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3173
03177 3177화
그 소리에 태수는 바로 반격했다.
“거기에 간호사도 극성스럽죠.”
“거참, 우리는 왜 끼워 넣어?”
“어떤 분 때문에요, 어떤 분이요.”
태수가 반복해 말한 순간이었다.
괜히 본전도 못 찾고 인상을 팍 찡그린 김혁권이 진료실 문을 열었다.
끼익.
“그만 떠들고 들어갑시다.”
그 말을 남기고 먼저 쏙 들어가 버렸다.
뒤를 따르는 태수와 정민수의 얼굴엔 가벼운 미소가 흘렀다.
진료실에 들어선 세 사람은 곧 소파에 자리했다.
상석에 앉은 제임스가 테이블 위에 놓인 걸 가볍게 가리키며 말했다.
“간식이야.”
“아니, 뭐 이런 걸……. 어?”
태수는 익숙한 쿠킹호일 모양새에 눈을 끔뻑거렸다.
그사이 김혁권이 하나 펴 보더니 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건 수현이 엄마 솜씬데요?”
“그러네요. 햄이 들어간 걸 보니까 누나 솜씨네요. 이거 국은……. 민수야, 어머니 장국인데?”
“애들이 연락했나 봐.”
덤덤한 대화가 영어로 이어졌다.
제임스가 함께 자리하고 있던 탓이다.
그 추측들이 옳았는지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여 말해 줬다.
“한 가족처럼 지낸다더니, 그렇게 다들 몰려올 줄은 몰랐어.”
“…….”
“한국 사람들이라고 다 똑같진 않을 거야. 하지만 자네들 가족을 보면서 ‘한국의 정’이 뭔지 확실히 배우는 거 같아.”
“과찬이십니다.”
태수가 점잖게 답하자 제임스는 한층 더 부드러운 미소로 말했다.
“덕분에 우리도 기다리면서 푸짐하게 배를 채웠지.”
“그건 좋은 소식이네요.”
“그런데…….”
제임스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 한마디로 진료실 분위기는 상당히 가라앉았다.
“…….”
“…….”
다들 제임스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제임스가 나지막이 이어서 말했다.
“아직 이르단 걸 알지만…… 사실 자네들이 이렇게까지 해낼 줄은 몰랐어.”
“…….”
“특히 심장. 어떻게 된 거지?”
“제임스.”
태수가 나지막이 불렀다.
그러나 지금 제임스는 평소보다 더 서두르고 있었다.
심지어 그런 자신을 알고 있었다.
“내가 성급하다는 거 알아. 나도 이제 와 이런 궁금증을 품게 될 줄은 몰랐다네.”
“그래도 지금은 아닌 거 같습니다.”
태수는 조심스럽게 밀어냈다.
그때 정민수가 태수에게 말했다.
“말씀드리는 게 어때?”
“무슨 소리야. 아직…….”
“모르고 하는 소리가 아니잖아. 그런데 한별이에게 당장 문제가 생길 거라고 장담할 수 있어?”
“생기면 안 되지.”
태수가 대답하자 정민수가 이어서 말했다.
“그래. 지금부터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해. 그런데 우린 지쳤어. 가만히 있으면 우리 의도와 상관없이 늘어질 거야.”
“흠.”
“아니라고 할 수 있어?”
정민수가 재차 물었다.
제임스의 궁금증만 풀어 주잔 게 아니다.
기왕 보낼 시간이면 좀 더 효율적으로 쓰자는 거였다.
태수는 그 부분에서 무조건 정민수가 틀렸다고 말할 수 없었다.
사실 지쳤다.
아니라고 잡아뗄 수준이 아니었다.
초긴장 속에서 10시간 동안 수술을 진행했다. 집도부터 어시스던트, 보조에 이르기까지 계속 움직였다.
보통 수술과 굳이 비교한다면 하루 아니, 그 이상의 심력을 쏟아부었단 의미였다.
그 여파가 웃어넘길 수준이 아니었다.
이대로 어디든 쓰러지면 곧장 잠들 터였다.
그건 태수의 의지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단 한별이가 안정될 때까지는 그럴 수 없었다.
그렇다면 기다리는 시간 동안 이렇게 소파에 앉아서 멍하니 있어야 한다.
그건 더욱 못할 짓이다.
이 상태로 소회의실로 간다면 앉아서 졸지도 모른다.
그건 생각하기도 싫은 모습이었다.
