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eror of Steel RAW novel - Chapter (200)
강철대제 에필로그(200/201)
에필로그
드워프 장인의 솜씨임이 분명한 고풍스런 건물들이 늘어선 궁전.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정원을 오가는 화려한 갑주의 기사들이 있었다. 그들의 흉갑 상단에는 빛의 검을 든 천사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황태자 전하! 어디 계십니까!”
황궁 안에 근위기사들의 외침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아직도 찾지 못했나?”
“예, 이미 황궁 밖으로 빠져나가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우물거리며 보고하는 부하를 본 황보성의 미간에는 깊은 고랑이 패였다.
“이거야 원! 일국의 황태자라는 분이 가출이라니!”
정확히 10년 전.
바로크 제국이 멸망한 다음 해 심포니아 왕국은 제국을 선포하고, 루크 드 라칸은 황제로 등극했다.
강화 언데드 군단의 기습으로 왕도가 초토화되고 왕실이 박살 난 이레아, 카스티아 두 왕국은 바로크 제국이 멸망하면서 획득한 점령지를 관리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두 나라가 차지하기로 한 땅은 심포니아에서 관리하게 되었고, 멸망한 리비아 왕국의 영토도 볼가 공화국과 분할했다.
이렇게 거대해진 영토로 인해 언제 제국이라 선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지만, 허례허식을 싫어한 루크는 제국 선포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신하들과 의회의 생각은 달랐다.
“평범한 백성의 집도 확장을 할 때는 새로 초석을 박고 기둥과 벽을 세웁니다. 하물며 새로 넓은 영토와 수천만 백성이 편입된 나라가 예전처럼 운영을 해서 되겠습니까?”
“폐하, 옛 바로크의 귀족들이 호시탐탐 독립과 거병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새로운 질서를 정착시키자면 군사력만으론 안 됩니다. 새로운 권위 역시 필요합니다.”
신하들과 의회만 성화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백성들도 언제부터인지 루크가 거동하면 ‘황제 폐하 만세’라고 불러 댔다.
결국 백기를 든 루크는 황위에 올랐다.
처음 왕이 되었을 때처럼, 교황이 찾아와 황제의 대관식을 축복해 주었다.
그런데 그것이 베로니카 3세가 신성 제국의 교황으로 치른 마지막 업무였다.
“내가 즉위했을 때, 이 나라는 혼란에 빠져 있었고, 민생은 도탄에 직면해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불안 요소가 모두 사라지고 괜찮아졌죠. 내가 할 일은 다 끝난 것 같으니, 이제 교황의 자리에서 물러나려고 합니다.”
강력한 개혁 정책을 추진하며 각 종파의 부정부패를 근절해 신성 제국을 안정시켜 놓은 그녀는 퇴위를 선언했다.
그리고 후임으로 루터 대신관을 추천했다.
그레고리 대공을 비롯해 고위 신관들과 귀족들은 물론, 루터 대신관 본인도 이를 반대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제 그만 교황의 자리에서 내려와 한 사람의 여인으로 살아가겠다는 그녀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루크와 카렌이 있었지만, 이 둘은 그녀가 퇴위하는 것에 찬성하고 있었다.
문제는 신성 제국 백성들이었다.
블레스 주민들뿐만 아니라,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성황궁을 둘러싸고 퇴위 의사를 거두어 줄 것을 요구했다.
일부 신관들은 단식 투쟁까지 벌일 정도였다.
“내가 물러난다고 해서 여러분을 영영 버리고 떠나는 건 아닙니다. 신께 맹세코 항상 이 나라와 백성들의 평안을 위해 애쓸 것입니다.”
그 진심 어린 말에 결국 군중들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얼마 후 콘클라베에서도 교황의 퇴위에 동의했고, 루터 대신관이 정식으로 교황이 되었다.
옥좌에서 물러난 레이나는 심포니아 제국으로 왔고, 이번에는 심포니아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며 정식으로 황후가 되었다.
그 이듬해 그녀는 아들을 낳았다.
카를이라고 이름 지어진 그녀의 아들은 황태자가 되었다.
카를 황태자는 건강하고 영특했다.
문제는 카를 황태자의 호기심이 너무 왕성하다는 것이었다.
걸음마를 시작할 때부터 황궁 곳곳을 쏘다니더니, 부황을 따라 잠행을 한번 나가 본 뒤론 매번 황궁 밖을 구경하고 싶다며 떼를 썼다.
“안 돼. 바깥세상을 보기에 넌 아직 너무 어려.”
“우쒸, 할배! 그건 전문적인 용어로 과잉보호라고 하는 거라고요!”
얼마 전에 벨릭에게 이렇게 대들다가 혼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반성을 덜했는지, 기어코 가출을 강행한 모양이다.
“지금 당장 황도 수비대에 알려 황태자 전하께서 가실 만한 곳을 샅샅이 뒤지도록!”
“네, 각하!”
대륙의 혼란이 가라앉자 각국의 치안도 많이 좋아졌다.
인간과 이종족들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로디시아 대륙과 남방 대륙의 무역이 곱절로 증가하면서, 학자들은 중간계가 제2의 중흥기를 맞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어디에나 악인들은 있기 마련.
만에 하나 황태자 전하를 알아본 일부 불측한 무리들이 나쁜 생각을 품을 수도 있었다.
