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id RAW novel - Chapter 175
0174 내가 운전할 개
“아, 좋네.”
겨울치고는 따사로운 햇볕에 내리쬐는 마당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으니 무척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누나 뱃속에서 자라고 있을 둘째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소은이도 건강하게 뛰놀고 있었다. 동물들도 어디 문제 있는 녀석들이 하나 없었으니, 평화 그 자체였다.
그렇게 의자에 눕듯이 몸을 파묻으며 쉬고 있으니, 저 멀리서 노랫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아……. 내 폰.”
그리고, 그것이 내 휴대폰 벨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휴대폰을 가지러 집으로 다시 들어가려니 귀찮았다. 그래도 전화가 오는 거니 받으러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노랫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어? 청호야.”
다름이 아니라, 청호 녀석이 집안에서 울리던 휴대폰을 물고 내게 다가온 것이었다.
“고마워.”
“별거 아님다.”
청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준 나는 여전히 울리고 있는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저희 텔레콤을 이용해 주시고 계셔서 무척 감사드리며, 이번에 신형 휴대폰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자…….”
“어제 바꿨어요.”
“아……. 그, 그러시군요…….”
나는 어버버 거리는 상대의 모습에 피식 웃고서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사실인걸? 어제 바꿨는데. 한 번 접은 것을 또 접을 수 있는 폴디드폴더블 폰이라고!
어쨌거나, 그렇게 전화를 끊은 나는 다시금 휴식을 즐기려다가, 모처럼 휴대폰을 잡았으니 뮤튜브 탐방이라도 하기로 했다. 시간을 보내는 것에 뮤튜브만한 것도 없었다.
뮤튜브를 보니, 알고리즘으로 인해 내 흥미를 끄는 것들이 꽤나 많이 떴다.
“악마대군주가 이제야 발매를 해?”
소은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발매한다 해놓고 이런저런 이유로 연기하던 게임이 이제야 발매한다는 소식이 최상단에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내 시선을 잡아끄는 영상들이 많았다.
멋모르고 까불던 양아치가 격투기 선수 앞에서도 까불다가 지려버리는 내용의 영상같이 자극적인 내용은 물론이고, 우리 동물원에 찾아온 사람들이 올린 영상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영상들 중에서 가장 내 시선을 잡아끄는 영상이 하나 있었다.
바로, 한 마리의 개가 차량을 운전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오……. 신기한데?”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에 막대를 달아 핸들 옆에 위치하게 한 차량이었는데, 개가 그 차량을 조종하고 있었다. 핸들도 조금씩 돌리고,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을 적절히 사용하며 주행하는 영상이었다.
물론, 시속 30km가 채 되지 않는 느릿한 속도에,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주행한 것이고, 근처에서 손짓으로 유도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신기한 것은 신기한 것이었다. 멍하니 그 영상을 바라보며, 개가 차를 운전하는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나는 이내 곁에 있던 청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청호는 내 곁에서 듬직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마치, 무슨 일이든 생기면 당장에 튀어나갈 것 같은 모습처럼 느껴졌다.
“음, 청호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청호도 운전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예? 제가 뭘 할 수 있다는 검까?”
“운전.”
“제가 말임까?”
청호는 당혹스럽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사실, 위험성 때문에 지금까지 동물들이 운전석이나 보조석 쪽으로는 넘어오지 못하게 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청호도 마찬가지였는데, 갑자기 운전을 할 수 있지 않겠나- 하고 있으니 녀석으로서는 당황스러운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 흥미를 감출 수가 없었다.
결국, 뮤튜브 어플을 종료하고, 연락처를 뒤지기 시작했다.
[차미새]“얘한테 전화하는 것도 오랜만이네.”
고등학교 동창 중 한 명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차에 미친 새끼라는 뜻으로 차미새로 놀리던 친구였는데, 이제는 자동차 튜닝샵의 사장으로 있는 친구였다.
“아따, 우덜 신수 성님 아니신교!”
“너 또 뭐 봤냐? 말투가 왜 뭐 같아진 거야.”
“고전 영화 봤는데.”
“그만 좀 봐 임마.”
“내 취미거든?”
취미와 취향은 존중해야 한다며 항변하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내저은 나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너 자동차 튜닝 아직 하고 있지?”
