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563
563화 대제희의 사람
위흥조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는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 황천민을 감쌌다.
“폐하, 황 대인께선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할 능력이 없는 상태이옵니다.”
“위 대인, 그게 무슨 말이오?”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황천민을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단 말인가!
“여기 새겨진 이 글씨. 이건 저주에 걸린 겁니다. 이 저주는 고대의 강자가 자신의 능침을 도굴하지 못하도록 걸어둔 일종의 수단인데, 능침을 도굴하기 위해 침입하는 경우 이와 같이 저주에 걸리게 됩니다. ‘천지’라는 글자가 나타난 것으로 보아 풍수 술법에 능숙한 강자의 능침을 도굴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이냔 말이오! 형부 상서나 되는 사람이 남의 능침을 도굴했단 말이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전 그저 저주에 대해 설명해드린 것일 뿐입니다. 한때 정천사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긴 했었습니다만, 황 대인의 몸에 새겨진 저주에 비해서는 상당히 약한 저주였었습니다. 게다가 관인(官印)을 하사받기도 전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으로 보아 저주가 황 대인의 길을 완전히 막아버린 것 같습니다. 이 상태로 강제로 관인을 하사받게 된다면 아마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하실 것입니다.”
말을 마친 위흥조는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한편, 영제는 ‘풍수’라는 말을 듣자마자 이미 모든 결단을 내렸다.
신조의 기운까지도 막아설 정도의 저주라니.
물론 강제로 저주의 기운을 누르고 관인을 하사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랬다간 황천민이 얼마 가지 않아 죽고 말 것이었다.
무엇보다 풍수 술법은 국운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현재 신조의 상황에서는 황천민을 위해 힘을 쓸 여력이 없었다.
영제의 본체는 일념의 바다에 갇혀버렸고, 아직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데리고 나가라!”
영제가 단호한 목소리로 명을 내리자 주왕도 더 이상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조회는 이만 여기서 마치도록 한다.”
그렇게 흉흉한 분위기 속에 조회가 끝났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형부 상서의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었다.
영제는 자리에 남아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태자, 조왕의 사람은 고를 생각이 없었다.
주왕이 추천한 사람은 이미 저런 꼴이 되어버렸으니 더 이상 주왕에게 선택을 맡길 순 없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고를 사람이 없다.
그렇게 한참을 고심하고 있을 때.
내시가 안으로 들어왔다.
“폐하, 대연 신조에서 대제희님을 만나러 사신이 왔습니다. 하지만 이 대인께서 자리를 비우신 상태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폐하, 혹시 대제희님의 봉호를 다시 회복시키실 생각이십니까?”
“영영(嬴盈, 가희의 이름)이는 돌아온 이후로 어떻더냐?”
“줄곧 은거하시며 회복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영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봉호 회복과 관련된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대연에서 사신이 왔다고? 아무래도 영영이를 데리러 온 것 같은데, 절대 그렇게 하도록 놔둘 순 없지.”
한참의 고민 끝에 영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순천사 중에 심성낙이라는 자가 아직 살아있더냐?”
“아직 살아있습니다.”
“심성낙에게 즉시 이도로 와서 형부 상서의 자리를 이어받으라 전하라.”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다음 날.
새로운 황명이 공포되었다.
새로운 형부 상서로 과거 순천사를 지냈던 심성낙이 임명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도에 도착하는 대로 곧장 직무를 수행할 것이므로, 굳이 조회까지 열어서 임명을 하진 않겠다는 내용도 함께 포함되어있었다.
태자와 조왕은 황천민이 형부 상서로 임명되는 것에 대해 별다른 의견은 없었다.
서로가 고른 사람만 아니라면 누구든 상관없었기 때문이었다.
황천민은 이도 황씨 세가의 사람이었다.
황씨 세가는 이도가 세워지던 초기 가장 먼저 신조를 도왔던 자들이었다.
게다가 황천민은 본래 형부에서 오랜 기간 재직했기 때문에 형부 상서의 자리를 맡기에도 충분했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이 심성낙이라니.
물론 심씨 세가는 오랜 시간 신조를 위해 일하며 공헌을 세웠다.
큰 인물들을 배출하여 정천사로 보내기도 했고, 또 황족의 교육까지 도맡아 하던 게 심씨 세가다.
하지만 그는 태자의 사람도, 조왕의 사람도, 주왕의 사람도 아니었다.
물론, 임시로 빈자리를 채우는 정도라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그러나 심씨 세가에는 심성낙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반나절 정도가 지나자 누군가 심성낙이 어떤 사람인지 밝혀냈다.
놀랍게도 한때 순천사였던 사람인 것이었다.
물론 순천사는 형부의 아주 중요한 일부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심성낙이 맡았던 직무는 외역의 이족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형부의 사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단호한 사람이었다.
그는 순천사들 중에서도 보기 드문 남자였다.
그리고 과거 대제희가 직접 양성했던 인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대영 신조 내에서는 명성이 크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순천사들 사이에서는 사신이라고 불렸다.
단호하면서도 냉정한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때문의 외역의 사마들 사이에선 그에 대한 악명이 자자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심성낙이 대제희의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이쯤 되자 많은 이들이 빠르게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영제가 형부 상서의 자리를 대제희의 사람에게 넘겨주었지만, 태자나 조왕, 심지어 주왕마저도 감히 대제희에게 눈치를 줄 순 없었다.
애초에 재수 없게 저주에 걸려 굴러들어온 복을 차버린 건 황천민이었다.
이걸 누굴 탓한단 말인가?
