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481
481화 지원(2)
알렉산드로스가 기거하는 궁전은 규모가 굉장히 컸다.
그런데 건축양식은 르네상스 시기의 대성당을 방불케 해서 기원전 사람인 알렉산드로스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에 대한 알렉산드로스의 설명은 간단했다.
“지옥에 건축가 출신이 있더군. 권속으로 삼아주어서 지옥에서 건져낸 대신 이 궁전을 짓게 했지. 내 시절의 그리스 양식은 지겹거든.”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알렉산드로스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건축물이었다.
자원도 노동력도 넘쳐나는 마계라 알렉산드로스의 궁전은 인세를 초월하는 화려함이 있었다.
대성당의 구조이나 거기서 섬겨지는 우상은 알렉산드로스였다.
곳곳에 세워진 알렉산드로스의 석상은 스스로를 신격화했던 주인의 성정이 묻어났다.
그리고 궁전 전체에서 알코올의 향기가 이신을 괴롭혔다.
“주지육림이라니, 중국인들 상상력도 제법이야. 좋은 참고가 됐어. 자, 너도 와서 식사를 하도록 해라.”
궁전 내부에는 정말로 주지육림이 재현되어 있었다.
백포도주로 이루어진 어마어마한 황금빛 호수에 각종 육류 요리가 걸린 숲!
“술은 안 좋아합니다.”
이신은 다른 음료를 요구했지만 알렉산드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들어본 가장 웃기는 소리군. 치유 능력도 있는 놈이 희한한 소리를 하는군.”
“그래도 싫습니다.”
“마계의 술은 인세의 것과 차원이 달라. 숙취 걱정은 안 해도 돼.”
“……그럼 좋습니다.”
이신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하는 수 없이 술을 마셨다.
하기야 그레모리가 예전에 권했던 술도 매우 깔끔해서 도리어 정신을 깨끗하게 했었다.
글라스로 호수에 담갔다가 꺼내 그대로 쭉 들이켰다.
그리고…….
‘윽.’
화악 하고 마그마처럼 뜨거운 술기운이 올라왔다.
대번에 머리가 띵해지는 충격이었다.
당황한 이신은 급히 치유 능력을 펼쳐서 몸을 보호했다.
“으하하하! 어때? 화끈한 술이지?”
알렉산드로스는 유쾌하게 웃었다.
믿은 게 잘못이었다.
그레모리의 술이 치유의 힘을 담고 있듯이, 이곳의 술 또한 주인의 성정을 닮아 있었다. 한 모금만 마셔도 숙취에 시달릴 독한 술이었다.
“이런 걸 계속 마셨다간 술김에 도시 하나를 불지를 수도 있겠군요.”
이신은 술에 취해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를 불태워버린 알렉산드로스의 과거를 비꼬았다.
“뭐, 남자가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법이지.”
알렉산드로스는 전혀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의 뻔뻔함을 보여주었다.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니, 수많은 가설대로 의도적인 방화였나 하는 의문이 문득 들었다.
역사 공부에 취미 들린 이신은 호기심에 물어보았다.
“창녀와 내기를 하다가 불을 지르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다던데 사실입니까?”
알렉산드로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그쪽 사람들은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죠. 술을 멀리해야 하는 교훈을 주는 일화로 쓰고 있죠.”
“그건 바빌론으로 수도를 옮기려고 한 거야! 아케메네스 왕조의 잔재가 남은 곳은 불필요했으니까. 우발적인 방화로 도시가 통째로 괴멸되겠냐? 내가 미친놈인 줄 알아?”
“탈무드에 쓰인 대로라면 미친 게 맞긴 하죠.”
“탈무드? 그건 또 뭐야?”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나 보군요.”
하기야 괜히 탈무드 얘기를 꺼내서 알렉산드로스의 성질을 건드릴 필요는 없었으리라.
속아서 독한 술을 마신 바람에 짜증이 난 이신 말고는 말이다.
이신은 탈무드에 나온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한 사내가 옷을 샀는데 그 옷에서 보화가 나왔다.
그래서 옷장수에게 보화를 돌려주려 했더니, 옷장수는 옷을 팔았으니 옷 안에 있는 것도 당신의 것이라고 거절했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다가 결국은 서로의 아들·딸을 결혼시키고 보화를 물려주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당신이 ‘나라면 너희를 쫓아내고 내가 다 가졌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끝납니다.”
“뭐야 그게!”
알렉산드로스는 점점 부아가 치민 표정이 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후세에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했고, 이신은 그걸 들려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였다.
“반갑지 않은 손님이 왔군.”
알렉산드로스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이윽고 공간이 일그러지더니, 그 자리에서 나폴레옹이 나타났다.
“배신자가 여기에 있었군.”
나폴레옹은 이신을 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좋은 경험이겠다 싶어서 요청에 응한 것뿐입니다.”
이신의 대꾸에 나폴레옹은 고개를 저었다.
“그거 말고.”
“그럼?”
