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127
127
데일리 아포칼립스
그레이트 다운타운은 내륙이고, 근처를 지나가는 물줄기도 하나 없다.
철썩.
그런데 파도가 그레이트 다운타운을 덮쳤다. 외벽을 타고 올라갔다 내려오며 거리를 때리는 물살은 분명 해일이라 불러야 마땅한 규모였다.
대비할 틈도 없이 일어난 갑작스러운 사태의 원인을 아는 사람은 현의 지인을 제외하곤 없었다. 한 차례 물살에 휩쓸렸던 그들은 마신 물을 토해내기 바빴다.
누구도 언데드에 신경 쓰지 않았고, 곧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음을 깨달았다.
좀비는 모두 움직임을 멈췄고, 언데드는 서서히 분해되어 영멸하고 있었다. 저 재앙에 가까운 물 덩어리가 원인이라고 짐작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목숨 걸고 벌인 싸움이 허무하게, 전쟁은 물벼락 한 번에 끝나버렸다.
***
함선이 작동을 멈추고 흔한 고철로 돌아가자 셰르투스의 광화도 멈췄다. 냉정을 찾은 그는 좀비가 죽고 언데드가 사라졌음을 확인하고 바로 갤르기란과 죽음의 신자들을 찾았다. 그러나 죽음의 신자들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좀비 군단을 만들어 보겠다는 그의 꿈은 어디까지나 꿈으로 남았다.
***
갤르기란은 도망치고 있었다. 그는 자문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지?’
언데드 드래곤을 허무하게 잃었을 때부터였다. 언데드 드래곤은 우주 함선에 이어 그가 가진 두 번째로 강력한 언데드였다. 그런 언데드가 고작 두 방에 소멸했다. 그때 도망갔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좀비와 함선의 능력을 과신했고, 그 결과가 이거였다.
사실, 과신도 아니었다. 그대로 전쟁이 이어졌다면 이기는 건 분명 자신이었을 테니까. 그 뒤에 뭘 선택해도 선택하면 됐다. 최소한, 전쟁 중에도 전력을 보존하며 후퇴할 힘은 있었다.
모든 희망이 부서진 건 미사일이 터지고 전장에 물이 들어차고부터였다. 생명의 마력이 담긴 물은 언데드의 천적이었고, 무슨 짓을 했는지 좀비들마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물에 닿은 죽음의 신자들 대부분이 골골대며 환계로 돌아갔고, 그도 힘을 잃고 도망치고 있었다. 환계로 갈 수는 없었다. 그가 문을 열 때마다 어떤 힘이 작용해 강제로 문을 닫아버렸다. 공간이동도 마찬가지. 좌표가 잡히지 않아 사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꼴사납게 걸어서 도망치고 있었다.
“어딜 가시나.”
지하도를 달리던 그의 앞을 이성철이 막아섰다. 갤르기란이 저주와 마법을 쏘았지만, 그건 모두 이성철에게 닿기도 전에 사라졌다.
“환계의 문을 닫은 게 너냐.”
“그건 알 필요 없고.”
이성철의 손에는 검은색 구슬이 들려 있었다. 갤르기란의 눈이 흔들렸다. 그의 몸은 언데드로 만든 키메라였다. 인간에게 달려 있으면 안 되는 부위들이 몸에 달려 있긴 했으나, 큰 틀은 사람과 같았다.
“그 좀비, 어떻게 만들었지?”
“어느 날, 역병의 신자들이 찾아왔다.”
갤르기란은 순순히 입을 열었다. 고통과 죽음이 두렵지 않은 죽음의 신자들이 두려워하는 게 딱 하나 있다. 바로 영혼의 고통이다. 몸이 없어 영혼이 남들보다 배는 중요한 죽음의 신자들에게, 영혼을 고문하는 저 구슬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놈들이 다짜고짜 협력을 요구했다. 세상을 멸망시킬 단서를 찾았으니, 협력했으면 한다고.”
“그리고?”
“누가 봐도 수상쩍었지만 그들을 들였다. 그들이 설명하는 멸망과 좀비는 수상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받아들이고 싶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일주일도 안 돼 좀비가 완성되었고, 역병의 신자들은 홀연히 떠났다.”
-역병의 신자라는 자들이 오래 머물렀다면 제가 몰랐을 리 없어요. 반론은 안 받겠어요. 토지의 주인이기 전에 저도 사람이라고요. 24시간 내내 그레이트 다운타운 전체를 관리하는 건 불가능해요. 그리고 그 좀비는 제가 발견했을 때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어요.
이성철의 머리로 네티의 설명이 들렸다.
