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lip to Martial Arts RAW novel - Chapter 96
96화. 졸업식 후(1)
“내 알몸 다 본 거지?”
뭐야? 고작 저 이야기 하려고 나를 부른 거야? 그래서 볼이 상기된 거고.
“안 볼 수가 없잖아. 독에 취해 알몸으로 쓰러진 상태인데. 내가 도착했을 때 이미 너는 알몸으로 놈에게 당하고 있는 상태였어.”
“내, 내 몸도 만졌지?”
“안 만졌어. 해독약 먹일 때만 니 얼굴 잠시? 니 몸 만진 거는 저놈이지. 저놈이 니 음부에 손을 대고 있더라.”
“뭐? 저 자식이 내 음부에?”
자신의 음부를 만졌다는 말에 안색이 하얗게 변하는 황보수영.
입술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분노에 가득 찬다.
“음기를 흡수하려고 거기에 손을 대고 있었던 거지.”
“저, 씨불새끼가?”
황보수영의 눈에 살기가 일렁이면서 사령음혼귀를 쳐다본다.
하지만 이미 피떡이 되어 시체가 된 놈을 본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주먹을 쥐고 분노를 표출하던 황보수영은 낙담한 표정이 된다.
“휴우, 알았어. 그런데 무비 너 아까 내 다리 만지고 있었잖아.”
아니, 그걸 왜 그렇게 따지는 건데.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고 할 판이네.
“그건 깨어나기 전에 옷 입혀주려고 했던 거야. 그런데 니가 일찍 깬 거고.”
“어쨌든 내 몸을 보고 만진 건 맞잖아.”
“보고 만져? 야, 그것도 보고 만진 거에 해당하냐? 내가 무슨 나쁜 의도로 그런 것도 아니고. 사령음혼귀 저놈에게 당하고 있는 너를 구하는 과정에서 보고 만진 것뿐인데. 뭐야, 내가 지금 치한이라는 거야? 저놈에게 음기 흡수당해서 목내이 되는 것 모른 척하라고?”
“아니. 그건 아니고. 어쨌든 나를 구해줘서 고마워.”
“그래 고마운 줄 알면 됐다. 얼른 돌아가자. 다른 사람들이 걱정하겠다.”
황보수영은 주변을 한 번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어쨌든 황보수영이 변을 당하기 전에 구해서 다행이다.
다시 홍청루로 돌아오니 당비취의 눈이 반짝인다.
“뭐야? 두 사람이 어디 갔다가 동시에 들어오는 거야? 둘이 무슨 짓을 하다 온 거야?”
“그러게. 둘이 어디 다녀온 거야? 한참을 자리를 비우다가 동시에 들어오다니. 수상한데.”
팽유진도 당비취의 농담에 박자를 맞춘다.
“어? 그러고 보니 둘이 안 보인 지 한참 되었잖아. 꽤 오랜 시간인데 둘이서 뭐 한 거야? 둘이 사라졌다가 둘이 동시에 들어오고.”
남궁수지도 우리 둘을 보면서 묘한 시선을 보낸다.
반은 농담조인 말이지만 우리 둘이 자리를 비운 시간이 오래 되었고, 동시에 둘이 들어오니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우리를 향한다.
“아무것도 아니야. 무비하고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어.”
황보수영이 고개를 푹 숙이면서 얼굴이 발개지자 당비취의 표정이 변하면서 고개가 살짝 기운다.
다시 각자 자리로 돌아가서 앉는데 당비취가 옆으로 바짝 붙는다.
“오빠, 뭐 하다 이제 온 거야. 수영이 저 아이 볼이 왜 저렇게 상기된 거야? 저 도도한 수영이가 어쩐 일로 부끄러운 척하는 거지? 수상한데.”
“나중에 이야기하자. 지금은 술이나 먹고.”
“나중에. 흐음, 그래.”
자리로 복귀한 나는 술을 마셨지만 술기운에 취하지 않았다.
사령음혼귀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가졌던 의문과 해결된 의문점, 그리고 새로운 의문점을 조합하기 시작했다.
‘22년 전에 행방불명 된 악주필은 지옥혈왕의 몸을 옮기기 위한 마령이체술의 대상으로 납치된 거였어. 그런데 내가 마령이혼환을 먹어치우는 바람에 지옥혈왕이 부활할 수 없었지. 하지만 지옥혈왕의 몸이 노화되어 더 이상 버틸 수 없으니 일단 악주필의 몸으로 옮겼다는 이야기야. 물론 마령이체술을 사용하지는 못했고.’
놈이 신체를 바꾸는 데 사용한 수법은 마령이체술이 아니라 강시술이라 했다.
