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night Flower RAW novel - Chapter 771
771화. 다른 방향
갈색 머리 종업원은 주문서 위에 놓인 기사 은화를 가리켰다.
“소식에 밝은 사람을 하나 알고 있긴 한데 돈은 좀 들 거예요. 이따 오늘 밤에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겠냐고 연락을 취해 볼까요?”
“당분간은 됐어요. 일단 내일 사냥꾼 길드에 가본 뒤 그분을 찾을지 말지 결정할게요.”
장목화가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제 겨우 방금 일이 놀랄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고 마음을 놓았던 참이었다.
그녀는 자발적으로 뜻밖의 사건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부디 편하게 고성능 배터리를 다 충전하고 식량을 보충한 후에나 조사를 시작하고 싶었다.
“알겠습니다.”
갈색 머리 종업원도 딱히 독촉은 하지 않았다.
이후 그가 주문을 넣으러 가자 성건우는 걱정과 충격에 휩싸인 채 변이종 스테이크를 먹는 손님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곧 호기심 어린 눈으로 조용하게 물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왜 저들이 간첩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진 않고 남쪽에 새로 귀속된 어느 목장 사람이란 말을 덥석 믿는 걸까?”
백새벽이 답했다.
“진정한 간첩이라면 변이종 소고기와 같은 상식조차 모른 채 화이트 기사단의 세력 범위에 잠입할 리 없잖아?”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맞아, 그건 기본이라고.”
백새벽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저들도 우리와 같은 외부인인 건 맞아. 게스트 보루에 온 건 다른 이유 때문이겠지만.”
“어떻게 알아?”
용여홍이 협조적으로 말을 받았다.
백새벽은 침착하게 답했다.
“방금 예전에 들었던 얘기가 떠올랐어. 화이트 기사단이 통치하는 구역은 구세계 파괴 당시 상당히 심각하게 오염된 곳이라 모든 생물에 좋지 않은 변이가 일어났대.
소수의 몇몇 지역과 일부 강만 비교적 정상적이고, 거기에서만 현재 깨끗한 밀가루와 고기를 생산하는 거점이 생겨났다는 거야. 겐도 전에 그랬잖아. 이 구역은 구세계 당시에도 경작과 방목을 하긴 좋지 않은 곳이었다고.
초기에 화이트 기사단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물자의 무역을 통해 곡식과 식량을 취하고, 어쩔 수 없이 변이 생물을 사냥해 생존을 유지해야 했어. 오염과 변이에 대항할 필요가 없었다면 이곳 사람들도 유전자 개량 약제를 쉬이 받아들이지는 않았을 거야.”
애쉬랜드의 사람들 대부분에게 유전자 개량은 자연을 거스르는, 훗날 큰 대가를 치르게 될 일로 여겨졌다.
그 말을 듣고 장목화는 아까 그 종업원이 무기와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특산품을 이야기하는 듯한 말투로 술을 설명했던 이유를 단박에 파악했다.
“식량 생산이 부족한 이곳에서는 수입에 대부분을 의지하고 있어서 금주령까지 내린 건가?”
백새벽이 입술을 오므렸다.
“그건 아마 검소를 숭상하는 화이트 기사단 기조 때문이기도 할 거예요.”
구조팀이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게스트 보루는 빙원에 인접한 한랭한 곳이지만 연료가 부족하지는 않아서 굽거나 끓인 음식이 위주였다. 비트의 뿌리를 광범위하게 활용하는 것도 이곳의 또 다른 특색이었다.
뜻밖의 사건이 알아서 찾아올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는 데다 통조림과 에너지바, 압축 비스킷을 물리도록 먹어온 구조팀은 식사 속도가 거의 전광석화였다. 최대한 빨리 배만 채우고 여관으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금세 배를 불린 뒤 테이블에서 일어난 그들은 바로 식당 입구로 향했다.
“돈이 얼마 없는 것 같은데⋯⋯.”
장목화가 주머니를 뒤적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구조팀도 원체 가진 물자가 넉넉하지 않았던 지라 스미스가 이끄는 무근자 상인단에게 얻은 화폐가 얼마 없었다. 지프에 실린 물자들 역시 거래용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갑자기 성건우는 흥분한 눈빛을 보였다.
“내일은 사냥꾼 길드에 가서 임무를 받아볼까요?”
이야기하는 사이 그들은 변이종 스테이크에 놀란 테이블을 스쳐 지났다.
그때, 예리한 백새벽은 순간 그 테이블 손님들에게서 한 단어를 포착했다.
보리였다.
보리?
백새벽은 자세히 귀를 기울이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았다.
