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124)
〈 124화 〉 124 저 달라진 거 없나요
* * *
1.
‘알아주어서 다행이에요.’
해응응은 안심했다.
갑작스레 기침이 나왔을 때에는
이런 것까지 이야기해서
괜한 걱정을 끼쳤다는 생각에
미안한 마음만 앞섰지만.
어째서인지 그 이후로
아영이의 반응이 부쩍 얌전해졌다.
“앞으로는 언니를 곤란하게 하지 않을게요.”
[정말로 그래줄 수 있나요?]“언니가 얼마나 절 아껴주시는지 알았어요. 그 애정에 기대어 제가 얼마나 어리광을 부려왔는지도. 그래도 전 아이가 아니죠.”
언제까지고 어리광만 부릴 순 없잖아요.
슬픈 기색을 애써 억누르며
주먹을 꼭 움켜쥐는 주아영.
“앞으로는 언니의 동생으로서, 그리고 첫 번째 제자로서. 언니가 제게 보여준 애정과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요.”
마음을 다잡고 결의를 다진 주아영.
그녀의 의연한 태도가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네요.’
직접 선을 그어놓고는
막상 아영이가 감정을 겨우 정리하자마자
대견함보다는 섭섭함이 앞서다니.
‘그래도 분명 이게 옳은 길이라고 생각해요.’
여자는 남자와 사귀어야 한다.
자신이야 누구와도 사귈 마음은 없지만.
적어도 아영이는 그랬으면 좋겠다.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그녀가 자신을 잊지 못하고
너무 깊이 빠져버린다면.
무림이 아닌 현대에서까지도
본의 아니게 죄 많은 여자가 되지 않겠는가.
‘당신을 동생으로서, 제자로서 아끼는 마음은 진심이에요. 그러니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도록 노력하세요.’
이것만이 그녀의 해맑은 우정과 사랑에
그녀가 돌려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었다.
코…….
침대에 눕히고 의자에 앉아 바라보니
어떻게든 잠들지 않으려던 아영이도
옅은 숨소리를 내며 잠에 들었다.
‘많이 힘들었겠죠.’
하루아침에 사문의 어르신들을 여의는 슬픔.
어깨에 얹어지는 막중한 책임감.
살갗이 파이도록 움켜쥐는 분노.
‘감당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거기에 선까지 긋는 몹쓸 짓도 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고
전보다 단단하게 굳음을 알고 있기에.
‘오늘밤만큼은 안심하고 잠들도록 하세요.’
의자에 앉아 그녀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며
마주잡은 손을 밤새도록 놓지 않았다.
하룻밤에 불과한 시간일지라도.
오늘의 밤은 오직 아영이를 위한 밤이었다.
2.
이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
얼마 만에 이런 깊은 잠에 빠졌던 걸까.
꿈조차 꾸지 않는 편안한 수면에
눈을 떠도 피로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보글보글
심지어 귓가에는 듣기 좋은 소리마저 들린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코를 킁킁거려도 음식냄새가 나질 않았다.
밑집에서 하는 요리인가?
그러기에는 소리가 너무 큰데…
[일어났나요?]고개를 돌리자 발견한 광경은
침대 바로 옆에 의자를 두고 앉은 해응응과
자신의 귓가에 갖다댄 손에 들린 스크린폰.
그 스크린폰에서 재생되고 있는
‘찌개 끓이는 소리 ASMR 1시간’ 영상.
“이게 뭐에요. 진짜 찌개 먹는 줄 알았네.”
실망한 듯 투덜거려보지만
어이가 없어서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런 엉뚱한 점도 평소의 언니다웠다.
[새벽수련 하러 갈까요?]“아침은 수련 끝나고 먹는 거죠? 알았어요. 대신 아침메뉴는 무조건 찌개에요!”
평소와 다름없는 해응응에 맞춰
활기차게 소리치는 평소와 다름없는 주아영.
‘이거면 된 거죠, 언니?’
