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 * *
“아니….”
단은 그답지 않게 할 말을 바로 못 찾고 더듬거렸다. 호란도 놀라서 입만 벌렸다. 정건이 조금만 덜 진지했어도 방금 말이 정말이냐고 되물었을 것이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귀수관 도시 안에만 마력이 되돌아왔다고요? 다른 곳은 다 그대로인데?”
“어떻게 귀수관만 되돌아온 거예요? 그럼 거기선 땅님들이 예전처럼 마법을 쓰실 수 있다는 거예요?”
단과 호란이 질문을 쏟아냈지만 정건은 얼굴을 구길 뿐 바로 답하지 않았다. 감정적으로 입을 연 것을 후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가 느릿느릿 말했다.
“어떻게 해서 일어난 일인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성벽을 경계로 그 내부에는 법력이 돌아 자유롭게 법술을 쓸 수 있고 그 위력도 변고 전과 같은 수준이라 한다. 대관성에서 벼슬하는 동기가 두 번이나 내게 입성을 권하러 찾아와서 한 말이다. 허튼 소리하는 이가 아니니 사실일 게야.”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소문이 안 날 수가 있습니까? 귀수관에 인구가 몇만이고 바깥과 교류는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믿지 않으면 됐다. 내려가거라.”
정건은 잘됐다는 듯 다시 창호를 닫으려고 했다. 단이 달려가서 문틀을 붙잡았다.
“믿습니다! 믿으니까 여쭙는 겁니다. 어르신 말씀도 믿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촌락 주민들 말도 믿으면, 시작부터 귀수관 관리 나리들이 소문을 단속했다는 것 아닙니까. 이건 느닷없이 일어난 일이 아니에요. 어르신께선 뭔가 더 아실 겁니다!”
“난 더 말해줄 게 없다! 대관성 놈들 이야기를 내게 하지 마라.”
귀수관 관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정건은 또다시 화를 내보였다. 단은 계속 물고 늘어졌다.
“소문이란 건 일이 터진 다음에 단속하면 아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이 정도로 철저하게 통제가 됐다는 건 귀수관 나리들이 미리부터 마력이 되돌아올 걸 알고 대비했다는 이야기지요. 그 나리들이 직접 마력을 되살렸거나… 아니면….”
단은 도중에 스스로 말을 멈췄다. 귀수관 관인들이 그런 일을 해낼 방법이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단의 표정 변화를 보고 정건의 얼굴이 더 무서워졌다. 그가 말했다.
“내가 아는 것은 다 말했다. 가라.”
“나으리, 조금이라도 더 말씀해주십시오. 추측하신 내용이라도 좋으니까….”
“가라고 했다. 꾸물대다 어두워지면 하늘족이라도 절벽 못 탄다. 산 아래는 이미 해 다 졌어!”
“도리와 양심을 팔았다는 게 정말 피난한 땅님들을 두고 한 말씀입니까? 혹시….”
“네 이놈!”
정건이 목청을 돋우며 고함쳤다.
“분수를 모르는 놈이 윗전을 믿고 뻗대느냐! 당장 손 놓지 못할까!”
단은 문틀을 잡았던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문이 떨어져 나갈 듯 요란하게 닫혔다.
소리 없이 입 모양만으로 욕을 하고 있는 단에게 호란이 말했다.
“단, 일단 시문 님한테 돌아가자. 진짜 해 지고 있어.”
“…….”
단은 암자 앞길을 돌아 내려가며 입속에 있던 욕을 꺼내놓았다. 그는 잔뜩 화가 나 보였다.
“빌어먹을 놈의 꼰대가. 남은 목숨이 걸렸는데 쓸데없이 뻗대는 건 자기 아니야? 보나 마나 그 동기인지 하는 놈한테 뭐 더 들은 게 있을 텐데.”
“…단, 정말로 귀수관 땅님들이….”
호란은 질문을 하려다 말끝을 흐렸다. 단이 툭 말했다.
“뭐. 돌 인간하고 편 먹은 거 아니냐고?”
“설마 정말 그랬을까?”
“그럼 돌 인간 말고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게 누가 있어? 없어진 마력을 특정 지역에만 되돌리는 건 물론이고, 그게 딱 성벽 안에만 흐른다는 것도 상식 바깥이잖아. 마력이란 건 놔두면 사방으로 흩어지는 거라며.”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전부 맞아떨어지잖아. 돌 인간하고 한편을 먹었으면 이제 관성도시가 공격받을 걱정도 없어졌을 거 아냐. 마법을 쓸 수 있으니 물 걱정 농사 망칠 걱정도 없고. 그러니까 쟁여둔 마력석이고 식량이고 마음 놓고 풀면서 자기들 찔리는 거 합리화하는 거겠지. 불쌍한 아랫것들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하지만 귀수관 땅님들이 왜….”
