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24
123화 휴가(2)
전용기를 타보는 건 처음이었다.
김포공항의 VIP 전용 수속 데스크에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전용기 게이트로 향했다.
물론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이신은 그저 주디의 뒤만 졸졸 따라다녀야 했다.
익숙한 주디는 이신의 손을 잡고 끌고 다니며 모든 과정을 거쳐 전용기에 탑승했다.
전용기 내부는 집과도 같았다.
고급스러운 소파가 배치된 폭이 좁은 거실이 있었고, 부엌과 여러 개의 방도 있었다.
백인 여성 승무원이 다가오자 주디는 영어로 뭐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승무원은 음료를 가지고 돌아와 주디와 이신에게 주었다.
“어때요?”
주디가 물었다.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네.”
이런 비행기라면 며칠이라도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게임 하실래요?”
“컴퓨터 있어?”
“네. 스페이스 크래프트 할 수 있어요.”
“둘이 할 수 있어?”
“네, 유선 연결 되어 있어요.”
생각이 바뀌었다. 이런 비행기라면 몇 달이든 탈 수 있었다.
기내의 컴퓨터실에 정말로 PC 2대가 사이좋게 마주보는 위치로 되어 있었다.
두 사람은 각자 장비를 PC 본체에 끼우고 마우스 감도 조절을 한 뒤 게임을 시작했다.
영문판 스페이스 크래프트였지만 플레이를 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인류 대 인류 전이라 그런지 첫판부터 장기전이 되었다.
주디도 이제 1군 주전으로서 실력이 늘어 초반에 손쉽게 제압하려면 이신도 위험을 무릅써야 했던 것.
제자인 주디에게는 만에 하나라도 질 가능성을 두고 싶지 않아서 안전하게 운영을 한 이신이었다.
똑같은 빌드 오더로 시작한 두 사람이었지만, 중반에 접어들자 플레이의 차이가 확 벌어졌다.
주디가 3번째 확장 기지를 가져가는 타이밍에 이신이 공격했다.
항공수송선이 언덕 위에 기동포탑 1기를 내리고, 언덕 아래 앞마당에 고속전차 2기를 드롭했다.
고속전차들이 지뢰를 깔고 식량자원을 채집하던 건설로봇들을 사냥했다.
언덕 위에서 기동포탑이 포격모드로 불길을 뿜었다.
주디 역시 기동포탑 여러 기를 데려와 대응했다.
주디의 반격을 받으면서도 이신은 무조선 건설로봇만을 공격했다.
한 차례 테러는 진압했지만, 건설로봇의 피해가 상당해진 주디.
하지만 한숨 돌릴 틈도 없이 3번째 확장 기지까지 고속전차의 난입을 받았다.
견제, 견제, 또 견제.
점점 스피드를 올리며 견제를 퍼붓는 이신의 플레이에 주디는 막고 또 막다가 GG를 쳤다.
“준수한데 평이해.”
이신이 내린 평가였다.
“평이?”
“평범하다고.”
“아.”
그제야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주디였다.
“똑같이 평범한 정석을 하면 꼼꼼하게 섬세한 네가 남들보다 잘해. 신태호를 이겼던 것도 그런 점이 작용했고.”
눈을 반짝이며 경청하는 주디.
이신이 말을 이었다.
“그대로 최신 추세만 놓치지 않고 잘 따라간다면, 앞으로도 꾸준히 승률 50%를 챙길 수 있을 거야. 나도 처음부터 그 정도를 목표로 널 가르친 거고.”
“네.”
“하지만 그보다 더 발전되고 싶다면 너만의 개성을 찾아야 해. 신지호처럼 디펜스를 잘하든, 나처럼 공격적이든.”
“제가 어떤 개성을 살릴 수 있을까요?”
주디가 물었다.
이신은 어깨를 으쓱했다.
“견제나 디펜스나 싸움이 벌어졌을 때의 순간 판단과 대응 속도가 중요한데, 네겐 그런 순발력이 없어.”
“그럼요?”
“운영으로 승부를 보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게 낫지 않을까?”
“운영?”
“상대의 동향에 따라 운영에 변화를 주는 유연함을 기르는 쪽이 네 적성이 아닐까 싶다. 체제 전환과 확장 타이밍 같은 부분.”
“아, 알겠어요.”
