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EPISODE.140
완전히 폐허가 되다시피 한 도시 안. 다 무너져 가는 성벽을 따라 걸음을 옮기던 병사 하나가 그 분위기에 몸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금방이라도 뭐가 튀어나올 것 같은 게, 으스스합니다.”
그 말에 앞서 걸어가던 십인장이 낮은 목소리로 호통쳤다.
“시끄러운 소리 하지 말고 계속 움직여.”
허나, 정작 그렇게 말하는 십인장의 얼굴 역시 그리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럴 수밖에.
군(軍)에서 복무한 지 벌써 십 년이 다 되어가는 상황이었지만, 그 역시도 이런 꼴로 변해버린 도시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으므로.
다 무너져 가는 성벽이나 거미줄이 이리저리 쳐진 건물들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당장에라도 뭐가 튀어나올 것 같은 으스스한 분위기 역시 마찬가지.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골을 송연하게 하는 것은─.
‘저건 알껍데기고…… 이건 점액질이 길게 늘어진 건가?’
꿀꺽.
마을 곳곳에 놓여 있는 거대한 알껍데기와, 그 속에서 흘러나온 점액질 성분들이었다.
깨지고 박살 난, 그 안에 있던 것들은 모두 밖으로 빠져나온 듯 보이는 잔해들.
사람 하나는 능히 들어갈 만큼 거대한 크기로 보아, 이게 바로 소문에 나오는 마물의 알임이 틀림없었다.
한순간에 영지의 인구 전체가 마물로 바뀌어 버렸다는 소문.
‘플로라 백작령의 인구수가…….’
플로라 백작령은 제국의 황도 인근에 위치한 꽤 준수한 규모를 지닌 대도시였다.
작금과 같은 일이 아니었다면, 아무리 엔디미온 군(軍)이라 해도 플로라 백작령을 밟아 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터.
만약 그만한 규모의 도시 인구 전체가 마물로 변했다면…….
“으음.”
그 숫자를 가늠해보던 십인장의 입술 사이를 신음이 절로 비집고 나왔다.
하물며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난 곳은 플로라 백작령만이 아니었다.
제국의 황도 인근에 위치한 거의 모든 도시에서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고 했으니…….
절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감각이 들고, 그때였다.
우지끈!
낡은 소리와 함께 건물을 떠받들고 있던 나무 기둥이 무너져 내리며 돌무더기가 병사들을 덮친 것은.
“위험……!”
그 광경에 십인장이 소리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별다른 방법이 없다면 떨어져 내리는 돌무더기에 다른 병사들이 깔리고 말 것인즉!
화악-!
불어온 바람이 의지를 가진 것마냥 휘돌며 떨어져 내리던 돌무더기들을 멈춰 세운다.
수 톤에 달하는 돌들을 아무렇지 않게 정지시키는 바람 속성 마력.
“이, 이건……?”
머리를 감싸 쥐고 충격을 대비하던 병사들이 얼떨떨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런 그들의 위에서, 새하얀 곰인형에 몸을 의탁하고 비행 중인 소녀가 말했다.
“조심해.”
왕도 백탑의 탑주, 아멜리아 머윈이었다.
쉬익-.
그렇게 병사들을 구해주고 대수롭지 않게 날아간 그녀가 다리아의 옆에 내려서며 말했다.
“곧이야. 언니.”
그녀의 말에 다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플로라 백작가와 제국의 황도 사이에 위치한 것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언덕 하나와 그 너머의 곡창지대뿐이었던 바.
그 말인즉.
백작령의 뒤쪽으로 보이는 저 언덕만 넘으면 바로 황도가 가시거리에 들어온다는 말이다.
마물들이 일제히 방향을 바꾸며 황도로 몰려들었던 것이 불과 스무날 정도 전의 이야기.
제국의 영토 곳곳으로 퍼져 있던 마물들이 한곳으로 모여들었으니, 과연 지금 황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는지.
두 눈으로 그 모습을 확인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저건…….”
언덕에 올라서자 그 아래의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제국이 자랑하던 드넓은 곡창지대는 더 이상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밀알처럼 그득한 숫자의 마물들 뿐.