“돌 인간이 왜 그랬냐고 물어야지.”
단이 냉랭하게 말했다.
“운모 그 새끼는 이미 위교연하고 손잡고 우릴 된통 엿먹였잖아. 같은 방법을 한 번 더 써먹어 보자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럼 귀수관 땅님들이 시문 님을 찾고 있는 게….”
“지금까지 말한 건 다 추측이니까 결론은 못 내려. 하지만 난 좋은 생각이 전혀 안 든다.”
호란은 믿고 싶지 않았다. 마을마다 구휼을 받은 사람들이 안심하고 기뻐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바람과 실제는 언제나 별개였다.
호란은 굳어진 얼굴로 단에게 팔을 뻗었다.
“빨리… 시문 님한테 빨리 돌아가자. 내가 달릴게.”
정건의 경고대로 겨울의 저녁 해는 순식간에 내려갔다. 주변이 어두워진 탓에 절벽을 타고 내려가는 데 시간이 상당히 걸렸다. 두 사람이 산밑에 도착했을 때 주위에 빛이라곤 조금씩 기울기 시작하는 상현달밖에 없었다.
단이 불을 켜려고 걸낭을 여는데 호란이 말렸다.
“잠깐만. 불붙이기 전에 저기 봐. 저기 구릉 너머가 밝지 않아?”
단은 호란이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마을 쪽에서 어른거리는 빛이 움직이고 있었다. 광원은 구릉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지만 꽤 밝았다.
호란이 불안한 듯 말했다.
“저거 마을에서 나오는 빛이 아닌 것 같아.”
“네 말이 맞아. 빛이 솟는 건 마을 입구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야. 마을로 다가가고 있는 것 같은데.”
호란은 말을 듣자마자 몸을 낮추고 번개같이 구릉 위로 달려갔다. 단도 서둘러 뒤를 쫓았다.
단이 구릉을 다 오르기 전에 호란이 되돌아오면서 급하게 말했다.
“단, 병사들이야! 땅님 마법사들도 여럿 있어!”
단은 달음질쳐 구릉에 올라섰다. 완만한 경사면 아래로 마을 어귀가 내려다보였다. 동구에서 꽤 떨어진 곳에 수십의 하늘인 병사들과 군용 수레 여러 대가 보였다. 수레는 한 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속도를 내기 위해 작고 가볍게 만든 것들이었다.
군인 무리는 마을에 바로 진입할 생각이 아닌지 동구와 상당히 거리를 둔 채로 대열을 멈춰 세우는 참이었다. 수레에서 법군인 듯한 사람이 한 명씩 내리고 있었다. 병사들이 치켜든 등불 아래로 북방의 고위 법군이 입는 무관복이 드러났다.
호란이 낮게 속삭였다.
“단, 먼저 가. 마을 뒤쪽으로 빙 돌아서 시문 님한테 가.”
“뭐? 그럴 거면 발 빠른 네가 가야지.”
“저기 땅님들 있잖아. 난 이미 기색으로 위치를 들켰어.”
단은 얼굴을 굳혔다. 호란의 말대로 법군 고관이 두 사람이 있는 쪽을 가리키며 주위에 뭐라고 명을 하고 있었다. 손안에서 금색 패물이 반짝였다.
“단, 뛰어!”
호란은 소리치면서 자기가 먼저 병사들 쪽으로 뛰쳐나갔다.
단과 거리를 얼마 벌려놓기도 전에 허공에서 무리 지은 벼락이 떨어졌다.
호란은 급히 방향을 바꾸며 처음 몇 줄기를 피했지만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결국 전광에 휘말린 호란은 바닥에 굴렀다.
“윽…!”
호란은 신음하면서도 달려오는 하늘인 병사들에 맞서기 위해 일어섰다. 마을 안에 있는 시현은 이미 상황을 눈치챘을 것이다.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 공격은 호란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왔다. 발치 주위 땅 밑에서 금속으로 된 창날 수 개가 맹렬한 기세를 품고 죽죽 솟아올랐다.
