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ding Maker RAW novel - Chapter (473)
엔딩메이커-473화(473/473)
엔딩메이커 472화
SS #40 Time to back(6)
“지금부터 이 누나가 하는 말 잘 들어.”
가슴을 통통 두드린 코델리아는 유더에게 라이제강의 봉인을 푼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니까…… 피버 타임이라고?”
“응응, 바로 그거야.”
움직이지 못하는 라이제강을 때려 신나게 레벨 업을 한다.
지금 여기서 레벨 업을 못 하면 던전 북 공략 자체가 불가능해질 테니 상당히 중요한 이벤트라 할 수 있었다.
“뭔가…… 대단하네.”
“어, 맞아. 레벨 업을 몇 개나 할 수 있으니까.”
코델리아가 신난다는 듯 어깨춤을 추며 말하자 유더는 쓴웃음을 지었다.
유더가 굉장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무리 봉인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무려 데몬프린스에게 다짜고짜 선빵을 날린 코델리아였기 때문이다.
‘노폭이 맞긴 하구나.’
이렇게나 야하고 사악하고 음험하면서도 음란한 아가씨였지만, 동시에 난폭하고 짐승 같고 단순한 우리 노폭이.
“야, 너 무슨 생각해. 방금 내 욕했지?”
“아닌데? 칭찬했는데?”
유더가 뻔뻔히 말하자 코델리아는 의심된다는 듯 미간을 좁혔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무튼 여기서 한 가지 더 내가 아는 미래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 방법이 있어.”
“더 나은 미래라고?”
“응, 내가 벨라스틴이랑 같이 벨라스틴의 마법진을 개량했거든.”
코델리아가 다시 가슴을 통통 두드리더니 가슴을 활짝 펴며 으스대기 시작했다.
스스로 말한 것처럼 벨라스틴 본인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애당초 사기라 불렸던 벨라스틴의 마법진을 한 단계 진일보시킨 것은 실로 대단한 업적이었기 때문이다.
‘유더가 아니라 내가 했다는 말씀이지.’
이러나저러나 마법의 신이라고까지 불리는 코델리아였다.
적어도 마법에서만큼은 유더에게 이론으로 지지 않는 그녀였다.
“마법진의 에너지 효율을 크게 증진시켰어. 전에는 여기서 3분밖에 유지 못 했지만 이번에는 무려 5분이나 유지할 수 있을 거야. 이게 뭘 의미하는지 알지?”
피버 타임이 3분에서 5분이 되었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라이제강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경험치 자체는 줄어들 터였지만 애당초 레벨 차이가 엄청난 상대였다.
늘어난 2분이면 레벨을 몇 개나 더 올릴 수 있을 터였다.
“자, 그럼 한번 그려보실까?”
씩 하고 웃어 보인 코델리아는 그대로 치마를 걷어내고는 치마 안쪽은 물론이고 허벅지와 종아리에 단단히 묶어두었던 도구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부끄러움 많은 뉴비 유더는 새빨개진 얼굴로 급히 고개를 돌렸고 말이다.
“귀여워라.”
코델리아가 후흐흥 웃으며 말하자 유더는 못 들은 척, 하지만 입술을 깨물며 열심히 딴청을 하였는데, 코델리아의 귀에는 ‘음란해!’ ‘불결해!’ 같은 중얼거림이 들리는 것 같았다.
‘귀족가 영애 같아.’
그랬기에 다시 으흐흐 웃은 코델리아는 손수 벨라스틴의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예전의 내가 아니라 이거지.’
태양의 여신인 동시에 사랑과 미의 여신이며 마법의 신이기도 한 코델리아가 바로 자신이었으니까.
코델리아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빠른 속도로 슥슥슥 벨라스틴의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랭커의 기본 소양 아니겠어?”
코델리아가 뻐기듯 말하자 유더는 순순히 감탄의 표정을 보였다.
오기 전의 일 때문에 ‘코델리아는 역시 짐승이야!’ 같은 생각을 했었는데, 능숙하게 마법진을 그리는 모습을 보니 새삼 만렙의 위용이 느껴진 탓이었다.
