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th Vital RAW novel - Chapter (501)
다섯 번째 바이탈-502화(501/502)
502화. 삐이——-
카나의 문자를 받은 오시원은 이게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교통사고로 베드 위에 누워 있는 사람이 어떻게 문자를 보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시원은 순간 본인이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눈을 비비며 핸드폰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발신인은 분명 카나가 확실했다.
1분이 지니고 2분이 지나고 핸드폰 상단에 시계가 5분 정도 지났을 때 오시원은 문자를 클릭했다.
-자기야? 깜짝 놀랐지?
문자 파일을 클릭하자 익숙한 목소리가 핸드폰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 목소리는 분명히 카나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지?
그녀의 말처럼 오시원은 정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방금 저녁 다 먹고 선배한테 인사하고 온다고 나간 사이에 고맙다는 말 하고 싶어서 남겼어.
어제 오시원은 선배네 식당에서 프러포즈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맛있는 저녁까지 잘 먹었다.
저녁을 먹고 식당을 나온 오시원은 프러포즈 준비부터 저녁까지 신경 써 준 선배에게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 잠시 대화를 나눴다.
그때 차에 혼자 남아 있던 카나가 음성 문자를 남긴 것이다.
-지금쯤 아버님, 어머님께 가기위해 고속도로를 운전하고 있겠지?
오늘 새벽 원래대로라면 이 시간에 오시원은 부모님을 뵈러 본가에 가고 있을 시간이었다.
-아니, 뭔가 프러포즈 받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자기한테 하고 싶은 말도 있고 해서. 지금 이런 감정을 느낄 때 남기면 좋을 거 같아서 녹음하고 있어.
생각해 보니 카나는 몇 년에 한 번씩 아주 가끔 음성 파일을 문자로 보내곤 했다.
워낙 착한 성품의 사람인지라 작은 선물을 받을 때나 고마운 일이 있으면 그냥 넘어가질 않았다.
그럴 때마다 항상 다음 날 고마운 마음이 가득 담긴 편지를 써 주고는 했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마음이 벅차게 행복한 일이 있으면 지금처럼 녹음했다.
-시원아, 자기야? 아니, 이제 여보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여기까지 듣고 있던 오시원은 잠시 핸드폰 화면 위로 손가락을 터치해 파일을 멈췄다.
뭔가 심란한 마음 위로 간신히 눌러 놨던 슬픔이 자꾸만 쏟아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적인 사고와 달리 감성적인 마음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처치실 안으로 다시 카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정말 너무 고마워. 나 사실 며칠 전부터 자기가 프러포즈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긴 했었어. 왜, 여자들은 남자들이 프러포즈하기 전에 뭔가 느낌으로 안다고 하잖아.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 줄 몰랐거든? 그런데 막상 내가 당사자가 되니까 느낌이 오더라고.
그런데 아까 식당에서 준비한 영상이 나오고 뒤이어 자기가 나와서 프러포즈를 하는데…….
카나는 그때의 감동으로 다시 벅찬 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짧은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목소리가 이어졌다.
-미안. 나 방금 좀 울컥해서 잠깐 말을 못 했다. 아무튼 나 진짜 농담이 아니라 숨이 멎을 것만 같더라. 나 일본 친구 중에 미나 있잖아? 미나도 저번 달에 프러포즈 받았는데 그때 걔가 그랬거든. 진짜 숨이 턱 막히는 줄 알았다고? 정말 내가 그랬어.
뭔가 시간이 멈춘 것 같고, 오직 자기랑 나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고…….
뭔가 유치하긴 한데 머릿속에 꽃밭이 가득한 기분이 들었다.
엄마한테 프러포즈 받았다고 꽃이랑 반지 찍어서 사진 보내 드렸더니 엄마가 그러더라. 그때 우리 사귀고 같이 처음으로 일본 갔을 때 기억나지?
그날 밤에 엄마가 아빠한테 그러셨대. 내가 자기한테 시집갈 거 같다고. 그랬더니 아빠도 똑같이 느끼셨대.
