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374
1374화 목을 비틀어버릴 테다
진양은 갈등에 빠졌다.
상대는 분명 단순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진양은 어째서 상대의 목을 딸 생각부터 하는 걸까?
아무리 삭막한 세상이라도 사람끼리는 기본적인 신뢰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진양의 심경과 태도에도 영향을 주었다.
진양은 미간을 찌푸리며 소책자를 꺼냈다.
‘감히 날 속이는 녀석들은 절대 가만히 두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마음속엔 후회가 가득 찼다.
마치 독소가 퍼지는 것처럼 말이다.
진양은 차마 그렇게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기록을 하려고 했지만 손이 벌벌 떨려왔다.
몸이 이미 영향을 받기 시작한 터라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원한을 품는 것 자체가 매우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진양은 조용히 은원 소책자를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 또 다른 소책자를 꺼냈다.
이 소책자는 잘라낸 기억을 적어놓는 데 쓰는 소책자였다.
그저 단순한 기록에 불과하기 때문일까?
손은 여전히 떨리긴 했지만 그래도 기록엔 영향을 주지 않았다.
진양은 방금 있었던 일들, 그리고 느낌들을 세세하게 모두 적었다.
물론 기록을 하고 있는 지금 마음속에 드는 느낌도 빼놓지 않았다.
그녀의 찬란한 웃음을 보고 있으니 마치 성모의 얼굴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때, 여인이 자신의 곁에 있는 두 사람에게 손짓을 했다.
순간 하늘에 나타난 거대한 눈알과 바다를 이루었던 거대한 눈알이 모두 사라졌다.
주변은 다시 원래의 황해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건장한 남자도 귀번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귀번을 들고 있던 귀신과 귀번 모두 사라졌다.
“이 정도면 제 성의를 보여드리기엔 충분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이래도 거절하시겠다면 그냥 가셔도 좋습니다.
저희는 그저 성은 대인, 그리고 주심 대인과 협력을 하고 싶을 뿐입니다. 서로 손을 잡고 하루빨리 원한을 갚고 싶은 게 전부죠.”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양은 가슴이 아려왔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눈물이 주륵 흘러내리기도 했다.
진양은 눈물을 글썽이며 소책자에 지금 느껴지는 모든 것들을 기록했다.
‘사람을 함부로 의심해선 안 된다. 사람 간에는 기본적인 신뢰라는 게 있으니까.
그녀의 말이 맞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공공의 적인 태호를 무찔러야 할 이유가 있다.’
기록을 마친 진양은 광폭 공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냉정한 진양 상태가 되어도 오히려 부작용만 있을 뿐이었다.
그의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계속해서 뚝뚝 떨어졌다.
마음속은 이미 억제할 수 없을 만큼 복받치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
진양은 눈물을 흘리며 계속해서 기록을 이어나갔다.
이번에는 은원과는 상관없이 단순히 연구 기록용으로 사용하는 소책자를 꺼냈다.
‘광폭 공법을 통해 모든 감정을 차단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다.
냉정한 상태가 되어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모든 감정들이 한층 더 격앙되어가고 있다.
사자결을 펼쳐도 그저 생각하는 속도만 빨라질 뿐.
성은 성관의 신분이 탄로 날 수도 있는 수단은 아직 실험해 보지 않았다.
하지만 아마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부턴 결론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악의로부터 시작되었다. 악의가 모든 것을 싹 틔우는 토양이 되었다. 악의가 생겨날 때마다 모든 감정과 인상들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마음속에 후회와 자책이 밀려오며 의지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대로 가다간 상대의 수단에 완전히 넘어가며 적을 아군으로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고통 없이 죽게 된다면 다행이겠지만, 꼭두각시가 되기라도 했다간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한번 시작이 되면 더 이상 중단할 방법이 없다.’
이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추측해 보았다.
‘불을 끌 수 없다면 불을 일으키고 있는 장작을 빼내면 된다. 오만 감정이 피어나도록 만드는 흙을 파내고 감정이 독처럼 퍼져나가는 것을 강제로 막는다.’
기록을 마친 진양은 부들부들 떨며 여인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의 얼굴에선 성스러운 빛이 흘러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진양은 눈을 감은 채 흑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머릿속에 강제로 새로운 생각을 떠올렸다.
도망치기 위해서도 아니고, 여자 수도사의 수단을 파해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이건 단순히 연구 결과를 검증하기 위한 것일 뿐.
사자결 두 번째 단계를 발동시키는 순간, ‘연구 결과 검증’이라는 생각이 빠르게 진양의 모든 생각을 침식해나갔다.
모든 감정을 강제로 억누른 진양은 검을 들어 자신의 가슴을 겨누었다.
흑검이 진양의 가슴을 뚫었다.
육신에는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의 역순대로 일전의 기억들이 빠르게 소멸되어갔다.
하지만 마음속에 떠오르는 기이한 감정들은 여전히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다.
그러나 진양의 기억이 시간 역순으로 소멸되며 ‘싸움을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하고, 본인의 정체는 되도록 드러내지 않는 편이 이득이다’라는 생각에 도달하는 순간.
진양의 마음속에 나타났던 눈물의 샘이 마침내 완전히 메말랐다.
마음속을 가득 채웠던 기이한 감정들도 마치 눈이 녹아버리듯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한 상태로 돌아왔다.
진양은 가슴에 뽑힌 검을 뽑아내고 지금까지 소책자에 빼곡하게 기록한 것들을 살펴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보인 건 단 한마디.