“좋아, 다 그렸다. 그럼 시작해 볼까?”
오기 전에 낭비한- 아니, 무척이나 뜻깊게 사용한 시간 때문에 서둘러야 했으니까.
가볍게 어깨를 돌리며 몸을 푼 코델리아는 유더에게 준비되었냐는 눈빛을 보냈고,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몬프린스 라이제강의 봉인 해제.
송곳니를 드러내며 매력적인 미소를 지은 코델리아는 나이프로 손가락 끝을 살짝 갈라 마법진에 핏방울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직후.
육신이 바뀌었다고는 하나 신의 영역에 도달한 영혼의 핏방울이 마법진을 자극한 그 순간.
“그아아아아아아아아!”
무시무시한 괴성과 함께 데몬프린스 라이제강이 모습을 드러냈다.
* * *
“응응, 오랜만이었어. 잘 가고.”
[이, 잊지 않겠다. 보, 복수할 거다…….]원작보다 구슬픈 멘트를 남기며 라이제강이 사라졌다.
그도 그럴 것이 단순히 굴욕만 당한 것이 아니라, 정말 뼈아픈 타격을 입었기 때문이다.
코델리아 어거스트 체이스.
플레이아데스를 지키는 태양과 마법의 여신.
코델리아의 육신은 나약했고, 축적된 마력의 양도 적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마법의 신이었다.
초월적인 영혼의 힘으로 대기 중의 마나를 응집시켰다.
역시나 초월적인 마나 조정 능력으로 복잡하기 짝이 없는 수식을 완성시켰고, 신의 힘이 어린 마법의 힘으로 라이제강을 난타했다.
그리하여 얻어낸 결과.
코델리아는 문자 그대로 폭렙을 하였다.
코델리아가 걸어준 버프를 두루 걸친 유더 역시도 레벨이 잔뜩 올라 근 20레벨에 가까웠다.
‘좋아, 좋아. 이러면 던전 북도 낙승이지. 낙승.’
역시 퍼펙트 해피엔딩을 뛰어넘는 슈퍼 울트라 해피엔딩은 가능한 것이었다.
코델리아는 주먹을 불끈 쥐며 새삼 결의를 굳힌 뒤 유더를 돌아보았다.
“어때? 누나 믿음직하지?”
의기양양한 만렙의 물음에 뉴비 유더는 결국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라이제강을 난타해 레벨 업도 하고 태양의 목걸이도 갈취한 코델리아의 여정은 그 이후에도 순조로웠다.
해맑게 웃는 뉴비 유더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키스해 주느라- 아니, 귀여워해 주느라 30분 정도를 지체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그리 큰 문제도 아니었다.
달리아와 마이아에게 돌아가고, 크게 한 번 혼난 뒤 집에 돌아간다.
[잘 가, 내 꿈 꾸고.]마차에서 내리는 유더에게 메시지 마법을 날리자 유더는 뺨을 조금 붉히더니 눈빛으로 인사를 남겼다.
레벨이 오르긴 했지만 아직 뉴비라 메시지 마법을 익히지 못한 탓이었다.
‘으유, 우리 애기 유더 너무 귀여워.’
코델리아가 애정이 뚝뚝 넘치는 눈으로 멀어지는 유더를 바라보자 달리아는 미간을 좁혔다.
어쩐지 모르게 귀엽고 착하고 예쁜 아가씨가 변ㅌ- 아니, 좀 과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이가 언제 저렇게 좋아지신 거지?’
역시 두 분이서만 자리를 비웠을 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무슨 일.
무슨 일.
평생을 기사로 살아오느라 연애 경험이 미천한 달리아는 순간 얼굴을 붉혔지만 억지로 이를 꽉 물어 표정을 정돈했다.
지금은 코델리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캐묻는 친한 언니가 아니라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을 혼내는 엄격한 호위기사가 필요한 순간이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효과가 있었는지 유더를 보며 침을 질질 흘리던 코델리아는 흡 하고 숨을 삼키더니 얼른 반성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흘렀다.
