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187
1187화 남은 건 전부 네게 달렸다
몽의의 눈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이 스스로 벗겨지며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그는 단 한 걸음 만에 영제의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눈에선 시간의 강의 힘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시간의 강의 힘이 흘러나오며 주변의 시간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때로는 빨라졌다가, 때로는 느려지기도 했다.
영제는 몽의가 자신의 뒤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를 막을 겨를이 없었다.
순간 오랜 옛날부터 끝없는 세월 동안 흘러온 찬란한 강이 나타난 듯했다.
세월, 공간, 그리고 모든 생명체를 관통하며 모든 것이 담겨있는 강이었다.
이것은 상고 천정, 상고 지부 시대에도 감히 그 누구도 손에 쥘 수 없었던 존재.
심지어 쳐다보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존재.
바로 시간의 강이었다.
몽의는 영제의 발목을 붙잡으며 조금씩 시간의 강으로 녹아들어 갔다.
그리고 이때를 노리고 가희와 응백도 함께 달려들어 영제가 반항하지 못하도록 완전히 제압했다.
그러나 냉정한 진양은 멀찍이 떨어져 이 모습을 무덤덤하게 쳐다보기만 했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 벌어진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편, 내면세계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양은 잔뜩 화가 난 듯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멍하게 서서 뭐 하고 있는 거야? 너도 도와야지!”
마음 같아선 진양이 주도권을 잡고 싶었지만, 오색 빛깔의 세계는 회색 눈이 내리는 세계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냉정한 진양이 주도권을 잡고 있을 때는 강제로 빼앗는 게 불가능하다.
그러나 반대로 진양이 주도권을 잡고 있을 때는 냉정한 진양이 언제든 강제로 주도권을 빼앗을 수 있다.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도 멍하게 서 있는 냉정한 진양의 모습에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진양이 험악한 얼굴로 거친 말까지 뱉어내며 호통을 쳤지만 냉정한 진양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는 끝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빌어먹을 자식. 멍청하게 서서 뭐 하는 거야! 얼른 도우라니깐. 이대로 있다간 기회를 놓쳐버릴지도 모른다고!”
진양의 분노 섞인 절규가 내면세계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 * *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영제의 등골은 오싹해질 수밖에 없었다.
시간의 강.
그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누구도 손에 쥘 수 없었던 것.
그곳에 들어갔다가 살아서 나온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누구든 빠지는 순간 살아서 돌아오는 건 불가능했다.
죽음을 맞이하는 게 아니다.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응백이 펼친 괴산의 힘, 품에 안고 있는 역만광난과 가희의 최후의 울부짖음의 힘.
여기에 가희와 응백이 진신을 드러내며 압도하는 상황까지.
영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금방이라도 시간의 강 속으로 빨려들어 갈 것 같은 순간, 영제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끌어안고 있던 모든 힘을 방출해냈다.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심지어 그가 정점을 찍었을 때의 힘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이 솟구쳤다.
심지어 그는 스스로 이 힘을 막고 있던 힘까지 함께 쏟아붓고 있었다.
순간 천지마저도 모두 파괴해버릴 듯한 힘은 한층 더 강화되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힘이었다.
눈부신 빛이 영제의 품에서 터져 나왔다.
영제의 제포가 전부 찢겨져 나갔고, 육신도 힘을 버티지 못하고 가루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그는 새까만 해골이 되었다.
해골에 새겨져 있던 수많은 도문들이 전부 사라져버렸다.
뼈에 드러난 균열 비슷한 흔적들, 힘, 부문 등도 계속해서 소멸되어 갔다.
하지만 덕분에 간신히 충격을 버텨낼 순 있었다.
뒤에 서 있던 몽의는 영제의 몸을 관통하고 남은 여파에 의해 날아가 버렸다.
어찌나 강한 힘이었는지 몽의는 금세 만신창이가 되어버렸고, 이내 작은 점이 되어 멀리 사라져버렸다.
