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site Repair RAW novel - Chapter 762
762화 천운을 타고난 녀석
진양은 흡족스럽게 수행을 마쳤다.
백옥 신문까지 법보로 만들지에 대해서는 일단 상황을 더 지켜봐야 할 듯했다.
충분히 흑옥 신문으로 경험을 하고 난 다음 법보로 만들어도 늦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번 사해황막에서의 여정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비록 아직 시괴를 살펴보진 못했지만 골왕이 데리고 가서 공법을 전수해 주었다니 크게 걱정할 건 없는 듯했다.
현재 시골맥이 어떤 상황인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골왕과 있으면 안전하다는 점은 확실하다.
시골맥 내에서 누가 감히 그의 의견에 토를 달 수 있겠는가?
그는 이미 여러 번 동족을 베어 넘겼던 적이 있는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동족을 베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수련 장소에서 나온 진양은 골왕이 정말로 제대로 이해를 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만약 그가 제대로 이해를 했다면 시괴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후견인을 얻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었기에 직접 확인하는 편이 좋다.
게다가 골왕은 한발의 정혈을 사 간 사람에게 구매 의사를 전달해달라고 진양에게 부탁을 했었다.
마침 답신이 왔으니 가는 김에 골왕에게 소식도 전하기로 했다.
* * *
원래는 시골맥에 머무는 동안 골왕과 함께 시괴를 살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며칠이나 지났음에도 골왕은 여전히 제자리에 가부좌를 튼 채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뒤로는 거대한 해골이 같은 자세로 앉아있었는데, 심심했는지 손에는 어디서 잡아 왔는지 모를 불쌍한 사충을 한 마리 쥔 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진양은 골왕 옆 멀지 않은 곳까지 다가갔다.
골왕의 뼈에 빼곡한 문양들이 일어나있는 게 보였다.
상당히 오래된 기운들이 흘러나오는 게 그 누구도 건드려선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흘러나온 기운 중에는 골왕이 본래 가지고 있던 기운도 섞여 있었다.
두 기운은 서로 섞이지 못하고 있었다.
골왕이 상당한 고수인 것을 감안하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아마 이것이 골왕이 말했던 시괴를 죽이지 못하도록 막았던 힘이 분명했다.
마찬가지로 골왕의 고민의 원천이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몸에 있으나 자신의 것은 아닌,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 힘이 분명했다.
골왕과 같은 강박증 환자에게 있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어쩌면 이로 인해 불안함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니 골왕이 자신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그에게 강박증 환자라고 말할 순 없었다.
순간 진양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손등엔 어느새 능력을 표시하는 그림이 나타나 있었다.
진양이 뒤로 조심스럽게 물러서니 그림은 사라졌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 골왕의 기운이 뒤덮여있는 곳으로 들어가니 그림이 다시 나타났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건 습득 능력이 발동 가능할 때만 뜨는 표시였다.
시신을 직접적으로 만지지 않았는데 이런 표시가 뜨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골왕이라니.
그야말로 엄청난 보물상자가 눈앞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순간 진양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참기로 했다.
골왕을 성불시키는 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그의 눈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진양은 조용히 뒤로 물러섰다.
아무래도 진양이 추측이 맞는 듯했다.
골왕은 생과 사 그 사이에 있는 존재였다.
그의 지배할 수 없는 힘은 죽은 육신에 속한 힘이고, 그가 지배할 수 있는 힘은 생과 사 그 사이에 있는 골왕에 속한 힘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러한 힘들이 나타나며 능력이 반응한 것이다.
그를 시신으로 인식하고 말이다.
시간이 흐르며 골왕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계속해서 변화를 일으켰다.
그러나 혼란으로 가득한 기운 속에서도 하나의 질서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로써 모든 혼란은 정리되기 시작했고, 천천히 골왕의 기운 속에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기운이 모두 사라지고, 골왕의 기운이 다시 원래대로 잠잠한 상태로 회복되었다.
뒤에 있던 묵양이 다가와 말했다.
“상당히 강해졌다. 본질 그 자체가 변화했다.”
“둘 중 누가 더 강한데?”
“나도 저자를 죽일 수 없고, 저자 역시 나를 죽일 수 없을 거야. 아무리 훼멸구를 쓴다고 해도 녀석을 사지로 몰아넣는 건 힘들 거야.”
묵양은 썩 기분이 좋지 않은 모습이었다.
불사의 존재로서 또 다른 불사의 존재의 등장이 달가울 리 없었다.
진양은 묵양은 무시하기로 했다.
이미 원하는 답은 얻었다.
골왕의 변화는 이미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시괴는 믿을 만한 후견인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진양은 골왕과의 연줄을 갖게 되었다.
앞으로 자주 왕래하며 관계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어쨌든 그는 시괴의 스승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완전히 스승이 된 건 아니었지만, 그가 정말로 시괴의 스승이 되어줄지는 시괴에게 달려있다.
골왕은 기운을 거둬들인 뒤 자리에서 일어나 진양에게 포권을 취했다.
진양도 미소 지으며 포권을 취했다.
“축하드립니다. 마침내 의념에 통달하셨군요.”
수련 경지가 상승하고 실력이 증가하는 건 골왕처럼 수명의 족쇄에서 자유로운 강자에겐 크게 기뻐할 만한 일도 아니다.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야말로 진짜로 기뻐할 만한 일이다.
“고맙소.”