“당연하지. 내 밥줄인데. 드레스업부터 시작해서 구조변경이 필요한 모든 튜닝을 다루고 있다- 이 말씀!”
자랑스럽게 말하는 친구의 말에, 잘 됐다 싶었다.
“야, 그럼 우리 집 개한테 운전 좀 시켜보려고 하거든? 그거 가능하게도 튜닝 가능하지?”
“미친놈이세요?”
“말이 너무 심하시네.”
“니가 한 말은 안 심하고요?”
황당함이 가득한 친구의 말에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근데,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뮤튜브를 좀 봤더니, 영상이 있더라고. 일단 너한테 보내줄게 한번 봐.”
친구 녀석이 내가 보내준 영상을 보는지,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1분 정도가 흘렀을 때 녀석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가능하긴 하겠는데? 대신 네 차로 하는 것보다는 중고차 같은 거 하나 사서 개조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구조변경도 해야 할 거고, 뭐…….”
“그래? 그럼 조만간 적당한 거 하나 사서 갈게. 준비 좀 해줄래?”
“그러든가. 나중에 정확한 일정 잡고 전화 줘.”
친구와의 전화를 끊은 나는 곧바로 중고차를 알아보고, 친구에게 맡겼다. 그리고, 며칠 정도가 지나자 완성되었다면서 이야기를 전해왔다.
청호를 비롯해서 촬영팀과 함께 친구의 튜닝샵으로 향했다.
“잘 됐어?”
“어. 네가 원하는 수준으로 싹- 해놨지.”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웃으며 차량에 다가가 확인했다.
청호가 앉을만한 시트부터 시작해서 안전벨트,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에 이어진 봉 같은 것들이 장착되어 있었다. 덕분에 사람은 운전할 만한 공간이 안 나왔지만, 청호가 운전하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 모습에 충분히 만족한 나는 곧장 견인차를 불러, 그 차를 끌고 근처 면허학원으로 향했다.
미리 학원 전체를 대여해둔 상태라, 그곳에서 운전을 해보기로 한 것이었다.
청호를 운전석에 앉히고, 안전벨트까지 해주니 뭔가 색다른 느낌이 났다. 인간이 아니라 개가 운전석에 앉아 있으니 벌써부터 신기한 느낌이었다.
“청호야. 내가 저번에 미리 알려준 거 있지? 기억나?”
“예, 기억 남다.”
“이걸 밀게 되면 차가 속도를 줄이다가 정지할 거고, 이걸 밀게 되면 차가 가속하게 될 거야. 이걸 왼쪽으로 돌리면 차의 방향이 바뀌는 거고. 여기 있는 걸 누르면 전진, 이건 후진.”
“넵, 충분히 숙지하고 있슴다!”
내 말에 힘차게 대답하는 청호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 준 나는 곧바로 살짝 거리를 벌리고서 청호에게 신호를 주었다.
“출발!”
내 외침과 동시에, 청호가 기어 버튼을 눌러 주행 기어를 체결했다.
“오오오!”
청호가 드라이브 기어를 체결하고, 가속페달과 연결된 봉을 살며시 누르니 차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크게 환호하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청호야 앞에 우측 커브길!”
천천히 전진하던 차는 금세 오른쪽으로 굽어 있는 커브길을 만났다. 하지만 청호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핸들 위에서 앞발을 구르며 차의 방향을 바꾸어갔다.
오른쪽으로 굽은 커브를 손쉽게 통과한 청호는 뒤이어 또다시 나오는 왼쪽 커브길도 손쉽게 통과했다.
그 뒤로 이어진 언덕길은 조금 더 가속하며 힘차게 나아갔고, 내리막길은 브레이크를 잡으며 부드럽게 통과하는 모습도 보였다.
“쟤가 나보다 운전 잘 할 거 같은데?”
장롱면허 10년 차라고 하는 한 촬영팀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그러나 그 말이 절대 허황된 소리는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 청호가 하는 주행은 부드러움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함께 구경하고 있던 면허학원의 관계자가 슬쩍 다가왔다.
“신수님. 혹시, 청호에게 기능시험을 모의로 한 번 보게 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저희가 채점 정도만 하는 식으로요.”
