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11
711화. 전화 설치
647층, 14호.
돌아온 성건우가 소지훈과 나눈 대화를 대략 간추려 들려주었다.
용여홍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앞으로 일은 회사가 처리할 테니 우린 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장목화가 웃었다.
“그래, 너희는 상견례랑 혼인 신고만 걱정하면 되겠어.”
일요일까지는 이제 단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네.”
용여홍은 순간 긴장감이 밀려들었다.
이를 보고 백새벽이 그의 손을 잡았다.
“만약 너희 부모님께서 내가 마음에 안 든다면 그대로 포기할 거야?”
“아니.”
용여홍의 답은 단호했다.
백새벽은 바로 미소를 지었다.
“그럼 긴장할 게 뭐 있어?”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장목화는 얼른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넌 오늘 밤에 506호의 그 트라우마를 탐색할 때 방 주인의 정보를 수집하는 데 집중해. 그래야 우린 방 주인이 그때 무슨 짓을 했는지, 어떤 실수를 저질렀는지 파악하고 그 트라우마를 통과할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거야.”
“네!”
성건우는 언제나 각종 가십에 상당한 흥미를 느끼는 편이었다.
* * *
심령의 복도, 506호 트라우마.
성건우는 다시 한번 제4 연구원 가족 구역에 진입했다.
이후 친절해 보이는 여자에게 다가간 그는 먼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3, 40대로 보이는 여자가 의아한 기색을 보이자, 성건우는 선수를 쳤다.
“다들 안지 오래된 같은 연구원 사람인데, 절 어떻게 생각하세요?”
성건우를 제4 연구원 가족 구역 주민으로 믿게 하려는 사유 유도였다.
지금 이곳에는 506호 주인 한 사람을 뺀 모두가 자리해 있었다.
그러니 성건우의 앞에 자리한 이 여자는 그를 자연스레 이 방의 주인으로 여기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점차 웃음이 피어났다.
그러더니 까치발을 들고 손을 뻗어 성건우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꼬마 아가씨, 그런 묘한 질문은 왜 하는 거니?”
‘방 주인은 여자였구나.’
성건우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동시에 그는 웃으며 답했다.
“너무 고민이 돼서요.”
여자는 웃으며 위로했다.
“무슨 고민? 하여간 넌 너무 우유부단하다니까. 하지만 아가씨는 대부분 다 그렇지, 뭐. 나중에 각성하게 되면 그걸 대가로 지불해도 되겠다.”
성건우가 웃었다.
“제가 각성하게 될 걸 알고 계세요?”
여자는 웃으며 반문했다.
“나도 각성자라는 걸 잊었니?”
쿵쿵…….
성건우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럼 각성자에 대해 잘 알고 계시겠네요?”
“알고 싶은 게 있니?”
성격이 좋아 보이는 여자는 목소리에서 애정이 뚝뚝 묻어났다.
성건우는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사명 영역에 대해 알고 싶어요.”
여자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명 영역에는 호흡과 심장에 주로 영향을 미친다는 특징이 있지. 지금까지 알려진 대가로 말할 것 같으면 사지 마비, 안구 이상,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던 그녀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고질적인 위장병과 정상인보다 높은 체온 등이 있단다.”
“고질적인 위장병⋯⋯. 정상인보다 높은 체온⋯⋯.”
성건우는 그 두 대가를 되뇌었다.
지금 그의 이마, 어깨, 가슴, 복부, 사지의 피부 아래와 옷 안쪽에서 뭔가 꿈틀거렸지만 끝내 밖으로 튀어나오지는 않았다.
다시 그의 앞에 서 있던 여자가 친절하게 물었다.
“왜 그러니? 사명 영역을 고를 생각인 건 아니겠지? 그 영역은 능력은 굉장히 강하지만 주로 신체 건강을 대가로 지불하게 되거든.”
성건우는 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뭐가 생각나서요. 나중에 또 이야기해요!”
홱 돌아선 그는 출구를 상징하는 건물로 향하며 심령의 복도로 돌아갔다.
음험하고 악랄한 성건우가 왼 어깨 위로 머리를 내밀고 진지하게 말했다.
“민수안은 수시로 트림을 했었지. 소지훈은 내내 열이 났고.”