“그들은 좀비를 가져가지 않았나?”
“가져가지 않았다. 그놈들은 실험이 성공했다는 것 자체로 만족한 것처럼 보였다. 어차피 그놈들이 가지고 있던 역병만 있으면 좀비는 다시 만들 수 있다. 우린 이용만 당했다.”
“그런 것치곤 재미를 너무 과하게 봤어.”
이성철이 검은 구슬을 갤르기란에게 가져갔다. 갤르기란이 남은 마력과 권능을 모두 쥐어짠 저주를 날렸다. 네티도 한 번에 상쇄할 수 없는 위력의 저주였다.
-위험해요!
그녀는 그레이트 다운타운에서 일어나는 일 대부분을 알지만, 모든 걸 아는 건 아니다. 리센이 지하에 만든 창고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며, 이성철이 몸에 걸친 아티팩트와 부적의 숫자도 모른다.
이성철은 날아오는 저주를 보고도 피하지 않았다. 검보라색 저주는 그에게 닿기 전에 비정상적으로 우그러지더니, 한 점으로 응축되어 소실했다.
그건 어딘가 상식에 어긋난 광경이었다. 갤르기란은 물론이고 네티마저 말을 잃었다. 그 사이 이성철은 갤르기란의 몸에 구슬을 가져다 대었다.
“영멸해라.”
“끄아아악!”
갤르기란의 영혼이 구슬로 빨려 들어갔고, 영혼을 잃은 육신이 무너졌다. 구슬 안에서 그의 영혼은 끝없이 고통받으며 깎여나가 사라질 것이다. 이걸로 죽음의 재앙의 영혼까지 없애거나 가둬둘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무리였다. 갤르기란이 영멸하면 세계 어딘가에서 새로운 죽음의 사도가 생겨나겠지.
“방금 뭐예요? 주술이나 마법은 아니었는데?”
네티가 몸을 드러내고 물었다. 이성철은 끼고 있는 목걸이, 시간의 회랑을 옷 위로 만지며 희미하게 대답했다.
“글쎄, 근원 세계가 근원 세계한 거겠지.”
시간의 회랑이 추격과 저주를 피하게 해주기는 하지만, 이렇게 강력하지는 않다. 전생에서도 그랬다. 그러나 방금 그건 분명 시간의 회랑의 효과였다. 회랑이 미세하게 떨렸으니 거의 확실하다.
다른 회차보다 훨씬 강력해진 시간의 회랑.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이성철은 다시 고민했다.
시간의 성녀라 추정되는 존재가 만들어준 이 회랑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
프로만 리슈타인, 프로만은 지하 갱도를 빠져나가며 몸에 붙인 분장들을 떼어냈다. 좀비 분장을 떼어내자 그는 뽀얀 피부를 가진 인간으로 돌아왔다. 갱도를 한참이나 걷던 그는 하나의 문 앞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나가니 그곳은 그레이트 다운타운 외부에 있는 허브 중 하나였다.
로브를 입은 몇 사람이 그에게 다가왔다. 그들의 몸에서는 약간이지만 역한 냄새가 났다.
“잘 되셨습니까?”
프로만은 품에서 병 하나를 꺼냈다. 병 안에는 벌레 몇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오오.”
“새부터 벌레까지 다양하게 보냈는데, 하나도 도착하지 않았나?”
역병의 신자 하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집하나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가져오신 벌레를 제외한 모든 완성품은 그레이트 다운타운을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런가… 역시 근원 세계야. 쉽게 풀리는 일이 없군.”
프로만은 자못 놀랐다. 지상과 지하를 포함해 시도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시도했다. 날파리 한 마리, 지렁이 한 마리는 그레이트 다운타운을 빠져나올 줄 알았는데.
근원 세계의 대단함에 새삼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이 세계가 즐거운 거지.’
알파 타입 항체를 지닌 그의 몸은 역병에 걸리지 않았다. 그는 사의가 만든 격벽 안에서 좀비로 분장해 그 안에 숨어 있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멍청한 죽음은 처음 완성한 좀비를 완성품이라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건 반쪽짜리였다. 적어도 10세대는 더 거쳐야 진짜 완성품이라 할 좀비가 탄생한다. 능력 면에서 1세대와 10세대는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게 중요하다.
1세대의 특이성을 10세대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점. 그게 가능해야 진정으로 성공이라 할 수 있었다.
프로만은 직접 10세대 이상의 좀비를 포획하기 위해 거기 남았다. 역병의 신자들이 좀비 행세를 할 수는 없으니 그가 그 역할을 해야만 했다. 그러다 언데드와 사람의 전쟁까지 구경하게 됐다.