몽의가 이끌어낸 시간의 강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지만 일 다경 정도가 흐르자 시간의 강은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몽의의 행방도 묘연해지게 되었다.
강한 힘의 폭발을 정면으로 맞은 응백의 몸은 곧바로 부서지며 수만 개의 빛이 되어 괴산으로 녹아들었다.
영제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던 괴산대도 마찬가지로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마찬가지로 정면에서 폭발에 휩쓸린 가희도 그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수천 리를 날아 산봉우리에 처박혀버렸다.
그녀의 몸에서 불꽃이 뿜어져 나와 강력한 힘들을 막아주었다.
하지만 이 순간 그 불꽃은 천천히 사라졌다.
그것은 가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건 끝에 얻은 힘이다.
그 불꽃은 가희의 생명의 불꽃이었던 것.
불꽃이 모두 사라진 순간 가희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멀리서 방관하고 있는 냉정한 진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불꽃을 진양을 향해 던졌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불꽃은 곧장 진양의 몸 안으로 흘러들었다.
이어서 가희는 진양을 바라보며 힘겹게 외쳤다.
“어서 도망쳐요! 당신은, 당신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해요!”
이 말을 마지막으로 가희는 쓰러졌다.
생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은 계속해서 진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진양이 도망치는 모습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묘지기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이곳에 온 장정의.
무릎을 꿇은 채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오열하고 있던 그는 무시무시한 힘을 마주하며 진양을 향해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사형, 어서 도망치세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무시무시한 힘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한참 뒤.
모든 힘이 사라지고 주위는 다시 고요해졌다.
폐허 가운데 남은 건 검은 해골, 빈사 상태에 이른 영제 한 사람뿐이었다.
해골 곳곳에 남아있던 균열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진양이 서 있던 먼 곳을 바라보며 실소했다.
“진양, 이제 모두 사라졌다. 아직도 네겐 역전의 수단이 남아있느냐?”
냉정한 진양은 무표정으로 허공 너머를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한편, 내면세계에서는 진양의 발악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이런 망할 놈아! 당장 가서 달려들라고! 여기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달려들고 보라니깐!”
그러나 한 차례 발악 뒤에는 절망과 비통함이 몰려왔다.
바라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의 몸에서 푸른 빛이 흘러나왔다.
진양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흑검을 꺼내 방금 보았던 모든 장면을 베어버렸다.
그리고 모든 기억들까지도 함께 지워버렸다.
받아들일 수도 없었고,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광기에 사로잡힌 듯 검을 휘둘렀다.
몸에서 흘러나오던 푸른 빛들도 점차 사라져갔다.
하지만 이어서 더욱 진한 빛들이 체내에서 피어올랐다.
“싫어. 싫다고. 이제 와서 이딴 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렇다고 저 개자식을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진양은 계속해서 빛을 베어나갔지만, 빛은 끝을 모르고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그는 광기에 사로잡힌 듯한 모습이었지만 깊은 절망과 비통함이 계속해서 느껴졌다.
조금이라도 일찍 도망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 착각했던 것이 후회되었다.
절망이 극에 달하며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졌다.
그는 무기력함 속에 절망을 느끼며 계속해서 검을 휘둘러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베어나갔다.
어느덧 일곱 빛깔의 세계 속에는 푸른 빛이 가득 차게 되었다.
그때, 일곱 빛깔의 세계를 가득 채운 푸른 빛들이 세계의 경계를 넘어 흑백 세계를 침범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냉정한 진양의 몸에서도 푸른 빛이 흘러나왔다.
푸른 빛은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온 세계를 뒤덮기 시작했다.
사방을 뒤덮은 빛은 온 세계를 비통함으로 물들였다.
푸른 빛에 의해 파랗게 물든 하늘은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마치 온 세상이 슬픔에 빠져 눈물을 쏟는 듯했다.
그렇게 온 세상은 비통함 속에 물들어갔다.