박성민이 있으니 무슨 일이 있으면 호출할 거고, 그때까지 적당한 휴식을 취하는 게 현실적이었다.
여러 가능성을 짚어 본 태수는 정민수의 말에 동의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이대로는 1시간도 버티기 어려워.”
“그러니까 떠들자고. 우리가 또 수다는 기가 막히잖아.”
그 소리에 김혁권이 슬쩍 한마디 보탰다.
“그건 또 내가 증언해 줄 수 있는 문제네요.”
“뭘 또 그렇게 까지요.”
“사실은 사실대로 말합시다. 아무튼 다들 좀 쉬라고 했잖아요. 우리까지 늘어질 순 없으니까 그냥 떠듭시다.”
김혁권이 아예 결정을 내려 버렸다.
결론이 난 거 같자 듣고 있던 제임스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온 이유도 있어. 자네들 성격을 그래도 내가 좀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러셨군요. 그럼…… 떠들어야죠.”
태수가 쓴 얼굴로 수긍했다.
그때 제임스가 제안했다.
“우선 내가 먼저 헬기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지. 상황이 특수해서 나중에 도움이 될 수도 있어.”
“그럼 제가 조건 거는 거 같잖습니까.”
“아니라고 하진 말자고.”
“제임스.”
“후후. 싱거운 소리는 이쯤 하고, 처음 닥터 최 연락을 받고…….”
제임스는 스스로 말한 대로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태수와 정민수, 김혁권은 각자 그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 봤다.
말이 이어질수록 제임스와 스미스도 여러 난관을 뚫고 찾아왔단 걸 알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숙달된 그들의 응급처치는 정석에 가까웠다.
의료에 대한 대화는 아무리 피곤해도 귀를 열고 눈을 뜨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게다가 그냥 듣고 있을 이들은 아니었다.
“제임스, 혹시 그때 말입니다…….”
“음, 일리 있어. 그런 가능성도…….”
“후에 기회가 된다면 응용해…….”
“그게 좋을 거 같아. 그다음은…….”
그저 일방적인 경험담 소개가 아니라 어느새 토론으로 이어졌다.
어느새 헬기부터 수술실 도착까지 설명이 끝났다.
이젠 태수 차례였다.
제임스가 먼저 오픈마인드로 말했으니 태수도 함께했다.
“그러니까 연락을 받고…….”
“…….”
이번엔 반대로 제임스가 눈과 귀를 활짝 열었다.
한때 세계 최고 외과 의사라고 불렸던 인물이다.
솔직히 은퇴한 지금도 의료에 있어서는 탐구열이 가득했다.
그가 괜히 최고가 될 수 있었던 게 아니란 걸 다시금 알 수 있었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었다.
태수의 진료실에서 나누는 토론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들에겐 이게 쉬는 시간이었다.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수술 과정에 대한 여러 대화가 오갔다.
그러던 중이었다.
에엥! 에엥!
천장에 설치된 방송 스피커에서 따가운 울음소리가 들렸다.
-코드 블루, 코드 블루! 소회의실. 반복합니다…….
방송 내용이 진료실을 울렸다.
소회의실?
한별이?
머릿속에 딱딱 떠올랐다.
그와 동시였다.
“젠장!”
벌떡!
자리를 털고 일어난 모두가 앞을 다퉈 진료실을 나갔다.
곧 소회의실에 도착했다.
뛰어오는 사이 합류한 팀원들까지 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가장 앞서 들어온 태수는 인큐베이터부터 바라봤다.
삐이.
심정지 신호음이 강하게 울렸다.
그 소리에 인상이 팍 일그러졌다.
“젠장!”
타다닥!
태수는 달리는 속도를 더했다.
뒤에선 정민수가 태수 대신 모두를 조율했다.
“서 선생님하고 노 간호사는 약부터 준비하고, 다른 분들은…….”
그 소리는 태수의 귀에도 들렸다.
정민수라면 모두를 잘 조율할 터였다.
그걸 믿기에 앞서 달려갈 수 있었다.
눈앞에는 박종석 병원장과 박성민, 스미스, 박성철과 박성국까지 모두가 인큐베이터에 둘러서 있었다.
그런데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수술복 차림을 한 의사가 한 명 더 있었다.
뒷모습이지만, 아니 예전부터 봤던 뒷모습이라 그가 누군지 바로 알아챘다.
“병원장님?”
타다닥!
태수는 달려가는 와중에 의아함을 느꼈다.