주디는 알아들었다는 듯 대답했다.
이신은 컴퓨터실을 둘러보며 문득 물었다.
“그런데 이 게임이 세팅된 컴퓨터 2대는 나 때문에 준비된 거야?”
“아뇨. 원래부터 있었어요.”
“원래?”
“동생 때문에요.”
“동생도 게임을 좋아하나 보군.”
“네, 동생 때문에 저도 스페이스 크래프트 하게 됐어요.”
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기 안에서 두 사람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하루를 보냈다.
함께 연습 게임을 하고 리플레이를 보며 분석하다가, 식사를 하고 체력 훈련을 했다. 놀랍게도 이 전용기는 헬스 시설도 샤워 시설도 전부 완비되어 있었다.
‘이런 건 얼마 하지?’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돈을 열심히 벌어도 전용기는 무리였다.
밴쿠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수속도 주디가 손 붙잡고 데리고 다니며 해결했다.
짐은 이미 검은 슈트를 입은 남자들이 찾은 상태였다.
남자들은 주디와 이신을 차량으로 안내했다.
한국에서 타던 것과 똑같은 크라이슬러 리무진이었다.
밴쿠버에 오자 주디는 마주 앉은 이신을 보며 싱글벙글 웃었다.
“동생이 아주 좋아할 거예요.”
“동생이?”
“네, 동생도 코치님의 열렬한 팬이에요.”
주디는 재잘재잘 이야기를 했다.
주디는 동생과 함께 월드 SC 그랑프리 개인전을 관람했다.
두 사람은 캐나다의 톱스타 프로게이머 존 패트릭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대는 e스포츠의 발상지였으나 현재는 몰락한 한국의 선수였다.
개인전 32강전.
존 패트릭이 너끈히 올라갈 것이라고 누구나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다.
그 한국 선수는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스타일과 엄청난 스피드로 존 패트릭을 깨뜨리기 시작했다.
질풍처럼 달려온 고속전차 4기가 겁도 없이 거신병기 5기에게 덤볐다.
삽시간에 4방향에서 둘러싸 지뢰 매설.
지뢰에 휘말려 폭사하거나 만신창이가 된 거신병기들.
고속전차들은 다시금 남은 거신병기들을 둘러싸 지뢰를 매설했다.
지뢰 폭발과 함께 빠져나가는 고속전차.
전멸한 거신병기.
-Oh my god!
-Oh, Shit!
난생 처음 보는 컨트롤에 충격에 빠진 해설진과 관객들.
절정은 3방향 동시 견제.
항공수송선이 존 패트릭의 앞마당과 본진에 고속전차를 2기씩 드롭했고, 동시에 다른 확장 기지도 고속전차가 파고들었다.
생명석 심시티로 입구를 틀어박고 있었는데도 지뢰 비비기로 간단히 쳐들어와 신도들을 학살했다.
한 곳도 사수하기 힘들었는데 3곳에서 동시에 견제를 당하니, 인간의 멀티태스킹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 견제로 존 패트릭은 끝나버렸다.
큰 싸움은 단 한 번도 없이, 견제만으로 회생불능의 타격을 입어버린 존 패트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상대가 되지 않았기에 분한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주디와 동생은 그렇게 멍하니 그 경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동생은 크게 흥분해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고 한다. 저 사람은 천재라고 말이다.
“그때부터 둘 다 게임에 푹 빠졌어요. 코치님의 지난 경기를 찾아봤고요.”
“동생은 한국에 오지 않았나 보군.”
“네, 건강이 좋지 않아서요.”
“…….”
건강이 안 좋다는 말에 이신은 더는 묻지 않았다.
밴쿠버 국제공항에서 대략 40여 분간 차량을 타고 이동하며 아름다운 도시의 정경이 보였다.
바다와 인접한 깔끔한 도시, 예쁘게 조성된 공원들.
웨스트밴쿠버에 접어들어 해안도로를 타고 이동하다가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에요.”
커다란 저택이었다.
세련된 예술성이 가미된 건축디자인으로 지어진 현대식 저택.
무엇보다 코앞에 해변과 바다가 있었다.
저택의 정문 안으로 차량이 들어섰다.
차에서 내렸을 때, 저택 안에서 웬 소년이 걸어 나왔다.
“Judy!”