저택에 도착한 뒤 갑작스러운 돌발 행동에 대해 꾸지람을 듣고, 외출 금지 명령을 받은 뒤에 방에 틀어박힌다.
이미 한번 겪어봤던 일이기에 혼나는 와중에도 마음이 평화로웠다.
‘외출 금지가 풀리면 던전 북 깨러 가야지.’
침대에 바로 누운 코델리아는 잠시 눈을 감고 옛 기억을 더듬었다.
외출 금지가 끝나자마자 도착했던 유더의 연서.
처음 받았을 때는 시작부터 사모하네 어쩌네 하는 말이 나와 참으로 끔찍했지만, 나중에는 수십- 아니, 수백 번이나 반복해서 읽은 사랑의 편지.
‘한글로 약속 잡은 건 정말 유더다웠어.’
플레이아데스에서 한글을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코델리아 자신과 유더뿐이었으니까.
사실 환생하였고, 전생을 기억한다는 비밀처럼 오로지 둘만이 공유할 수 있는 비밀의 문자.
얼굴 가득 미소가 지어졌다.
몸서리를 치며 세로 드립이라도 있지 않을까 열심히 문장을 반복해서 읽었던 스스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진 유더와의 데이트.
아니, 첫 번째 던전 탐사.
‘진짜 깜짝 놀랐는데.’
유더와의 파티 플레이는 사실상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
‘괜히 1등이 아니었어.’
공략을 통으로 머리에 넣고 있는 것도 대단했지만 플레이 하나하나에 배려가 있다고 해야 할까?
예전에야 인정하기 싫었지만 지금은 마음껏 인정할 수 있었다.
‘오빠 같아. 믿음직해. 어른이야.’
유더에게는 의지할 수 있었다.
기댈 수 있었다.
단순히 성벽처럼 단단한 근육 때문이 아니었다.
어른스러운 유더.
언제나 이쪽을 배려해 주는 유더.
‘물론 그 와중에 애 같은 게 또 우리 유더의 매력이지만.’
보스 강화 기믹을 알려주지 않은 것도 그렇고, 막타 많이 쳤다고 자랑하는 것도 그렇고.
‘생각해 보니 어른 아닌 거 같기도?’
혼자 하는 생각이었지만 코델리아는 까르르 웃었다.
유더였으니까.
유더 생각을 하는 거였으니까.
‘그에 반해 뉴비 유더는…….’
다시 새로운 종류의 미소가 그려졌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유더.
오빠가 아니라 동생 같은 유더.
코델리아는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입술을 더듬어보았다.
부드러운 분홍빛 입술에 닿았던 유더의 입술, 유더의 혀, 유더의 타액.
유더였다.
분명 유더였다.
그 감촉도, 그 느낌도, 그 온기도.
하지만.
코델리아는 불현듯 깨달았다.
아니, 느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터였다.
그리고 그 느낌은 머릿속에서 하나의 문장으로 구체화되었다.
‘유더가 아니야.’
유더였다.
분명 유더였다.
하지만 코델리아 자신이 아는, 코델리아 자신이 사랑한, 코델리아 자신과 온갖 모험을 함께하며 세계를 구한-
그 유더는, 아니었다.
코델리아는 유더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강진호와 홍유희가 이제 유더 자신과 코델리아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 이야기하며 했던 말.
‘기억이 달라. 쌓아온 시간과 경험 역시 달라. 시작점은 같았다 할지라도 우린 이미 다른 사람이야.’
강진호와 과거를 공유하는 유더였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강진호와 유더가 같은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유더가 말한 대로였으니까.
23개월째 1등을 결정지은 그 날 이후 유더와 강진호 사이에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정도의 차이가 생겨나고 말았으니까.
단순히 육체적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강진호에게는 코델리아 자신과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았다.
수많은 전생을 거듭하면서도 오직 완벽한 해피엔딩만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나아간 유더의 의지 역시 깃들어 있지 않았다.
야생의 땅에서 벌벌 떨며 서로를 끌어안고 잠들었던 추억도.