수십만을 넘어, 수백만에 달할 정도의 마물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꼴을 보고 있노라니 역기가 치밀어 올랐다.
“우욱…….”
그 광경에 아멜리아 머윈이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고, 다리아가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일대를 응시했다.
이만한 숫자의 마물들이 뭉쳐있는 것 치곤 지나칠 만큼 분위기가 조용했기 때문이다.
마치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한곳을 바라보고 있는 마물들.
마물들의 시선은 하나도 남김없이 제국의 황도로 향하고 있었음이니.
두근…….
“알이로군.”
헤밍웨이가 찜찜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곡창지대 넘어 황도에는 보고 받았던 보라색 빛의 기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거대하기 짝이 없는 알의 모습.
두근…….
그림자만으로 황도의 절반가량을 뒤덮는 크기의 알이 심장마냥 규칙적으로 맥동하고 있었다.
곡창지대를 차지한 마물들은 바로 그 알을 응시하는 중이었고.
“허 참. 마물 주제에 경배라도 하는 건가?”
불길하기 짝이 없는 그 모습에 헤밍웨이가 저도 모르게 그리 말했고 다리아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영감.”
“으음?”
“저 알이 무엇이든 간에 깨어나도록 둬서 좋을 건 없어 보이지 않는가? 마법병단을 준비시키게.”
굳이 마법병단을 콕 집어 말한 이유는 간단했다.
알을 타격하기 위해선 드넓은 곡창지대를 뛰어넘어 공격을 가해야 했는데, 검사(劍士)들의 오러나 일반적인 화살은 저기까지 닿지 않을 테니까.
화살로 저 거리를 요격할 수 있는 인물은 엘프족의 므뇌르인 아레인이 유일할 것이요, 소드 마스터 중에선 비검(飛劍)술을 익힌 일부만이 가능할 터.
“알겠네.”
총사령 역할인 다리아의 지시에 고개를 끄덕인 헤밍웨이가 뭔가를 지시하자, 이내 깃발 하나가 높게 솟아오른다.
펄럭-.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따라 명령 신호가 퍼져나가고, 그와 함께 언덕을 따라 넓게 펼쳐진 연합군들 사이로 똑같은 깃발이 들려져 올라왔다.
황도의 절반을 그믐달처럼 감싼 깃발의 모습, 마법병단이 준비가 되었다는 완료 신호였다.
동시에 다리아를 비롯한 대마법사들의 손아귀를 따라 막대한 양의 마력이 쏟아져 나왔다.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두 명의 마법사들 역시 양측에서 마법을 준비하고…….
콰아아아아.
자리에 모인 백만에 달하는 연합군, 그 속에 포함된 모든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력을 운용하자 대기가 심상치 않게 요동친다.
첫 타는 당연하게도 다리아였다.
────────────!
손아귀에서 불꽃의 마력이 쏘아지기 무섭게 타원형의 충격파가 겹겹이 터져 나갔다.
초음속(超音速).
음속마저 아득하게 넘어선 공격이 보랏빛 하늘 아래로 선명한 궤적을 아로새기며 목표물을 특정하고.
그로부터 반 박자 늦게, 마법병단의 포화가 시작되었다.
콰과과광!
총천연색의 포화가 제국의 황도 위로 떨어져 내리며 폭음과 함께 대지를 진감시킨다.
모래 먼지가 높게 치솟아 올랐다.
수백의 마법사들이 조금의 오차도 없이 때려 박은 공격이었다.
이만한 공격에 직격당했다면 아무리 황도라 해도 무사하지만은 못할 터.
쿠르르르르릉-!
지축이 뒤틀리기라도 한 것인지 쉬지 않고 여진이 일어나며 대지가 계속해서 떨렸다.
크르륵, 캭캭!
이변을 감지한 마물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강렬한 적의를 드러내며 언덕을 향해 몰려들었다.
두두두두두-!
“오, 온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수백만에 달하는 마물들이 해일마냥 몰려드는 모습에 병사들을 통솔하던 지휘관들이 기겁하며 소리치고.