한편, 균열이 회복된 영제의 뼈 위로 빠른 속도로 육신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꽤 깊은 상처를 입었음에도 죽지 않았다.
하마터면 동귀어진을 할 뻔했지만 목숨은 여전히 붙어있었다.
그의 마음속에도 짙은 비통함이 느껴졌다.
온 땅을 뒤덮은 비통함, 적막한 세계를 가득 채운 비통함.
영제는 마침내 깨달았다.
‘애자결!’
영제의 머릿속에 태미 천제로부터 습득한 지식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영제는 오른손을 뻗어 자신의 왼팔을 떼어냈다.
떼어낸 왼팔은 찬란한 황금빛을 뿜어내는 긴 창이 되어 그의 손에 잡혔다.
“허튼수작은 꿈도 꾸지 마라!”
창은 시간을 가로지르며 푸른빛 덩어리들을 부쉈다.
반드시 명중할 수밖에 없는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몸으로 견뎌내는 수밖에 없었다.
냉정한 진양은 제자리에 선 채 사자결을 시전하며 창을 응시했다.
시간은 마치 길게 늘어진 것처럼 느리게 흘렀다.
냉정한 진양의 눈에 창이 날아가며 푸른빛 덩어리를 부수는 장면이 느리게 펼쳐졌다.
무형의 빛 덩이는 창에 맞아 부서지며 흔적 없이 소멸되었다.
그것은 애자결의 힘.
그러나 창 앞에선 힘없이 소멸되어버렸다.
냉정한 진양은 계속해서 창을 살피며 핵심이 되는 힘을 분석했다.
분석은 창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끝났다.
결론적으로 경지가 너무 낮았기 때문에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저 몸으로 막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창에는 일자결의 힘을 소멸시킬 수 있는 힘이 서려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자결을 발동한 사람을 죽이는 힘이 서려 있었다.
한 번 손을 떠난 이상 반드시 목표물을 적중시킬 수밖에 없는 필중의 공격이었다.
냉정한 진양은 곧바로 결인을 맺기 시작했다.
진양이 천마보를 깨달으며 얻게 된 신통력이었다.
그는 비록 깨닫진 못했지만 시전하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냉정한 진양은 눈을 감았다.
순간 그는 회색 눈이 가득 쌓인 내면세계로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찬란한 황금빛을 뿜어내던 창도 진양의 육신 안으로 빨려들어 가며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내면세계에 나타난 창은 일곱 빛깔 세계에 있는 진양을 향해 날아갔다.
냉정한 진양은 결인을 맺으며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그대로 그것을 가슴으로 받아내려는 듯 팔을 벌렸다.
냉정한 진양에게 박힌 창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날아가 흑백 세계의 지면에 박혔다.
그러나 냉정한 진양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창에 관통되어 땅에 박힌 그의 육신은 천천히 바깥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일곱 빛깔 세계의 가장자리에 서 있던 진양은 멍한 눈으로 냉정한 진양을 바라보았다.
냉정한 진양은 멍하게 서 있는 진양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모든 건 공유된 기억 공간 속에 넣어뒀다.
난 곧 너고, 우리는 곧 하나다. 나의 한계치는 법신이다.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지 아직 기억할 거라 믿는다.
높은 곳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이 어떨지 궁금하군. 난 더 높은 곳에 설 수 없겠지만 넌 가능하다.
너와 나는 한 몸이다. 때문에, 내가 유일하게 피해를 입힐 수 없는 사람은 너뿐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아낸 고심주를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진정한 일자결에 입문하여 감정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일곱 빛깔 세계와 흑백 세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이 나타날 때. 그때가 바로 유일한 기회다. 마찬가지로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
난 이미 최선을 다했다. 이제 남은 건 전부 네게 달렸어.”
말을 마친 냉정한 진양은 한 손으로는 창을 붙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결인을 맺으며 외쳤다.
“헌제(獻祭)!”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황금빛 창은 냉정한 진양과 함께 검은 불길에 휩싸이며 잿더미가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