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83
북경성은 발칵 뒤집어졌다.
하룻밤 사이에 고관대작들이 수십 명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나갔고, 관리들과 백성들 모두 불안에 떨었다.
동창은 다음날 오후, 신속하게 검거 사유를 발표했다.
역도들과 내통한 자들을 잡아들인 것이고, 압수한 서찰과 서류들을 통해 증거도 확보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은 동창 창주 만욱 입장에선 약간 아쉬운 일이기도 했다.
이부상서를 꾸준히 감시하여 그 윗선을 밝혀내는 게 목표였는데, 상황이 다급해지다 보니 하위조직만 체포하게 된 것이다.
물론, 현재의 어수선한 상황에서는 그것만 해도 큰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
이부상서 윗선이 꼬리를 감추겠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백성들은 동창의 발표를 듣고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어찌되었건 현재 북경성 안에 거주하는 백성들 입장에선 오군도독부의 병사들이 쳐들어오는 게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사실, 현 황제가 폭정을 하는 것도 아닌데 누가 황제가 되건 권력을 노리는 자들이나 중요하지, 백성들은 별 관심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저 일상을 이어나갈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관리들은 달랐다.
조정의 인사권을 거머쥔 이부상서가 역모의 일원이라는 것은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리고 다들 그 불똥이 자기에게 튈까봐 전전긍긍하고, 유력자를 찾아가 그 편에 붙느라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 시간.
기수는 공주, 만욱 등과 함께 장군부의 백시랑을 만났다.
그는 군문을 총괄하는 정보기관의 실무자답게 오군도독부의 전투 진행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적 진영에 제갈세가가 모사로 가담한 것 같습니다. 마마.”
공주는 깜짝 놀랐다.
“그들은 난주에 있지 않았나요?”
“지금은 삼황맹, 녹림72채와 함께 반란군에 가세한 것으로 보입니다.”
공주가 심각한 표정으로 백무영에게 물었다.
“그들은 무림에서나 통했을 뿐, 실제 군대의 운용에는 그다지 도움이 안 될 거예요. 제 말이 맞죠?”
“글쎄요… 좌군과 후군이 밀리는 현재의 상황을 보자면…”
공주는 당황한 얼굴로 기수를 봤다.
기수가 백무영에게 물었다.
“혹시 반군 진영에 청탑산 무리가 섞여 있습니까?”
“고수 출현에 대한 보고가 계속 올라오는 중이라 심각하게 검토하고 있네.”
“합동작전이라면… 골치 아프군요.”
군대는 수적 우위를 내세워 진격하고 무림 고수들은 게릴라전술로 배후에 침투하여 교란한다면 방어하는 입장에선 악몽일 것이었다.
게다가 제갈세가가 지휘한다면 가장 아픈 곳을 집요하게 찌를 게 분명했다.
기수가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아무래도 제가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움직이다니…”
백시랑뿐만 아니라 공주와 만욱도 궁금한 표정으로 기수를 봤다.
“무림인은 무림인으로 상대하는 게 가장 좋다고 봅니다. 오군도독부의 중군, 우군, 전군이 좌군과 후군을 무찌르고 나면 그들이 북경으로 진군해 올 때 막을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이번엔 사람들 시선이 백시랑에게 쏠렸다.
“동원할 병력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독부 소속의 군대를 막는다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지.”
“그러니까 좌군과 후군이 무너지면 안 됩니다.”
“그건 그렇지만….”
“제가 부탁하면 무림맹과 천마교, 그리고 수로맹이 움직여줄 것입니다. 그들이라면 반군과 정면대결은 어렵다고 해도, 그들 안에 속해 있는 무림인들의 움직임은 제한할 수 있습니다.”
백시랑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게만 되어도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나아질 것이었다.
“하지만… 무림맹이 바로 응할지는…”
그 역시 혈매궁의 명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무림맹 같은 거대 조직을 움직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생각했다.
하물며 천마교와 수로맹이라니…
기수는 심호흡을 한 차례 한 후 말했다.
“일단 얘기해보고… 잘 안 되면 멱살을 잡아끌어서라도 가세하도록 만들겠습니다.”
백시랑과 만욱은 그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 지 몰라 멍한 표정을 지었고, 공주와 탁지연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기수라면 왠지 모르게 해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주가 말했다.
“좋아요. 이제 성 안의 일은 일단락되었으니까 반군을 막는데 집중하는 게 좋겠어요. 동창과 장군부 모두 가장 뛰어난 인원을 파견하여 우리를 돕도록 하세요.”