이에 황보성은 근위기사단 외에도 황도 수비대까지 동원하기로 했다.
“백작,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아! 공주님, 오셨습니까.”
카렌이 신관들을 대동하고 나타나자, 황보성은 바로 예를 보였다.
어엿한 10대 후반의 성인이 된 카렌은 신성 제국 백성들에게서 차기 교황으로 기대를 받고 있었다.
최근엔 모후(母后)를 대신해서 자주 신성 제국을 왕래하며 양국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혹시 카를이 또 말썽을 부린 건가요?”
“예, 대체 어디로 가셨는지…….”
황보성의 대답에 고개를 내저은 카렌은 소매를 걷어붙이며 말했다.
“내가 잡아 올 게요. 그러니 황도 수비대에 알릴 필요는 없어요.”
“고, 공주님께서 말입니까?”
“어디로 갔는지 알 만하거든요.”
자신 있게 대답한 카렌은 곧장 텔레포트 마법을 전개했다.
그녀가 이동한 곳은 황도 교외의 들판.
그곳은 황립 카타리나 마탑에서 갓 생산한 기간트를 시험하는 장소였다.
그 들판에서 한 꼬마가 신형 기간트들이 벌이는 대련을 구경하고 있었다.
“어휴, 그렇게 공격하면 어떻게 해! 좀 더 파고들어서 거검을 휘둘러야지!”
자신이 응원하던 붉은 기간트가 푸른 기간트를 상대로 빌빌대자, 꼬마는 펄쩍펄쩍 뛰다 못해 머리를 쥐어뜯었다.
“어휴, 거기서 왜 찌르기를 해! 내가 해도 너보다는 낫겠…….”
“야!”
표독스런 외침에 꼬마, 아니 황태자 카를의 몸이 얼음처럼 굳었다.
“누, 누나!”
“쪼그만 게 겁도 없이! 사고 나면 어쩌려고 이런 데 혼자 온 거야!”
“아야야얏! 아퍼! 아프다고!”
득달같이 달려온 카렌이 카를의 머리를 연방 쥐어박았다.
기간트 아레나와 달리, 이런 들판은 방어 마법진이 갖춰져 있지 않기에 함부로 구경하다가 자칫 큰 사고를 당할 수 있었다.
그런데 허락도 없이 이런 데 얼쩡거리다니!
“너 때문에 황궁이 발칵 뒤집혔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가출을 한 거야!”
“가출한 거 아냐!”
“아니긴 뭐가 아니야.”
밤톨만 한 게 대들자, 카렌은 또다시 쥐어박아 주려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때 누군가 만류하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고개를 돌린 카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빠?”
“오랜만이구나, 카렌. 신성 제국은 어떻더냐?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다들 걱정이라던데?”
카렌은 부친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버럭 쏘아붙였다.
“아빠가 카를을 데리고 나갔던 거예요?”
“신형 기간트를 보고 싶다고 해서 말이다.”
루크의 아들답게 카를은 기간트에 관심이 많았다.
자기 방을 기간트 모형으로 가득 장식해 놓았을 정도였다.
루크도 그런 아들의 관심을 좋은 쪽으로 유도해 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방금 전 신형 기간트의 대련에도 직접 나섰다. 붉은 기간트를 탄 테스트 라이더가 일방적으로 밀렸던 것도 바로 그 때문.
루크의 뒤에는 방금 전까지 타고 있던 푸른색 기간트가 흉갑을 연 채로 서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언반구도 없이 데리고 나가면 어떡해요! 다들 걱정하잖아요!”
“그게 신형 기간트 테스트 시간에 늦을 것 같아 서두르다 보니까 그만…….”
루크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카렌의 싸늘한 눈빛은 변하지 않았다.
“엄마한테 다 말할 테니까 그리 아세요.”
“얘야, 제발…….”
루크가 뭐라고 변명하기도 전에 카렌이 텔레포트로 먼저 돌아가 버렸다.
정말 일러바칠 셈인 듯했다.
“하아, 이거 큰일이군.”
루크에게 지금 레이나는 10년 전에 맞붙었던 마왕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특히 자식 교육에 있어서는 일절 양보가 없었다.
그녀는 과거 카렌에게 했던 것과 달리, 카를을 제법 엄격하게 훈육하고 있었다.
장차 루크를 이어 제국을 통치해야 할 황태자라서가 아니라, 평화로운 시대에 태어난 카를이 꽤 버릇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거 오늘도 한바탕 잔소리를 듣겠는걸.”
“아빠는 대륙을 구한 영웅이라면서 엄마한텐 왜 그리 약해요?”
루크는 피식 웃음을 지으며 투덜거리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 영웅을 만든 사람이 너희 엄마니까.”
그녀가 없었으면 지금의 루크도 없었다.
잠시 과거를 돌이켜 보았던 루크는 아들과 함께 황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세상 사람들이 전설이니 역사니 흥분해서 들먹이는 싸움은 오래전에 끝났다.
이후에 다소 지루하고 시시콜콜한 일들이 지속되었지만, 루크에겐 그 시간이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했다.
오랜 싸움의 끝에 얻은 평화로운 일상이었으므로.
레이나의 잔소리가 조금 시끄럽긴 해도, 이 행복한 시간이 계속 이어지기를 빌었다.
(강철대제 完)
황금사과의 창작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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