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mer King RAW novel - Chapter 266
265 속고 속이는(2)
“감히 나를 두고 노닥거리다니, 천참만륙을 내 주마!”
“우리가 노닥거리든, 투전판을 벌이든 네가 뭔 상관이야!”
육칠의 발은 매우 수상했다. 출처가 불분명한 각법을 써서 궤적을 읽기가 난해하다.
퍼퍼펑!
육칠이 얼추 장음철과 공수를 주고받자, 홍무개는 미간을 찌푸렸다. 예전이었다면 한주먹거리였을 텐데, 제법 잘 버틴다.
‘이 새끼가 언제 이렇게 강해진 거야?’
위기의 순간 도움을 준 소검후도 알려진 정보와는 차원이 달랐다. 시리도록 차가운 기운으로 무장한 그녀의 검은 완벽했다. 이제는 소검후가 아닌 검후로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그녀가 지나갈 때마다 대치 구도가 달라졌다.
‘빙검강을 저리 자연스럽게!’
초절정의 경지를 넘어선 것이 분명했다. 그 짧은 시간에 저토록 강해지다니 실로 놀라웠다.
‘나도 따라다녀야 하나?’
육칠의 성장이 눈엣가시였다. 잘난 척하며 눈앞을 맴돌 걸 상기하자 짜증이 치밀었다.
꽈아아아앙!
광포한 포격, 무쌍의 일격이 고전하는 승천단의 중심에서 폭발했다. 웅후한 파괴력도 파괴력이지만, 퍼지지 않는 권공의 집중력이 몹시 정교했다.
‘허어, 소룡대회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거늘. 언제 이렇게 강해졌단 말인가?’
승천단주 무쌍검 남궁우는 대원들을 위기에서 구해 준 소년을 기억하고 있었다. 남궁세가에서 열린 소룡대회의 준우승자였기 때문이다.
그때도 또래에 비하면 압도적인 무력을 갖추고 있었거늘. 지금과 비교하면 태양 아래 반딧불이었다.
‘말도 안 되는군!’
그자와 관련이 있으니 이해하려고 애를 써보지만, 남궁우의 상식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제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세월의 힘을 뛰어넘기란 말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이 나이에 이렇다면 후일 천하제일……. 그건 무린가?’
그자가 있으니 천하제이인을…….
남궁우로선 오늘 개안을 하고 말았다. 마치 암중 세력과 대적하기 위해서 하늘이 내린 천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듯했다.
난세에 영웅이 등장하듯.
‘느긋하게 있을 때가 아니군.’
강하다곤 하나, 어린…… 저 얼굴은 어리다고 할 순 없겠다. 하나, 그 앞에서 실없는 소린 하지 않았다.
“승천단은 검세를 개방하여 적을 맞이하라.”
“충!”
검후, 육칠, 철호의 등장으로 수세에 몰렸던 승천단과 혼천단이 기세를 탔다. 그러나 광혈, 광겁, 광악으로 구성된 수라대는 전세의 역전을 쉽사리 허락하지 않았다.
“모두 죽여랏!”
“악적을 죽여랏!”
서로의 살의와 살의가 충돌하며 일대를 장악했다. 범인은 다가서지 못할 지옥의 아수라장을 방불케 한다.
쳇!
삼파전으로 분리되어 결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패암과 혈암은 이러한 대치 국면을 마땅치 않게 보았다.
분명 앞서고 있었다.
남궁세가와 개방이 힘을 합쳤다고 해도, 결국에는 무너져야 했다.
그러나 새로운 놈들이 나타나면서 균형을 이루었다. 마병에 고전했던 검제와 취선도 점차 대응을 달리하면서 좀처럼 공세를 취하지 못했다.
꽈다다당!
투아앙!
패암과 혈암은 남궁연화를 압도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좀 더 밀어붙이면 쓰러뜨릴 줄 알았다.
지금도 봐라.
남궁연화는 거지도 친구 하자고 하면 불쾌감을 줄 정도로 엉망이었다. 옷은 넝마가 되어서 핏물이 육신을 적시고 있었다. 기력이 바닥이 나서 쓰러졌어도 벌써 쓰러졌어야 했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공격을 받아내고 있었다.
