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slayer's Class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675
675화
쿠구구구구!
지크의 말에 붉게 물들어 있던 아스모데우스의 눈빛이 거짓말처럼 가라앉으며 원래의 눈동자로 돌아왔다.
잠시 후, 그가 지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공정한 고통의 인도자.】
지크는 입을 연 아스모데우스와 눈을 마주했다.
“이제야 입을 여는군.”
지크는 군단장들이 아스모데우스에게 전쟁터에서 흘러나온 힘을 주입하면서 그의 힘이 회복됐고 동시에 흐려졌던 이지가 되돌아왔다는 것을 눈치챈 상태였다.
지크가 아스모데우스를 보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현상계에 강림한 김에 이곳에 봉인된 마왕까지 부활시키려 했나.”
아스모데우스는 마계의 대악마들 중 마왕을 부활시키고자 했던 대군주 중 하나였다.
마계에 있을 때는 직접 마왕의 봉인을 풀 수 없으니 간접적으로 개입 할 수밖에 없었지만, 현상계로 나온 이상 자신의 힘으로 마왕의 봉인을 푸는 것이 가능했다.
그 말에 아스모데우스가 지크를 노려보며 고개를 저었다.
【공정한 고통의 인도자, 너는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
지크는 미간을 그러모으며 아스모데우스를 향해 말했다.
“대군주가 돼서 인간들에게 소환당해 억지로 현상계에 끌려온 주제에 지나치게 무게를 잡는다고 생각 안 하나?”
진지한 태도의 아스모데우스에게 쏘아붙이듯 말한 지크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헛소리하지 말고. 아서 드레이커와 어떤 계약을 했는지나 말해라. 네놈이 직접 현상계에 소환된 것을 보면 메피스토펠레스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지크의 말에 아스모데우스가 침묵하다가 이내 키메라처럼 보이던 모습을 바꾸었다.
츠츠츠츠―
키메라의 모습에서 머리에 뿔이 달린 육감적인 여인의 모습으로 변한 아스모데우스가 노란 야수의 눈동자로 지크를 노려봤다.
아직 힘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크와 충돌을 일으켜 봐야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럼에도 아스모데우스의 목소리는 지크에게 강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
“네놈이 야기한 거대한 혼란을 어찌 수습할 생각이냐.”
“앞뒤 말을 다 자르고 자기 할 말만 하는 건 악마들의 종족적 특성인가.”
지크의 말에 아스모데우스가 입술을 한 번 질끈 깨물고서는 느리게 입을 열었다.
“악마장인 메피스토펠레스, 그의 영혼이 봉인되면서 마계는 큰 혼란에 빠졌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판데모니엄의 주인인 동시에 아스모데우스를 종속시켜 게헤나의 주인이 되었으며, 바알과 아가레스 역시 굴복시켜 어비스의 새로운 주인이 된 상태였다.
마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된 메피스토펠레스가 그 자리를 비우고 말았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마계의 붕괴가 시작되고 있다.”
불안정한 마계의 영역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대악마들이었다.
그들이 없다면 잊혀진 시간의 파편을 모아 만든 마계는 다시 소멸할 수밖에 없었다.
상황을 설명한 아스모데우스가 지크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의 행태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놈이 현재 마계를 지탱하고 있는 주요한 축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메피스토펠레스가 교묘한 계약으로 자신을 종속시켰음에도 아스모데우스는 오히려 그를 옹호하고 있었다.
지크는 아스모데우스의 말을 들으며 한 가지 의문을 가졌다.
“메피스토펠레스의 부재로 마계가 붕괴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다. 그런데 잘 이해가 안 가는군. 만약 그런 상황이라면 네놈이 판데모니엄을 공격해 놈의 자리를 차지하면 되는 것 아닌가.”
마계의 군주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서로의 영역을 차지하기 위해 대립을 해 왔다.
그런데 그 정점을 차지한 메피스토펠레스의 영혼이 지크에게 봉인된 상황이니, 지금은 그 빈자리를 노릴 절호의 기회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메피스토펠레스 역시 오만한 구원자인 사탄의 부재를 노려 판데모니엄의 주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크의 말에 아스모데우스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놈은 우리의 영혼에 거부할 수 없는 계약을 걸어 놨다. 자신이 부재하더라도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말이다.”
