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ergency Exit to Freedom RAW novel - Chapter 19
19]
정현은 병원 앞에 있는 커피숍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잠시 멈춰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커피숍의 종업원이 다가왔다.
“저……혹시 유정현씨입니까?”
“네……”
“이쪽으로 오시죠. 기다리고 계십니다.”
정현은 앞장서 걸어가는 종업원의 뒤를 따라서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커피숍의 안쪽에 가벽을 세워 작은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고 그 곳에 중후하고 날카로운 인상의 남자가 그녀를 쳐다보았다. 공군정복을 갖춰 입고 앉아 아직도 날렵하고 단단한 느낌으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주위를 제압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유정현이라고 합니다.”
“반갑소. 앉아요.”
“네……..”
정현은 자리에 앉으며 목소리마저 그와 닮은 그의 아버지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아마도…….그가 나이가 들면 저런 모습일 것이다. 무엇에든 자신만만하고 침착하게 정도를 걸어온 사람답게 이제는 연륜까지 더해져 삶의 지혜까지도 엿보이는 그의 아버지에게서는 사람을 보는 여유마저 느껴졌다.
“아버지는 어떻소? 내 듣기로는 많이 좋아졌다고 하던데…….”
“네. 많이 좋아져 이제는 일어나 식사도 하십니다.”
“흠. 다행이군.”
“그럼 지금 옆에 누구 보살펴줄 사람은 있나?”
“네. 어머니께서 계십니다.”
정태욱 장군은 맞은편에 앉아 차분하게 자신의 질문에 답하는 아들이 사랑하는 아가씨를 바라보았다. 자신의 짐작대로 아들이 허황된 여자를 고른 것 같지는 않았다. 지금은 여러 가지 걱정과 고민으로 흐려진 듯 느껴지는 눈망울이지만 그 맑고 또렷한 눈빛에서 느껴지는 빛은 그녀의 정직한 성품과 곧은 마음가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는 살아야 할 시간보다 살아온 시간이 훨씬 많은 정태욱 장군이 그동안의 삶에서 느낀 것은 사람의 눈은 그 사람을 대변해준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살아온 삶이 그 사람의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 사람을 보았을 때 느껴지는 인상만으로 성격과 어떻게 살아왔는지조차 알 수 있게 된다. 허나 나이가 들든 들지 않던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단 하나, 그것은 그 사람의 눈빛이었다. 자신 정도의 나이가 들면 사람을 보는 눈이 더욱 깊어지고 정확해지는 법………장군은 첫눈에 자신의 첫 며느리를 인정했듯 둘째며느리감도 마음에 들었다.
“내 길게 말 않겠소.”
“네……..”
정현은 그의 아버지에게서 흘러나올 다음 말을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며 기다렸다. 분명 아들을 떠나라는 주문일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의 아버지가 직접 자신을 찾아올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며칠 전 지혁이 그놈과 만나 아가씨에 대해서 들었소. 다른 상세한 이야기야 다른 이를 통해 들었고…….유준장. 아가씨의 아버지일은 어찌 처리될 지 오늘 오전 결론이 났소.”
그의 아버지의 마지막 말에 정현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유철웅 준장은 몸이 회복되는 대로 바로 제대를 하게 될 것이오. 박의원이 혼자 일을 꾸몄고 유준장을 끌어들이려 했지만 유준장은 우리 해군을 위해 박의원을 잡는데 앞장섰으니 그를 정상 참작하여 다른 여죄는 묻지 않기로 했소. 박의원이 문제였지만 박의원 혼자서 아무리 주장한들 모든 증거와 증인들이 모두 박의원에게만 불리하게 적용되니 더 이상 문제되지는 않을 것이오. 해군에서는 아가씨의 아버지를 이대로 해군에서 제대시키는 것으로 유준장에 대한 처벌을 끝내기로 결론을 냈소.”
“……….감사합니다.”
정현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눈물이 흘렀다. 아마도 아버지에게는 이렇게 불명예제대를 하는 것만큼 더 큰 처벌은 없다 생각하시겠지만 정현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도 아니었다. 아버지의 총상소식에 하얗게 얼은 모습으로 병실을 들어서던 어머니의 모습에는 아직도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었고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에도 회환이 느껴졌었다. 이제는 조금은 달라질 아버지를 기대하는 정현도 아버지를 용서해주는 해군에 감사했다.
“아직 지혁이는 모르오……….그놈이 아가씨를 몹시 아끼더군.”