그러는 사이에도 다리아를 비롯한 대마법사들은 모래 먼지가 솟아난 장소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지금 이곳을 향해 몰려드는 수백만에 달하는 마물들보다, 알 속에 깃들어 있는 존재가 더 위험할 수 있음을.
본능적으로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필멸자들의 무의미한 발악이구나…….
우릉우릉-!
음성이 울려 퍼졌다.
쿠구구구구───────!
음성과 함께 닫혔던 하늘이 다시 한번 갈라지며 거대한 눈동자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 전체를 굽어보는 듯한 진홍색의 눈동자.
화아악-.
불어온 바람에 모래 먼지가 쓸려나갔다.
이어 마법 포화가 쏟아진 황도의 모습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반파를 넘어 완파되다시피 한 황도의 구조물들이 이리저리 자리를 뒹굴고 있는 모습.
하지만…….
“멀쩡하다고?!”
정작 그 중심부에 위치한 거대한 알에는 아무런 흠집조차 생겨나지 않았음이니.
쩍, 쩌저적-.
무엇인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그것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흑발에 검은 눈.
이 대륙의 인종들과는 꽤 다른 외견을 지니고 있는 사내.
이계구원자, 김현성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 사교도.
블라드 드라쿨레아.
“흠.”
이 몸으로 돌아온 건 굉장히 오랜만이군, 그렇게 중얼거린 블라드가 시험 삼아 느긋하게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어 포화가 떨어져 넝마가 되어 버린 검은색 깃발을, 나체인 몸에 옷마냥 두른 그가 자신을 둘러싼 연합군중 일부를 마주하며 물었다.
“용제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죽었나?”
히죽거리는 웃음.
놈이 왜 러셀을 용제(龍帝)라고 부르는 것인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알고 있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러셀에 관한 이야기는 다리아에게 있어서 뼈아픈 역린(逆鱗)과도 마찬가지였던 바.
“──────죽어어엇!”
괴성과 함께 다리아가 양손을 일점으로 그러모았다.
『다리아 스노우화이트』
『결전기, 최종장(最終章)』
『백설(白雪)의 군무.』
휘오오오오-!
펄럭이는 옷자락을 따라 새하얀 싸라기눈이 폭풍처럼 뿜어져 나왔다.
닿기만 해도 마력과 감각을 둔화시키고, 살을 그대로 녹여 태워 버리는…… 불과 얼음의 양면성을 모조리 가진 다리아의 결전기.
그 최종형태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사방으로 쏟아져 나가던 백설이 이내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일점으로 모여든다.
수렴하는 곳은 사교도 놈, 블라드 드라쿨레아가 있는 곳이라!
휘오오오오!
노리는 것은 놈 하나였지만, 일어난 여파로 경로상에 존재하던 마물들이 모두 줄줄 녹아내린다.
그때였다.
“흠.”
자신을 향해 몰려들던 싸라기눈의 군무를 바라보던 놈이 태연하게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은.
이어 놈이 횡(橫)으로 손가락을 내리긋는 순간.
──────────스윽.
몰아치던 눈의 폭풍이 종잇장처럼 터져 나가며 소멸했다.
서걱!
이어 풀어 헤쳐진 채 하늘을 향해 충천하던 다리아의 백발이 머리 위쪽에서부터 잘려 나가고.
─────────콰과과과광!
그보다 반 박자 늦게 무엇인가가 무너져 내리는 폭음이 들려왔다.
저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돌리자, 언덕 너머로 펼쳐져 있던 거대한 산맥 하나가 통째로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쿠르르르르르릉-.
만약 저 공격이 아군에게 직격했더라면?
발 딛고 있는 대지가 그대로 무너져 내리며 수만 단위의 사상자가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연합군 모두의 모골이 송연해지기에 충분한 상상.
“흠…….”
하지만 정작 그와 같은 공격을 펼쳐낸 사교도는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보며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을 따름이었다.
“이런, 오랜만에 하자니 조절이 쉽지 않군. 빗나가 버렸어.”
그렇게 중얼거린 놈이 연맹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기대해도 좋아.”
다음 공격은 절대로 빗맞히지 않겠노라고, 놈은 그렇게 선언했다.
그리고…….
2주가 흘렀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