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375
375화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숨겨
진양은 자세히 살펴보았다.
아픈 아내를 업고 있는 남자였다.
한편, 십 리 밖에서 진양과 최양평을 바라보는 남자의 표정도 진양과 같았다.
이런 곳에서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멀리서 두 사람을 응시하던 남자는 손을 검처럼 가볍게 휘둘렀다.
황금빛 검기가 모여들며 뿜어져 나온 예리한 기운과 그 기운에 의한 강렬한 바람이 만들어졌다.
마치 무수히 많은 칼날로 변해 모든 것을 휩쓸어버릴 듯한 모습이었다.
꽤 멀리서도 느껴지는 날카로움이었다.
현재의 실력으로 저기 스치기라도 했다간 온몸이 찢겨나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멍하게 서 있던 최양평이 남자의 기운을 느끼자마자 빠르게 진양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기운을 방출했다.
우웅-
순간 주위에 정적이 찾아왔다.
바람에 의해 일어난 검은 재들은 또 다른 기운에 의해 허공에서 멈춰버렸다.
“스승님, 그러시면 안 됩니다. 저쪽은 제 친구라고요.”
진양이 황급히 그를 말렸다.
두 사람의 반응은 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를 만난다면 당연히 경계하고 기운부터 끌어올리는 게 정상이니까.
보통 평범한 수도사들이라면 서로가 서로를 해칠 의도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난 뒤 기운을 거두고 자신이 갈 길을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남자든 최양평이든 양쪽 모두 평범한 수도사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무엇보다 최양평은 정신이 오락가락한 사람이었다.
괜히 남자가 자신의 제자를 해치려 한다고 오해하기라도 했다간 엄청난 싸움이 벌어지게 되고 말 것이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남자를 노려보던 최양평은 진양의 말에 곧바로 기운을 거두었다.
“우리 명철이, 언제 친구도 사귀었구나. 장하다…….”
최양평의 반응에 진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멀리 서있는 남자를 향해 포권을 취했다.
“악의가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닙니다. 작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스승님께서 조금 아프시거든요.”
진양은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말했다.
남자는 헤벌쭉 웃고 있는 최양평의 모습을 힐끔 바라보고는 기운을 거둔 뒤 아무 말 없이 뒤돌아 떠나버렸다.
남자가 멀리 사라지고 나서야 진양은 완전히 마음이 놓였다.
‘그나저나 정말 과묵한 인간이군. 나였으면 적어도 이름이 뭔지, 여기엔 왜 왔는지 정도는 물어볼 텐데 말이야.’
하지만 문득 목적까지는 물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양이 이곳에 온 목적이 다른 이들과 겹칠 리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남자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는 진양의 표정을 밝지 않았다.
그가 향한 방향과 발자국이 이어진 방향이 완벽히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대략적인 방향은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전에 성지에서 들었듯 남자의 목적이 암야우담화(暗夜優曇花)라는 건 확실했다.
많은 이들이 그를 비웃긴 했으나 어쨌든 그에겐 확실한 목표가 있다.
때문에, 목표를 제외한 다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암야우담화를 찾아 흑림해에 여러 번을 들어왔는데 매번 빈손으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몇 번이나 들어와서 빈손으로 돌아갔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무엇보다 이곳의 환경을 확인한 진양은 이곳이 고대 상부 지부의 조각이라는 것을 더욱 확신했다.
그리고 암야우담화는 상고 지부 환경에서만 자라는 영약이었다.
여러 조건들을 종합한 결과 진양은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설령 암야우담화는 찾을 수 없을지라도 상당히 믿을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족적이 이어진 방향을 바라보며 장해도군도 혹여나 당시 암야우담화를 찾아 이곳으로 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진양은 우선 이 생각은 접어두기로 하고 고개를 돌려 지금까지 온 길을 돌아보았다.
이전에 지나간 귀신 무리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남자가 진양보다 늦게 이곳에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현재 진양보다 앞서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귀신들과 만나고 환경의 변화를 겪으며 꽤 많은 시간을 허비한 듯했다.
이전에 마주했던 기이한 상황도 떠올리며 진양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스승님, 잠깐 할 일이 있어서요. 저 좀 보호해 주세요.”
말을 마친 진양은 곧바로 가부좌를 틀며 몸속으로 들어갔다.
지부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지금으로선 검둥이뿐이었다.
그는 본래 상고시대에 살았던 존재고,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상고 지부의 사람들과 엮였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지부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검둥아, 나와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얼른 나와 보라니깐. 네 고향에 도착했다고.”
“고향? 그게 무슨 소리야?”
검둥이가 마수 위로 떠오르며 경계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상고 지부의 어느 한 조각에 위에 있거든. 얼마 전에 만난 황천 뱃사공의 도움을 받아 강을 건너서 여기까지 오게 됐는데, 여기 와서 수많은 귀신들이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걷는 장면이랑 거대한 기둥에 달려들어 잿더미가 되는 모습을 보게 됐어.
어때? 이 정도만 얘기도 충분하지?
아, 맞다. 그리고 길을 따라 걷던 귀신 무리 중에 내가 아는 사람의 모습으로 날 유혹하려던 귀신도 있었어. 괴이한 힘으로 날 끌어당기는데, 하마터면 나도 그 무리 속으로 달려들 뻔했지 뭐야.”
“용케도 살아남았군.”