골왕은 한층 더 가뿐해진 모습이었다.
“진 선장의 말이 맞았소. 난 그저 나일 뿐이오. 과거나 현재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이 하나로 합쳐지며 내가 만들어졌다는 게 중요한 것이오. 어쨌든 모두 나의 일부인데 굳이 그것을 나눌 필요 뭐가 있겠소?”
골왕이 한층 진지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진 선장에게 큰 도움을 받은 만큼 나 역시도 도움을 주고 싶지만 마땅한 게 떠오르진 않았소. 진 선장은 인간이고 나는 이족이라 서로 쓰는 공법도 다를 테니, 설령 전수해 준다고 해도 사용할 수가 없을 것이오.
그리고 보니 일전에 누군가 진 선장을 암살하려고 했었던 것 같은데. 진 선장, 어떻게 처리하고 싶은지 얘기해 주시오. 복수를 하고 싶다면 내가 돕도록 하겠소.”
“괜찮습니다.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걸요. 물론 겁대가리 없이 또다시 찾아온다면 그때는 골왕께서 직접 나서주셔도 개의치 않겠습니다.”
이제 막 친해졌는데 벌써부터 이것저것 부탁하는 건 별로 좋지 않다.
일단은 천천히 관계를 다져나가는 게 우선이다.
만약 여기서 그의 제안을 덥썩 물었다면 관계는 더 이상 발전이 없을지도 모른다.
“대인, 그건 그렇고 지난번에 말씀하신 일 말입니다. 상대가 한발의 정혈을 내놓을 의향이 있다고 전해왔습니다. 다만 지금 당장은 거래하기가 곤란하다고 합니다. 대신 나중에 제가 있는 곳으로 가져오겠다고 했으니 때가 되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오. 편한 대로 하시오.”
어차피 한발의 정혈은 시골맥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쓸 수가 없기에 골왕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골왕과 짧은 대화를 나눈 뒤 진양은 자리를 떠났다.
시괴와의 일에 대해 물어보고 싶긴 했으나 결국은 묻지 않기로 했다.
시괴는 확실히 천운을 타고난 녀석이 확실했다.
일단은 어째서 그런 변화가 있었는지 알아내기 전까지 골왕은 앞으로 그를 보호할 것이다.
처음에는 골왕이 의심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많은 사람 중 시괴가 진양을 콕 집어서 말한 것도 충분히 의심이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접 만나보니 괜한 걱정을 한 듯했다.
골왕은 애초에 이런 작은 일보단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에 더 큰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 * *
진양은 사해황막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유사도의 임시 거점에 들렀다.
그들은 공석이 된 두목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중이었다.
그러나 죽은 호 두목만큼 뛰어난 항해술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항해술에 관해선 대부분이 무능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진양은 이들을 수하로 거둬들여 사해황막의 정보원으로 쓸 생각이었으나, 무능한 녀석들의 작태를 보고 나니 마음을 접는 편이 나을 듯했다.
그러나 또다시 생각해 보니 한 번쯤은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했다.
게다가 거점 재건을 돕겠다는 것도 빈말로 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떠나기 전에 영석을 두둑이 챙겨주고 떠나기로 했다.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두목이 뽑히고, 모든 것이 정상적인 궤도로 돌아오게 된다면 그때는 체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재건에 실패한다면 그때 가서 다시 고민해 보기로 했다.
단, 녀석들의 목숨이 붙어있다면 말이다.
우두머리의 자리를 두고 경쟁을 벌이는 건 어느 집단이나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한때 서로에게 의지하여 싸웠던 동료들의 목숨까지 빼앗는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
이런 자들은 수하로 거둬들일 수도 없었고, 거둬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아쉬울 건 없다.
어차피 사방에 널린 게 사람이니까.
유사도 임시 거점에서의 볼일을 마친 진양은 본격적으로 길을 떠났다.
진양이 떠날 때까지 윤전사 녀석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하긴, 무슨 낯짝으로 날 찾아오겠어.’
녀석들은 진양이 암살 시도를 당하는 걸 보고도 한쪽에 앉아 구경을 하고 있던 놈들이다.
물론 녀석들의 입장에선 진양이 오히려 죽는 게 더 유리할 것이다.
진양이 죽게 된다면 시골맥은 한발의 정혈을 손에 넣을 기회를 잃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윤전사의 입장에선 현황지기가 아쉬울 게 없다.
물론 있으면 좋긴 하겠지만 그래도 결론적으로 불골금신을 되찾았으니 아쉬울 건 없다.
반대로 한발의 정혈은 시골맥에게 있어 윤전사의 불골금신과 같은 의미를 가진 물건이다.
시골맥 녀석들이 한발의 정혈을 손에 넣지 못하도록 막는 건 놈들의 힘을 약하게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되면 윤전사는 시골맥보다 훨씬 더 유리한 위치에 오르게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우세는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일로 골왕에게 원한을 사고 말았다.
이렇게까지 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윤전사 승려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골왕은 평소 그 어떠한 싸움에도 관심 없던 사람이니 말이다.
윤전사의 승려들 중, 진양이 악감정을 가지지 않은 건 젊은 승려들 뿐이다.
과거 부도마교 앞에서 무언의 시위를 펼치고, 마교 삼맥 중의 두 맥주와 싸웠던 게 바로 이들이다.
겉으로는 고상한 척하고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노승들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 반감마저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