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1484
1484화 적합한 사람
살성은 처음 뱃사공이 되었을 때 수많은 망자들을 죽였다.
그로 인해 강제 노역 기간이 얼마나 늘었는지 가늠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
누군가를 바다 너머로 데려다준다면 그에겐 이득이다.
물론 데려다주지 않는다고 해도 단지 한 사람분의 이득을 포기하는 게 전부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진양은 살성의 배에 머무는 동안 살성이 사람들을 바다 너머로 데려다주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면서 뱃사공에게 고충이 있는지도 함께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양은 마침내 적합한 사람을 한 명 찾아냈다.
한 노인이 잔뜩 겁에 질린 채 갑판 구석에 서 있었다.
현재 갑판 위에 남은 사람들은 생전에 그보다 훨씬 더 강한 실력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다.
때문에 망자가 되어서도 시작점부터가 달랐다.
노인의 이름은 조호.
전생에 십방계의 사람이었던 자다.
그는 십방 신조 남쪽에 자리한 한 가문 세력의 장로급 정도 되는 인물이었는데, 전성기 시절에는 무려 법상의 경지에 올랐던 인물이다.
물론 십방계 내에서도 법상 경지는 고수의 축에 끼지도 못하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고수로 인정을 받았다.
그의 가문은 돌연 예기치 못한 변고를 당했다.
여기다 수만 년 전 있었던 반란 사건까지 함께 연루되며 처참한 말로를 맞이하게 되었다.
조호는 비록 가문 내에서 실력이 가장 강한 축에 속하진 않았지만, 가문의 전승을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그 누구도 그와 견줄 수가 없었다.
전형적으로 자신의 가문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노인이었다.
심지어 그는 죽어서도 이러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곧 집념이 되었다.
혹여나 가문의 혈맥이 끊어질까 봐 두려웠다.
혹여나 가문의 독문 공법이 실전될까 봐 두려웠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도저히 조상님의 낯을 볼 자신이 없었다.
망자의 세계로 온 그는 더욱 큰 두려움과 자책, 그리고 걱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는 정말로 자신의 조상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진양은 흡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가 찾던 게 바로 이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진양이 직접 그를 태우기로 결정한 게 아니었다면, 그는 배에 오를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줄을 선다고 해도 그의 차례는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해 뱃사공의 수는 매우 제한적이다.
이들이 아무리 쉬지 않고 움직인다고 해도 바다 건너로 실어나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환생부 거점에 도달한 자들 중 약자는 단 한 사람도 없는 것.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진양의 기운은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았다.
그의 외모도 매우 평범했다.
이곳에선 뱃사공의 강력한 기운이 작용하고 있었기에 모두들 숨조차도 크게 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용머리가 달린 나룻배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해에서 유명한 배였다.
단순히 가장 큰 배였기 때문이 아니다.
바로 배를 움직이는 뱃사공 때문이었다.
엄청난 살기를 내뿜고 있는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살초를 펼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동안 아무 이유 없이 그의 손에 의해 소멸된 망자의 수만 해도 배 하나를 꽉 채울 정도였다.
아직 배에 오르지 못한 망자들 중 극소수의 일부는 그가 용족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른다.
때문에 그저 얌전히 있는 수밖에 없었다.
고해를 건넌 진양은 계속해서 몰래 조호를 따라다니며 암암리에 그를 지켜주었다.
그가 환생부에 도달하기도 전에 누군가에 의해 죽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현재 망자의 세계는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자원이 없다고 해서 분쟁이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
자원으로 인한 분쟁과 시비로 인한 싸움을 아예 별개의 일이었으니 말이다.
생기를 되살리는 향을 가진 향나무만 봐도 그렇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누군가는 이것을 다른 이를 함정에 빠뜨리는 데 이용해먹고 있었다.
다리를 건넌 조호의 눈앞에 통천탑이 나타났다.
저곳을 통해 위로 올라가면 상고 지부의 환생부가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급하게 통천탑을 오를 생각은 없었다.
조씨 가문의 선조나 후손들이 남아있는지 살펴보고 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가 다리를 건너온 지도 어느덧 수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사방을 돌아다니며 수소문을 해봤지만 조씨 가문에 대한 소식은 들을 수가 없었다.
그는 크게 실망하며 절망에 빠졌다.
이곳에 있는 망자들을 통해 자신이 죽고 난 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선조를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한 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미 오래전에 이곳을 떠났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손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한 것은 납득할 수가 없었다.
아니, 만나긴커녕 아예 소식조차도 듣지 못했다.
이 정도면 거의 멸족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조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양의 보살핌을 받으며 무사히 환생부에 도착했다.
환생부에 도착한 그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우선 일생에 대한 조사부터 받았다.
그의 일생을 기록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진양이었다.
