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perienced Newbie RAW novel - Chapter 151
151
좀 극단적이지 않냐.
과학제 벙커버스터. 지구에 비슷한 병기가 있기에 벙커버스터라 불리지 그 용도는 캐슬 버스터다.
방어막으로 보호되는 성을 방어막과 함께 날려버리는 질량 병기. 보호를 뚫고 안에 있는 물건을 날려버린다는 점에선 벙커버스터와 같았다.
“김 교수가 특이한 거지, 일반적인 과학의 신도들에게 난 원수 그 자체일 테니까.”
현이 명성을 쌓고 이름을 날릴 수 있게 해준 것이 과학과의 전쟁이었다. 정령은 자연의 원소 그 자체다. 대 마력 방비와는 관계없이 정령은 기계의 틈으로 파고들어 기판을 불태우고 고장 냈다.
다른 정령은 물리적으로 공격해 역소환시키면 되지만, 리아, 아스모스, 노우라를 상대로는 그것도 힘들었다. 정령이 파고든 장소는 십중팔구 기계의 핵심 부품이 있는 장소인데, 그 장소에서 고화력 병기를 쓸 수도 없다.
아직 초월자가 되지 못했던 현이 과학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정령술 덕분이고, 대전에 참여했던 과학의 신자들이라면 김우현이라는 이름에 이를 갈았다.
“설명은 나중에 하고, 저거 처리해? 말아? 착탄까지 30초 남았다.”
“처리해. 굳이 안 맞아도 될 공격에 맞아줄 이유는 없으니까.”
에이네가 손가락을 움직이자 가까워지던 소리가 멀어졌다. 그리고 몇 초 후 폭음을 동반한 충격파와 지진이 유적 내부까지 전해졌다.
유적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방어벽을 뚫고 그 안에 피해를 주기 위해 만들어진 미사일이다. 그게 200발 가까이 땅에 떨어졌다. 낡은 유적은 그 충격을 버티지 못했다.
“나가자.”
유적 천장을 부수자 햇살이 들어왔다. 현은 뚫린 천장으로 탈출했다. 저 멀리서 벙커버스터에 직격한 땅에서 불길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디서 날아온 거야?”
“북북서로 300km.”
“갈 건가?”
“가 줘야지. 가지 않으면 사자의 법을 푼 이유도 없으니까.”
현은 몸에 마력을 한 바퀴 돌렸다. 약간의 피로가 날아가며 머리가 맑아졌다. 천마신공을 운용하자 몸이 가벼워졌다. 느낌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 무게도 변했다.
가벼워진 몸으로 다리에 힘을 주고, 땅을 박찼다.
천마신공은 하나의 신공이지만, 그 안에 모든 종류의 무공을 포괄한다. 천마쯤 되면 그 모든 걸 천마신공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버릴 수 있지만, 천마신공의 공부가 부족한 현은 필요한 무공을 골라서 쓰곤 했다.
천하유림이라는 이름의 경공은 천하를 유림한다는 거창한 이름답게 속도와 지속력에 중점을 둔 경공이었다.
현은 땅 위를 날듯이 뛰었다. 공간이동으로 이동해도 되긴 된다. 그러나 상대가 무얼 준비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공간이동을 쓰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공간이동 후 상대가 뭘 하기도 전에 달이라도 불러 화력으로 녹여버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래선 수련이 되지 않는다.
수련을 하기로 한 이상, 현은 최대한 실전에 맞춰 행동하기로 행동 방침을 정했다.
달리는 동안 후속 공격은 없었다. 미사일을 가지고 있다면 장거리 무기들도 가지고 있을 건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후의 안드로이드와 과학이 보여주는 눈부신 기술에 사람들이 잊는 게 있는데, 과학의 주 무기는 장거리 무기다. 총, 레이저, 미사일. 행성 반대편에 있는 적도 타격할 수 있으며 우주 공간에서 행성 표면을 태울 수 있는 사거리를 가진 게 과학의 무기들이 가진 사거리다.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집단이라면 필시 다른 무기들도 가지고 있을 거고, 평지를 달리는 현은 그들에게 표적밖에 안 될 터인데도 공격은 오지 않았다.
“아 씨, 왜 달리고 지랄이야. 공간이동으로 안 가고.”
“혼자 가고 싶으면 가보던가.”
현이 에이네에게 공간이동 스크롤을 던져주었다. 스크롤은 에이네의 손에 닿자마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아오, 지금 나랑 해보자는 거지?”
“아니면 이성철한테 부탁해 보던가.”
