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487
487화 서신이 폭발하다
“어허, 그러지 말고 계 형도 한번 도전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천 년에 한 번 있는 기회인데. 운 좋게 뽑힐지도 모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진양의 눈앞에 있는 수도사의 이름은 화락.
이름만 들으면 어디 골방에 틀어박혀 책이나 볼 것 같은 서생일 것 같으나 사실은 오랜 시간 고행을 이어온 전형적인 연체 수도사였다.
그대로 드러난 그의 상반신 곳곳에는 산전수전 다 겪은 흔적들이 뚜렷했다.
외모도 오십을 넘긴 중년의 모습이었으나, 경지로 보아 실제로는 겨우 서른 살 정도에 불과할 것이었다.
고행을 하면 누구든 이렇게 폭삭 삭아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하하, 사실 지금 만나러 가는 친척이 오행산의 사람이라서요.”
“쉿!”
화락이 기겁하며 진양의 입을 틀어막았다.
다행히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화락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과 함께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목소리 낮추세요. 설마 오행산에 친척이 있다고 해서 시험 없이 입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오행산을 크게 얕잡아보는 겁니다. 오행산은 연체 수도사들의 성지인 만큼 매우 엄격한 규칙이 존재하는 곳입니다. 애초에 아무것도 없는 시절부터 오행산에 입산한 제자들조차 매년 꽤 많은 수가 방출됩니다.
우리 같이 중간에 오행산에 입산하려는 자들에겐 더욱 엄격한 규칙이 적용됩니다. 특히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건 결코 용납되지 못하죠. 시험에서 낙방한다면 설령 장문인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결코 입산할 수 없을 겁니다.
방금 계 형이 한 그 말, 이건 엄청난 발언입니다. 단순히 계 형만 화를 당할 게 아니라 계 형의 친척까지 같이 화를 당할 수도 있다고요.”
“괜찮습니다. 애초부터 오행산에 입산할 생각은 없었거든요. 전 그냥 친척을 방문하러 온 것뿐입니다.”
“아,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진양이 피식 웃으며 상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남 걱정 말고 시험에 집중하세요. 제가 봤을 때 화 형은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충분히 입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양은 화락이 꽤 마음에 들었다.
그나마 이곳에 와서 만난 사람 중에선 가장 순수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진양은 진심으로 그가 오행산에 입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다.
물론 자신은 부정행위나 저지르는 파렴치한에 불과하긴 하지만.
진양은 애초부터 시험을 볼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그렇다고 장문인을 찾아갈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장문인을 찾아가 봐야 딱히 방법은 없을 듯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양은 장문인의 스승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흘누가 주었던 추천서.
그것은 바로 오행산의 현임 장문인의 스승인 오행산의 전임 장문인에게 전달하기 위한 추천서였기 때문이었다.
오행산에 입산할 수 있을지, 그리고 진파경전인 오신보경을 익힐 수 있을지.
지금 당장은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진양은 이런 것에 크게 집착하지 않았다.
애초에 폭풍을 피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특별히 신경 써준 흘누의 호의를 무시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행산과 가까워질수록 이곳은 다른 곳과는 확연히 다른 곳이라는 게 느껴졌다.
영기의 활동이 상당히 활발했고, 가까워질수록 날씨가 점점 더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심지어 아직 산문까지는 천 리나 더 남아있었으나, 날씨는 이미 범인은 살 수 없을 정도의 수준까지 높아졌다.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구덩이 안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계 형, 그리고 보니 한 가지 잊고 얘기해주지 않은 게 있네요.”
화락은 그제서야 생각났다는 듯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사실 여기부터 이미 첫 번째 시험이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앞으로 나아갈수록 날씨는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거든요. 만약 화행 연체지법을 익혔다면 어렵지 않게 산문까지 나아갈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은 없습니다. 이곳에서 수련하면 경지가 빠르게 증가하니까요.”
“사람을 거르기 위한 거군요?”