공격을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선 순간 한쪽 허벅지에서 경험한 적 없는 고통이 느껴졌다. 호란은 비명을 흘리며 발을 헛디뎠다. 바닥에 쓰러진 다음에야 창날 하나가 제 허벅지를 완전히 꿰뚫은 것을 알았다.
“이딴 거…!”
호란은 창을 뽑기 위해 두 손을 뻗었으나 기운이 가득 담긴 금속창은 바닥과 완전히 이어진데다 호란의 힘에도 꺾이지 않았다.
그사이 호란에게 다다른 하늘인 병사 한 사람이 발로 호란의 어깨를 바닥에 찍어눌렀다.
“저항하지 마라! 너는 귀수관군에 구속됐다. 곧 총관께서 오실 것이다.”
호란을 짓밟은 병사가 위협적으로 말했다. 곧 다른 병사들도 속속 도착해 주위를 둘러쌌다.
호란은 눈에 불을 켜고 병사들을 노려보았다.
“네놈들이 군인이야? 다짜고짜 사람을 공격하고!”
병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병사가 호란의 다른 쪽 어깨를 밟았다. 몸이 흔들리자 관통당한 허벅지에도 충격에 갔다. 호란은 입을 닫고 신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비켜보아라.”
병사들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호란을 둘러쌌던 병사들이 양옆으로 물러났다.
곧 무복을 입은 땅인 네 사람이 호란에게 다가왔다. 담청색 무복을 입은 땅인이 말했다.
“이름과 출신지를 말해라.”
호란은 입을 닫고 상대를 노려보기만 했다. 땅인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주문을 쓰려는 듯 한 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그가 무엇을 하기 전에 옆에 선 남자가 말했다.
“그만. 이미 상대는 제압됐네. 이 앞을 생각하면 마력석을 낭비해선 안 되네.”
남자는 부절을 차고 있었고 복장을 보아도 다른 땅인들보다 지위가 높아 보였다. 그는 호란을 잠시 훑듯이 내려다보더니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음성으로 물었다.
“네가 그 소문 자자한 완씨 시문의 호위겠지. 시문께서는 어디에 계시냐.”
호란은 표정을 바꾸지 않으려고 눈에 힘을 주었다. 눈앞에 마을을 놔두고 호란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는 건 마을에 시현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선발대가 보고하기를 처소에 수레도 짐도 그대로 남아 있다고 했다. 너까지 아직 이 근방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문께서 몸을 숨긴 곳도 가깝겠지. 계신 곳을 말해라.”
호란은 더욱 입을 꾹 다물었다. 아마 시현은 하늘인 병사들이 접근하는 것을 기색으로 눈치채고 급히 처소를 빠져나갔을 것이다.
그때 반대편의 병사 무리가 갈라지며 하늘인 한 사람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는 단의 어깨를 꽉 붙들어 억지로 끌어오고 있었다. 그가 고관에게 보고했다.
“붙잡아왔습니다. 구릉 너머 산 쪽으로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단은 호란의 모습을 보고 이를 꽉 악물었다. 붙잡힌 것을 미안해하는 얼굴이었지만 호란 생각엔 그럴 일이 아니었다. 구릉은 사방이 트인 곳이라 처음부터 단이 혼자서 도망치기는 어려웠다.
고관은 이번에는 단을 보고 물었다.
“네가 답해라. 문께서는 어디 계시냐? 여기는 깊은 산중이고 이 마을 외에는 인가도 없다. 너희가 입을 다문들 문께서 바위산을 헤매며 고초를 겪으실 뿐이다.”
단도 대답이 없기는 호란과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단을 붙들고 있던 병사가 그를 땅바닥에 휙 쓰러뜨리고 가슴팍을 짓밟았다.
“단! 이게 무슨 짓이야!”
호란이 소리쳤다. 고관도 병사에게 말했다.
“거칠게 다루지 말아라. 저항도 못 하는 이인데.”
“힘은 하나도 주지 않았습니다. 건방지게 굴길래 주제를 알려준 것뿐입니다.”
그는 단에게 으르대듯이 말했다.
“총관님께 제대로 답해라. 아니면 뼈가 다 부러질 거다.”
“글쎄 거칠게 굴지 말래도.”
총관이라는 남자는 제법 마음 쓰는 것처럼 말했으나 병사를 비키게 하지는 않았다. 단은 땅에 짓눌린 채 주먹만 꽉 쥐었다.
호란은 고통을 참고 팔꿈치를 당겨 상체를 반쯤 세웠다. 그가 총관을 똑바로 보고 물었다.
“정말이에요? 정말로 돌 인간들과 손을 잡았어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