그러면서 공주는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금패 두 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만욱과 백시랑 모두 금패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은 모든 역량을 총동원 해야 할 때였다.
동창은 황제의 안위와 자신들의 권력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목숨을 걸 상황이고, 장군부 역시 군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사실 때문에 엄청난 질책과 비난을 받고, 책임감에 괴로워하는 중이었다.
반군을 최대한 빨리 제압해야 그나마 의무를 다하고 질책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탁지연이 공주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를 도우라는 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마마.”
“방금 궁주가 얘기했잖아. 좌군과 후군도독부를 도우러 간다고.”
“마마는 가시면 안 됩니다.”
탁지연의 단호한 어조에 공주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반군이 그들을 무너뜨리면 향후 정세가 어찌될 것인지 너도 들었잖아?”
“하지만 그것은 피부의 부스럼과 같은 일입니다.”
“무슨 뜻이지?”
“내장에 중병이 걸리면 목숨이 위태롭게 됩니다. 피부의 부스럼에 신경 쓰다가 더 큰 화를 당할지도 모릅니다.”
공주는 미소 지었다.
“그거라면 어젯밤 해결했잖아. 그리고 동창과 금군이 철통 같이 지키고 있고.”
탁지연이 고개를 가로저은 후 말했다.
“관리 한 명을 지키기 위해 자기들이 키운 고수를 한 명 이상씩 배정해둘 정도로 준비가 철저한 자들입니다. 동창은 몰라도 금군 내부에 얼마나 많은 첩자가 있는지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고. 또 궁 내부도 믿을 수 없습니다. 적이 한귀비 말고 다른 궁녀도 침투시켜 두었다면 어쩌시겠습니까?”
공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탁지연의 말을 듣고 보니까 바깥에 신경 쓸 계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 내에 첩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지….”
“우리 혈매궁 사매들은 다행히 모두 여자입니다. 그러니 후궁전도 자유롭게 드나들며 조사와 감시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한 명도 밖으로 나가선 안 되겠어.”
그러면서 공주는 기수를 봤다.
혼자 수고를 좀 해달라는 의미였다.
기수는 기꺼이 그러겠다고 했다.
“마마께서 동창과 함께 황궁 안의 일을 맡아주십시오. 저는 장군부와 함께 반군을 막아보겠습니다.”
그렇게 명쾌한 역할 분담이 이루어졌다.
공주가 잠시 생각한 후 금패를 기수에게 주었다.
“반군 토벌을 마칠 때까지 이걸 궁주가 가지고 있어요.”
기수는 당황스러웠다.
“제가 어떻게 이걸 감히…”
공주는 기수의 말을 듣지도 않고 백시랑에게 말했다.
“미안해요. 형부. 하지만 혈매궁주가 무림맹을 움직인다면 그에게 지휘권이 있는 편이 더 나을 거예요.”
백시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판단이십니다. 금패 없이 합동작전을 하려고 하면 좌군과 후군의 장군들이 혈매궁주를 협조자가 아닌 수하로 부려먹으려 할 것입니다.”
기수는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금패를 받았다.
백무영의 얘기를 듣고 보니 벼슬이 없는 자기가 모든 발언권을 무시당하고 하인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설령 동등한 관계라고 해도 문제가 있었다.
지금 같은 비상시엔 의견을 조율하고 협조를 요청하기보다는 수직 명령체계가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는 것이다.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바로 황제가 하사한 금패였다.
“자! 시간이 없어요. 어서 움직입시다.”
공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부산을 떨었다.
당장 후궁전 일제 소탕 검문검색을 할 생각으로 마음이 바빴던 것이다.
만욱과 백무영은 동창과 장군부의 세부적인 협조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제까지는 동창과 장군부가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은 게 사실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만치 두 사람 모두 진지하고 전향적인 태도였다.
탁지연이 기수에게 와서 말했다.
“잘 해. 궁주.”
“걱정 마. 나를 위해서도 몹시 중요한 일이야.”
“나는 마마와 의논해서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해 방비책을 마련해놓고 있을게.”
기수는 미소 지었다.
그녀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 부탁한다.”
기수는 공주와는 눈인사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백무영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만나는 석초가 반가이 인사를 했다.
기수는 그들과 함께 포구로 가서 진무를 만났다.
백시랑은 기수를 대하는 진무의 태도를 보고 수로맹을 동원한다는 게 단순히 호언장담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백시랑은 장군부의 가동인력과 함께 좌군도독부로 가기로 하고 석초만 기수에게 딸려보내어 군무 협조가 필요한 일을 돕도록 했다.