민수안은 C-14 프로젝트팀의 책임자, 소지훈은 반고 바이오 이사회 이사였다. 성건우는 방금 소지훈과 만나 목인걸의 죽음이 생명 제례 교단과 관련된 것 같다고 말했으며, 내부 범인에 주의해 조사해달라는 부탁도 했다.
또한 트림은 보통 소화 불량을 뜻하며, 열이 나면 정상인보다 체온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성건우들은 어떠한 언쟁도 하지 않고 같은 선택을 했다.
* * *
현실로 돌아온 성건우는 눈을 번쩍 뜬 뒤 곧장 침대를 내려왔다.
그러고는 단 몇 걸음 만에 문가로 다가가서 문고리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문고리를 잡아 돌리려는 움직임이 돌연 느릿해지는가 싶더니 성건우는 결국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렇게 몇 초 정도 굳어있던 성건우는 침대 가장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우리는 아무것도 안 했어. 보고는 모든 직원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복수하려고 한다 한들 절대 내가 보고를 한 그날 진행하지는 않을 거야.’
다시 노래를 흥얼거리며 여유롭게 드러누운 성건우는 허정민의 정각 뉴스를 기다렸다.
그러던 그때였다.
누군가 그의 방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벌떡 일어나 앉은 성건우의 얼굴에 흥분한 표정이 걸려 있었다.
방문자가 답했다.
“전화 설치하러 왔습니다. 모르고 계셨어요?”
“아, 참!”
성건우가 오른 주먹으로 왼손바닥을 내리쳤다.
침대에서 펄쩍 뛰어내린 그는 신발을 똑바로 신고 문을 열었다.
문밖에 공구 상자와 전화기를 쥔 직원 한 명이 서 있었다.
“모자를 안 쓰셨네요.”
성건우의 지적에 남자 직원이 멍한 표정을 드러냈다.
“왜 모자를 써야 합니까?”
성건우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걸 보면 그는 이 일을 시작한 지 몇 년 안 된 듯했다. 유전자 개량 효과는 용여홍보다 훨씬 좋아 보였고, 지상으로 나가 햇볕을 쬔 적도 없었을 피부는 마냥 희었다.
이내 성건우가 설명에 나섰다.
“푹 눌러쓰면 얼굴 상반부를 가릴 수 있는 챙 달린 모자 말입니다.”
“제가 그걸 왜 써야 하죠?”
남자 직원은 아무래도 성건우의 정신이 이상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원래 그는 이 층에 살지도 않고, 이 근처에 사는 친척도 없는 터라 성건우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그러자 성건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프로 정신이 부족하시네요. 들어오세요.”
‘왜 모자를 쓰지 않은 게 프로 정신이 부족한 행동인 거지? 난 그냥 전화기나 설치하러 온 것일 뿐인데.’
이성적으로 성건우와의 대화를 중단한 남자 직원이 방으로 들어섰다.
방을 한 번 둘러보던 그가 놀란 듯 물었다.
“여기가 확실한가요?”
‘이렇게 비좁은 방에 누가 전화를 설치해? 공헌 점수가 충분하면 방부터 큰 곳으로 바꾸려 할 거고, 공헌 점수가 부족하다면 전화를 설치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을 거잖아. 몇 달은 모아야 겨우 한 대 마련할 수 있는 건데.’
“확실해요, 확실해.”
성건우가 긍정해도, 남자 직원은 상부에서 준 명단을 꺼내 층수와 방 번호를 재차 확인했다.
남자가 속한 부서는 훈련보장부였다. 이 부서는 새로운 직원 훈련과 인사이동을 담당하면서 그들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곳이자 직원들의 지원을 보장해주는 곳이었다.
몇 번이고 확인해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신한 남자 직원은 그제야 비로소 작업에 들어갔다.
침대 가장자리로 물러난 성건우는 편하게 앉아서 상대를 바라보았다.
검은색 전화기가 다 설치될 때까지 뜻밖의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아쉽다는 듯 상대가 건넨 작업 명단을 받아든 성건우는 서명을 했다.
남자 직원은 뭔가 께름칙했지만 어색한 사이인 상대와 굳이 대화를 나눌 필요는 없었으므로 조용히 성건우의 방을 떠났다.