“John!”
주디가 펄쩍펄쩍 뛰며 달려가 소년을 끌어안았다. 1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금발의 소년은 자지러지게 웃었다.
흑발의 주디와 금발의 소년. 남매라고 하기에는 머리색이 너무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게 독특했다.
이윽고 금발 소년이 이신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다가와 이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표정에서 소년 특유의 수줍음과 밝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존 레벨린이에요. 반가워요.”
억양은 이상하지만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말이었다.
“이신이다.”
이신은 존과 악수를 했다.
“얘기 많이 들었어요. 주디의 선생님이시라고요.”
“어.”
“주디가 너무 부러워요. 저도 한국에 같이 갈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건강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그런 것치고는 존은 표정이 그늘 없이 아주 밝았다. 좋은 가정에서 잘 자란 상냥한 소년이라는 생각이 ?榕駭?
저택 안으로 들어와 두 사람은 이신을 4층으로 안내했다.
집안인데도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게 놀라웠다. 겉보기만큼이나 내부도 호사스러운 집이었다.
앞장선 주디가 복도 끝에 있는 방을 가리켰다.
“이곳에서 지내세요, 코치님.”
고개를 끄덕인 이신은 방에 짐을 풀었다.
옷가지를 벽장에 넣고 키보드와 마우스, 마우스패드, 이어폰 등을 보관한 브리프케이스도 조심스럽게 꺼냈다.
브리프케이스를 열어 장비들의 상태를 조심스럽게 점검하는 이신.
그런 그의 장비를 보며 존이 눈을 빛냈다.
“선생님.”
‘선생님?’
잠깐 흠칫했지만 평소에도 차이에게 자주 듣는 호칭이라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왜?”
“저랑 게임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한 번만?”
“많이 해주시면 더 기쁠 거예요.”
소년이 쑥스럽게 웃었다.
이신은 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 될 것 없지.”
“잠깐, 그 전에 나부터 꺾어야 하지 않아?”
주디가 끼어들었다.
존은 눈웃음을 지었다.
“날 이길 수 있겠어?”
“예전의 내가 아니야. 이제 어엿한 프로게이머라고.”
“카이저 선생님께 배운 사람이 누나뿐만이 아니란 걸 기억해.”
그 존의 말에 이신은 의아함을 느꼈다.
마치 자신도 이신에게 배웠다는 듯이 말하는 게 이상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4층 반대편에 있는 게임 룸으로 갔다.
PC가 여러 대 설치되어 있었는데, 주디와 존이 자리 잡고서 게임을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존도 인류였다.
그런데 존의 플레이를 보던 이신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흡사 주디의 복사판 같았다.
아니, 정석 플레이를 하는 이신 자신과 쏙 빼닮았다.
일반인인데도 손놀림이 정확해서 연습생이라고 착각될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주디를 능가하지는 못했다.
수많은 경험으로 다져진 주디는 보다 다채로운 방법으로 전술을 펼칠 줄 알았고, 경험이 부족한 존은 그에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아, 이런. 내가 지다니!”
존이 화를 냈다.
주디가 웃었다.
“말했지? 이제 나한테 안 될 거라고.”
“나도 제대로 배웠으면 누나 정도는 금방 뛰어넘었을 거야.”
“과연 그럴까?”
주디는 동생을 약 올리며 도발하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존은 이신을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떻게 나한테 배운 것처럼 플레이할 수 있는 거지?”
이신이 되물었다.
존은 웃으며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음악 플레이어를 재생하자,
-됐어. 이제 항공수송선에 고속전차 태워.
-벽에 딱 붙여서 이동해.
-가기 전에 레이더 한 방.
-뭐해? 멈추지 마. 앞에 병력도 계속 움직여서 시선 잡아놓으란 말이야.
이신의 목소리였다.
주디를 아바타처럼 말로 조종하며 훈련시켰을 때의 목소리였다.
“이걸 들으며 연습했어요. 누나가 연습한 리플레이 파일도 보내줘서요.”
이신은 주디를 빤히 쳐다봤다.
주디가 당황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 죄송해요, 멋대로 동생에게 보내서요.”
“크게 상관은 없는데, 그걸 들으며 혼자 독학을 했단 말이지?”
“네.”
이신의 안색이 변했다.
“……너 지금 나이가 몇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