‘더 강해졌어?’
‘이 미친년이!’
순수 실력만 놓고 봐도 화경의 초입에 도달한 년이 더 강해졌다. 그것이 패암과 혈암의 신경을 자극했다. 극한에 이른 상황에서 강해지다니, 믿어지지 않을 지경이었다. 내버려 두었다가는 어떤 변수가 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죽이려고 살수를 연거푸 뿌리는데, 죽지를 않는다. 귀신과도 같은 생존 본능이 아닐 수 없었다. 다소 손해를 감수하고 달려들었다가 혈암과 패암은 낭패를 경험했다.
이년이 경각의 생사지경에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죽기 살기로 달려들었다.
“어서 와 봐! 쫄았냐?!”
몰리는 와중에도 도발을 서슴지 않는 남궁연화였다.
그것이 패암과 혈암의 속을 긁었다. 검제와 취선을 함정에 빠뜨릴 때까지만 해도 예상대로였거늘. 이후의 국면이 매끄럽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어째서 오지 않지?’
패암과 혈암은 길어지는 시간에 의문을 품었다. 이쯤 됐으면 등장해서 계집의 희망을 깔아뭉개야 했다.
그때.
데구르르르!
혈암과 패암은 순간 깜짝 놀랐다. 계집이 또다시 천뢰구와 같은 수작을 부리나 싶었다.
굴러들어 온 물건이 그들의 눈에 익었다.
……검암?
혈암과 패암은 천뢰구에 당했을 때보다 놀랐다.
연유는 분명했다.
믿을 수 없는 현실과 마주했기 때문이다.
검암이 누구인가?
그는 무력 하나만 놓고 보면 암주들 가운데서도 가장 강하다. 서열이 같다고 해서 무력이 같다고 보면 오산이었다. 검암을 죽이려면 최소한 암주들 셋 이상, 어쩌면 넷은 필요했다. 그럼에도 죽일 수 있다고 자신하기 어렵다.
다른 이유를 떠나서 검암에게는 광검수라대가 있었다. 벼리고 벼린 무력대와 함께하고 있어야 할 검암이 수급만 덩그러니 던져졌다.
“이게 무슨?”
“도대체 누가?”
남궁연화를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마저 잊었다. 계집이 이때를 노릴 수 있음에도, 칼밥 먹은 무인답지 않게 넋을 놓았다. 그들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였기 때문이다.
위화감이 번졌다.
저벅!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발소리가 들렸다. 느릿하게 걷고 있지만, 어느새 지척에 있었다.
“찾는 것 같아서. 선물은 맘에 드나?”
“……?”
난데없이 간격을 뚫고 들어온 자는 눈에 익지 않았다. 대륙의 강호인명록에 들지 않았다면, 생소한 놈이 분명하다.
하나,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검암의 수급을 잘라 왔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대체 어떻게?
패암과 혈암으로선 당연했다. 검암을 죽이려면 최소한 검제와 취선이 합공을 펼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광검수라대가 곁에 있는 이상 제압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시간상으로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 검암과 광검수라대가 당했다는 걸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네놈은 누구냐?”
“너희들은 잠깐 대기. 곧 죽여 줄 테니까, 조바심 내지 말고.”
무진은 그들을 보지도 않고 남궁연화의 앞에 섰다.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꼴을 살폈다. 내외상이 심하고, 잡다한 상흔으로 인해 출혈도 적지 않았다.
“언제까지 멀뚱히 쳐다보고 있을 거야? 정신 안 차려!”
아!
출혈로 인해 환상을 본 줄 착각했던 남궁연화는 무진의 타박에 현실로 돌아왔다. 상황이 실로 절묘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돌아갔을 것이다.
후우!
남궁연화는 자신의 불찰로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 갈 뻔했다는 죄책감이 있었다. 간절히 원하면 하늘이 염원을 들어준다는 말 따윈 믿지 않았거늘.
“어떻게 온 거야?”
“자고로 어른 말씀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 하나가 생긴다고 했지.”
“개떡 같은 소리 하지 말고, 어떻게 된 거냐고!”
“검제께서 연락하셨어.”
“……아!”