정현은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그의 아버지의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아마도 해군에서 아버지를 처벌을 하지 않아도 아버지의 죄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만약 그의 옆에 제가 있어 해가 된다면……..”
정태욱 장군은 말을 잇지 못하는 아들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해 될 것은 없소. 다만 박의원의 일이 곧 터질 것이고 그러다보면 유준장도 거론될 것이오. 그런 중에 두 사람이 맺어진다면 아마도 일이 복잡해지겠지. 아가씨도 알다시피 내가 몸담고 있는 군의 직책이 가벼운 것이 아니고. 여론이 크게 떠들면 해군뿐 아니라 지혁이 놈과 엮여 공군까지 여론에 노출될 수 있소.”
정현은 이제야 이해가 갔다. 국회의원이 군의 기밀문서를 유출시킨 것만으로도 언론과 방송에서 떠들어댈 것이 분명했다. 거기다 박의원이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을 거론하면 해군이 막아주겠지만 자신과 정지혁 소령의 관계가 노출되면 이야기는 심각해진다. 해군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여기에 공군까지 끌어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현이 사랑하는 그의 아버지가 바로 공군 최대의 사령관인 공군참모총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현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제발……제발 그와 헤어지라는 말만 아니라면 10년이든 20년이든 기다릴 수 있었다.
“걱정 마시오. 헤어지라는 것이 아니니………내가 헤어지란다고 헤어질 아들놈도 아니고……..당분간 시간을 갖자는 것이오. 내 참. 내가 이런 말 아가씨에게 한 걸 알면 아들놈이 날 잡아먹으려들겠군………난 아가씨가 마음에 드오. 여기 나오기 전부터 아가씨를 내 둘째며느리로 생각하고 이 자리에 나온 것이고.”
정현은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흠흠…….죄송해요. 고맙습니다. 아버님이라고………아버님이라고 불러도 될까요?”
정현은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아버지를 바라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를 만나기전부터 작은 여행을 준비했어요. 시간을 정해놓지 않았지만 여행을 위해서 준비도 다 되어있고………일이 해결될 동안 여행을 다녀오겠습니다.”
정태욱 장군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기특하게도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 해주는 정현을 바라보았다.
“고맙소. 이런………그냥 말 놓으마. 머지않아 내 며느리가 될 텐데………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니 그 방법이 가장 좋은 듯하구나.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게다. 결혼 전에 잠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고 편하게 생각 하려무나. 여기 일이 정리되면 바로 돌아 오거라.”
“네………..”
“그래……..흠…….그나저나 지혁이 그놈이 문제다. 저번에 만났을 때도 잠깐 그 얘기를 했는데 놈이 아주 쌍심지를 켜고 반대하더구나. 한순간도 너와 헤어져있을 수 없단다. 그 놈이 그럴 놈이 아닌데 너에 대해서는 아주 이성이란 놈은 어디 멀리 이민이라도 보낸 것 같으니 원. 네가 설득할 수 있겠니?”
“……..해보겠습니다.”
정현은 눈물 젖은 눈동자에 살포시 미소를 띠우며 그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영원히 헤어짐이 아닌 영원히 함께하기 위한 잠깐의 헤어짐이었다. 지금 잠깐의 헤어짐이 나머지 긴 세월을 그와 함께할 수 있게 해준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었다. 그를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설득해야 했다.
정현은 김해공항에 도착해 공항 로비를 둘러보았다. 여기서 동생을 보내고 어머니도 보내었었다. 그리고 이제 자신도 떠난다는 생각에 괜히 마음이 씁쓸했다. 아버지의 소식에 다시 들어온 어머니에 이어 정후도 잠깐 들어왔었지만 아버지의 상태가 좋아진 것을 확인하고 다시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리고 이제 아버지가 퇴원을 할 테고 곧이어 평생 몸을 담았던 해군에서 전역할 것이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신념은 버리지 않았다고 자부하는 듯 했다. 그리고 자신을 떠났던 어머니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을 느끼는 듯 했지만 그도 얼마가지 않을 것이다.
정현은 며칠 전 기어이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그녀의 고집에 화를 내던 그를 떠올렸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일이 해결될 때까지 국내에서 몸을 피하고 있으면 돼.”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잖아요. 혹시 박의원이 당신과 나의 관계에 대해 떠들게 되면 내가 아무리 국내 어디에 숨어있다 하더라도 기자들은 날 찾아낼 거예요.”
“이미 박의원의 입은 막았어.”