이는 팀장의 당부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만큼 뜻밖의 사건이 초래될까 두려웠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이 근처를 지나치는 구조팀을 보고 잠시 입을 다문 채 대화를 중단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 * *
식당에서 나온 백새벽은 장목화를 보며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팀장님, 아까 그 테이블에서 보리 관련한 얘기를 하는 것 같던데요.”
“같은 불자였군요. 나무아뇩다라삼먁삼보리.”
제도 선사 성건우는 매우 기뻐하며 합장을 했다.
장목화가 웃었다.
“보리에 대해 말한다고 꼭 불가 사람이라 볼 수는 없지. 우리랑 같은 역사 연구가일 수도 있잖아.”
구조팀 역시 본질은 진상을 밝히기 위해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녀는 또 성건우에게 말할 틈도 주지 않으려고 전방을 가리켰다.
“됐고, 일단 여관으로 돌아가서 충전이나 하자.”
인생에는 수많은 갈림길이 놓여 있었다. 장목화는 자신이 실제 길에서 방향을 잃을지언정 운명의 길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용여홍이나 성건우의 운수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배후에 존재하는 달지기들 때문이었다. 장목화로서는 어떤 일이든 의심의 눈초리로 살필 수밖에 없었다.
“알겠어요.”
성건우는 퍽 실망한 눈치였다.
배를 든든하게 채운 네 사람은 나쁜 공기와 길 양쪽에 밝혀진 가로등 불빛 속에 불과 철 여관으로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고작 수십 미터 거리였지만 용여홍은 딛는 걸음마다 마음이 불안했다.
* * *
다행히 구조팀은 아무 일 없이 순조롭게 여관에 도착했다.
용여홍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성건우는 아쉽다는 듯 그를 힐끔 보더니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언제든 그와 말싸움을 할 준비가 돼 있는 용여홍은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대체 그게 무슨 뜻이냐고 따지고 싶었다.
그때 장목화는 금발과 파란 눈을 가진, 잘생긴 프런트 직원이 짐을 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캔버스 배낭을 쥔 그는 서랍을 열더니 연합202 권총 한 자루와 총알 두 박스, 그리고 수류탄도 여러 개 꺼내 가방에 넣었다.
“퇴근하는 거야?”
성건우가 열정적으로 물었다.
프런트 직원은 찬란하게 웃으며 답했다.
“응. 곧 동료랑 교대를 할 시간이야. 퇴근한 뒤에는 사냥꾼 길드로 가서 적합한 임무가 있는지 보려고.”
이야기하는 사이 배낭을 멘 그가 쌍발 엽총 한 자루를 집어 들었다.
용여홍이 보기에 완전 무장을 갖춘 그의 모습은 여관의 프런트가 아니라 지옥에 더 잘 어울렸다.
‘이게 바로 화이트 기사단인가?’
이내 문가를 확인한 프런트 직원은 교대할 직원이 보이지 않자 짜증스럽다는 듯 원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주위를 한번 둘러보던 장목화는 그의 앞에 펼쳐진 얇은 책자를 발견했다. 그림과 글자가 두루 포함된 책자 내용은 명단처럼 한 줄씩 나뉘어 있었다.
“이건 뭐야?”
성건우는 호기심 방면에서 절대 장목화를 실망하게 한 적이 없었다.
프런트 직원은 고개를 숙여 책자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보루에서 가져온 유전자 개량 약제 도감. 돈을 거의 다 모았거든. 어느 방면을 강화할지 미리 살펴보려고.”
그쪽으로 다가간 성건우가 허물없이 물었다.
“오오, 어떤 게 있어? 우리도 좀 봐도 돼?”
프런트 직원은 개의치 않았다.
“물론이지. 원한다면 보루로 가서 가져올 수도 있어. 그들에게 이건 돈을 버는 수단이니까. 하하, 너희한테 이곳에서 보유한 유전자 개량 약제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그가 설명하는 와중 성건우는 벌써 책자를 집어 들었고 세 사람도 바로 다가와 함께 책자의 내용을 살폈다.
내용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몰랐었지만 용여홍은 책자를 보자마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화이트 기사단에서 무려 100가지에 달하는 품종의 유전자 개량 약제를 보유하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오랜 시간, 반고 바이오에서 개발해온 약제는 총 세 타입이었다.
가장 오래되고 효과도 좋지 못한 1형, 실험적인 2형, 효과가 출중하고 거의 부작용이 없는 3형.
반고 바이오 내부에서 유전자 개량이 광범위하게 보급된 것은 3형을 개발하고 난 후의 일이었다.
때문에 반고 바이오 내부 직원들은 유전자 개량 약제를 굳이 고르지 않았다. 암묵적으로 다들 3형을 선택하는 편이었다.