도대체 누가 어떤 방법으로 지옥혈왕의 몸을 바꾸었는지 모르겠다.
‘일단 이렇게 되면 특작대가 파괴하려는 지옥혈왕의 신체는 악주필의 신체라는 이야기가 되는 거잖아. 특작대가 악주필의 신체를 파괴한다면 지옥혈왕은 사라지는 것이고.’
그러나 지금까지 내내 걸렸던 이름이 이번에도 내 머릿속에 맴돈다.
‘악천군! 지옥! 이 낱말이 이제는 연결이 되는 것 같아. 악천군 역시 현천절맥을 타고 났기 때문에 지옥혈왕의 영혼을 이전할 수 있는 신체라는 거잖아. 세작이 죽어가면서 말한 지옥은 지옥혈왕을 의미하는 것이 분명해.’
문제는 왜 악천군이 개천혈교와 관련이 되느냐 하는 점이다.
이미 지옥혈왕은 부활에 필요한 몸인 악주필의 신체를 확보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서 백정맹 역시 특작대를 만들어 악주필의 신체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닌가.
‘가만 악운재를 납치한 이유도 생각을 해봐야지. 개천혈교 놈들이 악운재를 왜 납치하려고 한 것이지?’
악운재는 현천절맥도 아니다. 그런데 악운재를 납치했다.
현천절맥인 악주필은 납치해서 지옥혈왕의 신체가 되었다.
같은 현천절맥인 악천군은 납치하지 않은 상태다.
이 세 사람 사이에는 모종의 관계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개천혈교 놈들이 이유 없이 악운재를 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백정맹에서도 표진투를 파견해 추적한 것이 아닌가.
‘뭐지? 분명 세 사람 사이에 뭔가 연결 고리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명확하지 않네.’
하지만 느낌상으로는 악천군에게 열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작이 죽어가면서 부른 이름이 악천군. 매우 중요하다는 이야기지. 어쩐지 악천군이 열쇠일 것 같은데. 느낌은 그런데… 악천군하고 개천혈교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거지?’
아, 머리가 터질 것 같다. 단서가 부족하니 뭔가 생각할수록 복잡하고 어지러워진다.
‘됐다. 나랑 상관없는 일에 더 이상 머리를 싸맬 필요가 없지.’
잡념을 털고 학생들과 술자리를 즐기면서 백정학관에서 마지막 밤을 즐긴다.
─ 다음 날!
마침내 반년 동안의 백정학관 생활을 마치고 졸업식을 하는 날이 밝았다.
밤늦게 술을 마셨지만 다들 아침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한다.
졸업식에는 금진교 교무각주만 참석한 것이 아니다.
백정맹 맹주를 비롯해 주요 간부가 참석해 축하인사를 했다.
“이상으로 졸업식을 마치겠습니다.”
금진교의 마지막 말에 환호하는 학생들.
“야, 그래도 정말 많은 걸 배웠어. 실력이 배는 향상된 느낌이야. 백정학관 입학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라고.”
팽무해는 실력이 향상되었다면서 좋아한다.
“이제 맛없는 밥 안 먹어도 되네.”
계속 식사가 불만이었던 부잣집 딸 석수린은 비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뻐했다.
“무비야, 축하해. 북경에 오면 꼭 우리집 들러. 나 보고 가야 해.”
팽유진이 달려오더니 내게 축하인사를 하면서 팽가에 들르라고 부탁한다.
“무비야, 축하해. 1등도 축하하고.”
황보수영도 쪼르르 달려오더니 내게 축하를 한다. 웬일이래?
“어, 그래 고맙다. 너도 축하단다.”
“개봉으로 안 간다며?”
“응, 당분간 낙양에서 머물 것 같아.”
“아쉽네. 더 같이 지내지 못해서.”
“아쉽기는 뭐가 아쉬워. 맨날 나만 보면 구박하면서.”
“수영이, 너 이상하다. 니가 웬일로 무비랑 같이 지내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냐?”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당비취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자 화들짝 놀라는 황보수영.
“아니, 반년 동안 같이 지냈으니 정이 들기도 하잖아. 반년 동안 같이 지냈는데, 헤어지려니까 아쉽지.”
“정이 들어? 무비하고? 수영이 니가 무비하고 왜 정이 들어? 맨날 얼굴 별로라고 까던 아이가.”
“얼굴은 잘나지 않았어도, 무공은 뛰어나잖아.”
“이상하네. 정말로 간밤에 둘 사이에 무슨 일 있었던 것 아냐?”
당비취의 고개가 기울어지면서 우리 둘을 번갈아 쳐다본다. 매우 의심스럽다는 눈빛이 가득하다.