“사람이 하는 약속이에요. 지금 모두들 걱정하는 게 그거잖아요. 언제 박의원이 생각을 바꿔서 다시 말을 바꿀지 몰라요. 아버님도 그 모든 이변들을 생각해서 제가 한국에 없는 게 좋다고 하는 거구요. 당신도 알잖아요. 알면서 왜 이렇게 억지를 부려요?”
“빌어먹을!”
지혁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박의원을 협박하고 회유해 터트릴 말과 터트리지 않을 말들을 합의를 본 상태지만 언제 어떻게 새어나갈지 모를 일이었다. 유준장을 물고 늘어져 해군까지 끌어들인다면 박용섭은 더 이상 빠져나갈 구멍이 없도록 만들겠다고 협박했다. 만약 해군을 끌어들인다면 박용섭이 싸워야 하는 상대는 검찰과 해군 전체, 그리고 공군까지 상대해야 하니 아마도 박용섭 자신을 위해서라도 해군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 박용섭이 자폭하는 심정으로 계획된 대로 움직이지 않고 모두 터트린다면 유준장뿐 아니라 정현, 지혁 그리고 지혁의 아버지인 정태욱 공군참모총장까지 줄줄이 엮일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혁과 정현의 관계를 숨기고 더 큰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주인공인 정현이 한국에 없다면 아마도 커다란 파장으로 퍼지는 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였다. 정태욱 장군, 해군참모총장인 김 장군, 거기다 해군작전사령관인 여중장까지 정현의 여행을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었다. 지혁 본인만 빼고………
지혁은 이제 겨우 모든 일이 해결되고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왔는데 이렇게 그녀를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보내야한다는 상황이 미치도록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한 억지만 부리고 있는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공군 전투기조정사로 있는 형에게서도 전화가 왔었다.
지혁은 여린 듯 보이는 정현을 바라보았다. 알고 있었다. 그녀는 생각보다 강한 여자였다. 하지만 내키지 않았다. 아무리 강한 여자라 해도 아무리 강철같은 여자라 해도 자신에게는 단지 자신이 직접 지켜주고 보살펴주어야 할 소중한 존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같은 전투기조종사로서 갖은 훈련으로 다져진 강한 형수를 대하는 형의 태도는 강인한 군인을 대하는 것이 아닌 항상 보살피고 보듬어주어야 하는 아기 새를 대하듯 대하고 있었다.
“후……..”
정현은 작은 한숨을 내쉬는 지혁에게로 다가가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설마 내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사랑해요.”
그리고 정현은 이 당분간의 헤어짐이 안타까운 듯 키스해오는 지혁의 입술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정현은 다시 한번 공항 로비를 둘러보았다. 그가 부대에 잠깐 들러 바로 공항으로 오겠다며 박상원 중위를 보낸다고 아침에 전화를 걸어왔었다. 박중위가 모는 차로 공항으로 들어와 바로 그를 찾았지만 아직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곧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해야 하는데 혹시 그를 보고 가지 못할까 정현은 애가 탔다.
“오고 계실 겁니다.”
옆에서 그녀의 애타는 심정을 알았는지 박상원 중위가 나지막이 그녀를 달래었다.
“알아요. 오겠죠. 하지만 곧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정현은 다시 한번 입구를 돌아보았다. 그때였다. 전투복 그대로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그를 보았다. 정현은 순간 그의 아름답고 늠름한 모습에 가슴이 벅차오르며 눈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게로 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뛰었다. 이제는 그를 기다리며 눈물 흘리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 떠나듯 자신의 의지로 돌아올 것이고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정현은 힘껏 뛰어 그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나 없는 동안 다른 여자 쳐다보지도 말아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날 떠올리고 훈련하다 쉬는 시간이 오면 날 생각해줘요. 내가 없는 당신의 미래는 상상도 하지 말고 계획도 세우지 말아요. 그리고……..”
“그래. 그래. 빌어먹을.”
자신을 힘껏 껴안는 그의 품에 안겨 정현은 이 세상에 진정 믿을 수 있는 한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정지혁 소령 그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을 기다릴 것이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그는 일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할 그런 남자라는 말을 굳게 믿었다.
그가 그녀의 얼굴을 잡고 충혈 된 눈동자로 그녀의 눈을 깊게 들여다보았다.
“머리카락 자르고 물들이는 건 용서해도 나 없는 곳에서 짧은 치마는 안 돼. 알았나?”