검의 연회에서 처음으로 나누었던 연인 같은 스킨십도.
말레키스라는 거대한 재앙을 눈앞에 둔 채 사랑을 고백한 뒤 나누었던 달콤한 첫 키스의 기억도.
모두 유더와의 것이었다.
강진호와의 것이 아니었다.
코델리아는 에로스의 신전을 떠올렸다.
그곳에서 나누었던 유더와의 첫날밤을 되새겨 보았다.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백 년이 지나고 천 년이 지나도- 아니, 만 년이 지난다 할지라도 결코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었다.
유더.
우리 집 사기꾼.
심술쟁이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다정한 나의 왕자님.
뉴비 유더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진호와 같았다.
유더이지만 유더가 아니었다.
코델리아 자신의 유더가 아니었다.
미소로 가득했던 얼굴에 두려움이 번졌다.
순식간에 붉게 달아오른 눈망울엔 눈물이 가득했다.
자각했기 때문이다.
코델리아 자신의 유더가 사라졌다는 것을.
뉴비 유더와 다시 한번 완벽한 해피엔딩을 위해 노력하면 할수록 자신의 유더가 사라진다는 것을.
유더만이 아니었다.
달리아도 같았다.
코델리아 자신의 달리아가 아니었다.
수호의 천사가 된 달리아.
유더처럼 속이 까만 마이아 때문에 코델리아 자신과 동병상련을 나누는 달리아.
하나하나 얼굴들이 떠올랐다.
아버지.
언니.
오빠.
그리고-
그리고-
“유리아.”
우리 아이.
우리 딸.
유더와 자신 사이에 태어난 사랑의 결실.
유리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코델리아 자신이 뉴비 유더와 새로운 사랑을 쌓고 아이를 낳으면, 유리아가 태어나는 것일까?
하지만 이번에도 딸이 태어날까?
아들이 태어난다면.
그래서 유리아가 아니라 유리나 코더 같은 이름이 붙는다면.
아니, 설사 딸이라 해도 문제였다.
코델리아 자신의 유리아가 아니었다.
유더를 닮아 도도하면서도 귀여운, 너무나 사랑스러운-
숨을 쉬기 어려웠다.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너무나 무섭고 두려워 아이처럼 울 수밖에 없었다.
유더.
유리아.
보고 싶었다.
만나고 싶었다.
‘돌아가고 싶어.’
유더에게로.
유리아에게로.
“유더…… 유더…….”
코델리아는 울면서 자신의 사랑을 속삭였다.
언제 어디서나 믿을 수 있는, 둘이 함께라면 어떤 고난과 역경이라 해도 극복할 수 있는 자신의 반려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순간.
절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어둠 너머에서.
-코델리아!
유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엔딩메이커 473화
SS #40 Time to back(7)
코델리아는 눈을 번쩍 떴다.
흘러넘친 눈물을 닦아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목소리.
유더의 목소리.
코델리아 자신과 온갖 모험을 함께한, 둘이서 함께 완벽한 해피엔딩을 이끌어낸 진정한 파트너의 부름.
어디에서 들려온 것일까.
어디에서 부르고 있는 것일까.
-코델리아!
다시 들려왔다.
코델리아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다.
눈물로 흐릿해진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익숙한 천장이 아니었다.
검은 늑대.
고고하고 아름다운, 하지만 외로움을 많이 타는 녹색 눈의 짐승.
손을 뻗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부름에 응답했다.
“유더!”
태양과 달이 서로를 보았고, 연결되었다.
이어진 하나의 선은- 아니, 언제 어디서도 끊어지지 않기에, 지금 이 순간에도 이어져 있던 그 선으로부터 눈부신 빛이 일어나 시야 전체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였다.
여전히 눈물로 흐릿한 시야에 다시금 익숙한 천장이 들어왔다.
체이스 백작가의 방이 아닌, 유델리아 신성국의 방.
코델리아 자신의 취향을 잔뜩 때려박아 만든, 가끔은 너무 과했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달의 방.
코델리아는 거칠어진 숨을 토하며 직감했다.
돌아왔다.