그건 찰나였다.
어느새 인큐베이터에 가까이 다가가 다급하게 소리쳐 물었다.
“심정지라니요!”
그런데 그때였다.
삐이. 삐빅. 삐빅!
ECG의 소리가 변했다.
그 소리가 환청이 아닌지 긴장을 털어 내는 숨소리가 이어서 들렸다.
“푸우우.”
“후우! 다행이야. 간신히 넘겼어.”
“안심하긴 이르지만……. 최 팀장, 왔나?”
백성현 병원장이 아는 척하자 태수가 고개 숙여 인사하며 물었다.
“심장 돌아온 거 맞습니까?”
“그래. 다들 대기하고 있어서 바로 응급처치를 시작할 수 있었어. 혹시 몰라서 내가 호출하라고 했고.”
“그러셨군요. 잠시만요.”
태수는 양해를 구하고 인큐베이터로 시선을 돌렸다.
우선 한별이부터 눈에 담았다.
옅어졌던 청색증이 다시 심해지고 있었다.
그 외에 입가에 살짝 거품이 보였고, 폐 속 출혈 배출도 계속되고 있었다.
태수의 표정은 점점 무거워졌다.
수술 종료 후 대략 3시간 정도 지났다.
나아지는 게 아니라 악화되고 있다.
“…….”
심각해진 태수에게 박종석 병원장의 어두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별이가…… 너무 힘들어 해.”
“그런 거 같습니다.”
“내 손도 한계가 있고, 목소리도 이젠 익숙해졌나 봐.”
“병원장님.”
태수는 그를 부르는 것밖엔 할 수가 없었다.
여기 자리한 모두가 한별이의 악화를 지켜만 보고 있지 않았단 건 무조건 믿었다.
하지만 노력으로 되지 않는 일이 있었다.
냉정하게 말해 그 노력은 한별이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건 태수도 마찬가지였다.
제임스와 대화하는 시간을 후회하진 않았다.
태수가 여기서 지켜봤다고 해서 특별히 뭔가를 더 해 줄 수도 없었다.
이 순간은 한별이의 싸움이다.
수술이 잘되고 안 되고의 문제도 아니었다.
SAS란 병은 그저 수술만의 문제가 아니란 게 다시금 머릿속에 몰려왔다.
그사이 서영우와 노지연 간호사가 투약을 한 번 더 꼼꼼하게 확인해 줬다.
다가온 서영우가 나지막이 말했다.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은데,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고생하셨습니다.”
“주사 몇 번 찌르는 게 뭐 힘들다고. 그나저나……. 젠장.”
그의 한탄이 너무도 쓰게 들려왔다.
태수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끝난 거 아닙니다.”
“끝나다니, 누가 그런 헛소리를 해?”
서영우는 인상까지 와락 찌푸리며 반발했다.
다들 똑같이 두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있었다.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다.
만약 포기했다면 퇴근길에 올랐을 터였다.
이렇게 수술한 모두가 한 명도 빠짐없이 자리하고 있단 게 한 줄기 희망을 붙들고 있단 증거였다.
태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에 계속 자리해 있을 순 없었다.
다들 민감하고 예민해져 있었다.
그 날카로움이 괜히 한별이에게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이 속에선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조심해야 했다.
“저희는 다시 돌아가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다들 고생하네.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게 말하는 박종석 병원장의 얼굴이 가장 수척했다.
이젠 녹아내릴 애간장도 없는 듯했다.
그 얼굴을 보고 누구도 자신의 고생을 내보일 수 없었다.
“저희가 좀 있겠습니다.”
태수가 말한 순간이었다.
턱.
어깨를 짚는 익숙한 손길이 느껴졌다.
역시나 박성민의 모습이었다.
샤워도 못했는지 얼룩진 수술복 차림이었고, 물로 얼굴만 적신 듯했다.
그런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여러 소리 말고 진료실로 돌아가서 좀 쉬고 있어.”
“선배야말로…….”
“끝까지 지켜볼 거야.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아.”
“지당한 말씀입니다.”
“이 형이 원래 지당한 걸 좋아하는데……. 젠장. 농담도 안 나오네. 아무튼 그냥 기다리기 무료하면 방법 좀 찾아봐. 우리 한별이가 기운 차릴 방법.”
박성민이 묵직하게 부탁했다.
그의 진지한 부탁에 태수는 빨려 들어가는 착각까지 들었다.
그만큼 그의 간절함이 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