정현은 눈물 젖은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띠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바지만 입을게요. 당신 없는 곳에서 술에 취하지도 않을 거고 밤늦게 돌아다니지도 않을 거예요.”
“사랑한다. 유정현.”
그리고 다시 그녀를 꽉 끌어안는 그의 품속에서 그녀는 그에게 나도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웅얼거리며 흐느꼈다.
그리고 12월초 어느 날 오후 정현은 그렇게 지혁과 헤어져 작은 여행을 떠났다.
1년 3개월 후 진해 군항제
“아. 이거 말이야. 군항제 한번 할 때마다 해군들은 죽어나는 거라니까. 무슨 축제다 뭐다해서 훈련은 못하고 매일 축제 준비하고 군대 정비하고 생 노가다만 하니…….”
“네가 하는 게 뭔데?”
툴툴거리는 이강석 중사에게 강석환 상사가 일침을 놓았다.
“아니. 제가 왜 하는 게 없습니까? 오늘 아침만 해도 축제라고 들떠서 훈련도 소홀이 하는 놈들 기합 줬죠. 게다가 정신상태 헤이해진 놈들 정신무장 다시 시켰죠………”
“그거야 네놈이 즐거워서 하는 일이고. 아마 우리 부대에 네놈이 밑에 병사들 기합주기를 즐기는 거 모르는 사람 아무도 없을 걸?”
“그건 그러네.”
한쪽 구석에서 보고서를 작성하던 최철균 소위가 강석환 상사의 편을 들었다.
“아니. 누가 그런 소릴 합니까? 제가 얼마나 놈들을 기합 줄때마다 가슴이 아픈데…….”
“그렇겠지. 더 심하게 주고 싶은데 요즘 군내의 폭력 문제로 시끄러우니까 더 심하게 하지도 못하고 너도 가슴이 미어질 것이다.”
최소위의 말에 강상사가 박장대소를 하며 책상위로 무너졌다.
“하하하. 맞습니다. 맞아요……….그리고 저 놈이 저러다 우리 대장한테 딱 걸려야 되는데 말입니다.”
“예? 소령님 오신답니까?”
우리 대장이라는 말에 입을 쩍 벌리며 이중사가 강상사를 바라보았다.
“미친놈. UDT 지옥의 24주 훈련에 들어가셨는데 어떻게 오시냐?”
“그렇지……들어가신지 아직………몇 주나 되셨죠?”
“한……..20주 가까이 됐지? 그렇죠? 중위님.”
사무실 한쪽에서 권총을 손질하고 있던 박상원 중위에게 모든 대원들의 눈이 모였다.
“그래. 정확히 20주 4일째지.”
정확히 날을 세고 있는 박중위의 대답에 이중사가 이해할 수 없는 표정으로 강상사를 다시 바라보았다.
“솔직히 전 이해가 안갑니다. 소령님은 벌써 지옥주 훈련을 3번이나 이수하셨는데 또 그 생지옥 훈련을 받으러 가시다니 전 죽었다 깨나도 그런 짓은 못합니다.”
“너하고 우리 대장하고 같냐?”
“그럼 상사님은 또 하라고 하면 하시겠습니까? 아니 아무도 강요하는 사람 없는데 스스로 지원해서 그 생지옥으로 다시 들어가라면 하겠습니까?”
“미쳤냐? 내가 그 지옥 훈련을 또 가게? 두 번 갔다 온 것도 치가 떨리는데 또? 난 절대 못가지!”
“거 보십시오. 근데 3번이나 다녀오시고도 또 지원해서 가시다니 우리 소령님은 하여튼 별종입니다. 별종.”
이중사의 거친 말에도 누구 하나 토를 달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대장인 정지혁 소령이 어떤 심정으로 스스로 지옥주 훈련에 참가했는지……..