그러나 그는 진양이 누구인지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조호는 처음에는 차분하게 자신의 일생에 대해 얘기를 이어나갔으나, 죽기 직전에 있었던 일을 얘기할 때엔 점차 목이 메어가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건 저희 조씨 가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죄를 씌우려고만 한다면 어떻게든 구실은 만들어낼 수 있는 법이죠. 그래서 결국은 결단을 내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몰래 몇몇 사람을 빼돌리고, 족보를 파괴하여 혈맥을 유지시키기로 말이죠.
무사히 혈맥이 이어졌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허나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공법은 어쩌면 완전히 소멸되었을지도 모르겠군요…….”
진양은 그의 일생을 살펴보며 마음속으로 그를 판단해 보았다.
‘과연, 이만큼 적합한 사람은 또 없을 것 같군.’
혈맥이 정말로 끊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다.
오랜 시간 이어진 가문일수록 그 혈맥은 곳곳에 퍼져있는 법.
순수한 혈맥을 이어받진 못했어도 어쨌든 가문의 혈맥을 가진 이는 반드시 존재하기 마련이다.
즉, 직계 혈맥은 끊어져도 방계 혈맥은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도사와 범인이 뒤섞여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혈맥이 완전히 끊어지는 경우는 단 하나.
너무 가난해서 혼인을 하지 못하는 사람뿐이다.
당장 가난한 범인 하나를 골라 수십 대를 거슬러 올라가 살펴본다면, 그들의 조상은 한때 전부 떵떵거리며 살았던 사람들이다.
절대 굶어 죽을 일이 없는 그런 사람 말이다.
굶어 죽을 만한 사람들의 경우, 이들의 혈맥은 천 년은커녕 백 년조차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자손 대대로 위태롭게 살아가면서도 혈맥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질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
어쨌든 일생 조사를 마친 진양은 흡족스러운 얼굴로 소책자를 챙겼다.
조호에겐 조사가 끝났으니 별도의 소식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했다.
며칠 뒤.
기다리는 동안 부유섬 주변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조호는 돌연 지면에서 작은 빛이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곧바로 손을 뻗어 그것을 붙잡았다.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든 빛은 그가 알아볼 수 없는 것들로 변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는 그것이 ‘탁몽술’이라는 이름을 가진 공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혈맥을 연결고리 삼아 산 자의 세계의 꿈에 나타날 수 있는 공법이었다.
어떤 원리로 펼쳐지는 공법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펼치는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다시 환생부 근처로 돌아온 조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죽어서도 차마 내려놓지 못한 마음탓인지, 한 번 마음속에 일어난 불꽃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 정도의 고민 끝에 그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갑자기 어쩌다 이런 공법을 얻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눈앞의 기회를 날려버릴 순 없는 법.
설령 사라진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만일의 하나라도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공법을 통해 혈맥을 가진 후손을 찾게 된다면 불안했던 마음도 큰 위안을 얻게 될 것이다.
조호가 적당한 곳을 찾아 탁몽술을 펼치려는 순간.
진양은 몽사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그와 함께 꿈 세계 안으로 들어갔다.
탁몽술은 하나의 요청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 외에는 전부 몽사가 직접 처리해야 하는 것.
조호의 이성이 안으로 빨려들어 오며 하나의 몽경에 갇히게 되었다.
몽사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수백 개의 몽경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전부 조호라는 노인과 직접적으로 혈연관계를 가진 자들입니다. 깊은 잠에 빠져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은 이게 전부입니다.”
“알겠습니다. 다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일단은 처음이니까 제가 적절한 사람을 골라보도록 하죠.”
* * *
장씨는 조악하게 만들어진 나무 침대에 누웠다.
주변에 시큼한 땀 냄새가 가득했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스르륵 잠이 들었다.
너무 지친 탓에 세수를 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최근에 광산 안에서 새로운 지맥을 찾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자금(紫金)색을 띠고 있는 광석을 하나 파내게 되었다.
다만 그곳은 지하로 이어진 동굴을 따라 무려 수십 리나 들어가야만 하는 곳이었다.
온전히 운에만 모든 것을 맡겨야 하며, 효율은 최악이면서 위험한 채광 방식이었다.
수도사들은 결코 거들떠보지도 않을 방식이었다.
이런 곳에 힘이나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고, 또 쓸데없는 모험을 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인력을 가진 범인의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런 금속 광맥에 눈독을 들이는 자들이 고수이거나 대형 세력에 속한 존재일 리가 없다.
광산을 소유하고 있는 건 한 작은 상단.
축기 수도사조차 고수로 칭송받을 만큼 작은 상단이었다.
장씨는 이름이 없다.
그가 가진 건 성이 전부.
그는 오늘도 광산에서 뜻밖의 변고를 당하거나 생매장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하루를 마칠 수 있었다.
이것이 그의 가장 평범한 일상이었다.
모든 것이 평소와 같았다.
그러나 꿈을 꾸기 시작한 순간부터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