두 사람의 조금 뒤에선 이성철이 빠르게 따라붙고 있었다. 이성철이 느린 게 아니라 현과 에이네가 빠른 거였다. 정확히는 천마신공의 경신법과 천하유림이 너무 뛰어나 생기는 일이었다.
에이네는 뒤로 살짝 빠져 이성철 옆에 붙었다.
“스크롤.”
“… 적진으로 공간이동을 하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다.”
“그걸 누가 몰라. 상대가 과학이라면 공간이동 한 그 순간에 전부 무력화 할 수 있어. 기습을 당해도 이게 있으면 다치고 싶어도 못 다치고.”
에이네는 팔을 감싸고 있는 토시를 문질렀다. 마력 흡수 능력자를 위해 만들어진 방패. 저것과 금강불괴에 준하는 에이네의 몸이라면 확실히 어지간한 공격에는 버틸 수 있을 듯했다.
-그냥 보내줘.
때마침 현의 전음이 들렸다. 이성철은 공간이동 스크롤을 찢으며 에이네에게 던졌다. 스크롤의 마력이 에이네를 감싸며, 에이네의 모습이 사라졌다.
***
에이네는 미사일 발사 지점에서 2km가량 떨어진 장소로 이동되었다. 그녀는 과학이 만든 것이 분명한 도시를 발견하자마자 도시로 뛰어들었다.
도시 안에선 전자기기의 신호가 잔뜩 나오고 있었다. 에이네는 접근하며 기기들을 해킹해 도시 내부의 자료를 얻었다.
벙커버스터 200발, 초장거리 탄도 미사일 백여 발, 전투기와 전차가 도합 800대, 그리고 개인 화기 수만 정. 완전히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도시였다.
인공위성의 서버로 우회해 도시에 관한 자료를 살펴봤다. 저 도시는 대전 당시 생산 기지로 쓰이던 도시였다. 현재는 전쟁이 끝나고 남겨진 과학의 신자들이 자기방어를 위해 무기를 찍어내고 있었다.
과학이 항복하고 일어난 참사에 대해선 에이네도 알았다. 핵심 에너지 기술을 잃고 빌빌대던 과학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사건이었다. 저 도시에는 그때 도망친 과학의 신자들이 살고 있었다.
그렇다면 현에게 바로 미사일을 날릴 만도 했다.
‘그런데 그런 놈들이 마력을 받아들여?’
카메라를 해킹해 본 도시의 모습에는 분명 과학의 신자가 아닌 사람들도 있었다. 마력을 다루는 근원 세계의 평범한 사람들.
‘가보면 알 일이지.’
도시가 바로 앞이었다. 에이네는 다리에 힘을 주며 가속하는 한편 몸에 걸려 있던 스텔스 기능을 풀었다. 자동화된 화기 수백 정이 먼저 불을 뿜었고, 이어서 마법이 날아왔다. 에이네는 토시에 달린 방패를 크게 펼쳐 모든 공격을 막았다.
몸으로 막아도 되지만, 그랬다간 얼마 없는 옷이 찢어진다. 아티팩트를 입을 수 없는 에이네가 입을 수 있는 방어구는 고레벨 몬스터의 가죽으로 만든 옷 정도였고, 그것 말고는 아무 마법도 안 걸린 평상복이 끝이었다.
현과 이성철은 몇 개씩 들고 다니는 아공간 주머니도 그녀는 하나밖에 없었다. 이것마저 유적에 있던 특제품을 간신히 건진 거였다.
두두두두. 방패에 쏟아지는 공격은 멈출 줄을 몰랐다. 에이네는 자리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공격을 버텼다.
사실 버틴다기보단 충전 중이었다. 날아오는 마법을 흡수하며 마력 충전.
충분한 마력을 흡수한 에이네는 방패를 앞세워 돌격했다.
목표는 도시 중앙 꼭대기에 있는 여자. 겁도 없이 방어구 하나 걸치지 않고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여자였다.
이 도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게 바로 저 여자였다. 여자는 아찔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전신이 부자연스러웠다. 완벽에 가까운 성형이지만 에이네에게는 보였다. 여자는 전신을 성형으로 뜯어고쳤다.
‘역시 자연이 최고야. 저것보단 내가 더 낫지.’
잡생각까지 하며 여유롭게 에이네는 탄환을 피하고 마법을 먹어치우고, 무인들을 뛰어넘어 여자의 앞에 도착했다.
방패를 뒤편으로 돌려 방벽을 세우고, 반대쪽 손에 마력을 모았다. 검은 강기가 주먹에 일렁였다.
“어머, 그런 걸 저한테 휘두르겠다고요? 제 아름다운 얼굴이 망가지면 어쩌려고.”