아마도 그리운 이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마음으로는 백번이고 천번이고 그녀를 찾으러 떠났겠지만 이제 겨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박의원의 사건이 잊혀져가고 있었고 해군 내에서도 다시 기강을 잡고 해군특수전여단장의 자리를 메우는 등 모든 일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박의원의 사건은 생각 외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박의원은 해군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유철웅 준장의 이름을 거론했고 거기에 유철웅 준장의 딸과 공군참모총장의 아들인 정지혁 소령의 이름까지 거론했다. 여론은 해군, 공군, 정치권까지 싸잡아 모두 매도하기 시작했고 기자들은 정지혁 소령과 유준장의 딸인 정현의 로맨스와 해군, 공군 어디까지 이 사건에 연루되었는지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하지만 해군에서 극구 유준장은 피해자임을 강조하고 나섰고 모든 정황이 박용섭 의원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거기다 정현이 한국을 떠나있는 상태에서 정지혁 소령과 정현의 관계 또한 정확한 규명이 힘들었다. 결국 박용섭은 혼자 모든 사건을 만들어낸 주모자로 재판을 받았고 국가보안법 위반과 나머지 다른 심각한 여죄가 하나 둘 드러나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유철웅 준장은 결국 불명예제대라는 꼬리표를 달고 비참하게 전역했지만 지금은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전원에 집을 짓고 아내와 함께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박상원 중위는 지옥주에 참가하기위해 떠나는 정지혁 소령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중위. 내가 없는 동안 팀의 대장은 중위다. 잘 부탁한다.”
“꼭 이러셔야합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여기 있으면 금방이라도 뒤를 쫒을 것 같다. 지금껏 나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 적은 없었는데 이번만은 통제가 되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올려다본다. 어딘가에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그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고통이다. 나를 묶어둘 무언가가 필요해.”
자신을 제도적으로 묶어두고 몸을 힘들게 함으로써 머릿속에 떠오르는 다른 생각을 잊으려 훈련에 참가했을 것이다. 박상원 중위 자신은 그런 절절한 사랑을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대장이 느끼고 있는 고통의 일부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반대하지 못했다. 어차피 자신의 반대는 아무 의미도 없었겠지만……..
“우리 사다리 타서 피엑스에서 간식 사먹을까요?”
이중사가 침울한 분위기를 띠우려고 간식제안을 하자 강상사가 이중사의 뒷머리를 냅다 후려쳤다.
“이 자식이! 임마. 우리가 너하고 사다리 탈 군번이냐?”
“아. 어떻습니까? 사다리 타는 데도 군번이 있습니까? 그냥 재미로 한번 하자는 거지요.”
“그럼 내가 심부름 걸리면 부하인 널 놔두고 내가 심부름 가란 말이냐?”
“에이……..좋습니다. 심부름은 무조건 제가 가겠습니다. 그러면 다른 분들끼리 돈 내는 사다리 타십시오.”
“진즉 그럴 것이지. 좋다. 하자.”
대원들이 모두 한 책상에 모여 사다리 게임을 시작할 때 전화가 울렸다. 박상원 중위는 그들을 보며 싱긋 웃고 수화기를 들었다.
“네. UDT/SEAL 제 3팀 박상원 중윕니다………..네? 누구…….?………..!!………..지금 부대에 계시지 않습니다. 네. 아닙니다. 네. 그럼 언제……..?……….내일 몇 십니까? 제가……….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오후 3시정도로 알고 있겠습니다.”
박상원 중위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자신을 의문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대원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입가에 미소를 짓고 그들을 향해 장난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제군들. 정지혁 소령님께서 24주 지옥훈련을 중도에 탈락하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네에?!”
대원들의 입에서 의문 섞인 말도 안 된다는 탄성이 돌아오자 박상원 중위의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해군의 인간병기 정지혁 소령이 지옥주를 이겨내지 못하고 중도 탈락이라는 불명예를 얻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이미 지옥주를 4주만을 남겨둔 채…….
“내일이면 제군들은 UDT/SEAL 최정예팀인 제 3팀의 대장 정지혁 소령님께서 지옥주를 중도 탈락해 여기 우리 부대로 돌아와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못 믿겠으면 내기를 해도 좋다. 하하하하하”
박상원 중위는 자신이 전하게 될 이 소식을 들으면 정지혁 소령이 지옥주를 중도 포기하고 돌아올 것이라는 것에 자신의 전 재산을 걸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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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이 마지막 편이 될 것 같습니다.
작가공지방에 올리겠지만 약 이틀 후에 마지막편을 올리겠습니다. 이번에는 에필도 좀 길게 쓰려고 했는데 수정건이 너무 밀려있어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네요……죄송……..
책 출간작업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네요. 저같이 직장생활하는 직딩주부에게는 항상 모자른 것이 시간인데 를 연재때보다 약 2배정도로 분량을 늘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모자른 시간을 쪼개서 글을 쓰는 이 사람의 사정을 조금 너그러이 봐주셨으면 합니다. 다음에 새로운 글을 연재할 때는 훨씬 여유롭게 다른 수정건 없이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성실연재를 하지못해 다시한번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