“오……. 그거 괜찮겠네요.”
나는 학원 관계자의 말에 크게 흥미를 느끼며, 청호를 불러들였다.
어느새 짧은 코스를 완주한 청호는 차를 끌고 내 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역시 청호라고 해야 할지, 센스 좋게 운전석 문이 내 앞으로 오도록 차를 멈춰세웠다.
그리고, 면허학원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청호에게 간단한 지식들을 전수해 주었다. 비상등, 돌발 상황 안내 등으로 기능시험에 필요한 지식들이었다.
“할 수 있겠어?”
“음……. 조금 헷갈리긴 하는데, 해보겠슴다.”
“그래. 당황하면 될 것도 안 되니까, 침착하게 해.”
나는 청호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고서 살짝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곁에 있던 학원 관계자가 신호를 주었다.
“출발!”
내 외침과 동시에, 또다시 청호가 차량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주행하던 청호는 바로 앞에 있던 정지선을 발견하고 부드럽게 멈춰 섰다. 그리고 붉은색이던 신호등이 푸른색으로 바뀌자, 다시금 천천히 출발했다.
이후 나타난 커브길은 조금 전에도 부드럽게 돌았던 것처럼, 아무런 문제 없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돌발 상황!”
그 순간, 곁에 있던 관계자가 어디서 가져온 건지 모를 안전모를 쾅쾅 두드려대며 신호를 보냈다.
청호는 그 소리에 놀란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차량을 급정거하고, 비상등을 깜빡였다.
“오오……. 이제 출발하셔도 됩니다.”
“청호야! 다시 출발해!”
다시 출발해도 되는 것을 알려주니, 청호가 또다시 움직였다.
이후에 만난 것은 기능시험에서 가장 많은 탈락자를 배출한다는 T자 주차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딱히 걱정할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청호는 아주 부드럽게 차량을 움직이며 T자 주차를 마무리한 것이었다. 신체구조상 조금 느리긴 해도, 꼼꼼하게 차량을 돌리며 후진까지 확실하게 해낸 것이었다.
“나 저기서 세 번 떨어졌는데.”
우리 촬영팀의 막내에겐 절대 운전을 맡기면 안 되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청호가 무척 대단하게 느껴졌다.
그 뒤로도 이어진 교차로 통과라던가, 가감속, 경사로 등이 이어졌음에도 청호는 아주 부드럽게 주행을 이어갔다.
그리고, 모든 주행이 끝나고 다시금 내 앞으로 돌아온 청호는 혓바닥을 길게 늘어트리고 헥헥거리고 있었다. 녀석도 큰 차량을 움직이고 있다 보니 나름대로 긴장을 많이 했던 것 같았다.
“수고했어.”
깔끔하게 주차 기어와, 주차 브레이크까지 작동해둔 청호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녀석을 차에서 내려주었다.
긴장한 탓에 몸이 조금 굳었던 건지, 청호는 크게 기지개를 켜더니 내 곁에 자리를 잡았다.
“정말 대단하네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 만져봐도 괜찮겠습니까?”
“네, 귀 안쪽만 안 만지면 괜찮아요.”
근처에 다가온 관계자가, 대단하다며 청호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그런데, 점수는 어떻게 됐나요?”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조금 감점인 요소가 있겠지만……. 신체구조가 다른 개라는 걸 감안하면 만점입니다.”
“크……. 만점이라니, 역시 청호야. 대단한데?”
“별거 아님다!”
내 말에 청호가 씩-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녀석이 은근슬쩍 자세를 고쳐잡는 걸 보니, 녀석도 스스로가 만들어낸 결과가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청호가 확실하게 운전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나는 무척 흡족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담긴 영상이 편집되고 뮤튜브에 올라갔을 때, 욕이라고 할 수 있던 말이 더 이상 욕이 아니게 되었다.
[난 개보다 못한 놈이야ㅠㅠㅠㅠㅠ] [면허 3트만에 땄습니다. 질문 안 받습니다.] [(Best)기능시험 탈락해 본 개만도 못한 사람 개추] [저것도 무인주행이라 쳐야 하나? 사람은 없잖아. 개가 있긴 하지만.] [개보다 못난 놈이라는 소리 들어도 화 안 낼 자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