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 Genius Top Star RAW novel - Chapter 161
161화 Royal straight flush (4)
“혹시 14화 대본 보셨어요?”
“도준 씨 촬영하느라 단톡방 확인 아직 못 하셨나 봐요. 거기에 윤이서 씨가 대본 다 보고 사진 올렸거든요. 그래서 저도 대본 다 보고 너무 좋다고 말해 놨는데…….”
다행히 몇 시간 전 전달된 대본을 모두 본 모양이었다.
“아, 그랬군요. 그런데 이서 씨가 사진을 올렸다구요?”
김은석이 말한 ‘단톡방’이란 도준과 김은석, 윤이서 세 사람이 모인 단체 메시지 방이었다. 윤이서는 친화력 좋은 성격을 내세워 촬영 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갖게 된 식사 자리에서 개인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고는 단체 메시지 방을 만들었다.
자주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촬영 전후로 의견을 교환하며 첫 방송 때는 함께 떨리는 마음을 나누기도 했다.
인스타를 비롯한 SNS를 즐겨 하는 윤이서가 가끔 촬영장 모습 등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고는 했지만 이번에는 무슨 사진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의아해하며 도준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쌓여 있는 메시지를 확인했다.
“그게…… 셀카요. 가끔 보면 진짜 엉뚱하다니까요. 이서 씨.”
메시지를 확인하자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윤이서의 셀프 카메라 사진이었다. 14화 대본 너무 재미있고 슬프지 않냐며 윤이서가 우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설명하는 김은석의 말에 웃음기가 어렸다. 도준도 윤이서의 발랄한 사진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게요.”
이렇게 평소에는 발랄하기만 한 윤이서가 누구보다 우울하고 습한 연기를 잘한다는 사실이 신기할 정도였다.
대충 단톡방 대화를 읽으니 두 배우의 대본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엔딩에서의 이신의 선택은 자신들도 놀랄 만한 선택이기에 방송이 나가면 난리가 날 것 같다는 얘기도 보였다. 대체로 규홍과 비슷한 의견들이었다.
“그럼 엔딩 대사는 어떠셨어요?”
그럼에도 도준은 규홍에게 했던 질문과 같은 질문을 한 번 더 김은석에게 했다.
보통 사람들은 눈치챌 수도 없을 만큼 뮤지컬 시절의 연기를 모두 벗어낸 김은석이었지만 확실히 아직 행동 연기는 미묘하게 과장될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감정 연기는 톱 클래스 중에서도 톱 클래스였다. 을 보면서도 그랬지만 를 함께 촬영하며 김은석의 감정 표현에 매번 감탄하게 되는 도준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몰입하고 때로는 점진적으로, 때로는 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았다.
매일같이 무대 위에 올라 서너 시간 남짓한 공연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내려오는 뮤지컬의 세계에서 이미 최고로 칭송받으며 단련된 연기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 연기의 밑바탕에는 감정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공감이 동반된다는 것을 도준은 알고 있었다.
‘아주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지.’
그랬기에 도준은 마지막으로 자신이 느낀 것이 맞는지, 아니면 그저 자신이 역할에 과몰입해 느낀 아쉬움인지 확인하고자 했다.
최대한 아무런 단서도 느낄 수 없게 질문한 도준이었는데 김은석은 곧바로 입매를 굳혔다.
옆에 있던 매니저들만 갑자기 흐르는 침묵에 두 배우를 번갈아 보며 얼굴에 물음표를 띄웠다.
자신도 들었던 질문이었기에 규홍은 ‘역시 엔딩 대사에 문제가 있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좋던데요. 제 역할도 아닌데 이신이라는 존재가 완전히 마음에 박힐 정도였어요.”
김진숙 작가가 들었으면 좋았을 호평이었다. 전체 장면을 놓고 보면 도준 역시 그러한 생각이었으므로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지만 도준 씨가 왜 아쉬워하는지도 알 것 같아요…….”
“아.”
김은석의 말에 도준이 웃으며 물었다.
“티 났습니까?”
“아뇨. 티가 났다기보다…… 저였어도 조금은 아쉬웠을 것 같아서요.”