이해하기 쉬운 간결한 답변에 남궁연화는 허탈한 탄성을 토해냈다. 어쨌든 안심이 되었다. 할아버지의 선견지명이 아니었다면 참혹한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제때 와줘서 고마워.”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나중에 꼭 돈으로 갚아.”
은혜를 마음으로 갚으려고 한다면 후일 마음고생이 심할 것이다. 반드시 돈, 귀물, 패물로 갚아야 했다. 그것이 은혜를 갚는 최고의 선택이다.
“돈도 많으면서!”
“부자는 괜히 부자가 아니야.”
가난한 자들의 착각이다. 돈이 많으면 헤프게 쓸 거라고 여기는데, 진짜 부자는 한 푼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과정과 결과를 치밀하게 계산하여 생산적으로 썼다.
-전귀 주제에 부자의 도리를 언급하는 거냐?
‘망자는 빠지시지. 돈도 못 버는 새끼가!’
-난 죽은 사람이 아니다!
‘혼만 남은 게 죽은 거지, 그게 산 거냐!’
무진은 침원에 도착하자마자 개방도를 만났다. 중원의 소식을 전해주었고, 검제의 서신을 받았다. 작전은 자신이 도착하는 걸 확인한 이후에 실행하겠다고 전했다.
‘위험을 감수할 만했지.’
-이로써 더욱 위험해질 수도 있어.
‘무인이라면 응당 감내해야 할 몫이지 않나.’
-방패막이로 쓰겠단 거군.
마왕의 빈정거림이 맘에 안 들긴 하지만, 무진은 부정하진 않았다. 마신교와 직접적으로 엮이게 되면 여러모로 행동에 제약이 생긴다. 최대한 자신을 감추며 마신교의 전력을 약화시켜야 했다.
도중에 의도치 않은 사태가 벌어진다면, 정면 돌파도 고려해야 했다. 무진은 싸움을 마다하진 않는다. 다만, 유리한 고지에서 싸우고 싶을 뿐이다.
‘전장은 애들 놀이터가 아니잖아.’
-맞는 말이지.
압도적인 강함도 중요하지만, 전략 전술의 중요성도 부정하지 않았다. 무모한 전술은 희생을 늘린다. 대의를 거론하나, 개인의 삶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효율로 최대한의 효과를 내야 했다.
실제로 무진이 겪은 미래는 수많은 희생자를 탑처럼 쌓으며 이룬 전과였다. 전왕의 등장으로 전세를 역전시켰지만, 승리를 위한 희생이 너무 많았다.
‘희생은 불가피해도, 그전까진 최대한 유리하게 싸워야지.’
무진은 자존심 때문에 실리를 버리지 않았다. 자존심은 살아서 세우면 그만이었다. 죽어서는 명예도 명성도, 망자의 부질없는 미련에 불과했다.
“돌발 변수에 당황하지 않고 도주한 건 칭찬해주마. 고지식하게 정면 대결을 고집했다면 실망했을 거다.”
“순간의 선택이 목숨을 좌지우지하니까. 내 목숨은 소중하다고!”
“그래도 신법은 좀 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겠어. 아까 분명 반격할 기회가 세 번은 있었어. 그런데도 앞의 지형지물을 파악하지 못해서 반격의 기회를 잃었어.”
“비가 와서 나무가 쓰러질 줄은 몰랐다…… 어?”
“수목을 박살 내서 반격의 재료로 썼어야지.”
“잠깐, 정지!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남궁연화는 자연스러운 대화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바로 옆에서 보지 않고서야 저처럼 세세히 알고 있을 순 없다.
“어떻게 알긴, 옆에서 봤으니까 알지.”
“……?”
뭘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무진의 태연함에 남궁연화의 안도했던 얼굴이 점점 붉게 변하며 일그러졌다.
옆에서 다 봤다고?
그런데 왜 이제야 나타나?
이 망할 인간이!
고마웠던 마음이 순식간에 원망으로 바뀌었다. 자칫 잘못했으면 아는 사람들이 자신 때문에 죽을 수도 있었다. 옆에서 다 보고 있었으면서, 정말로 고약한 심보가 아닐 수 없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내가 말했지. 이놈들은 그동안 상대했던 놈들과는 질이 다르다고. 완벽한 전략이란 세상에 없어. 그럼에도 완벽해야 해. 사람의 목숨이 걸려 있는 이상. 가족의 목숨이 걸려 있다면 더더욱 그렇겠고.”
