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249
248화 크롬웰(1)
-목표는 당연히 우승입니다. 정확히는 이신이죠.
박영호는 여유롭게 승자의 인터뷰를 했다.
-여왕괴물을 이용한 전략은 존 선수와의 일전을 대비해서 준비한 겁니까?
-이신이나 차이를 비롯해서 이번 대회는 인류 강자들이 전보다 많이 눈에 띠었습니다. 그 때문에 인류 상대로 쓸 전략 중 하나로 준비했고 이번 16강전에서 공개하는 게 가장 적합한 타이밍이라고 여겼습니다.
-우승을 목표로 하고 계시는 박영호 선수인데요, 이번 대회에서 결승에 진출해 이신 선수와 자웅을 겨룰 자신이 있으십니까?
그러자 박영호는 웃으며 기자에게 반문했다.
-4강에서 차이를 꺾을 수 있냐고 묻는 거죠?
-하하…….
-누군가가 이번에 신의 왕좌를 탈환한다면, 그건 저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차이를 향한 강력한 선전포고였다.
그 인터뷰를 TV로 보고 있던 이신과 제자들의 분위기는 다소 어두웠다.
그 중심에는 3-0으로 화려하게 대패하고 돌아온 존이 있었다.
“죄송해요.”
존이 사과했다.
“뭐가?”
“제가 형편없이 지는 바람에 저 형이 의기양양해졌잖아요.”
“쟨 원래 저래. 분위기 타면 정신 줄을 놓아.”
이신의 덤덤한 말에 듣고 있던 주디가 나직이 웃었다.
“존, 네가 운이 없었어. 오늘의 영호 형은 나도 졌을 거야.”
차이가 말했다.
존은 여왕괴물을 일찍 꺼내든 박영호의 새 전략의 희생양이었다. 장단점이 너무나 뚜렷한 존이었기에 제대로 저격당한 탓도 있었고 말이다.
그런 위로도 존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계속 우울해하는 동생이 안쓰러운 주디는 남몰래 이신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이럴 땐 눈치가 전혀 없는 이신이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주디는 턱짓으로 존을 가리키며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제야 존을 위로해 달라는 것임을 알아차린 이신.
이신은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존.”
“네, 선생님.”
이신은 심사숙고 끝에 입을 열었다.
“살다 보면 질 때도 있는 거야.”
“풉!”
터지는 웃음을 억제로 참는 사람은 조용히 있던 장양이었다.
어울리지도 않는 위로의 한마디 탓에 분위기가 급격하게 어색해졌다.
“선생님은 개인리그에서 진 적이 없잖아요.”
“있어, 얼마 전에 32강.”
“다전제에서는 안 졌잖아요.”
있다고 말하려던 찰나에 이신은 고개를 맹렬히 도리도리 젓는 차이 때문에 입을 다물었다.
이신은 공식전과 연습을 통틀어서 딱 한 번만 졌다. 손목 때문에 부전패했던 그때뿐이었다.
“휴우, 여기까지가 제 한계인 것 같아요.”
주디는 존의 상태가 더 악화되자 당황했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너무 뚜렷하니까, 솔직히 아무것도 못해보고 졌잖아요.”
‘그야 그렇지.’
이신은 존 같은 선수를 숱하게 봐왔다. 그런 선수는 대개 반짝 빛나다가 오래 못 가 사그라진다.
이것 하나는 잘한다, 라는 타입은 대개 그래왔다.
“네가 프로게이머가 된 지 몇 년이 지난 선수였다면 나도 그 말에 동의했겠지.”
이신이 말했다.
“위로는 집어치우고 솔직하게 얘기하지. 1, 2세트는 졸전이었어.”
“맞아요.”
“1세트는 처음 본 전략에 당황했다 쳐도, 2세트는? 여왕괴물 때문에 병영 체제를 제대로 구사 못 했다는 건 무슨 코미디야?”
“…죄송합니다.”
“네 컨트롤 수준이라면 점액을 뿌리는 순간에 병력 산개 컨트롤로 피해를 줄일 수도 있었어. 왜 못해? 손가락이 고장 났어?”
“…….”