계약의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는 굴복시킨 대군주들이 자신의 뒤를 치지 못하도록 이미 만반의 조치를 취해 놓은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지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럴 수 있겠군. 다름 아닌 메피스토펠레스니까. 잠깐, 그럼 심연의 주관자 베엘제붑이라면 판데모니엄을 노리는 것이 가능할 텐데?”
지크의 말에 아스모데우스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를 본 지크는 마계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깨달았다.
“쯧쯧. 뭔지 알겠군. 아스모데우스 네 녀석, 심연의 주관자를 피해서 현상계로 도망친 것이로구나.”
마계의 붕괴니 뭐니 하면서 핑계를 댔지만 결국 메피스토펠레스의 빈자리를 노리며 치고 들어온 심연의 주관자를 피해 현상계로 피신 한 것이었다.
그제야 지크는 왜 아스모데우스가 힘의 소모를 부담하면서까지 현상계로 올라왔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좋아하지도 않는 메피스토펠레스를 찾으면서 말이다.
‘심연의 주관자, 베엘제붑. 놈에게 당하게 되면 영혼 자체가 소멸하거나 혹은 놈에게 영구히 종속된다.’
메피스토펠레스조차도 베엘제붑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은 꺼렸다.
모든 죽은 자들의 지배자인 베엘제붑에게 대항했다가 패배하게 되면 후일을 도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패배의 결과는 소멸하거나 그의 노예가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지크는 아스모데우스를 보며 말했다.
“베엘제붑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앞뒤 안 가리고 아서 드레이커의 제안을 받아들인 거야.”
투쟁심이 강한 바알과 아가레스와 달리 아스모데우스는 모략을 쓸 줄 아는 악마였다.
그는 자신들의 영역을 책임져야 할 메피스토펠레스가 봉인되자 베엘제붑이 그 기회를 노리고 아바돈을 넘어 판데모니엄과 게헤나, 어비스로 넘어오려는 것을 눈치챈 것이었다.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이 묶여 있는 상태에서 베엘제붑과 정면으로 상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이 없었다.
때마침 아서 드레이커가 현상계로의 강림을 제안해 왔고 아스모데우스는 이를 기회라 여겨 받아들인 것이었다.
지크는 아스모데우스를 보며 말했다.
“악마가 악마 같은 짓을 한 건데 그걸 두고 뭐라 하기는 어렵군. 좋아, 상황은 알겠다. 살기 위해 지켜야 할 영역과 수하들은 모두 버리고 현상계로 온 대군주라…….”
지크의 말에 아스모데우스는 모욕감을 느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라고 아무런 생각 없이 무작정 현상계로 향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옛 군단장들과 병사들을 되찾은 뒤 베엘제붑에게 대항할 힘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크와의 충돌로 군단장들은 물론 병사들까지 모두 몰살당하다시피 했으니, 지금 지크의 빈정거림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결국 아스모데우스가 백기를 들었다.
“공정한 고통의 인도자, 제안을 하고 싶다.”
지크는 아스모데우스의 말에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악마의 제안은 별로 달갑지 않은데.”
그런 지크의 태도에도 아스모데우스는 꿋꿋하게 자신의 말을 이어 갔다.
“차라리 봉인해 둔 의 영혼을 완전히 흡수해라. 그리고 네가 악마장이 되어 놈이 가진 마계의 영역을 차지하는 거다.”
베엘제붑보다는 차라리 인간인 지크가 악마장이 되어 판데모니엄과 게헤나, 어비스를 지배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지크는 그런 아스모데우스의 말에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글쎄, 굳이 내가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데 말이야.”
아스모데우스는 예상치 못한 지크의 반응에 눈동자가 커졌다.
“……실질적으로 마계의 지배자가 될 수 있는 기회다. 이런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겠다는 뜻인가.”
“척박하고 불안정한 마계를 지배해 봐야 나한테 좋을 게 뭐가 있어. 네놈 같은 악마들이 뒤통수치겠다고 귀찮게나 하겠지. 너도 꿍꿍이가 따로 있잖아?”
“네, 네놈…….”