그는 좀비로 분장해 싸움을 지켜보며 봤던 얼굴을 떠올렸다. 연관될 리 없을 거라 여겼던 자들과 다시 한 번 연관됐다. 흥에 취해 다시 만나자고 막 내뱉긴 했는데 이 넓은 근원 세계에서 다시 만날 줄이야.
“한 번은 기적, 두 번은 우연, 세 번은 필연. 그럼 앞으로 한 번인가.”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기지로 복귀한다.”
그는 아직 궁금한 게 많았고, 연구할 것도 많았다. 당장 해결할 과제가 있다면 완성된 좀비를 아공간에 넣는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 좀비는 아공간 주머니는 물론이고 환계에도 들어가질 않았다.
좀비를 옮길 방법이 생긴다면 아주 재미있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
“세계 멸망. 꽤 유쾌하겠어.”
프로만과 역병의 신자들이 사라졌다.
***
좀비 사태가 끝나고, 그레이트 다운타운은 완전히 무너졌다. 사의의 언데드의 숲으로 기반이 약해진 건물을 해일에 가까운 격류가 강타했다. 그레이트 다운타운의 건물 태반이 무너졌다. 특히 빌딩은 전멸이나 다름없었다. 남은 빌딩은 3개, 셰르투스가 머무는 절조 하는 정신의 빌딩, 또 하나는 오늘도 괴담을 더하고 있는 그레이트 다운타운의 중앙 빌딩. 마지막으로 리센의 이름 없는 기업의 빌딩이었다.
그 빌딩들은 언데드의 숲에 감염되지도 않았고, 보호 마법으로 지켜지고 있어 리아의 물 세례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우뚝 선 세 개의 빌딩은 그레이트 다운타운의 새 출발, 새 시작의 상징이 되었다.
그레이트 다운타운의 재건은 빨랐다. 마법사만 충분하면 빌딩 하나 올리는 데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많은 땅이 주인 없는 땅이 되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많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기를 쓰며 건물을 지어 올려 땅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그레이트 다운타운을 넘보던 외부 세력까지 더해져 건축 경쟁은 날이 갈수록 심화 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리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고, 죽은 사람들의 장례를 치러준 뒤 리센은 모든 걸 보고만 있었다.
“절조 하는 정신이라도 처리하지? 그러면 바로 대부가 되는 건데.”
현이 리센에게 제안했다.
리센이라면 혼자서도 절조 하는 정신을 모두 상대할 수 있었다. 회장인 셰르투스가 광폭화의 영향으로 약해진 지금이라면 더욱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리센은 그러지 않았다.
“절조 하는 정신을 없애는 건 언제나 할 수 있다. 처리하는 건 이쪽의 준비가 끝난 뒤다. 아직 그레이트 다운타운 전체를 감시할만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
“감시라니, 감옥이라도 만들 셈이냐.”
“대부는 존경과 공포를 받는 존재. 그레이트 다운타운을 공포로 지배할 때야말로 진짜 대부가 탄생한다.”
“꼭 진짜 대부를 본 것처럼 말한다?”
“딱 한 번 봤다. 그 인세의 괴물을.”
“뭐?”
“농담이다. 이제 어디로 갈 거냐?”
“생전에 날 엿먹이려 했던 국가 중 하나.”
“무슨 짓을 할 셈이지?”
현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새로운 몸을 얻고, 적당히 오지랖 부리며 적당히 살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난 내 이름을 걸고 세상에 다시 나오는 걸 택했지. 그 순간부터 내 목적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어. 날 이렇게 만든 놈들은 뼛가루 하나까지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것. 그런데 막상 김우현이라는 이름을 달고 살아도 그놈들이 나타나진 않더라.”
“그래서, 저쪽에서 안 오면 직접 친다는 건가?”
“나랑 원한 있는 놈들, 있을만한 놈들을 모두 족쳐야지. 어차피 두 번째 인생을 즐기기 위해선 정리해야 하는 인연이기도 했고.”
“그 대부분이 위원회 가맹국이다.”
“다회차 회귀자 왈. 위원회는 무너지고 세상에 암흑기가 도래한다고 하더라. 그렇게 무너질 거라면, 이쪽에서 무너뜨리고 새로 세우면 되잖아? 이번에야 말로 무능한 것들 싹 쳐내고.”
“북대륙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을 거다.”
현이 뭐가 그렇게 대수냐는 듯 말했다.
“살 놈은 살 거고, 죽을 놈은 죽을 거야. 언제나 그래 왔잖아?”
“그건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