기수는 쾌속선을 타고 현재 무림맹이 진치고 있는 난주로 향했다.
선상에서 석초가 말했다.
“형님. 그동안 활약하신 얘기는 모두 들었습니다.”
“하핫! 활약은 무슨…”
“그런데 청탑산 무리는 도대체 수가 얼마나 되는 겁니까?”
“최소한 1,000명. 내가 확인한 것만.”
“최소가… 그렇단 말씀이죠?… 혹시… 그들의 무공과 제 무공 수위를 비교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기수는 솔직하게 얘기해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싸우면 네가 충분히 이길 거야. 하지만 그들에겐 은혈대법이란 게 있어. 그걸 사용하면 단숨에 무공이 두 배쯤 강해지지.”
“아! 끔찍하군요.”
석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 놈들이 천 명 넘게 적진에 있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석초가 한숨을 쉬고 있는 동안 기수는 진무를 불러 말했다.
“진채주. 수로맹에 연락한 건 언제쯤 회답을 받을 수 있습니까?”
“가는데 이틀, 오는데 이틀이면 충분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맹주님은 궁주님의 부름에 즉시 응하실 테니까요.”
수로맹은 전투력 그 자체로는 그다지 큰 도움을 기대할 수 없지만 병력이나 물자를 수송한다는 임무엔 최적의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이 제갈세가에 의해 이용당하지 않고 무림맹, 천마교, 혹은 관군의 이동에 활용된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였다.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27채 채주인 육대기를 북경에 배치해 주십시오.”
“아! 육채주를…. 뭐, 특별히 시키실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오. 그냥 포구에 계속 대기하도록 해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즉시 전갈을 보내겠습니다.”
기수는 탁지연이나 사매들이 긴급하게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북경에도 교통수단을 배치해 두기로 했다.
육대기라면 수로맹주의 신패가 없어도 탁지연을 태워줄 것이었다.
물론 강달로 변신한 후의 얘기이겠지만…
그렇게 안배를 마치고 배는 무사히 난주에 도착했다.
기수는 석초, 진무 등과 함께 화양문으로 들어갔다.
소식을 전해들은 무림맹주와 무림맹 군웅들은 취의청 마당에 모두 다 몰려나와 기수를 반가이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궁주님.”
무림맹주가 너털웃음과 함께 포권을 했다.
기수는 가볍게 미소 지었다.
혈매궁에 들어간 피 혈자가 아무래도 꺼림칙하기 때문에 무림맹 사람들은 혈매궁주라는 풀 네임을 잘 부르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맹주님. 그리고 여러 영웅 여러분.”
기수는 마당에 마중 나온 사람들 모두를 훑어보며 사방으로 포권을 했다.
비룡검문 문주, 모용세가 소가주를 비롯해서 안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뺨이 발그레하게 변한 미녀들도 보였지만, 지금은 그쪽에 신경 쓸 상황이 아니라서 일부러 눈길을 주지 않았다.
섭섭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석초는 옆에서 무림맹 군웅들을 관찰했다.
기수를 바라보는 시선, 특히 젊은 사람들의 눈빛은 경외감과 동경, 그리고 신뢰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기수가 함께 싸우자고 하면 즉시 따라 나설 것 같았다.
인사가 끝나고 안으로 들어가자 분위기는 좀 달라졌다.
각 문파의 수뇌부들은 나이도 들고, 경륜도 쌓여서인지 속마음을 표정에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기수는 함께 온 두 사람을 소개했다.
장군부 소속인 석초는 모두의 환영을 받았고, 수로맹 소속인 진무는 반응이 좀 달랐다. 아무래도 한 때 적으로 싸우던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의 적도 지금은 아군이 될 수 있는 법.
수로맹이 강남 상권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지 잘 아는 사해문과 십절금왕문 사람들은 진무에게 유난히 친근한 태도를 보였다.
기수는 현재 상황에 대해 대략적인 브리핑을 했다.
군웅들 모두 모반에 관심이 많은 터라 다들 집중해서 들었다.
그리고 기수에 이어 석초가 군인 스타일의 각 잡힌 세부 브리핑을 해서 무림맹 사람들의 완전한 이해를 도왔다.
무림맹 군웅들은 반란군의 세력이 그 정도인 줄은 몰랐기 때문에 한동안 웅성거리며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기수는 그들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려 무림맹주에게 물었다.
“맹주님. 무림맹의 힘을 저희에게 보태주십시오.”
군웅들의 시선이 일제히 맹주 주일비의 얼굴로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