는 방식이니까 총관이 아닌 다른 자라도 이곳을 이용할 거야. 발견한 다음 절차는 알지?”
탁지연이 대답했다.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추적해야지. 붙잡아서 궁주한테 심문을 맡길 수도 있지만, 실종자가 생기면 저쪽에서 꼬리를 자르고 숨을 수도 있으니까…”
기수는 미소 지었다.
역시 세세한 부분은 탁지연에게 맡기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시작된 감시 임무.
미국 드라마 보면 종종 경찰이 잠복근무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직접 해보니까 정말 지루하고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동창 출신 사매들과 살수 출신인 아투사는 놀라운 인내력으로 잘 견뎠지만 기수와 공주, 그리고 탁지연에겐 고역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감시조 2명을 제외한 나머지 교대조 6명이 시간을 보람차게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기수는 감시조에서 열외가 되었지만 쉴 시간은 없었다.
교대조에 대한 대법 시행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물론, 기수도 그 일이 더 좋았다.
그리고 짬짬이 오행류 상생 순환 연공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백호 4진과 싸워 본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정도 능력을 지닌 적이 40명, 80명 규모로 덤빈다면 자기라고 해도 버거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매들까지 챙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었다.
만약 그녀들 중 하나라도 잘못 된다면 순우광과 비룡검문 제자들의 죽음을 대했을 때보다 훨씬 큰 자책과 후회에 휩싸일 것 같았다.
그런 상황을 막으려면 사매들의 내공을 열심히 키워주고, 자기 내공도 열심히 증진시키는 길밖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