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71
71화 술을 권하다
노인은 팔짱을 낀 채 웃으며 진양을 지켜보았고 화도 내지 않았다.
한참을 보다가 몸을 돌려서 관 마을로 돌아갔다.
진양은 묵묵히 무덤을 팠다. 처음으로 판 것치고는 만족스러웠다. 이쪽 세계로 넘어온 후 줄곧 사람을 도와서 묻어주기만 했지, 오늘처럼 진지하게 무덤을 파서 시체를 만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전에 능침을 열었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다. 진정으로 무덤을 판 게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무덤을 파기 시작했을 때는 이곳의 모든 게 가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무덤이었고 두 번째 무덤을 모두 파헤친 후에야 진양은 이제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자신은 가짜가 아닌 진짜 무덤을 파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 왜 이렇게 잘 파는 거지?
무덤을 파고 시체의 기능을 습득하는 일.
처음에는 죄책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번 시작하니 죄책감도 크지 않았다.
우선 이곳에서 살고 볼 일 아닌가?!
진양은 시체를 만지고는 다시 새로운 금사남 나무 관을 꺼내서 다시 안장했다.
밖에서는 흑풍이 불어왔다. 진양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고 계속 묵묵히 팠다. 하루가 빨리 지나갔고 이곳 대부분 무덤을 새로 해주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가지고 있던 새로운 관도 이미 모두 사용했다.
몇십 명 고수의 무덤을 팠고 나온 기능서도 육, 칠십 권이었다.
하지만 진양은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여기 선조들이 죽은 지 너무 오래된 탓인지 나온 기능서도 모두 등급이 좋은 백색, 남색이 아니었다. 비교적 낮은 등급의 물건이었다.
그리고 중복된 게 너무 많았다.
오금납서묘법은 다섯 권이 나왔고 삼수소체정법(三水塑體正法)은 세 권, 후토재신묘법(厚土載身妙法)은 네 권, 열화금신연법(烈火金身煉法)은 세 권이었다. 모두 체수의 법문이었다.
오행 중 네 개가 있었지만 유독 목행(木行)의 연체법이 없었다.
진양은 속으로 싫증이 났다. 연체법 중 오직 목행의 연체법만 자원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하필 이게 없었다.
나머지 기능서는 모두 엉망이었다.
오현마금(五弦魔琴)의 제조법은 일곱 권이었다. 정제법이 있어도 그에 맞은 음공법결이 없으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늙어서도 쉬지 못하는 묘비의 뒷면에 종주라고 새겨져 있는 곳에서는 한 권의 기능서도 나오지 않았다. 한 권의 춘화집이 나왔을 뿐이다. 전부 드러내놓고 부끄러워하는 요녀의 그림이었다.
이리저리 살펴봐도 춘화가 확실했다. 진양은 기가 차서 하마터면 관 안으로 던질 뻔했다.
그리고 한 선조에게서는 대골봉(大骨棒)이 나왔다. 손에 쥐자 이 선조의 허벅지 뼈라는 걸 알아챘다. 그저 다른 골격하고 조금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이 밖에도 여러 개의 무덤에서 한 편의 기억 같은 게 나왔다.
모두 거대 괴수 두개골 앞에 도착한 이후의 기억이 없었다.
큰 결심을 내리고 무덤을 팠는데 나온 게 이런 물건들이라니.
진양은 크게 실망했다. 더는 계속 파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선조들에게서 얻은 단서는 작은 기억일 뿐이었다. 그나마 이곳에 들어온 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기억들에는 이곳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진양은 무덤 옆에 앉아서 눈살을 찌푸리고 헤쳐나갈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어느새 고령 노인이 또 나타났다. 그는 팔짱을 끼고 옆에 웅크리고 앉아서 웃고 있었다.
“생각할 필요 없네. 여기에 들어오면 벗어날 가망이 없다네.”
진양은 고령 노인과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술병과 술잔 두 개를 꺼내서 술을 가득 따른 고는 혼자서 술잔을 들었다.
“마실 수 있습니까?”
“맛만 보는 건 가능하다네.”
노인은 웃으며 술잔을 들어서 한입에 마셨다. 그리고 길게 탄식했다.
“역시 맛이 좋군.”