집으로.
코델리아 자신의 유더와 유리아가 있는 곳으로.
“유더!”
코델리아가 상체를 벌떡 일으키며 소리쳤다.
그리고 손길이 느껴졌다.
허리를 감싸는 단단한 팔.
단련이라고는 조금도 되지 않은, 그래서 무척이나 가늘고 연약했던 뉴비 유더의 팔이 아닌 성벽처럼 단단하고 믿음직한 만렙 유더의 팔.
절로 안심이 되었다.
악몽에서 깨어난 것처럼 안도의 숨을 토하며 고개를 들 수 있었다.
“코델리아.”
유더의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렸다.
진짜 유더는, 만렙 유더는 키가 정말 컸으니까.
코델리아 자신보다 30㎝ 이상이나 커서 덩치 차이가 어마어마했으니까.
그래서 기댈 수 있었다.
그 커다란 품에 폭 하고 안기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몸을 옆으로 기울이자 단단한 가슴에 머리가 닿았다.
새삼 눈에 들어온 복근에 반사적으로 손을 가져다 대고는 엉망진창인 미소를 지었다.
손끝의 감각이 단단했다.
말랑말랑하지 않았다.
왕도에 처음 같이 갔을 때 그렇게 만지고 싶었던 복근.
코델리아 자신이 언제 만져올지 몰라서 유더가 열심히 단련한 복근.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정말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코델리아?”
머리 위에서 다시 물음이 들려왔다.
그래서 코델리아는 고개를 뒤로 젖히듯 들어 유더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선이 뚜렷한 남자의 얼굴이었다.
병약한 미소년이었던 뉴비 유더의 얼굴도 좋았지만, 역시 제일 좋은 건 지금의 얼굴이었다.
조금 중성적인 느낌이 들지만, 결국 남자다운 면모가 더 강한 어른의 얼굴.
코델리아는 손을 뻗어 유더의 뺨과 턱을 만져보았다.
부드러우면서도 강건한 그 느낌에 새삼 다시 안도의 숨을 토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유더가 기다려 주고 있다는 것을.
코델리아 자신이 진정할 때까지, 놀란 마음을 달래고 평온을 되찾을 때까지.
“유더는 역시 오빠야.”
작게 중얼거리자 유더가 약간은 장난스럽게 미간을 좁혔다.
그 잘생긴 얼굴에 더욱더 마음이 놓인 코델리아는 잠시 눈을 감고 유더의 품을 즐겨보았다.
단단한 유더.
유더의 냄새.
유더의 품.
“진정됐어?”
“진정됐어.”
처음에는 분명 앉아 있었는데 대답할 때는 누워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유더의 품 안이었다.
팔베개를 한 채 코델리아는 감았던 눈을 떴다.
어느새 그친 눈물을 방증하듯 눈앞의 시야가 맑고 깨끗했다.
“즐거우면서도 무서운 경험을 했어.”
코델리아는 조곤조곤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눈을 뜨니 과거였던 일.
미래 지식으로 뉴비 유더를 마구 놀라게 해준 일.
순수하고 풋풋한 뉴비 유더에게 어른의 키스를 알려준 일.
라이제강을 다시 한번 레벨 업용 샌드백으로 삼고, 달리아에게 혼나고, 침대에 누워 다음에 할 일을 생각하다가 진짜 유더와 유리아를 만나고 싶어 엉엉 울었던 일.
“어떻게 된 걸까. 꿈…… 이었던 걸까?”
코델리아의 목소리에는 의문이 섞여 있었다.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꿈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꿈이라기에는 너무나 실감 나는 기억들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코델리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원인은 둘이서 같이 천천히 찾아보자.”
“응…… 둘이서 같이.”
코델리아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둘이서 같이’라는 말이 가슴을 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델리아.”
“응, 유더야.”
“뉴비 유더에게 어른의 키스를 알려줬다고?”
“응응, 정말로 재미있었어. 진짜 완전 순진한데 체력도 없어서 엄청 허덕였다니까? 라이프는 이미 제로인데, 키스는 하고 싶고, 그 이상도 하고 싶어서 어쩔 줄 몰라 하고…… 흐흐흣.”
