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Broadcast of Murim Returnees RAW novel - Chapter (349)
〈 349화 〉 349 언니의 마음
* * *
1.
동귀어진의 후유증은 팔에 부상을 입거나 절단되었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내상회복에 꽤 시간이 걸리겠네요.’
이것저것 몸보신을 하라며 음식을 사다주는 사람들은 많지만 대부분은 그녀가 아니라 마크2의 입에 대신 들어가고 있다.
“평가. 이번 새우튀김은 8.5점입니다. 바삭한 식감과 부드러운 속살의 조화가 훌륭하지만 약간의 눅눅함과 간장 맛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헤에. 점수 높구나. 어디보자, 오. 신성곽 어르신이 가져왔던 거네?”
.
거창한 이름까지 붙은 서책에 우지우가 사각사각 펜을 들어 대신 이름과 음식, 점수와 심사평을 적어 내린다.
벌써 스무 장은 가볍게 넘긴 서적에 우지우가 감탄하며 물었다.
“이렇게 먹으면 살찌지 않아?”
“부정. 마크2의 아크엔진은 모든 바이오에너지를 지방이 아닌 엔진연료로 저장합니다.”
“거참 편리하네. 먹고 싶은 만큼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니. 그럼 그 연료통이 다 차면 그때는 어떻게 되는 거냐?”
“정답. 주기적으로 안광빔을 발산해서 에너지 잔량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오. 그래서 가끔 마당에서 빔으로 돌멩이를 부수거나 비둘기를 빔으로 구우고 그랬구나?”
마치 고양이가 발톱으로 바닥이나 벽, 소파를 긁으며 영역표시를 하거나 몸매관리를 하는 것처럼 마크2는 빔을 쏘는 것이다.
그럼 길드장님은 빔 대신 무얼 하고 있을까.
우지우는 잠깐의 고민 끝에 해응응의 한 손이 빙글빙글 돌며 손아귀 안에서 무언가를 굴리는 모습을 발견했다.
동그란 것이 공 같기도 하고, 장난감 같기도 해서 만져보려고 슬쩍 다가갔다.
그러자 해응응이 주먹을 꼭 쥐고는 활짝 폈다.
“어?!”
[만지려고 하지 마세요. 큰일나요.]“방금 그거 뭡니까? 길드장님이 드디어 마술을 배우신 겁니까?”
[무공이에요.]“마술같은 무공이요?”
[기를 공 형태로 뭉쳐서 닿는 물질을 모조리 분쇄해버리는 강환이라는 기술이에요. 이건 진짜 강환만큼의 압축도는 없지만요.]“그럼 손이 분쇄되지는 않겠군요?”
[대신 찢겨나갈 거예요. 손가락만 대어도 아마도 손목까지는. 잡아끄는 힘이 있으니 아프기는 더 아프겠죠.]“…….”
뭐 그렇겠지.
묵언검객은 무술연습이 발톱 스크래치나 빔 사출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 당연하다.
괜한 호기심을 품었다가 손가락을 잃을 뻔했다는 사실에 우지우가 부르르 떠는 사이, 해응응이 귀를 쫑긋 세우며 어딘가를 돌아보았다.
“어? 방금 귀가 움직이시지 않았습니까?”
[그런 체질이에요.]“묵언검객 고양이설이 설마 진짜였습니까?!”
[허튼 소리 말고 응대 준비나 하세요. 오랜만에 본당에 손님이 오려는 모양이니까요.]“아오, 아깝네. 방금 걸 카메라로 찍었어야 했는데. 아니, 동영상을 찍었으면 백만 조회수는 가볍게……”
귀 쫑긋거리는 것이 뭐 그리 신기하다고 조회수 타령인지.
‘뭐, 호기심을 못 이겨서 이런 기능까지 넣어버린 사람이 할 말도 아니지만요.’
【축복】
[동물귀] 당신의 귀는 동물의 귀처럼 쫑긋거리며 움직일 수 있습니다.그저 청력이 조금 좋아지고 귀가 쫑긋거릴 뿐인 하찮은 축복.