“무슨 일은 아무 일도 없었어. 무비야, 황보가에 놀러와. 꼭 놀러 와야 해.”
그렇게 말하면서 황보수영의 볼이 발갛게 상기되자 당비취의 눈이 더욱 반짝인다.
결국 당비취가 나를 이끌고 한쪽 구석으로 움직인다.
“솔직하게 말해 봐. 어제 수영이하고 술 마시면서 술김에 이상한 짓 저지른 것은 아니겠지? 쟤가 오빠에게 먼저 다가와서 살갑게 대하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나를 어떻게 보고. 내가 비취, 너를 두고 그 짓 할 사람으로 보이냐.”
“그래, 아닌 거 아는데, 황보수영이 왜 오빠에게 저렇게 대하냐고. 쟤가 졸업식 끝나자마자 제일 먼저 오빠에게 달려왔잖아. 간밤에 무슨 일 있었지?”
“뭐, 별일이면 별일이고. 아니면 아닌 일이 있기는 했어.”
“무슨 일?”
“황보수영이 변소에 가다가 납치당한 일이 있었지.”
“납치?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자분자분하게 간밤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당비취.
“흐응, 이제야 알겠네. 그러니까 알몸인 상태에서 당하려던 황보수영을 오빠가 구해준 거잖아. 옷을 입히려는 순간에 눈을 떴고.”
“그렇지. 나는 그냥 그놈에게 당하는 황보수영을 구해준 것이 전부야.”
“그래, 알겠어. 오빠는 그게 전부겠지. 하지만 황보수영에게는 그게 전부가 아닐 거야.”
“그게 뭔 소리야?”
“자신의 알몸을 본 첫 번째 남자잖아. 자신의 몸도 만졌고. 아니구나, 첫 번째는 사령음혼귀라는 놈이지. 놈은 죽었으니 이제 오빠가 사실상 유일하게 황보수영의 알몸을 본 남자인 거네.”
“알몸 좀 본 게 뭔 대수로운 일이라고.”
“여자에게는 대수로운 일이야. 굉장히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지.”
당비취는 묘한 눈빛으로 즐겁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 나를 뭐 보듯 하던 황보수영이 내게 호감이라도 느낀다는 거야?”
“훗, 호감 이상일 수도 있지.”
“뭐?”
“앞으로 오빠 간수 잘 해야겠네. 팽유진에 이어 황보수영까지 오빠를 노리고 있으니까.”
“야야, 걔들이 왜 나를 노려. 더구나 너하고 내 관계를 뻔히 아는데.”
“그래도 모르는 거야. 여자들은 틈만 나면 괜찮은 남자를 노리는 법이라고.”
당비취는 황보수영이 나를 노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졸업식 날인데 뭔가 여난에 말려드는 느낌이다.
* * *
졸업식 후 특작대로 선발된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본문과 본가로 복귀하기 위해 짐을 싸기 시작했다.
하나둘 인사를 하면서 떠나는 학생들.
“그래도 반년을 같이 지냈다고 정들이 많이 들었네.”
“그러게. 반년이 이렇게 훌쩍 지나가다니. 세월 참 빠르다.”
학관을 떠나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하고 당비취는 감회에 젖었다.
“아미타불. 회자정리요, 거자필반이니 또 만날 거네.”
운강은 염주를 굴리면서 빙긋 미소를 짓는다.
“아참, 비취야, 그놈에게 어제 가져온 것 있는데.”
“뭐?”
“놈에게서 독하고 해독약 같은 것들 쓸어 왔다. 이거 너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가져왔어.”
“정말? 어디 있는데?”
“내 방에.”
방으로 돌아가서 사령음혼귀에게서 획득한 약들을 펼치자 당비취의 입이 벌어지면서 눈이 반짝인다.
병의 형태로 된 것, 주머니에 든 것, 향의 형태로 된 것 등 다양했다.
“와, 이게 다 사령음혼귀라는 놈에게 얻은 거야?”
“뭔지는 몰라. 뭐에 쓰는 건지는 니가 알아서 판단해야 해.”
“알았어. 내가 한번 무슨 약들인지 확인해 볼게.”
당비취는 자리에 앉아 약병에 든 약들을 하나씩 검사하기 시작한다. 냄새도 맡아보고, 손가락으로 찍어서 맛도 보고. 뭔가 골똘히 생각도 하고. 그렇게 하나씩 확인해 나가면서 종이와 약병에 뭔가를 적어나간다.
당비취의 약 감별 시간은 꽤 오래 걸렸다. 거의 한 시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마침내 감별을 다 끝낸 당비취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걸린다. 꽤나 만족스러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