“전술위성은 놀아? 여왕괴물은 방사능 한 방 맞으면 끝이야. 박영호도 여왕괴물 활용에 대단히 신중을 기해야 했을 거야.”
존은 고개를 푹 숙였다.
“넌 네 장점을 봉쇄시키는 저격 전략을 만난 게 아니라, 똑같이 리스크를 짊어지고 한 정면 승부에서 박살 난 거야. 네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병영 체제도 아직 그 정도밖에 안 되는 거야.”
“선생님 말씀이 옳아요.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알면 우물 하나를 바닥까지 다 판 것처럼 행세하지 마. 프로 데뷔 1년도 안 된 주제에 같잖게 한계를 만났다고 행세야.”
“죄송합니다.”
위로를 하려다가 무자비한 독설을 퍼부어 버린 이신.
그러다가 본인 스스로도 아차 싶었는지 마지막은 부드럽게 마무리했다.
“그래도 3세트는 좋았어. 노력하니까 기갑 체제도 잘하잖아. 넌 이제 막 성장 단계에 들어섰을 뿐이니까 벌써부터 한계를 규정짓지 마. 넌 보병 컨트롤로 스타덤 타더니 잠깐 들떴던 애송이일 뿐이야.”
“네…….”
자비 없는 이신의 독설에 침몰해 버린 존.
“오, 오늘은 제가 저녁 식사 준비할게요.”
차이가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달아났다.
“연습이나 하자.”
이신의 말에 네 사람이 PC 앞에 앉아 연습 게임을 시작했다.
이신은 주디와, 존은 장양과 연습했는데…….
-푸하악!
여왕괴물이 보병·의무병 무리에게 점액을 끼얹어 버렸다.
이어지는 바퀴 떼와 쐐기충의 합공에 몰살당하는 존의 병력.
박영호와 똑같은 전략을 펼치는 만행을 저지른 장양!
울상이 되어 버린 존의 맞은편 자리에서, 장양은 주디의 따가운 눈총을 무시하며 히죽히죽 웃었다.
확실히 상대에 대한 악의는 이신에게 잘 배운 모습이었다.
***
자고 일어났을 때, 잠자리가 유독 푹신하니 기분이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깨어나 보니 아니나 다를까, 마계였다.
그레모리에게 선물 받은 자신의 영지, 오두막이었다.
‘서열전인가.’
이신은 낭패라는 표정이 되었다.
하필이면 8강전이 얼마 남지 않은 이때라니.
마계에 있는 동안은 게임을 손에서 놔야 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실력 저하 현상이 생긴다.
물론 하도 익숙해져서 이제는 다시 감각을 끌어올리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은 이신이지만, 8강전 상대가 다름 아닌 최영준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빨리 끝내고 돌아가야겠는데.”
침실에서 나오자 오두막의 앞뜰에 모여 있는 세 명의 사도가 보였다.
“깨어나셨습니까, 주군!”
“주군을 뵙습니다!”
“주군께서 오셨으니 드디어 서열전이로군요.”
질 드 레, 이존효, 콜럼버스였다.
이신은 질 드 레에게 물었다.
“그동안 별일 없었고?”
“서열상의 변동이 있었습니다. 악마군주 그레모리 님께서 56위가 되셨습니다.”
“한 계단 올랐군.”
“예. 50위대에서는 현재 서열전이 활발한 상태입니다.”
위 서열에서 또 어떤 악마군주가 큰 배팅에 실패해 몇 계단 추락을 한 모양이었다.
아귀다툼이 치열한 악마군주들의 서열전.
그런 치열한 경쟁 속에서는 본래 서열을 유지하는 것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 서열전은 우리가 도전 받는 쪽인가?”
“현재 우리에게 도전하려 드는 간 큰 악마군주는 없습니다.”
질 드 레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곧 이어서 부연 설명을 했다.
“악마군주 안드로말리우스 측이 현재 우리 뒤를 이어서 57위로 올라선 상태입니다. 아시다시피 그쪽은 우리와 서열전을 겨룰 생각이 없습니다.”
악마군주 안드로말리우스의 계약자는 바로 오운. 이신과 개인적으로 협력 관계를 형성한 오자서였다.
이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이번에도 우리가 도전자로군. 상대는?”