우리 딸이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한국에서 부부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겠구나 싶으셨대.
그래서 내가 어떻게 그걸 알았냐고 하니까 날 바라보는 자기 눈빛에 사랑이 가득했다고 하시더라.
그 톡을 보는데 나 또 울컥해서 눈물 날 뻔했잖아.
자기야……. 그 옛날 나에게 먼저 다가와 주고 지금까지 내 옆에서 변함없이 함께해 주고 힘들 때마다 힘이 되어 줘서 고마워.
한국 생활이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솔직히 자기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온 거 같아.
그리고 코쿄도 항상 잘 챙겨 줘서 너무 고마워. 프러포즈 받았다니까 동생이 가장 먼저 한 소리가 뭐인 줄 알아?
나보고 자기한테 잘하래. 자기 같이 다정하고 멋진 남자는 없을 거래.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진짜 그 말이 맞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기가 최고인 거 같아.
시원아, 날 너의 배우자로 선택해 줘서 고마워. 내가 최고의 여자라고 스스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늘 너의 곁에서 변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리할게.
힘들 때 혼자 힘들어하지 않게 하고, 네가 아플 때는 내가 낫게 해 줄게.
자기가 나에게 준 그 깊은 사랑. 이제는 내가 더 깊은 사랑으로 더 많이 표현하고 더 많이 사랑할게.
이제는 연인이 아닌 부부로서 함께하는 모든 날들 당신을 남편으로 존경하고 존중할게.
내 인생에서 시원이 너를 빼면 남은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 그만큼 나에게 너란 존재는 나의 전부야.
여보야…….
한참을 진지하게 말을 이어 가던 카나는 별안간 수줍은 목소리로 오시원을 불렀다.
사랑해. 아주 많이. 내 목숨보다 너를 더 많이 사랑해. 우리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자.
보고 싶다. 운전 조심하고 달리지 말고 맛있는 어머님 음식 많이 먹고 와. 이따 전화할게.
여보야~ 사랑해.
그렇게 핸드폰을 통해 처치실에 울리던 카나의 음성이 꺼졌다.
“…….”
음성 파일을 끝까지 들은 오시원은 마치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감정이 메마른 사람처럼, 마치 죽은 물고기의 초점 없는 눈동자만이 핸드폰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거짓말!
이 모든 게, 이 상황이, 눈앞에 닥친 일들이 전부 거짓말 같았다.
어느 영화 속에 나오는 한 장면처럼 누군가가 다가와 몰래카메라라고 소리치며 저 문으로 들어올 것만 같았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웃으며 헤어졌던 해맑은 카나의 모습이 어떻게 피범벅이 될 수 있는지 말이 되지 않았다.
카나는 세상에 법이 없이도 살아갈 정도로 착한 사람이었다.
정기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봉사를 갈 정도로 성품이 고왔다.
이런 착한 사람이 왜 이런 끔찍한 사고를 당해야 하는지 세상이 원망스럽고 분했다.
더 나쁜 인간들이 판치는 세상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카나가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이런 일로 사경을 헤매고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도무지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화가 나고 속이 터질 것만 같고 그저 이 세상이 너무 싫었다.
“카나야…….”
천천히 돌아간 시선이 베드 위로 향하고 오시원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카나야…….”
띠- 띠- 띠- 띠-
연신 카나의 이름을 불렀지만, 야속하게도 여러 기계음이 그녀의 목소리를 대신했다.
오시원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카나가 누워 있는 베드 가까이 다가가 천근 같은 걸음을 멈췄다.
“카나야?”
핸드폰 속에서 들려오던 해맑은 목소리도 햇살처럼 눈 부신 미소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고 기계의 힘을 빌려 호흡을 이어 가고 있는 처참한 카나의 모습만 보였다.
“어서……일어나야지.”
오시원은 카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신혼집도 같이 가기로……했잖아. 카나야……나는 너 없으면 안 돼. 제발……흐윽!”