그녀가 지닌 자잘한 축복들에는 이런 사소한 ‘즐길거리’들이 꽤 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본 마크2가 아무리 얼굴에 힘을 주며 애를 써도 마크2의 귀는 미동도 않고 쫑긋거리지도 않았다.
“우우. 마크2도 귀를 쫑긋거리고 싶습니다.”
귀에는 이개근이라는 근육이 있다.
해응응은 축복을 선택했기에 보통의 인간에게는 퇴화된 이 근육이 활성화되었고, 그녀를 모방한 마크2에게도 이 근육이 있을지도 모른다.
슬쩍 손을 뻗어 마크2의 귀를 만져보며 가볍게 내기를 투사해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노력하면 될지도 몰라요. 귀를 쫑긋거린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요.]아이인 마크2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고 신나는 일인지 눈에 힘까지 주어가며 귀를 꿈틀거리려고 애를 쓴다.
보는 입장에서는 그 전에 힘준다고 접힌 미간부터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너무 인상을 쓰지는 마세요. 미간을 찌푸리면 주름이 남으니까요.]우지우가 접객을 위해 나간 사이, 마크2를 독점할 수 있게 된 이소혜가 마크2의 귀를 잡아당기며 물리적으로 귀를 움직여준다.
눈을 꼭 감고 아프다며 낑낑거리는 모습을 하는 자신의 얼굴이 퍽 우스워서인지 해응응은 형언하기 힘든 기분에 사로잡혔다.
‘꼭 무림에 갓 떨어진 제 모습을 되돌아보는 것만 같네요.’
잃어버린 순수함을 다시 마주하는 기분이란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달라진 자신이 어딘지 모르게 더럽혀졌다는 생각을 들게 하니까.
[귀를 쫑긋거리는 연습은 나중에 하세요. 손님이 들어오니.]가까워지는 발걸음과 기척에 속으로 열을 헤아리기 무섭게 우지우가 들어왔다.
“이다혜님이 오셨습니다!”
방문자가 올 것은 알았다.
그중에 이다혜가 있으리라고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지금 찾아온 사람이 이다혜라는 사실은 해응응도 예상치 못했다.
[소혜. 당신의 언니는 각성자가 아니라고 했었죠?]“응? 어. 그랬었지. 내가 알기론 스트리머 생활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서 각성자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을 걸?”
해응응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번졌다.
이소혜는 그렇게 말했지만 막상 지금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다혜의 몸에서는 적지 않은 마력이 느껴진다.
그것도 혼탁한 탁기가 아닌 정제된 순수한 마나의 힘이.
‘제 추측이 맞았어요.’
게임을 클리어하면 내공을 얻을 수 있다.
이다혜는 그 대표적인 수혜자 중 한 명이었다.
2.
“헤에. 소혜랑 마크2는 이런 곳에서 지내고 있었군요. 저희 집보다 훨씬 더 넓네요.”
“언니도 참. 여긴 문파잖아. 가정집하고 비교를 하면 어떡해? 쪽팔리니까 그런 소리는 하지 마.”
“문파 생활은 어떠니?”
이다혜의 걱정어린 표정.
괜히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그 표정 앞에서 이소혜는 평상시의 카리스마나 시니컬한 성격을 잃고 퉁명스레 틱틱거렸다.
“그냥저냥? 나쁘지 않아.”
“얘도 참, 속 편한 소리하네. 이런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니? 지금 네 자리도 탐낼 사람이 만 명도 넘을 거야.”
“흥. 누가 주기나 한 대? 꿈들 깨라고 해. 언니도 마찬가지야.”
이소혜의 공격적인 대꾸에도 이다혜는 그저 착한 언니답게 웃음으로 대답했다.
“므으으.”
“감탄. 매니쟈가 애기처럼 힘도 못쓰고 당합니다. 마크2는 천적관계라고 생각합니다.”
“투쨩. 이럴 땐 천적관계가 아니라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양육관계라고 하는 거란다. 소혜는 이 언니가 엄마처럼 길렀거든.”