‘정신을 차리면 곧바로 도망갈 것.’
이것은 진양이 직접 쓴 내용이자, 진양이 잘라낸 기억이었다.
진양은 더 이상 여인의 기분 나쁜 얼굴엔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발목을 잡고 있던 모든 것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순간 곧바로 그곳에서 모습을 감췄다.
스스로 내린 판단에 대해서는 일말의 망설임도 필요 없었다.
한편, 여자 수도사는 진양이 속박에서 벗어나 사라지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얼굴은 점점 더 굳어갔다.
“쥐새끼 같은 놈!”
도대체 상대가 무슨 수로 자신의 속박에서 벗어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지난번에 만났던 자는 아예 그녀의 능력 자체가 통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엔 더 심각했다.
분명 효과가 있는 듯했으나 실제로는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걸려든 척 연기를 하던 상대는 속박에서 벗어나며 유유히 사라져버렸다.
그녀의 뒤에 있던 두 사람이 무언가를 하려는 순간.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손을 들어 그들을 막았다.
“필요 없다. 이미 멀리 도망쳤을 테니까. 상대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 우린 그를 찾을 수 없다. 이번 일로 오히려 경계심만 키우는 꼴이 됐으니, 앞으로 그를 붙잡는 일은 한층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겠지.
과연, 십성관은 다르구나. 특히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잡혀본 적 없다는 성은 성관은 더더욱 말이야.”
* * *
황해를 빠져나온 진양은 불가계 가장자리에 도달하고 나서야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몇 번이나 안전하다는 걸 확인한 뒤 소책자를 꺼내 빼곡하게 적혀진 기록들을 살펴보았다.
방관자의 입장에서 기록들을 살펴보고 있으니 상당히 수치스러웠다.
보고만 있어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느낌이었다.
마음속에 강렬한 악의가 끓어올랐다.
그 자리에서 상대를 베어버리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될 정도였다.
여기까지 생각한 진양은 붓을 들어 새로운 기록을 추가했다.
‘상대의 능력은 상대와 마주하고 있을 때만 효과를 발휘한다.
상대를 느끼지 못하거나 상대를 볼 수 없는 곳에서는 상대의 능력도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연구 기록을 통해 이것이 젊은 삼신의 능력과 비슷한 능력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다만 소녀의 능력은 피동적으로 발휘되는 방어 능력에 가깝기 때문에 위험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반면 여인의 능력 역시 피동적으로 발휘되는 능력인 건 맞지만 한 번 발휘되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그녀가 자발적으로 상황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피동적인 능력은 아마 그녀를 보자마자 악의를 품도록 만드는 능력이 분명하다.
현재 진양의 머릿속에는 악의를 품기 전까지의 기억만 남아있다.
이를 통해 추측해 보자면 악의를 품지 않는다면 그녀의 능력은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악의는 이어지는 다른 영향들을 싹 틔우는 일종의 토양 역할을 하는 게 분명하다.
그리고 악의는 상대에 대한 인상과 기존의 경험을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즉, 따지고 보면 모든 부정적인 영향을 싹 틔운 토양은 결국 자신의 기억이라는 뜻이다.
애초에 상대가 누군지 기억하지 못한다면 악의가 생길 여지가 없다.
나무를 벨 수 없다면 아예 나무가 심긴 곳을 파괴해버리면 된다.
다소 극단적이긴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이 정도면 앞으로 더 이상은 상대의 수에 넘어갈 일은 없겠지?’
일단 상대의 수에 걸리고 나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알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사전에 미리 방비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얻었다.
냉정한 진양 상태라면 아마 상대의 수에 걸려드는 걸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광폭 공법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마음만 먹으면 상대의 수를 미리 방어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이대로 그녀를 순순히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진양은 은원을 적어두는 소책자를 꺼냈다.
그리고 여인에 대해 문자로 기록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초상화까지 함께 남기는 ‘특별 대우’까지 제공했다.
하는 김에 그녀와 함께 있던 두 별종 녀석들도 함께 기록했다.
기록을 마치긴 했으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상대에게 악의를 품지 않는다면 상대의 수에 걸리지 않게 된다.
하지만 악의를 품지 않고 상대를 죽일 방법은 없다.
분명 살기를 품고 달려드는 순간 또다시 무방비 상태로 상대의 수에 걸리게 될 게 뻔했다.
모든 생명체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악의, 그것은 바로 상대의 생명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즉, 직접 나서서 상대를 죽이는 건 위험부담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진양은 다시 한번 소책자를 살펴보곤 조용히 집어넣었다.
역시 가장 안전한 방법은 상대와 직접 마주하지 않고 상대를 처치하는 것이다.
진양은 원래 그녀와 나누려고 했던 대화 내용을 머릿속에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옥간에 적었다.
이외에 상대에게 보낼 말도 함께 적었다.
그다음, 다시 황해로 돌아와 상고 지부의 말단 병사에게 옥간을 쥐여주었다.
* * *
옥간은 자연스럽게 여자 수도사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녀는 옥간을 손에 든 채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벌벌 떨고 있는 병사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노려보고 나서야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만 물러가거라.”
병사를 물리고 난 뒤에서야 옥간을 펼쳐 그곳에 적힌 내용을 확인했다.
‘확실히 우리 두 사람에겐 공공의 적이 있으니 서로에게 협력하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성의를 보이도록 하죠.
대신관 영감은 죽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죽지 않는다는 말이죠. 아마도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신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죠. 다음에 제 눈에 띄면 그땐 목을 비틀어버릴 테니까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