새삼 다시 뉴비 유더를 떠올리니 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작고 여린 유더.
빨개진 얼굴로 생전 처음 받아들인 열망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래서 저도 모르게 조르는 것 같은 시선을 보내던, 자꾸 괴롭히고 싶어지던 병약 미소년.
“배도 단련이 하나도 안 돼서 완전 말랑배였는데, 그것도 나름 좋았…… 잠깐, 유더야?”
속이 까맣다기보다는 그냥 변태 같은 웃음을 흘리며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던 코델리아는 순간 흠칫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유더의 표정이- 정확히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감정 하나에 매몰되어 있는 초록색 눈동자.
예전부터 참 많이도 본 터라 딱히 눈빛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분명히 알 수 있는 유더의 현재 상태.
“저기요, 유더 너였거든요?”
질투심 가득한 유더의 눈빛에 코델리아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지만 유더는 여전히 질투심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내가 아니라고 너도 말했잖아.”
진지함 그 자체인 목소리였다.
그래서 코델리아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하며 말했다.
“아니, 그…… 아! 꿈일 수도 있잖아. 그냥 꿈. 응응. 뉴비 유더는 꿈속의 인물인걸.”
“아직 정확한 건 아니니까. 그리고 설사 꿈이라 해도 문제야.”
유더의 목소리는 이번에도 진지했다.
그리고 코델리아는 어느새 자신 위를 뒤덮은 유더의 그림자를 보며 깨달았다.
만렙 유더는 역시 뉴비 유더와 다르다는 것을.
어느새 갇혀 버렸다.
코델리아 자신은 바른 자세로 누워 있었고, 유더는 그런 코델리아 자신 위를 온전히 점하고 있었다.
팔등과 무릎으로 침대 위를 짚은 채 엎드린 자세.
마치 무력화시킨 사냥감을 내려다보는 서늘한 눈빛에 코델리아는 뉴비 유더가 그러했던 것처럼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크고 단단하고 흉측한 것이 코델리아 자신의 배를 위에서 아래로 지긋이 누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코델리아가 아주 잘 아는 물건이었다.
불에 달군 쇳덩이처럼 뜨겁고 단단한데 코델리아 자신의 팔뚝을 방불케 할 정도로 흉악하기까지 한.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킨 코델리아는 뉴비 유더가 그랬던 것처럼 작은 동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움츠리기.
커다란 눈망울 가득 두려움과 숨길 수 없는 기대와 열망을 드러내기.
어느새 입술이 맞닿았다.
뉴비 유더는 건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한 그곳을 단단하고 억센 손길이 부드럽게 움켜쥐었다.
숨을 쉴 수 없었다.
거침없이 밀려드는 유더의 혀가 호흡조차 앗아갔기 때문이다.
만렙 유더.
속이 까만 우리 집 짐승.
잠시 입술이 떨어진 사이 코델리아의 파란 눈동자에 떠오른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유더가 멋진 미소를 지었다.
스칼렛이 보았다면 그냥 음흉하기 짝이 없는 늑대 같은 미소라 했겠지만 아무튼 코델리아에게는 멋진 미소였다.
“각오해.”
바람을 피웠으니까.
아니었다.
바람 같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코델리아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정말로 짐승 같은 유더의 눈빛과 금방이라도 찌르고 들어올 것 같은 흉악한 물건의 뜨거움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켰다.
등줄기를 따라 오싹한 감각이 흐름과 동시에 심장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뛰기 시작했다.
유더가 다시 입술을 맞춰왔다.
코델리아는 뉴비 유더처럼 맥없이 당하지 않기 위해 반격에 나섰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하룻밤 사이에 열 번도 넘게 실신한 코델리아는 시체처럼 축 늘어진 채 가느다란 숨을 토하며 생각했다.
‘역시 달라.’
만렙 유더와 뉴비 유더는.
그리고 역시 이쪽이 좋아.
귀엽고 사랑스러운 뉴비 유더보다는 정말로 짐승 같고 속도 까만 우리 집 사기꾼 쪽이.