검둥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네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확실히 상고 지부의 땅으로 들어온 게 맞을 거야. 게다가 이곳이 상부 지부의 어느 한 조각 위라면 지부는 완전히 산산조각 난 상태로 흩어져있다는 얘기일 텐데. 그렇다면 어딘가에 조각이 쌓여있는 곳도 있을 거야.
그나저나 운이 좋군. 네가 본 건 상고 지부에서 행해지는 형벌 중 하나야. 그걸 보고도 살아남았다는 건 지부가 완전히 붕괴되었다는 뜻이지. 예전 같았으면 뼈도 못 추렸을 거라고.”
“그럼 내가 본 게 지옥이란 말이야?”
“뭐, 틀린 말은 아니네. 상고 지부의 뜻을 거스른 생령들에겐 지옥이나 마찬가지인 곳일 테니.
그들은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이곳에서 영원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는 거야. 수만 년, 혹은 수십만 년 동안 형벌이 모두 끝날 때까지 말이야.”
“끝나면 모두 석방되는 거야?”
“그럴 리가.”
검둥이가 피식 웃었다.
“상고 지부가 그렇게 만만한 곳일 리가. 상고 지부는 엄한 형법으로 죄인을 다스리는 걸로 유명한 곳이라고.”
검둥이의 표정이 한층 더 진지해졌다.
“진양,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는 게 좋을 거야.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형벌을 받는 귀신들을 직접 목격했다는 건 주변에 지부의 병사들이 있다는 뜻. 괜히 들켰다간 좋은 꼴은 못 볼 거야. 적어도 침입자인 너에게 친절하게 굴 리는 없을 테니까.”
“그건 안 돼. 볼일이 있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물러날 순 없지.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끝장을 봐야지.”
검둥이의 협박성 짙은 말에도 진양은 굽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내를 업고 있던 그 남자, 그는 아내와 함께 이곳에 이미 수십 번도 더 들어와 본 적이 있는 듯했다.
그와 아내 모두 무사한 것으로 보아 이곳이 위험한 곳이긴 해도 반드시 죽게 될 정도로 위험한 곳은 아닌 듯했다.
“아, 혹시 암야우담화라고 들어봤어?”
“상고 지부에 살았던 사람치고 암야우담화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걸. 게다가 암야우담화는 내 아버지께서 가장 좋아하시던 꽃이라고. 암야우담은 만 년에 한 번 그 모습을 드러내며, 천 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고 하지.
꽃을 피우는 건 한순간에 불과하지만, 활짝 핀 모습은 천하에서 제일가는 아름다움이라고 해. 일생에 한 번 보는 것조차 엄청난 운이 따라줘야 한다고들 하지만, 예전에 운 좋게 한 번 본 적이 있긴 했었지…….”
잠시 과거의 회상에 잠긴 듯하던 검둥이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잠깐, 설마 여기 암야우담화가 있다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그건……. 아니지. 아까 분명 귀신을 잿더미로 만들던 거대한 기둥을 봤다고 했지?
그렇다면 주변에 재가 잔뜩 깔려있을 거고. 그게 사실이라면 이곳은 암야우담화가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라는 말인데…….”
검둥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과 함께 잔뜩 자세를 낮추며 물었다.
“진양, 이미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보통 외부인이 함부로 지부 범위 내로 들어오게 되면 온갖 제약을 받게 되기 마련이거든. 혹시 느껴져?”
“맞아. 온몸의 진원이 몸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짓눌려있는 느낌이야.”
진양은 솔직하게 자신의 느낌을 얘기했다.
“지부의 공법을 익힌 사람이 아니라면 모두가 예외 없이 제약을 받게 되지. 그나마 몸 안으로 진원을 흐르게 만들 수 있는 것도 네 육신에 나의 힘이 깃들어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그리고 진원 안에 나의 힘이 연화되어 있기 때문에 일부의 공법이라도 쓸 수 있는 거고. 그게 아니었다면 정말로 아무것도 못 했을걸.”
진양은 검둥이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최양평도 제약을 받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는 옆에 있는 진양조차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진양처럼 완전한 제약을 받는 건 아닌 듯했다.
아무래도 황천비전을 익힌 덕분에 일부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듯했다.
그런데, 아내를 업고 있는 남자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마치 저 홀로 제약에서 자유로운 모습이랄까.
“진양, 내 힘을 쓰면 되잖아. 마수를 완전히 연화시키면서 나의 힘을 쓸 수 있게 됐잖아. 설마 잊은 거야? 나의 힘은 여기선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다고.”
검둥이는 은근슬쩍 자신의 힘을 사용하도록 달콤한 말로 유혹했다.
그러나 진양은 녀석의 의도를 곧바로 알아차리곤 그를 한참 동안 째려보았다.
마수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다는 건 이미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검둥이 녀석도 마수의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마수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첫 번째 권한자가 진양이라면 두 번째 권한자는 검둥이이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진양은 마수의 힘을 간접적으로 빌려 사용할 뿐, 절대로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았었다.
진양이 실망 가득한 한숨을 쉬며 말했다.
“검둥아, 그래도 꽤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며 친구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굳이 이런 식으로 날 속여야겠니? 그것도 티 팍팍 내면서 말이야.
정말 실망이구나. 그냥 서로 좀 더 마음을 열고 서로 솔직하게 대하면 안 되겠니? 난 그동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네 의견도 묻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동의를 구했었잖아. 불골금신 때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근데 넌 왜 날 속이려고만 하는 거야?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숨기는 거야? 원하는 게 있으면 솔직하게 얘기해 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