“뭐래! 누가 누구보고 엄마라는 거야!”
“아닌가? 각성자 생활한다고 멋대로 집 나가기 전까지 집에서 먹고 살게 해준 건 어디 사는 착한 언니였더라~?”
“그, 그건.”
드물게도 곤란해 하는 이소혜의 모습은 해응응이 보기에도 퍽 신선했지만, 자신의 매니저가 너무 시달리는 모습을 마냥 방관하기는 좀 그렇다.
[걱정 말아요. 지금의 이소혜 씨는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어엿히 자립한 사람이니까요.]“어머. 조금 놀랐어요. 소혜가 묵언검객님한테 그런 의젓한 평가를 듣다니.”
[언니분이 보기엔 부족함 많을지 몰라도 저희 해남파 사람들에게는 믿음직스럽고 의지할 수 있는 훌륭한 매니저에요.]이소혜는 낯간지러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적어보이는 해응응 때문에 더 부끄러웠다.
‘뭐야 이 분위기. 꼭 학부모 상담회 같잖아. 아니면 상견례라던가.’
불안해하는 부모를 설득하며 아이의 장래를 이야기하는 선생님이나 남편 같은 태도.
그것이 마냥 싫지만도 않았다.
[원한다면 오늘 하루는 저의 문파에 머무르면서 마크2나 소혜씨의 일상을 지켜봐도 좋아요.]“와 정말요? 고마워요.”
“아 언니!”
“얘 좀 봐.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니? 너희 길드장님이 괜찮다고 하셨는데.”
“언니가 자꾸 극성맞게 구니까 그렇지. 대학교까지 와서 오지랖 부리는 부모처럼 쪽팔리다고!”
이소혜의 날선 반응에 이다혜도 조금 상처받은 표정이 되었다.
“아니, 그러니까… 하. 나도 다 큰 성인이잖아. 언니 품에서 이제 벗어날 때도 됐다고.”
“흥. 누가 뭐래? 난 소혜 너 말고 투쨩 보러 온 건데?”
“불만. 마크2의 이름은 투쨩이 아닙니다. 제대로 마크2라고 부를 것을 강력히 요청하는 바입니다.”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며 마크2의 손을 잡고 나가버리는 이다혜.
덕분에 게임에 대해 물어보려던 해응응도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저기, 방금 본 건 다른 사람들한테는…”
[못 본 걸로 해둘게요.]“고마워. 보다시피 저런 언니거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애 취급이야.”
이소혜에게는 나름 진지한 고민거리였다.
“물론 언니에게는 고맙다고 생각해. 한창 여자로서 즐길 나이에 나같은 녀석 뒷바라지 하느라 사생활도 거의 없었고, 그런 주제에 덜컥 집을 나가버려서 각성자나 되어버렸으니.”
[후회하나요?]“후회하지는 않아. 같은 상황이라면 분명 같은 행동을 했을 테니까. 단지 미안할 뿐이야.”
[가족이군요.]“가족이지.”
해응응은 조금 부러웠다.
그런 가족이 있다는 사실이.
“그러는 그쪽은 어때? 가족이라거나.”
[없어요.]“그런가? 가족 얘기는 한 번도 한 적 없었고.”
20년보다 더 예전에 사고로 죽었다는 이야기 따위, 해봐야 무얼 하겠나.
그때 그 시절의 신분은 이미 실종자로 처리되었을 텐데.
지금의 그녀는 민증도 성별도 외형도 전부 다른 제 3 자에 불과하다.
[오늘은 휴가에요. 언니랑 같이 시간을 보내세요. 두 사람이 함께 따로 시간을 보낸다면 분명 마음의 앙금도 풀릴 거예요.]“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
[이건 길드장으로서의 명령이에요.]이소혜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명령을 번복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해응응의 표정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이라.
가족인가.
이제는 얼굴조차 떠오르지 않는 남자였던 시절의 가족 대신, 빈자리를 채우는 주아영과 마크2, 해남파 사람들의 얼굴들.
지금은 이거면 된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해응응의 얼굴은 한층 홀가분해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