가볍게 주위의 뜨거운 공기를 들이마셨지만 별다른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렇습니다. 매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만큼 어중이떠중이들이 섞여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계를 설치하여 실력이 미달하는 자들은 자연스럽게 걸러지도록 만든 것입니다. 계 형, 혹여나 다른 연체 공법을 익히셨다면 다른 길도 있으니, 그곳을 통해 오행산으로 가시면 됩니다.”
“아, 괜찮아요. 다섯 가지의 연체 공법을 전부 다 익혔거든요.”
“네? 아……. 네.”
화락은 무언가 말하려고 했으나 이내 단념한 듯 입을 닫아버렸다.
누가 봐도 진양의 말을 허풍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뭐,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던 것도 아니고.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하지 뭐.’
앞으로 나아갈수록 열기는 더욱 강해져 갔다.
금방이라도 대기가 끓어오를 듯한 열기였다.
그러나 각자의 실력에 따라 느껴지는 열기는 달랐다.
화락의 피부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비록 최대한 버티려 했으나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꽤 많은 양의 기력을 써야만 간신히 버틸 수 있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진양은 아무렇지 않은 모습이었다.
심지어 그의 몸에는 얇은 화염까지 올라와 전신을 뒤덮고 있었음에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잠시 뒤.
산문에 도착한 진양은 시험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다른 이들처럼 줄을 서지 않고 곧바로 방문객을 응대하고 있는 제자에게 다가갔다.
“산겸 대인께 전해드릴 서신이 있어서 직접 찾아왔습니다. 가서 전갈을 넣어주시겠습니까?”
“시험을 보러 왔으면 정직하게 봐야지. 그런 수작질이 먹힐 것 같소? 그리고 오행산에 산겸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소이다.”
제자는 인상을 팍 쓰며 귀찮다는 듯 진양을 쫓아내려 했다.
“뭐, 당신 같은 조무래기는 모를 수도 있겠군.”
진양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가 싶더니 갑자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우뢰와 같은 사자후를 터트렸다.
“산겸 대인, 계무도입니다! 전해드릴 서신이 있어 직접 찾아뵙기 위해 왔습니다!”
엄청난 사자후에 놀란 오행산 제자들이 쌩- 하고 달려와 진양을 중간에 둘러쌌다.
그러건 말건 진양은 태연한 얼굴로 기다렸다.
잠시 뒤.
한 줄기의 빛이 멀리서 날아와 진양의 앞에 착지했다.
근육질 몸매를 가진 붉은 머리의 남자였다.
“방금 소리를 지른 건 당신이오? 서신은 어디 있소?”
진양은 품속에서 서신을 꺼내 상대에게 건넸다.
상대는 서신을 천천히 살폈다.
봉투엔 큼직하게 ‘늙다리 산겸 친전(親展, 직접 뜯어보라는 뜻으로 편지에 쓰는 말)’이라고 쓰여있었다.
진양을 바라보는 붉은 남자의 시선이 바뀌었다.
산겸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원로급 정도 되는 나이 든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심지어 종문 내의 제자들도 이름은 모른 채 그저 ‘태상장로’라고만 불렀을 뿐이었다.
태상장로의 이름 앞에 감히 ‘늙다리’라는 수식어를 붙여 쓸 수 있는 건 오직 그의 오랜 친구밖에 없었다.
즉, 이 서신을 보내온 사람이 산겸과 동급의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붉은 머리의 남자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주위의 제자들을 물렸다.
그리고 한층 공손해진 태도로 진양을 안내했다.
“소협, 그럼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진양은 대전이 한참 시작되기에 앞서 큰 소란을 피웠다.
그래서 적어도 다리 한쪽 정도는 부러질 각오를 했었다.
붉은 머리의 남자 역시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주위에 있는 사람을 보니 진양이 이해가 됐다.