쌓아온 시간이 있었으니까.
서로를 서로의 색으로 물들였으니까.
코델리아 자신은 유더에게 길들여졌고, 유더는 코델리아 자신에게 길들여졌다.
그렇기에 각자를 생각할 수 없었다.
둘이서 하나였으니까.
함께하지 않을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환상의 커플이었으니까.
코델리아는 힘이 하나도 없는 목을 애써 돌려 옆을 보았다.
누가 짐승 아니랄까 봐 여전히 기운 넘치는 유더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유리아 보고 싶어.”
사실 눈을 뜨자마자 보고 싶었는데 너 때문에 하루가 통으로 늦어졌어.
코델리아의 원망 섞인 눈빛에 유더는 미안하다는 듯 작게 웃더니 그대로 코델리아의 이마에 입술을 맞추었다.
“미안, 그리고 다시 미안.”
“왜?”
“유리아 지금 집에 없거든.”
“왜 없는데?”
“사랑의 도주를 했으니까.”
유더의 대답에 코델리아는 눈을 깜박이더니 저도 모르게 말했다.
“또?”
“어, 또.”
“아니, 걔는 약혼까지 했고 온 집안에서 밀어주는데 대체 왜 사랑의 도주를 하는 거야?”
“음…… 글쎄.”
유더는 잠시 코델리아의 양심 없는 말에 태클을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내 마음을 거두었다.
코델리아의 양심에 털이 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걔네 어디 갔는데?”
사랑의 도주고 나발이고 유더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코델리아의 물음에 유더는 코델리아의 가슴께를 어루만지며 답했다.
“한국 갔어. 유진이네 집. 지금은 아마 캠핑하고 있을걸?”
“캠핑하러 멀리도 갔네.”
잠시 투덜거린 코델리아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던 터라 입술만 삐쭉이며 말을 이었다.
“유더야, 우리 오늘 일정 많이 있지?”
“많이 있지.”
성왕국을 통치하는 교황과 여신의 화신이었으니까.
매일매일 스케줄이 가득한 것이 너무나 당연한 입장이었으니까.
하지만 코델리아는 다시 입술을 삐쭉였고, 유더는 그 입술을 한 번 깨물어준 뒤 코델리아가 원하는 눈빛을 보내주었다.
* * *
과한 취향의 집합체인 달의 방.
침대 위에 올라가 있던 서신을 돌려 읽은 마이아와 달리아는 딱히 놀라지도, 화나지도 않은 얼굴로 담담한 대화를 나누었다.
“음, 오랜만에 도주하셨네.”
“근 1년 만이지?”
“장족의 발전이야.”
“그러게.”
쿡쿡 웃은 마이아는 오랜만에 도주 수첩을 펼쳤다.
100장도 넘는 수첩이었지만 어느새 뒤에 몇 장 빼고는 내용이 가득 차 있었다.
“그거 몇 번째 수첩이야?”
“몇 번째일 것 같아?”
질문에 질문으로 답한 마이아는 수첩의 빈 종이 위에 기념비적인 천 번째 사랑의 도주를 기록하였다.
fin
던전 북 안.
뉴비 코델리아는 무척이나 당황한 얼굴로-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빨갛게 물든 얼굴로 어버버 멍한 목소리를 내었다.
열의로 가득 찬 눈앞의 소년 때문이었다.
“오늘은 내가 복수할 거야.”
연습도 엄청 많이 했으니까.
뉴비 코델리아는 대체 뭘 어떻게 연습했냐고 묻는 대신 며칠 전 꾸었던 꿈을 새삼 다시 떠올렸다.
꿈.
미래의 자신이 눈앞의 소년을 마구 농락하며 1등의 우월감을 누리던 꿈.
그런데 꿈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각오해.”
뉴비 유더가 다소 어설픈 기가 섞이긴 했지만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고, 뉴비 코델리아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어디어디에 사는 누구누구들보다 훨씬 더 빠르고 격하게 환장의- 아니, 환상의 커플이 되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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