김은석은 가감 없이 제 생각을 말했다. 그 상대가 도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연기에 있어서는 워낙 말이 잘 통하는 상대. 자신의 말을 곡해해서 들을 리 없다는 믿음이 있었다.
도준과 김은석은 눈빛으로 생략된 말들을 주고받았다. 김진숙 작가가 부족한 게 아니었다. 김진숙 작가는 100, 아니 그 이상을 해 주었다.
그러니 대본을 본 이마다 최고의 회차라고 하는 것이었다.
도준의 아쉬움은 극 전체가 아닌 극의 일부로 연기하는 배우이기에 갖는 아쉬움이었다.
때로 그러한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 작가에게 강하게 어필하거나, 현장에서 직접 대사를 수정하는 배우도 있었지만 도준은 이미 100을 해 준 작가에게 무리할 수 있는 요구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14화까지 집필하셨으면…… 지금 한창 힘들 때기도 하지…… 방송이 나간 터라 더 부담도 되실 거고.’
첫 방송 반응이 폭발적인 건 분명히 희소식이었지만 동시에 부담이기도 했다. 그건 연기를 하는 이나 대본을 쓰는 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솔직하게 얘기해 줘서 고마워요, 은석 씨.”
“뭘 이런 거로요. 도움이 됐으면 좋았을 텐데…….”
“아닙니다. 충분히 도움 됐어요.”
혼자서만 느끼는 아쉬움이 아니라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도움이 됐다. 더 적극적으로 그 부분을 채울 방법이 생각나기도 했고.
촬영 잘하라는 인사를 나누고 김은석과 헤어져 벤에 오른 도준은 휴대폰에서 김진숙 작가의 연락처를 찾았다.
* * *
사실 김진숙 작가는 모든 작품이 대표작이라 할 만한 작가였다.
다른 작가였다면 한 번 내기 힘든 대박 작품을 연달아 냈으니 당연했다. 절대 평가가 아니라 상대 평가라고 한다면 역시 김진숙 작가의 대표 작품은 데뷔작과 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또 얘기가 달라질지도 몰랐다.
8%의 시청률을 기록한 첫 방송만으로도 무척이나 만족했던 제작진과 방송사였다.
제작비 문제로 방영을 놓친 적 있던 QBC에서는 이를 갈고 를 가져오기 위해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투자했다.
그만한 투자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었고, 김진숙 작가와 강도준 조합이었기에 QBC의 선택은 옳을 수밖에 없었다.
판권 사전 수출과 광고를 완판함으로써 이미 손해 볼 리 없는 장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2화 방송 후 시청률 표를 받은 QBC는 드라마국 국장부터 시작해 방송사 사장까지 를 어떻게 더 밀어 줄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들썩거렸다.
2화 시청률 12%.
가능한 상승세가 아니라는 생각이었지만, 한 주가 지난 3화 시청률은 무려 16%였다.
한 주 만에 두 배가 된 것이다.
의 실망스러운 작품성에 나뉘었던 시청자층이 쪽으로 채널을 돌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의 허술한 CG는 의 영화 버금가는 CG와 비교되며 네티즌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조롱을 당하고 있었다.
볼품없는 극본과 연출에 연기하는 배우들이 불쌍하다는 얘기가 돌 정도였다. 배우들의 연기도 그리 훌륭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배우들은 대본이 너무 별로라 어쩔 수 없을 것 같다는 식의 두둔을 받았다.
그런 상황이니 의 시청률은 그야말로 폭락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4%대로 시작하더니…… 사실 그렇게 돈 쏟아부었는데 아무리 케이블이어도 시작이 4%인 것도 그리 성에 차진 않았을 텐데 말이야.”
“그니까요. 근데 2%대까지 떨어졌다니까…… 이건 뭐. 완전히…….”
가파른 상승세로 8화 시청률 24%를 찍은 촬영장 분위기는 그야말로 화기애애했다.
박준호 감독과 조감독은 어제자 시청률 표를 보며 신나 하다가 아래쪽으로까지 떨어진 의 시청률을 보며 혀를 찼다.
나름대로 경쟁 드라마와 함께 방영한다고 생각해 더 열심히 일한 것도 있었는데 이렇게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니 업계 종사자로서 절로 안타까움이 드는 드라마였다. 제작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많았을 게 눈에 훤히 보이기도 했다.