“저한테 더 있으니까 마시고 싶으면 더 마셔도 됩니다.”
진양은 웃으며 노인에게 술을 따라주고는 아무렇게나 물었다.
“당신들은 도대체 뭡니까? 당신은 계속 나한테 빠져나갈 수 없다고 하고 또 날 속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죽은 후에도 잠들지 못한 불길한 망혼도 아니고.”
“그건 말해줄 수 없네. 천천히 생각해보게. 어쨋든 내일이면 모든 걸 잊고 다시 시작할 테니까.”
고령 노인은 거절한 후, 혼자서 술잔을 들고 맛있게 마셨다.
“당신 뜻은 제가 마을에서 벗어나지 않아도 다시 시작한다는 겁니까?”
진양은 다시 노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그렇다네. 자네가 모든 걸 기록한 것도 알고 있네. 하지만 소용없네.”
노인은 술을 다 마신 후 일어나서 혼자 떠났다.
진양은 눈살을 찌푸리며 옥간과 붓을 꺼내서 방금의 일을 전부 빠르게 기록했다.
잠시 후, 흑풍이 떠올랐고 모든 세계가 흑풍에 덮였다. 진양은 의식이 흐려지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의식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고 또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다시 옥간과 종이에 기록한 걸 모두 보았다. 잊은 모든 것들, 사사건건, 모두 책자에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이걸 보자 직접 겪었을 때보다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어제 그 몇 마디 대화를 적은 것을 보며 진양은 한 가지를 확신했다. 이 노인은 불길한 망혼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그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래서 능력이 아무런 반응도 없던 거였다.
조묘에는 망자들의 몸을 뺏어서 이곳으로 끌고 오는 이상한 무언가가 있는 게 확실했다.
그리고 매번 다시 시작할 때마다 자신은 가장 중요한 걸 잊어버렸다.
오늘은 어제 겪었던 중요한 일들을 잊었다. 만져서 나왔던 그 기억들은 생각나지 않았고, 노인과 했던 대화가 기억나지 않았다. 오직 기록한 것을 통해 기억해낼 뿐이었다.
하지만 시체에서 얻은 기능서는 전부 그대로 있었다.
기억나지 않는 것은 중요한 거였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걸 하나하나 전부 종이를 골라서 따로 나열했다. 또 들어오기 전의 모든 기억을 떠올렸다. 그래서 자신이 잊었다고 생각하는 걸 찾았다.
아마 그것들도 중요한 거일 거다.
잠시 후.
종이에 적은 것 중 기억나지 않은 게 두 가지 있었다.
자신이 무슨 보물을 가지러 온 건 기억나는데, 무엇을 가지러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처음에 거대 괴수 두개골을 발견했을 때 그 이상했던 도문을 파훼했었다. 마음속으로 이상한 도문을 분명히 알고 있는 것과 눈으로 보는 건 확연히 달랐다.
그런데 지금은 이 이상한 도문들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진양은 종이 위의 내용을 뚫어지게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가 오려고 한 곳이 여기인 게 확실하고 나는 분명히 여기에 들어왔어. 그런데 지금 보이는 모든 건 분명히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다르다. 그럼 다른 것들은 내가 잊은 것에서 온 거일 거야.”
잠시 후 진양은 종이를 거두고 속으로 한 가지를 추측했다.
성큼성큼 걸어서 관 마을로 가서 어제 팠던 무덤을 다시 팠다.
안에는 분명히 금사남 나무 관이 들어있었고 시신도 기능에 반응이 없었다.
진양의 눈에 확신이 스쳐 지나갔다.
노인이 다시 나타나자 진양은 그에게 손을 흔들고는 다시 술잔을 내밀었다.
“자, 두 잔을 마십시다. 어쩌면 앞으로 다시는 못 볼 테니 이별이라고 생각합시다.”
“뭐라도 깨달은 건가?”
팔짱을 끼고 옆에 앉아서 웃고 있던 노인은 허리를 펴고 술잔을 들어서 진양과 함께 어울렸다. 그들은 마치 오랜 벗처럼 말을 주고받았다.
“깨달은 게 아니라 그저 추측일 뿐입니다. 내가 말해 볼 테니 틀린 곳이 있으면 고쳐주십시오.”
