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25
425화 모든 것이 계획대로 돌아가다
“합환문의 요녀를 거두다니. 의외로군.”
“아닙니다. 그냥 부하로 데리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녀는 못 믿겠다는 듯한 눈치였으나, 그렇다고 ‘깡마른 건 제 취향이 아니라서요’라는 말을 할 것까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볍게 부정하고 말았다.
“제법이군.”
화요는 진심으로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과찬이십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양에게 칭찬하지 않던 그녀가 처음으로 칭찬을 꺼냈다.
즉, 진양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느 정도 부드러워졌다는 뜻이었다.
그렇단 말은 곧 앞으로의 일도 훨씬 더 순조로워질 것이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경매가 끝난 뒤에도 진양은 흑여 마을에서 계속해서 머물렀다.
진양은 옥선을 꺼내 가슴에 달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보았다.
이틀 후, 정오.
진양은 여전히 심실에 있는 서심고를 살폈다.
성수가 곁에 없어서 그런 건지 상당히 대담해진 모습이었다.
평소에는 동글게 몸을 말고 숨어있던 녀석이 정오만 되면 몰래 진양의 기혈을 갉아먹었다.
그리곤 재빨리 다시 원래대로 몸을 동그랗게 말아버렸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진양은 일부러 모른 척하며 놈이 자신의 기혈을 갉아먹도록 놔두었다.
어차피 그 양도 미미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오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변화가 느껴졌다.
가슴에 달려 있는 옥선에서 기이한 힘이 뿜어져 나와 심실에 있는 서심고에게 흡수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서심고는 생기가 끊어져 버렸다.
이때, 옥선을 쥐고 확인을 해 보니 습득이 가능한 상태로 확인되었다.
진양은 옥선을 연화시켰고, 그다음으로는 서심고의 시체를 꺼냈다.
그리곤 웃으며 그것을 챙겨 넣었다.
“역시 내 생각대로야. 정오에 서심고가 발작할 때 서심고를 죽이는 기능이 들어있었군. 만약 생기가 연결되어있었다면 나 역시 죽음을 맞이했겠지. 하지만 아무리 조사를 한다고 해도 옥선에 문제가 있다는 건 발견하지 못했을 거야.
게다가 서심고의 발작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그 고통은 더해지게 될 거고. 고통을 참지 못하고 이성을 잃은 내가 스스로 서심고를 죽이게 되면 더욱 완벽해지게 되는 거지.
보아하니, 그 편지의 문제는 단순히 현여 사람이 왔는지 확인하기 위한 거군. 편지를 꺼내 현여 사람에게 건네주고, 다음날 내가 죽어버렸다면 스승님도 그 충격을 버텨내진 못했을 거야.”
진양은 서심고의 시신을 연화시킨 뒤 나무 상자에 담아 보관했다.
의자에 누워 멀리 보이는 대나무 숲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해지는 기분이었다.
진양의 연기는 여기까지였다.
이제 남은 건 다른 사람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배후의 인물이 황천 종주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상대가 그토록 바라던 혼란은 이제 곧 시작될 것이었다.
이번에는 맥주 몇 명 죽는 정도로 끝나진 않을 것이었다.
아랫사람들이 얼마나 죽어 나가든, 판국에는 별다른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었다.
이때, 굵직한 인물들이 모두 중상을 입어 빈사 상태에 빠지게 되는 국면이 찾아오게 되고, 그리고 이는 상대에겐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이었다.
상대는 결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누가 이 승리의 과실을 취할 것인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물론 그게 누가 되었든 취하는 자는 반드시 죽게 되겠지만.
* * *
대외적으로는 사망한 상태이기 때문에 진양은 더 이상 직접 나설 수가 없었다.
이 소식은 그 누구도 나서서 퍼트린 건 아니지만, 극소수의 인원들은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이날, 안개 자욱히 깔린 대지에 커다란 이변이 일어났다.
수천 리 넘게 깔린 숲속에서 독충들이 새까맣게 몰려들며 하늘로 날아올랐고, 마치 먹구름과 같이 햇빛을 가렸다.
숲속에 있던 각종 괴수들은 깜짝 놀라 죄다 굴로 숨어버렸고, 근처에 있던 여족들도 새하얗게 질린 채 멀리 도망쳐버렸다.
이쯤 되면 다른 가문이나 문파가 전부 무너져가는 와중에도 오직 여족 홀로 남만 땅에 뿌리를 내리고 오랜 세월 동안 살아올 수 있던 비법을 알 수가 있었다.
여족은 흑여, 백여, 그리고 현여 세 부족 덕분에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백여는 생명을 지배하여 죽음을 내쫓고, 흑여는 죽음으로 가까이 갈수록 생명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들 중 가장 무시무시한 건 전투력이 한참 뒤처지는 현여였다.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남만 전체를 삼켜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자욱하게 깔린 안개, 득실거리는 뱀과 독충들.
전부 현여가 직접 다스리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들은 이것들을 부려 소리소문없이 조용히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능력은 적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공포와 압박으로 다가왔다.
현재 독사와 독충들이 대지를 뒤덮고 있었다.
이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쥐새끼 한 마리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날개 달린 독충들이 휩쓸고 지나간 허공에는 새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었다.
땅에 깔린 독충 사이로 무려 삼천 장이나 되는 거대한 독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놈은 크게 입을 벌린 채 오랜 세월 동안 쌓인 독 서린 안개를 몽땅 들이마셨는데, 그 기세에 심지어 여족마저도 뒤로 물러설 정도였다.