아스모데우스는 지크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지크의 말처럼 아스모데우스는 지크를 설득해 그를 앞으로 내세운 뒤 뒤에서 힘을 회복해 마왕의 영혼을 탈취하고 다시 마계로 내려가 베엘제붑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만약 지크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영혼을 흡수해 소멸시키게 된다면 그와의 계약은 무효가 됐기 때문에 다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지크는 그런 아스모데우스의 생각을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다.
“아스모데우스, 미리 말해 두는데 내가 메피스토펠레스의 영혼을 흡수하면 네가 자유로워질 것이라 생각하는 건 큰 오산이다.”
그의 말에 아스모데우스가 깜짝 놀랐다.
지크가 그런 아스모데우스의 반응에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놈의 영혼을 흡수하게 되면 계약 역시 나에게로 넘어오게 된다고. 그럼 너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아닌 나에게 종속되게 된다.”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에 아스모데우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 빌어먹을 인간 놈이…….’
그로서는 다시 마계로 돌아갈 수도, 현상계에 남아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지크가 아스모데우스에게 말했다.
“좋아, 급해 보이니까 특별히 내가 제안을 하나 하지.”
지크의 말에 아스모데우스가 고개를 들었다.
“제안이라니. 무슨 제안 말이냐.”
“나를 도와서 마왕의 부활을 저지해라. 그러면 메피스토펠레스에게서 계약을 양도받아 너의 영혼을 묶고 있는 종속을 풀어 주겠다.”
지크의 말에 아스모데우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메피스토펠레스의 계약은 같은 대군주라도 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영혼을 봉인한 지크가 종속의 계약을 풀어 준다고 하니, 아스모데우스 역시 혹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이 사실이냐.”
“악마들과 달리 나는 진실만을 말하지. 물론 조건이 이것만은 아니다.”
아스모데우스는 지크의 말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슨 조건이 또 있다는 것이냐.”
지크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뿐만 아니라 네가 지닌 마계의 병력을 모두 동원해서 나를 도와라.”
그의 말에 아스모데우스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게 무슨 멍청한 소리냐. 내가 이곳에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아서 드레이커가 지닌 태양신의 힘 때문이었다. 그 힘이 없다면 다른 내 수하들이 이곳으로 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말에 지크가 고개를 저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태양신의 힘이 아니라 뒤틀린 인과율의 힘이지. 이제 보니 네놈은 자신이 어떻게 현상계에 강림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었군.”
지크는 뒤틀린 성좌의 신전에서 이 힘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대군주인 아스모데우스라도 그 비밀을 알지는 못한 듯싶었다.
지크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야. 어떻게 할 거냐. 내 제안을 수락할 것인가. 아니면 그냥 다시 마계로 돌아가 베엘제붑을 상대할 것인가.”
아스모데우스는 지크의 말에 심각하게 고민했다.
사실 인간의 제안에 대악마가 이렇게 궁지에 몰린 채 흔들리는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기에 그는 굉장히 자존심이 상한 상태였다.
하지만 현재 아쉬운 것은 지크가 아닌 아스모데우스였다.
결국 그는 지크의 조건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공정한 고통의 인도자, 네 제안을 수락하겠다.”
지크는 그 말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좋아, 이제부터 넌 내 명령을 따라야 한다, 아스모데우스.”
메피스토펠레스에 이어 대군주로서 인간인 지크에게 굴복한 아스모데우스였다.
그는 모멸감을 애써 참으며 지크에에게 말했다.
“……알겠나이다, 주군이시여. 그런데…… 마계에 있는 제 군단은 어떻게 이곳에 불러들일 생각이십니까.”
그가 막 질문을 마친 그때였다.
쿠구구구구구!
해안가 저 너머에서 무엇인가 거대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동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탑 하나가 산등성 위에 세워진 것이 보였다.
아스모데우스는 이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저건 침공 요새?”
메피스토펠레스의 이공녀인 예카테리나의 탑이 제대로 소환된 것이었다.
아스모데우스는 그제야 지크가 왜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군단을 이곳에 불러올 수 있다고 했는지를 깨달았다.
‘이자는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지크가 여전히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스모데우스를 보며 말했다.
“아스모데우스, 이동할 채비를 해라. 저곳이 이제 네가 지켜 내야 할 새로운 영역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