진양은 잔을 들어 부딪치고는 단숨에 마셨다.
“어디 말해 보게. 이야기 듣는 셈 치지.”
“당신은 줄곧 저에게 여기는 전부 진짜라고 했습니다. 저도 이곳의 상당수가 진짜라는 걸 알아챘고요. 만약 당신도 진짜면 제 추측으로는 십중팔구 진짜일 겁니다. 먼저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은 진짜입니까? 아니면 제 환각입니까?”
“노부는 환각이 아니네.”
고령 노인의 말은 안정적이어서 거짓말 같지 않았다.
“그럼 됐습니다. 당신의 말을 믿어 보겠습니다.”
진양은 웃으며 속으로는 노인의 말을 어느 정도 믿었다.
이 노인의 좋은 점은 거짓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모른다고 하면 정말 모르는 거였고 대답 못 하는 건 정말 대답 못 한다고 했다.
잔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진양의 표정은 복잡했다.
“사살 며칠 동안 줄곧 한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게 정말 가짜일까, 내가 이쪽 세계로 넘어온 때부터 전부 가짜일까 아니면 전생도 가짜고 모든 게 가짜일까. 기억이 사라질 수 있다면 터무니없이 나타날 수도 있는 걸까. 저는 한때 저도 가짜가 아닐까 의심했었습니다.”
“아니네. 기억은 터무니없이 나타나지 않아. 진실한 기억은 경험해야만 나타날 수 있다네. 안 그러면 결국 가짜일 뿐이네. 자네는 진짜이고 여기도 전부 진짜네.”
노인은 엄숙한 표정으로 도리어 진양을 위로했다.
“맞습니다. 그래서 여기로 온 것도 좋은 점이 있었습니다. 정말 많이 생각했고 많은 걸 떠올려 봤습니다. 이쪽 세계로 처음 넘어왔을 때 전전긍긍하며 너무 신중한 나머지 소심해졌습니다. 지금은 조금 나아졌지만요. 사실 전부 제 경험이고 제 기억이니 사라질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제가 오늘 기록했던 것들을 보고는 처음 온 게 아니라는 걸 알았고 제가 이미 겪었다는 걸 알고는 두려웠습니다.”
“그랬겠지.”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내가 가짜가 아닐까 하는 생각부터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싶은 것까지, 전부 생각해봤습니다. 처음에는 막막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만약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다면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됐습니다.”
“말해 보게.”
“처음에는 그저 걱정되고 두려워서 그저 살아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큰 기연을 얻은 후로는 그냥 살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레벨업도 하려면 만렙까지 올려야죠. 이 과정을 하는 동안 이쪽 세계를 보고 싶습니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풍경도 보고 싶고,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면 정말 다른 게 보이는지도 보고 싶습니다.”
“레벨업? 그게 무슨 말인가?”
술 때문인지 진양은 지난 세계에서 쓰던 용어까지 쓰면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런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아무튼, 저에게 이런 걸 생각한 시간을 준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
“자네가 깨달은 건 그것뿐인가? 여기서 빠져나가는 방법을 생각한 게 아니고?”
노인은 술을 마시며 웃지도 울지도 않았다.
“하, 제가 속해 있는 문파에 좀 특별한 어른이 한 분 계시거든요. 그분이 꿈속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상고시대의 비법을 수련했습니다. 매번 수십 년에서 수백 년도 걸린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알게 됐는데 그분은 매번 꿈속에서 새나 짐승이 되기도 하고 사람이나 요물이 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게 세상에 실존하고 있지만, 그분에게는 그저 수련이고 혹은 그저 꿈일 뿐입니다.”
“들어본 적 없네.”
술잔을 들고 있던 노인의 손이 멈추더니 더는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제가 사숙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상고시대, 이수(異獸)가 있는데 이름이 몽맥(夢貘)이라고 했습니다. 꿈을 먹고 살고 가끔은 꿈에도 나타나는데 진실과 환상 사이의 장벽을 넘나드는 극소수의 진귀한 이수라고 했습니다. 몽맥의 꿈은 물론 전부 진짜입니다. 모든 게 진짜이니 안에는 또 다른 진짜 세계가 있는 거죠.”
노인은 아무 말 없이 진양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