장목화가 아는 바에 따르면 3형의 개발 이후, 회사에서는 유전자 개량의 효과가 좋지 못한 직원들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원인을 찾고 그것에 맞춘 특수형 약제를 개발하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래 봤자 그 약도 10여 종 정도일 것이었다. 어쩌면 겨우 두세 종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프런트 직원의 존재를 의식한 용여홍은 백새벽에게 자신의 충격을 전하는 대신 책자의 설명을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성건우는 3장을 넘기고 대략적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반고 바이오의 유전자 개량 원액과 상응하는 약물, 약제는 한 사람을 전면적으로 강화할 수 있었다. 키, 두뇌, 외모에서부터 면역력과 환경 적응력까지 그 모든 것을 포함했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개인 체질에 따라 달라졌다.
반면 화이트 기사단의 유전자 개량 약제는 항목을 하나하나 성장시켰다.
예컨대 X계열은 인간의 면역력을 강화하는 약이었다. 기본형이자 성숙형으로, 가장 저렴한 X-3형은 복용자가 오염에 잘 저항할 수 있게 했고, 그 이후의 시리즈는 더욱 좋은 효과를 자랑했다.
그런가 하면 A계열은 외모를 최적화하는 약으로, 이목구비와 키에 영향을 미쳤고, B계열은 반응 속도에 영향을 미쳤다.
정리하자면 화이트 기사단의 여러 유전자 개량 약제를 다 더해야만 한 사람을 전면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각 항목의 효과를 비교하자면 반고 바이오의 유전자 개량은 화이트 기사단만 못했다.
장목화는 진즉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화이트 기사단이 새로운 길을 개척해 각 항목의 최적화에서 모종의 극치에 이르렀다면 반고 바이오는 평형과 전체에 더 무게를 둔 것이라 이해하고 있었다.
‘특정 항목만 강화해서는 신체에 부담이 갈 때가 더 많겠지. 화이트 기사단에서 50살 이상 노인들이 잘 보이지 않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건지도.’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성건우가 프런트 직원에게 물었다.
“이번에 어떤 약제를 살 생각이야?”
프런트 직원이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드러내었다.
“C계열과 K계열 중에 고르려고.”
C계열은 균형 능력 및 협조 능력을, K계열은 기억력과 학습 능력을 강화하는 약이었다.
성건우가 무슨 대꾸를 하기 전, 프런트 직원이 다시 말을 이었다.
“알고 있겠지만 기본적인 X계열을 제외하면 한 사람에게 평생 주어지는 유전자 개량 기회는 세 번뿐이잖아. 나는 이미 E계열과 A계열 약을 한 번씩 먹었고 이제 마지막 한 번의 기회만 남았어. 고민이 될 수밖에 없지.”
E계열은 근육과 관련한 능력을 강화했다.
성건우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기회는 세 번뿐이라는 걸 알면서 왜 A계열을 고른 거야?”
그가 보기에 얼굴의 미추라는 건 그 어느 것보다 중요도가 떨어졌다.
프런트 직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키를 늘리려고. 키만 커도 적당히 무게를 늘리고 단련만 하면 꽤 훌륭한 전투 능력을 갖출 수 있잖아.”
장목화와 비슷하게 키가 거의 180센티미터에 달하는 직원은 얼굴도 꽤 잘생긴 편이었지만 특별히 또 출중한 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용여홍은 이를 통해 그가 구입한 유전자 개량 약제가 효과가 그리 좋지는 않은, 비교적 저렴한 모델이었으리라 판단했다.
게다가 프런트 직원이 태중이나 갓난아기일 때가 아니라 나중에서야 약제를 마신 것도 그 효과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 듯했다.
성건우는 탄성을 내뱉은 뒤 제안했다.
“어느 때든 가장 중요한 건 건강한 정신이지.”
“잘 생각해볼게.”
프런트 직원은 재차 고민에 빠졌다.
구조팀도 다 읽은 유전자 개량 약제 책자를 다시 돌려준 뒤 조용히 계단을 올라 그들의 방으로 향했다.
이동 중 성건우가 신이 난 듯 물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화이트 기사단의 유전자 개량 약제를 몇 번이나 먹을 수 있을까요?”
“원하는 만큼. 먹고 싶으면 먹어. 하지만 효과는 없을걸.”
장목화가 성건우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그녀는 이 방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아는 지식이 있었다.
다시 성건우가 말했다.
“작은 빨강이 대신 물어본 거예요. 키가 더 클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요.”
“아주 고맙네!”
솔직히 용여홍은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약간 좀 실망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