마주잡던 손을 놓더라도
서로를 아끼는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주아영은 슬픔을 딛고 일어났다.
3.
길드사무소로 출근한 해응응.
그녀를 기다리는 건 반가운 소식이었다.
“조정위원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명호동게이트가 해남파에 위탁되었다고 합니다.”
명호동 게이트는 이제 공식적으로 해남파의 소유가 되었다.
이는 명호동 전체가 해남파의 관할구역이 되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기다리는 분들이 잔뜩 계십니다.”
민우성의 안내를 따라 향한 대회의실.
그곳에는 해응응과 안면이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말했지? 채찍 그렇게 쓰는 거 아니라고. 이참에 해남파에 들어와서 알려줄게. 진짜 채찍은 어떻게 다루는 건지.”
채찍매니저.
C급 각성자.
독사눈의 이소혜.
“관할구역을 채울 인원이 부족할 겁니다. 원하신다면 우리 대산길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무술지도를 받는 의뢰주.
대산길드 길드장 철대산과 휘하 길드원들.
“하루 쉬었다고 얼굴에서 윤이 나네. 언제 봐도 연예인 감이라니깐?”
로얄클럽 대표 한채린.
“안에서는 여러모로 신세졌어요, 스승님.”
“이번엔 저희가 도와드리는 것이에요.”
3세대 여성그룹 하프타임의 구성원.
B급 각성자 엘로지오 세리 니나.
B급 각성자 이소노 나나세.
해남파의 앞을 방해하는 걸림돌은 전부 치워주러 온 지원세력들.
그 수많은 인파 앞에서
해남파의 체면이 밀리지 않고자
힘을 잔뜩 준 정장차림의 길드원.
소경석과 민우성, 우지우.
그리고 신성곽과 명호길드 출신 부하들.
“말만 해요. 뭐부터 하고 싶어요?”
연예계 진출.
새로운 사업체의 설립.
길드본부 확장.
전면적인 게이트 공략에 이르기까지.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력이 그녀에게 주어졌다.
‘욕망은 사람을 조종할 수 있는 최고의 원동력이죠. 해응응. 당신을 조종할 욕망을 알아낼 수 있다면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겠어요.’
한채린의 자신감 넘치는 웃음.
그 앞에서 해응응이 처음으로 가한 지시는
[소경석. 민우성. 신성곽.]세 사람의 이름과
[전부 세 분한테 맡길게요.]권한위임이었다.
“네? 아니, 저기요? 이렇게 전부 내팽개치고 가버리면 어떡해요!”
[길드를 키우는 일에는 관심 없어요. 그런 문제는 세 분이랑 상의하세요.]해응응은 정말로 그 말을 끝으로 대회의실을 나갔다.
무림에서 해남파를 재건했을 때.
무공만 가르쳐주면 되는 줄 알았던 문파에 어찌도 해야 할 일이 그리 많았던가.
‘하나하나 다 들어주다간 끝이 없죠.’
처음부터 손도 안대면 잡다한 문파 일에 시달리는 일은 없을 거라고 여기고 해응응은 모든 일을 다른 이들에게 맡겼다.
소경석과 민우성, 신성곽 세 사람이라면 충분히 믿을만한 사람이었다.
한채린은 그 사실에 납득하지 못해 따라나왔지만 말이다.
“아니, 그럼 하고 싶은 것도 하나 없어요? 뭐든지 들어준다고요. 말만 하라니깐요?”
급히 회의실을 나와 쫓아온 한채린이 다시금 제안했다. 자신이야 있었다.
그녀는 돈이 많고, 인맥도 상당했다.
십대길드를 부수고 싶다는 황당한 소리만 아니면 어떻게든 다 들어줄 작정이었다.