“악마군주 알로세스이고 계약자는 올리버 크롬웰이라는 자인데 들어보셨습니까?”
“올리버 크롬웰?”
이신의 눈이 크게 떠졌다.
모를 리가 있겠는가.
세계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어도 알 수 있는 유명한 인물이었다.
영국 역사에서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데, 그의 행적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혁명으로 왕을 사형시키고 정권을 잡아 군사독재를 한 자였다.
“다음 서열전 상대가 올리버 크롬웰이냐?”
“예. 종족은 마물이라고 하였는데 들리는 소문을 접했을 뿐이라 그 이상의 정보는 얻을 수 없었습니다.”
“올리버 크롬웰이라…….”
이신은 올리버 크롬웰에 대해 자신이 아는 지식을 떠올려보았다.
사실 올리버 크롬웰은 군인이 아니었다.
부유한 지주 가문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 후 하원 의원이 되었다.
그런 올리버 크롬웰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청교도 전쟁이 터지고부터였다.
‘청교도 전쟁’이란, 왕권신수설을 주장하는 찰스 1세의 왕당파와 의회파의 투쟁이었다.
‘잉글랜드 내전’이라고도 하는데, 혁명 후 공화정이 수립됐을 때 청교도식 법규로 통치되었기에 청교도 혁명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아무튼 이 전쟁은 왕당파의 우세로 시작되었으나, 사비를 털어 철기병대를 조직한 크롬웰이 활약하면서 의회파로 승리가 점차 기울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군사적으로 활약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크롬웰은 탁월한 전략이나 용맹으로 전쟁을 이루어낸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전쟁을 전문 통솔자에게 맞기고 의원들의 전쟁 지휘를 금지시켰다. 본인 역시 총사령관이 아닌, 부사령관이 되어서 그 규칙에 따랐다.
또한 자신의 철기병대를 모델로 한 신기군을 편성해 자원군을 전문 군대화하였다.
봉급, 무기 정비, 군복 착용 의무화 등 체계적인 군대를 길러냈다.
굳이 따지자면 전략·전술·전투보다는 병력의 구성과 조합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유형이었다.
청교도 전쟁에 승리하고서는 찰스 1세를 사형시키고 국가 원수인 ‘호국경’에 취임했다.
하지만 그 뒤로 크롬웰은 의회를 해산시키고 종신호국경이 되어 독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는 프랑스 혁명의 로베스피에르와 여러 가지로 비슷한 인물이었다.
혁명으로 시작하였지만 독재자가 되었고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강요하는 것까지 두 사람은 닮았다.
청교도 근본주의자인 크롬웰은 청교도적인 법령을 반포하여 왕당파와 가톨릭 세력 등을 무자비하게 탄압하였고, 온 사회에 청교도 정신을 강요하였다.
게다가 아일랜드를 정복하면서 크롬웰은 서유럽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초토화 정책으로 악명을 떨쳤다.
아일랜드 전역을 불살라버린 뒤에 원래 주민들을 쓸모없는 늪지대가 가득한 지역으로 몰아넣어 버렸다.
그렇게 해서 당시 아일랜드인의 4분의 1 가량이 죽었다고 하니, 아일랜드 사람들은 크롬웰을 히틀러보다 훨씬 증오했다.
“살아생전에 계약자로 선택된 케이스인가?”
이신이 물었다.
질 드 레는 고개를 저었다.
“지옥에서 악마군주 알로세스에게 선택되어져 계약자가 되었습니다. 그 탓에 언제든 다시 지옥으로 버려질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아주 절박한 상황일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에 연패를 거듭했던 모양입니다.”
“크게 어려울 것 없는 상대이겠군. 알겠다.”
이신은 일단 오두막에서 나와 그레모리에게 향했다.
‘최대한 빨리 끝내버리고 돌아가야겠다.’
근본주의자는 대개 사고의 유연함이 부족하다.
또한 마물은 이신이 숱하게 상대해왔던 종족이었다.
평소에도 마물을 지휘하는 질 드 레와 함께 실컷 모의전을 했기 때문에 준비 기간이 크게 필요하지도 않았다.
다만 크롬웰이 악마로서 가진 고유 능력이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 정도 페널티는 이신에게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