“인공 피부 덕지덕지 붙인 누더기보다는 자연인 내가 훨씬 더 예쁘거든. 꺼져.”
주먹이 질러졌다. 나아가는 주먹, 에이네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에이네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마력은 절대 아니다. 과학이라면 그녀가 몰랐을 리가 없다. 남은 건 하나.
‘권… 능……!’
빌딩을 가루로 만들 힘을 담은 주먹은 여자의 머리 옆을 스쳐 갔다.
“그 매끄러운 피부가 걸레가 될 때까지 써먹어 줄게요. 어딜 감히 천한 년이.”
에이네의 몸을 감싸고 있던 패도적인 마력이 촛불 꺼지듯 꺼졌다.
여자가 에이네에게 명령했다.
“내려가 지구 최강을 맞을 준비를 하세요. 지구 최강과 싸우면 자랑하던 그 피부도 조금쯤 까지지 않겠어요? 아니면 지구 최강을 내 앞에 무릎 꿇려줘도 좋고요. 당신을 밀어 넣을 사지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여자가 자신의 몸을 안고 몸을 배배 꼬았다. 여자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지구 최강을 발아래 두면 얼마나 황홀할까. 아아…….”
에이네는 뻗었던 주먹을 거두고 도시 중앙에 있는 탑에서 뛰어내렸다.
***
“도착했을 때는 이미 끝나 있는 거 아닌가?”
“그건 그것대로 좋지. 에이네도 실전이 필요하니까.”
“일방적인 학살을 실전이라 불러도 좋다면 말이지.”
공간이동 과정에 문제는 없었다. 에이네가 무사히 저쪽으로 넘어갔다는 뜻이었다. 이성철은 홀로 적진에 들어간 에이네보다 에이네를 상대해야 할 적들을 걱정했다.
천마신공의 후계자, 마력 흡수 능력자, 그리고 최후의 안드로이드.
한 가지만 가져도 성공이 보장된 칭호를 세 가지나 가지고 있다. 에이네를 이기려면 초월자는 되어야 할 것이다. 상성에 따라선 초월자조차 이길지도 몰랐다.
미사일이나 쏴대는 적들이 상대라면 에이네보다 적을 걱정하는 게 도덕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나 하는 게 이성철의 양심이었다.
“네 첫 학살은 언제였지?”
현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이성철은 잠시 침묵했다.
“그건 선택을 말하는 거냐? 아니면 손에 직접 피를 묻힌 걸 말하는 거냐?”
“둘 다.”
“2회차 초반.”
이번에는 곧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이성철이 말했다.
“살기 위해 고의로 인간들을 미끼로 쓰며 튜토리얼을 탈출했다.”
“2회차부터 상상 이상의 쓰레기였구나.”
“혼란스러운 머리를 정리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다음부터는 최대한 인간을 구해왔다.”
라고 말해도 이성철이 튜토리얼의 인간을 구한 건 3회차뿐이었다. 이번 회차는 갑자기 나타난 고금제일의 정령사가 인간과 엘프를 평등하게 없애버렸다.
“에이네는 학살을 해본 적 없어.”
리프턴에서 이름도 생각 안 나는 기업 하나를 털어버린 것이나 좀비 사태 때 좀비를 학살한 것 등 날뛴 적은 많지만, 일방적인 학살은 없었다. 리프턴 때는 에이네도 고생했고, 좀비를 죽이는 것과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무게가 달랐다.
사람마다 감상은 다르지만 일관되게 말하는 것이 있다. 학살은 전투, 살인과는 다르다.
현은 처음 직접 학살을 저질렀을 때 불쾌감에 잠을 설쳤고, 차별주의자들을 박멸하며 무덤덤해졌다.
늦기 전에 에이네도 무방비한, 살려달라는 사람 수십, 수백을 죽이는 경험을 해보는 게 좋았다.
평범한 인생을 보낸다면 절대 할 일 없는 경험이지만, 강자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필요한 경험이다.
현과 이성철이 도시에 도착했을 때, 도시는 조용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에이네가 날뛰고 있다면 시끄러워야 하고, 날뛴 후라면 도시가 멀쩡하면 안 된다. 그런데 지금은 도시도 멀쩡하고 시끄럽지도 않았다.
현의 의문을 풀어준 건 하늘에서 뛰어내린 에이네였다. 에이네의 몸에는 마력을 전달하는 마법이 잔뜩 걸려 있었고, 마법을 통해 에이네에게 계속 마력이 주입되고 있었다.
“확실히 이것도 방법이긴 하군.”
“아니, 학살이 하기 싫다고 적한테 붙는 건 좀 극단적이지 않냐.”
둘은 자세를 낮추며 기수식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