남궁연화는 억울함을 끝내 토로하지 못했다. 이번 작전은 자신이 주도했고, 성공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모두의 생명을 담보로 했던 작전을 운에 맡겨선 안 되었다.
무진이 늦게 나타난 것을 탓할 게 아니라, 완벽하지 못했던 자신을 탓해야 했다. 그것이 작전을 주도한 책임자의 도리였다.
“언질이라도 해 줬으면 좋았잖아!”
“느슨한 마음가짐으론 아무것도 안 돼. 뒤에 누가 봐주고 있다는 걸 알면 지금처럼 싸우지 못했을걸.”
사람이란 어쩔 수 없다. 배수의 진을 쳤을 때와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땐 각오 자체가 달랐다. 무진이 배후에서 안전하게 버팀목이 되어 주면 본인의 진면모를 드러내지 못한다.
지금도 봐라, 남궁연화는 자신의 잠재력을 격발하여 한 단계 성장했다. 궁지에 몰리지 않으면 잠재력은 물론 본성을 알기 어렵다.
“죽어랏!”
소강상태를 일별하는 벼락같은 도기가 무진의 등을 향했다. 넋이 나갔던 패암이 정신을 차리고 방심한 무진을 노린 것이다.
‘한눈을 판 대가로 네 목숨을 받겠다!’
패암으로선 곱씹을수록 열이 받는 상황이기도 했다. 놈의 말을 얌전히 듣고 있었던 시간들이 치욕스럽게 느껴졌다. 싸워보지도 않고 꼬랑지를 만 격이었다.
타아아아아앙!
쿠다다다당!
육중한 암벽을 쇠꼬챙이로 베었다고 해야 하나? 나아간 그대로 되돌아온 패암은 엉망진창으로 바닥을 굴러야 했다.
“뭐, 기다리기 싫다면 하는 수 없지.”
기습에도 무감각하게 돌아선 무진이었다.
패암이 공격을 한 후, 틈을 노리려던 혈암은 멈칫하고 말았다. 등이 아니라 정면을 마주하고 있었다. 방금 노렸다면 빈틈이 아니라, 순식간에 사로가 되었을 것이다.
‘이놈, 어느새!’
바닥을 볼품없이 굴렀던 패암의 방향이 혈암의 눈에 들어왔다. 공격하려고 하는데, 받아친 궤적이 암습을 시도조차 못 하게 막아섰다.
쿨럭!
도공을 제대로 펼쳐 보기도 전에 역으로 당한 패암은 역류하는 핏물에 가슴이 답답했다.
퉷!
응혈이 진 핏덩어리를 뱉어내자 호흡이 그나마 원활해졌다. 털고 일어선 패암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이놈은 대체 뭐지?’
단 일격에 패력마공이 흔들리며 기혈이 역류했다. 수라장을 건너 이 자리에 오는 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전대미문의 현실이었다. 더는 검암의 죽음을 우연으로 치부하지 못했다. 놈은 경험한 적이 없는 분명한 강자였다.
“보통 놈이 아니구나. 겁이 나지 않는다면 신분을 밝혀라.”
“그냥 보통 놈으로 할게.”
코딱지를 파면서 지나가는 놈이라고 해도 괜찮다. 어떤 식으로 인식을 하든, 퍼지지만 않으면 그만이지.
“쥐새끼 같은 놈이로구나.”
“편한 대로 불러, 쥐새끼한테 뒈지고 싶으면.”
이만한 무력을 갖추고 있다면 대부분은 자존심이 강하다. 자신의 무에 대한 자부심이 지나쳐 상대를 깔아 보기 마련이다. 드러내려고 안달하는 무인의 성향을 역으로 이용했거늘, 시큰둥했다.
스윽!
무진은 고개를 돌려 남궁연화를 보았다.
“아무도 안 죽었다.”
“뭐?”
“어때, 아직 할 수 있지?”
“나보고 하라고?”
“괜찮아, 죽기밖에 더 하겠어? 혹, 자신 없냐?”
“없기는, 하라면 못 할 것 같아!”
“그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