마침내, 모두가 과거 현여에게 지배당할 때의 공포가 무엇인지 떠올리게 되었다.
단순히 강력한 힘을 가진 고수들끼리의 싸움이라면 현여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떼거지로 휩쓸고 지나가며 적을 섬멸시키는 것으로는 남만에서 현여를 따라올 자가 아무도 없었다.
현여의 힘은 대규모 전투에서 비로소 그 빛을 발한다.
현여는 폭발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 줄기의 황천대하(黃泉大河)가 허공을 가르며 날아와 지면으로 쏟아져 내렸다.
강물엔 온갖 귀신들이 뒤섞여 귀곡성을 내지르고 있었고, 이로 인해 기상 이변이 일어나며 하늘이 누렇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실력 약한 자들조차도 수천 리 밖에서 여파를 느낄 수 있었기에, 강자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남만 땅 전체를 통틀어 황천 비전을 이러한 경지까지 사용할 수 있는 사람.
얼마 전에 죽은 황천 맥주를 제외하면 현재로선 최양평이 유일했다.
지금 현여 사람들과 싸우고 있는 게 누군지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전투는 한 시진가량 이어졌고, 최양평의 패배로 막을 내렸다.
그 누구도 전투가 정확히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바람을 타고 흘러온 기세와 여파로 보아 양쪽 모두 진심으로 화가 많이 난 듯했다.
전투가 끝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이 소식은 남만의 각 대형 세력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다.
이들은 곧바로 어떻게 된 일인지 조사에 착수했고, 금세 진양이 서심고에 감염되었다는 사실과 최양평이 그를 데리고 여족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뒤의 일은 더 이상 조사할 것도 없었다.
진양이 여족 마을에서 숨을 거두자 화가 난 최양평의 눈이 돌아가 버린 게 분명했다.
그러나 여족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에 대해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최양평이 이런 일을 벌이는 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남만 전체를 통틀어 최양평의 성질머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과거 명철이 죽었을 때 이미 충분히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진양이 서심고에 감염되어 죽었는데 최양평이 가만히 있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지하 궁전 내부.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뒷짐을 진 채 지도 앞에 서 있었다.
그의 뒤로 그와 같은 검은 옷을 입은 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대인, 현재 상황은 방금 보고드린 바와 같습니다. 일단 저희 쪽 사람들은 전혀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양평, 그 미치광이가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현재 현여는 접근하는 모든 자들을 적아(敵我) 불문하고 전부 베어버리고 있습니다. 그 바람에 어렵사리 적여에 심어두었던 첩자가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하하!”
뒷짐을 진 남자는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마음에 드는구나. 현여 놈들, 이젠 같은 여족에게까지 칼을 들이대다니. 보아하니 제대로 화가 난 모양이구나. 최양평,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구나. 모든 것이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어. 하하하!”
그는 상당히 흡족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 * *
“실수? 그게 무슨 소리냐?”
흑여 마을 내에 있는 한 대나무 가옥.
포단에 앉아 차를 홀짝이던 흘누가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화요 어르신께서 직접 독충 군단과 안개를 다스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미처 말릴 틈도 없었습니다. 여족 사람들 전부 겁대가리가 없는 건지 멀리 도망가기는커녕 오히려 구경하겠다고 밑도 끝도 없이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
흘누는 황당하다는 듯 진양을 쳐다보았다.
이 정도 규모의 난리가 벌어지면 여족 사람들은 금세 눈치를 채는 편이었다.
심지어 여족 아이들마저 위험을 느낄 정도였다.
다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데, 현여의 무서움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여족 사람들이 구경 같은 미친 짓을 벌이다니.
게다가 죽은 자는 실력도 꽤 있는 자였다.
“어르신, 여족 사람들은 절대 매수되지 않는다고 하셨잖아요. 여족 사람이 멍청하게 전장 가까이 다가갔는데, 적여 사람들은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어르신이 오히려 불평을 늘어놓고 계시네요.”
“아, 도저히 믿기질 않는구먼.”
흘누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적여는 외부인들과의 접촉과 교류가 잦은 편일세. 흑여와 백여, 그리고 현여 모두 오랫동안 그들을 방치해 두었고 말이야. 이런 상황이 벌어지다니. 우리도 책임이 있어…….”
“남은 일은 더 이상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겁니다. 시작은 완벽했으니 남은 건 상대가 알아서 잘 이끌어가는 걸 구경하면 됩니다.”
“걱정 마시게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일세. 노부와 백여 장로 모두 직접 만나보았다네. 큰 문제는 없을 걸세.”
이어서 며칠간 상황은 손바닥 뒤집듯 급작스러운 변화를 겪었다.
진양이 딱히 신경 쓸 건 없었다.
알아서 상황을 이끌어갈 사람들은 널려있었기 때문이었다.
간신히 평온을 되찾았던 남만 땅은 다시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중상을 입은 최양평은 황천마종으로 돌아갈 여유도 없이 곧장 적당한 곳을 찾아 폐관 요양을 시작했다.
대신 편지를 통해 이제껏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종문에 알렸다.
덕분에 어째서 현여 사람들이 잔뜩 화가 난 것인지, 알 사람들은 전부 알게 되었다.
최양평은 현여에서 우연히 현여 성수가 쓸모 있을 거라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래서 종주가 준 편지를 가지고 최대한 저자세로 나오며 부탁을 했다.
그러나 현여 사람들은 단칼에 이를 거절한 것으로도 모자라 마종 종주까지 깡그리 묶어서 모욕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