“2%로 폭망이라고 1혹이라는 말까지 생겼잖아요.”
“1혹?”
“1hok…… 2%를 그걸로 계산하는 거예요. 저희 시청률은 12혹인 셈이죠.”
“핫, 하여튼 웃기다니까.”
박준호 감독이 차마 타사 드라마를 두고 하는 유머에 마음껏 비웃지는 못하고 기가 찬 웃음을 흘렸다. 계속 피식 웃게 되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감독님, 그 62씬 내레이션 어떻게 하실 거예요?”
그때 음향을 담당하는 스태프가 체크를 위해 박준호 감독을 찾았다. 스태프들은 촬영을 세팅하느라 분주했다.
촬영은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어 있었다.
다만 김진숙 작가 쪽에서 14화 대본 뒷부분을 수정하고 싶다고 해 14화 앞쪽과 이후 대본이 나온 15화부터 18화를 먼저 촬영했다.
모두가 입 모아 극찬했던 14화 대본이었기에 14화 대본이 또 한 번 수정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는 다들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드디어 미뤄 두었던 14화 60씬부터 62씬의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어, 그거 촬영장에서 따기로 했으니까 원래대로 준비해 줘. 촬영 전에 그것부터 딸 거야.”
“넵.”
내레이션은 동시 녹음이 아닌 후시 녹음으로 진행돼야 했는데, 후시 녹음이 많은 영화의 경우에는 녹음실에서 본격적으로 후시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드라마는 촬영장에서 간이로 진행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14화 내레이션은 그 중요성을 감안해 녹음실 후시 얘기도 나왔으나 촬영 일정이 받쳐 주지 않았다.
박준호 감독이 음향 담당과 얘기하는 사이 소품 담당이 조감독에게 오늘 소품에 대한 확인을 받을 때였다.
“안녕하십니까.”
세트장 안으로 도준이 들어오며 스태프들에게 인사했다.
도준은 목 끝까지 올라오는 흰색 니트 스웨터에 검은색 장 코트를 걸치고 있었는데 크리스토퍼 앨런의 전시회 이후 도준에게 붙은 ‘뉴욕 미술관에 전시된 남자’라는 타이틀이 떠오르는 모습이었다.
“와, 너무 멋져요.”
“오늘 왜 이렇게 잘생겼어요?!”
거의 매번 촬영장에서 ‘안녕하세요’라는 말만큼 인사 대신으로 많이 쓰이는 말이 ‘멋지다’는 말과 ‘잘생겼다’는 말이었다. 도준이 가볍게 웃으며 박준호 감독과 조감독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조감독이 꾸벅 인사하고는 도준의 손에 들린 시집을 보며 웃었다. 도준의 한 손에는 시집이, 다른 한 손에는 수정된 14화 대본이 들려 있었다.
“매니저님한테 연락받긴 했는데 강 배우님이 정말 소품 직접 가지고 오셨네요. 감사합니다.”
“갖고 있던 시집이라서요.”
“도준 씨는 부족한 게 뭐예요? 책도 많이 보고……. 하긴 그러니까 대본도 잘 보는 거겠지.”
박준호 감독이 도준을 치켜세웠다. 그러나 억지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그럼 바로 녹음부터 들어가려고 하는데…… 괜찮겠어요? 촬영 후에 해도 되긴 하는데…….”
감정을 잡기에 괜찮냐는 말이었다.
어느 쪽을 먼저 시작해도 상관없을 듯했다. 이미 도준은 연기할 준비가 돼 있었다.
“상관없습니다.”
도준의 자신 있는 답에 박준호 감독과 조감독은 괜히 자신들이 뿌듯하게 웃었다.
* * *
그리고 잠시 후.
촬영장에는 OST로 사용되는 경음악이 흘렀다. 그리고 도준의 내레이션 녹음이 시작되었다. 팔짱을 끼고 도준의 뒤에 선 박준호 감독은 한껏 눈에 힘을 주었다.
헤드폰을 낀 채 음향을 확인하던 스태프의 얼굴이 흐려졌다.
– 162화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