[제가 관심 있는 건 딱 세 가지에요.]“욕심 많으시네. 그게 뭔데요?”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주아영이나 해남파 직원들, 대산길드에 이어 니나와 나나세까지 수련을 시키고 무공을 가르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이건 그녀가 개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수련하기.]그만한 강함을 지녔다면 혼자 수련에 몰두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강함이란 부단한 노력을 쌓아야 완성되니까.
이것도 그녀가 개입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방송하기.]마지막은 그나마 만족스러웠다.
드디어 방송에 출연할 마음이…
“하? 방송출연하기가 아니라 방송하기라고요?”
[슬슬 게임을 할 때가 되었거든요.]“아니아니아니. 잠깐만요. 그럼 저한테 부탁하고 싶은 건 하나도 없다는 거예요?”
정말로 필요한 것들이야 있기는 하다.
구음절맥의 치료에 필요한 3갑자의 내공.
그건 타인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이트와 탁기만이 가득한 현대에는
내공증진에 필요한 내단 대신
혼탁한 마석덩어리나
마석을 저장하는 공허석 따위밖에 없다.
그런 쓰레기들은 반요곡의 요기만도 못했다.
공력증진에 써먹을 여지도 없다.
[그나마 필요한 건 이번에 구했거든요.]해응응이 돌연 한채린의 앞에서 빙그르르 한 바퀴 몸을 돌렸다.
회전하는 몸을 따라 머리카락이 한 바퀴 회전하며 살포시 내려앉는 모습이 마치 보석을 끼얹은 것처럼 아름답게 비추었다.
‘와.’
한채린은 순간 넋을 놓고 몽롱한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죽립 너머로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는 시선에 옅은 호기심이 어렸다.
[저 달라진 거 없나요?]“예?”
[잘 보세요.]또 다시 한 바퀴를 빙그르르 회전하는 해응응.
뭐지.
예쁘기는 한데.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훌륭하긴 한데.
대체 뭐가 달라졌다는 거지?
“어……. 관록이 늘어났나요?”
해응응의 눈에 실망의 기색이 역력하게 떠올랐다. 한채린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여자친구한테나 들을법한 세계 7대 난제 중 하나를 이런 식으로 기습적으로 듣게 되다니, 다른 의미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미안해요. 잘 모르겠어요.”
솔직하게 사과를 하는 한채린.
그녀의 앞에서 해응응이 돌연 양손을 허리춤에 얹고 가슴을 폈다.
무언가 알아봐주길 원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한채린은 짐작도 안 간다며 고개를 저었다.
[잘 봐요. 평소보다 가슴이 더 작아 보이잖아요.]“농담이죠?”
가슴이 커 보이는 것도 아니고 작아 보인다니.
그거의 어디가 그렇게 자랑스러울 대목인가.
[선물을 받았거든요.]“무슨 끔찍한 선물을 받아야 가슴이 작게 보일수가 있죠?”
“평상시에 보던 전투복 차림이신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살펴보아도 달라진 건 하나도 안 보인다.
도대체 무슨 옷을 선물로 받은 걸까.
말만 들어서는 고성능 아티펙트 방어구라도 선물 받은 것 같은데.
곰곰이 고민하던 한채린의 눈이 해응응이 자랑스레 내민 가슴으로 향했다.
에이.
설마.
“아니죠? 지금 제가 생각하는 거.”
[맞아요. 천잠사로 만든 속옷이에요.]불길한 예감이 보기 좋게 적중했다.
“아니, 아티펙트를 브래지어부터 맞추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해응응이 자랑하고 싶던 옷은
아라크네의 천잠사로 만든 브래지어였다.
그녀 딴에는 자랑할 만도 했다.
아무리 격한 움직임을 해도
절대로 가슴이 흔들려서 방해되지 않는
압축률 99%가 넘는 가슴가리개를 얻었으니
이제 날마다 가슴붕대를 갈지 않아도 된다.
심지어 그 뿐만이 아니다.
천잠사는 도검불침의 방어력을 지녔다.
속옷가리개에 한해서는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는 종결급 방어구를 장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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