* * *
뒤이어 남자는 작업 명단에 따라 같은 층 C구역 11호로 향했다.
노크 소리에 문을 벌컥 연 용애홍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구세요?”
“전화 설치하러 왔습니다. 모르고 계셨어요?”
남자 직원은 오늘은 정말 운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랐는데요.”
용애홍은 멍하니 고개를 젓다가 뭔가 떠올랐는지 바로 고개를 틀었다.
“오빠! 오빠가 전화 설치해달라고 했어?”
자신의 방에서 걸어 나온 용여홍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부모님을 바라보며 왼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난 모르는 일인데⋯⋯.”
곧장 돌아선 용애홍은 문 앞에 선 남자 직원을 향해 당당하게 물었다.
“잘못 찾아온 거 아니에요?”
그 순간, 용여홍의 머릿속에 번쩍하고 번개가 내리치듯 뭔가가 떠올랐다.
‘건우가 그랬지? 그동안 탐색했던 새로운 방에서의 경험을 보고한 뒤 그 보상으로 자기 방에 전화를 설치해달라고 할 거라고. 설마⋯⋯.’
문 쪽으로 다가온 용여홍이 남자 직원을 향해 떠보듯 물었다.
“혹시 B구역 196호에도 다녀오셨나요?”
“맞아요, 맞아요.”
남자 직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용여홍은 추측을 확인하려 계속 질문을 이어나갔다.
“이번에 몇 대나 설치할 예정이세요?”
남자 직원은 솔직하게 답했다.
“세 대요. 이따 622층에도 가야 합니다. 근데 그 방에 설치된 전화기는 나중에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답니다. 구체적으로 어디로 옮길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요.”
용여홍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들어오세요.”
뒤이어 용여홍 곁으로 온 고홍자가 기대와 걱정을 드러냈다.
“근데 전화기를 설치해봤자 무슨 소용이니? 걸 데도 없으면서 달마다 공헌 점수를 수십 점 내야 하잖아.”
용여홍이 웃으며 말했다.
“건우가 원 플러스 원으로 마련한 거라 따로 지불할 점수는 없어요. 새벽이랑 결혼해서 나가면 저랑 수시로 통화하고 싶지 않으시겠어요?”
“직접 찾아오면 될 거 아니니?”
고홍자는 이렇게 대꾸하면서도 전화기 설치를 막지는 않았다. 그녀와 용대용의 얼굴에는 이미 숨길 수 없는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전화기는 굉장히 희귀한 물건이었다. 휴대용 컴퓨터처럼 가지고 있기만 해도 이웃들의 부러움을 살 수 있었다.
전화기 설치가 끝나자 남자 직원과 함께 622층으로 향한 용여홍은 백새벽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용여홍은 전화기에 붙은 번호를 보고 자신의 집에 전화를 한 번 걸어보며 그 성능을 시험해보았다.
* * *
다음 날 오전, 647층 14호.
성건우는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용여홍과 백새벽을 향해 투덜거렸다.
“너희 둘은 전화기도 생겼으면서 나한테 한 통을 안 걸어주냐!”
그의 얼굴에는 마치 버림받은 듯한 표정이 걸려 있었다.
“뭐?”
장목화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용여홍은 급히 어제저녁 일을 말해주면서 성건우에게 이렇게 덧붙였다.
“전화를 걸려면 공헌 점수를 별도로 지불해야 하잖아.”
자신이 성건우에게 전화를 걸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려는 것이었다.
성건우는 코웃음을 쳤다.
“매달 나가는 고정비에 무료 통화 120분이 포함된 거 몰라?”
“맞아.”
장목화가 증언까지 해줬다.
“그렇구나.”
용여홍은 기뻐했다.
당장 오늘 밤부터 백새벽에게 전화를 걸 작정이었다.
그의 기쁨이 채 가라앉기도 전, 성건우가 장목화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젯밤 506호 트라우마 안에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어요.”
장목화가 정색하고 물었다.
“어떤 사실?”
성건우의 표정도 사뭇 진지해졌다.
“사명 영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가요.”
백새벽이 입술을 오므렸다.
“뭔데?”
용여홍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