정말로 다급한 일이 있는데 대전에 참여하기 위해 몰려든 인파에 길이 막혀버렸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닌 전임 장문인인 태상장로를 찾아왔다.
그러니 결코 그를 방치해 놓을 순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진양은 안내를 받아 산문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도 한 시간 정도를 더 걸어 들어갔다.
거울처럼 잔잔한 호숫가 옆으로 긴 복도가 깔려있었다.
그리고 복도 끝에 위치한 정자에선 진양의 허벅지보다 굵은 팔뚝을 가진 노인이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정자 앞에 도착하자 진양의 손에 들려있던 편지가 스스로 노인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노인이 두 눈을 뜨는 순간 엄청난 중압감이 주위를 짓눌렀다.
마치 거대한 산과 마주한 느낌이었다.
진양의 입에서 나지막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비록 허리는 꼿꼿하게 세우고 있었으나 두 다리는 무려 세 뼘이나 땅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노인에게 흘러나온 기운은 점점 더 강해졌다.
진양은 어쩔 수 없이 압력을 이겨내기 위해 기혈을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콰광-!
지면이 울렸다.
진양과 함께 온 붉은 머리의 남자는 익숙하다는 듯 망설임 없이 뒤로 물러섰다.
이어서 진양이 서 있는 곳을 중심으로 방원 백 장 내의 땅이 움푹 들어갔다.
깨끗이 깎인 옥돌과 같이 정리된 지면은 금속과 같은 광택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강력한 힘에 의해 짓눌리며 압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진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수개월 간의 고행은 단순히 기질의 변화를 이루어내기 위함만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한 층의 얇은 화염이 진양의 몸으로 피어올랐고, 꿋꿋이 선 진양이 강력한 압력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연체 수도사의 길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비록 공법은 여러 갈래로 나뉘긴 하지만 대부분은 간단하면서도 무식하게 육신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
특히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지고 있는 연체 수도사라면 오직 강력한 힘만을 유일한 방법으로 여기는 사람일 가능성이 컸다.
눈앞에 있는 진양의 허벅지보다 더 굵은 팔뚝을 가진 노인도 아마 그런 종류의 사람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자신 역시 육신의 힘으로 받아쳐 주는 수밖에.
가해지는 압력은 점점 더 강해졌다.
진양의 이마에선 푸른 핏줄이 꿈틀거리기 시작했고, 육신의 힘이 극한으로 발휘되며 온몸의 근육이 팽창하기 시작했다.
콰광-!
지면은 강력한 압력을 건드리지 못하고 박살 나버렸다.
단단한 금속과도 같던 지면이 압력에 의해 무려 수백 장이나 되는 거대한 구덩이로 변해버린 것이었다.
진양의 다리는 이미 절반 이상이 지면으로 빨려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여전히 꿋꿋이 버텨내고 있었다.
노인이 눈을 한 번 깜빡이자 무시무시한 압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어서 노인 곁에 있던 남자가 피식 웃으며 한마디 했다.
“스승님, 매번 꼭 이런 식으로 시험을 하셔야겠습니까? 이전에는 이 근처에 수천 개도 더 되는 봉우리가 있었는데 전부 다 스승님 때문에 평지가 되어버렸잖습니까? 이만 고정하시지요.”
“하하하!”
노인은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구덩이 한가운데 꿋꿋이 서 있는 진양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곤 흡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늙다리 녀석, 못 본 사이에 그래도 철이 좀 든 모양이군 그래. 적어도 아무것도 못 하는 약골을 보내진 않았어.”
산겸이 봉투를 뜯어 서신을 꺼내자 그 즉시 무시무시한 기운이 터져 나왔다.
산겸이 앉아있던 정자는 그대로 폭발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조각은 멀리 날아가지 않고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사방에 먼지가 비산했고 튀어 오른 돌조각으로 인해 수면에 물결이 일어났으나 마찬가지로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모두 그대로 멈춰있었다.
진양과 산겸의 제자 역시 제자리에서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얼어붙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