일단은 임시로 세운 것인 듯했으나, 조회에서 따로 임명할 필요도 없다고 한 것으로 보아 영제는 더 이상 다른 이들의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고, 싸우는 것도 보고 싶지 않은 듯했다.
대제희는 이미 오래전에 외부로 시집을 갔고, 이로써 대제희라는 봉호는 정식으로 신조에서 지워졌다.
오늘날 모두가 그녀를 대제희라고 부르는 건 누가 봐도 부적절한 호칭인 듯했으나, 영제는 봉호를 회복시킬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다.
비록 그녀가 시집을 가던 길에 사고를 당하긴 했지만, 어쨌든 명목상으로 그녀는 대연 신조의 며느리였다.
때문에, 대연 신조의 사신이 그녀를 데리러 온 것이다.
한때 대연 신조를 벌벌 떨게 만들었던 그녀를 대연으로 데려간다면 대연은 큰 힘을 얻게 될 뿐만 아니라 대영 신조의 힘을 약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이대로 영제가 대제희의 봉호를 회복시킨다면 정면으로 대연 신조와 척을 지게 되고, 만약 회복시키지 않는다면 대연 신조로 대제희를 데려가도 좋다는 암묵적인 동의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 그는 대제희의 봉호를 회복시키는 대신 대제희의 사람을 육부의 한 수장으로 세웠다.
이런 상황에서 영제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가 없었다.
* * *
동궁.
태자는 상석에 앉아 굳은 얼굴로 술잔에 든 술을 입 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리고 조용히 잔을 다시 내려놓았다.
“아버님께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러시는 건지 모르겠군. 듣도 보도 못한 심성낙이라는 자를 선택하실 줄이야.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지? 고모님을 대연 신조로 보내지 않으시려는 건가? 그럼 그냥 고모님의 봉호를 회복시키면 될 것을…….”
“전하, 감히 누가 폐하의 뜻을 헤아리실 수 있겠사옵니까? 감히 소인의 짧은 식견으로 말씀드리자면 온갖 역경을 겪은 끝에 간신히 다시 돌아온 대제희님을 신조로 보낼 수 없어 그러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리고 황천민이 재수 없는 일로 낙마하자 이를 계기로 더 이상의 분쟁을 막으시려고 이런 결정을 내리신 것도 있는 것 같사옵니다. 이 모든 건 아마 대연 신조에게 완곡하게 폐하의 뜻을 내비치신 것으로 사료됩니다.”
“뭐, 됐다. 고모님은 어차피 권력에 관심조차 없으신 분이다. 심성낙이든 누구든 상관없다. 적어도 주왕의 사람보단 낫겠지.”
* * *
같은 시각.
긴 수염과 짙은 눈썹을 가진 남자가 대제희가 머물고 있는 저택으로 찾아왔다.
배자고 있는 다소 나이 들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그의 얼굴엔 온갖 흉터가 가득했다.
“소인 심성낙, 전하를 뵙사옵니다.”
심성낙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추었다.
그러나 그의 눈빛은 끓어오르는 마음을 이기지 못한 듯 눈물이 글썽였다.
“예를 거두거라.”
가희는 추억에 잠긴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어리던 서생이 이토록 변했을 줄이야. 그래도 당시의 모습이 아직은 남아있구나.”
“전하, 도대체 어디 계셨던 겁니까? 오랜 시간 수소문했으나 어디서도 소식 하나 들을 수 없었사옵니다. 도대체…….”
“지난 일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다시 얘기하자.”
가희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란을 바라보자, 자란이 관포를 꺼내 심성낙에게 건넸다.
“폐하께서 직접 너를 부르셨으니 결코 다른 이들에게 얕잡아 보여선 안 될 것이다. 정식으로 임명이 되기도 전에 나를 먼저 찾아온 건 아마 많은 이들이 보았을 터. 허나 상관은 없다. 어차피 네가 나의 사람이라는 건 모두들 알고 있을 테니까. 자, 이만 관복으로 갈아입도록 하거라.”
심성낙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조심스럽게 관복을 받아들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다. 허나 더 이상은 걱정할 필요 없다. 그저 해야 할 일에 충실하도록 하거라. 혹여나 네가 원한을 사서 내가 피해를 볼까 걱정할 것도 없다. 네가 권력을 휘두를수록 오히려 다른 이들은 걱정이 깊어질 것이다.”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이 당황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그의 성격상 이도에 잘 적응할지도 의문이었고, 혹여나 많은 이들에게 원한을 살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렵진 않았다.
대제희가 든든하게 뒤를 지켜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복으로 갈아입은 심성낙은 곧장 형부 아문으로 떠났다.
가희는 침대맡에 앉아 조용히 창밖에 펼쳐진 이도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자란, 남은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조사해 보거라. 그리고 대연 신조의 사신이 왔다던데. 누가 온 것이냐?”
“이미 조사를 마쳤습니다.”
자란은 한 권의 책자를 꺼내 가희에게 건네주었다.
“대연 신조의 사신이라면 대연 신조의 열여덟 명의 황손 중 한 사람으로, 과거 대연 태자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렇구나. 며칠 전에 폐하께서 나를 불러 몇 가지에 대해 질문하셨다. 아마 정천사에서도 너와 청란을 찾아올 것이다.”
“이미 다녀가긴 했습니다만, 청란만 만나고 돌아갔습니다. 정천사 일품 외후 한안명이라는 자였는데, 귀찮게 많은 질문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청란 언니의 성질에 못 이겨 더 이상 질문은 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래, 알겠다. 그리고 우리가 사라졌던 동안은 그저 요상을 했을 뿐이라는 말은 명심하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