오시원의 눈에 참았던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를 악물고 참았던 눈물이 흐르자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댐처럼 쏟아졌다.
오시원은 지금까지 카나를 만나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
항상 행복했고 매 순간 함께여서 감사했기에 웃는 날만 가득했다.
그런데 지금은 10년이 넘는 그 행복한 시간이 눈물이 되어 내리는 것만 같았다.
너무 행복했기에 이런 일이 제게 일어난 건 아닌가 싶은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카나야……처제는 내가…….”
계속 눈물을 흘리던 오시원은 이윽고 입 밖으로 절대 꺼내기 싫었던, 꺼낼 수 없었던 말을 천천히 하기 시작했다.
‘환자분의 상태가 많이 힘듭니다.’
조심스럽지만, 신중하고 의학적 사고로 설명해 준 의료진의 말이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다.
“처제는 내가 잘 돌볼게. 아버님, 어머님도 내가 잘 챙겨드릴게. 먹기 싫다고 했던……영양제도……흐윽! 빼먹지 않고 잘 먹을게……. 그러니까 카나야……제발 눈 좀 떠 줘.”
눈가에 맺혀 있던 굵은 눈물이 카나의 상처 난 손등으로 떨어졌다.
“흐윽……카나……흑!”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오시원이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는 건 오직 딱 하나였다.
“……떠 봐.”
카나가 눈을 뜨는 것.
다른 신체의 기능이 떨어져도 그저 눈만 뜨고 스스로 호흡만 할 수 있다면 죽을 때까지 너의 신체가 되어 살아갈 테니 제발 눈만 뜨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게 아니라면 카나 대신 자기를 아프게 해 달라고, 본인이 그녀의 몫까지 아플 테니 그녀를 살려 달라고 빌었다.
-드르륵
그렇게 슬픔에 파도가 오시원을 덮치고 있던 그때 별안간 처치실 문이 격하게 열렸다.
“언니!!!!!”
카나의 사고로 충격받고 실신했던 동생 쿄토가 처치실을 찾은 것이다.
“형부?”
처치실 안으로 들어온 코쿄는 눈물로 범벅이 된 오시원의 얼굴을 보며 놀란 표정으로 다가왔다.
“형부…….”
차마 언니의 얼굴을 아직 보지 못한 쿄코는 계속 오시원을 불렀다.
형부라는 두 글자 뒤로 언니는 괜찮은 건지 묻고 싶은 말을 삼키며 베드로 다가왔다.
“하! 처제……언니한테……인사해야지.”
그 말에 쿄코는 카나의 모습을 마주했다.
“아……언니! 흐흐!”
쓰러지기 전 잠시 보았던 언니의 처참한 모습이 거짓말이기를 바랐던 그 모습이 다시 눈에 들어와 눈물이 쏟아졌다.
코쿄는 눈물을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언니……나야. 나 왔어……언니 일어나야지. 형부랑……결혼식 올려야지.”
그 말에 오시원은 주먹을 꼭 쥐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리고 다시 카나의 손을 잡고 가장 당연하지만 사고로 잊고 있던 그 말을 하기로 결심했다.
“카나야……내가 많이 사랑해. 많이 사랑해……죽을 만큼 널 사랑해. 그러니 제발……이대로 포기…….”
눈물과 콧물이 하염없이 흘러 오시원이 말을 잇지 못하던 바로 그때였다.
띠- 띠- 띠-
삐———-이
똑같은 음으로 반복적으로 울리던 기계 소리가 전과 다른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이어지더니 일정하게 들리던 기계가 멈췄다.
드르륵-
“잠시 비켜 주세요.”
“CPR 준비!!”
계속해서 카나의 상태를 주시하던 의료진이 바로 안으로 들어와 처치를 시작했다.
의료진의 눈빛은 오직 환자에게 집중됐고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간절한 오시원과 쿄코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움직이던 의료진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카나의 심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