“발터 모델과 싸웠을 때 말이야. 날 불러줄 거라고 내심 기대했는데 안 부르더군. 내가 얼마나 심심해하는지 잘 알면서도 말이지.”
그 말에 이신은 피식 웃었다.
“이번은 그냥 넘어가지만 나와 저 친구가 겨룰 때는 내 부름에 응해야 할 거야.”
“이 녀석이 네 부하라도 된단 말이냐?”
알렉산드로스도 발끈하여 한마디 했다.
“보나마나 정정당당한 일대일 대결로는 날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할 테니, 지원자를 부를 생각 아닌가?”
“제10 전장 헤셀 말고 다른 전장을 고른다면 기꺼이 일대일로 싸워주마.”
“싫은걸. 난 정정당당한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
옥신각신하며 다투던 두 사람은 어느새 한데 어울려 술을 마셨다.
달리 마실 게 없던 터라 이신도 하는 수 없이 술과 치유 능력을 병행했다.
“슬슬 연습을 해야겠군. 사흘 중 벌써 하루가 가고 있으니까.”
알렉산드로스는 주정뱅이마냥 취기가 오른 얼굴로 말했다.
“그러죠.”
이신도 치유 능력으로 몸에 남아 있는 술기운을 완전히 정화시킨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오랜만에 실력 발휘나 해볼까?”
라고 말하며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자는 나폴레옹.
알렉산드로스는 넌 또 뭐냐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나폴레옹이 씨익 웃었다.
“훈련 상대가 필요하지 않나?”
“훈련 상대로 부를 계약자는 얼마든지 있다. 오크를 제대로 다룰 줄 하는 계약자들로 말이야.”
“보아하니 항우와 조아생 뮈라를 부를 생각이겠지?”
“물론.”
축제 때 알렉산드로스의 같은 편이었던 계약자들이었다.
그들도 기병을 다루는 솜씨 하나는 기가 막히니 훈련 상대로 쓸 만하다고 여긴 것.
나폴레옹이 말했다.
“머리가 돌인 그 두 사람보다는 내가 낫지 않나?”
“심심풀이 삼아 끼고 싶어서 안달 난 건 알겠지만, 이번 상대가 보르지긴 테무친인 걸 기억했으면 좋겠군. 주 종족이 휴먼인 네 녀석의 도움은 사양하지.”
“모든 종족을 철저히 연구한 나다. 오크쯤이야 문제없어. 내 실력이 시원찮다고 생각된다면 언제든 쫓아내도 좋네.”
나폴레옹은 끈질기게 자신감을 피력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뭐, 한번 해보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쫓아내겠다.”
그렇게 나폴레옹이 연습 상대가 되어 주기로 했다.
2 대 2로 모의전을 해야 했으므로 한 명을 더 불렀는데, 바로 조아생 뮈라였다.
“날 지원자로 불러주지 않다니 그것 참 섭섭한데.”
조아생 뮈라는 도착하자마자 알렉산드로스에게 불평을 했다.
“쓸 만한 실력이라는 것을 증명한다면 다음에 기회가 되거든 부르겠다고 약속하지.”
“하하, 좋소!”
조아생 뮈라는 한 팀이 될 나폴레옹을 보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이건 정말 오랜만이로군.”
“이번에는 내 말을 좀 제대로 들었으면 좋겠군.”
“염려 마시오. 댁의 여동생과는 연 끊은 지 오래니까.”
오빠를 배신하라고 종용했던 나폴레옹의 여동생을 언급하며 농담으로 화답하는 조아생 뮈라였다.
알렉산드로스가 고른 전장은 제5 전장 이블 홀이었다.
“이블 홀?”
이신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폴레옹도 마찬가지였는지 입을 열었다.
“확실히 앞마당과 뒷마당이 붙어 있어서 마물이 마력을 확보하기는 좋지만, 중앙 지역이 넓게 트여 있어서 오크에게도 좋지 않나?”
제5 전장 이블 홀은 본진에 두 개의 출입구가 있는데, 각각 앞마당과 뒷마당으로 나뉘어 있다.
앞마당과 뒷마당이 연결된 삼거리 협곡이 중앙으로 드나드는 유일한 통로인 것도 이 전장의 지형적 특징이었다.
나폴레옹이 계속 말했다.
“아, 물론 적을 협곡으로 끌어들여서 싸운다면 오크의 기마군단을 막기 용이하겠지만, 일단 주도권을 내준 채 수비적으로 대응하는 방침은 자네답지 않은데.”
“그건 보면 안다. 그럼 시작하지.”
알렉산드로스는 가볍게 대꾸해 준 뒤에 모의전을 시작하였다.
모의전이 시작되었을 때, 이신은 곰곰이 알렉산드로스의 의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4인용 전장에서 넷이 있으니 당연히 마력석을 확보하는 데는 제한이 있다.’
마력 채집량이 제한적이라면 장기전이 나오기 힘들다.
즉, 싸움은 웬만해서는 초중반에 끝난다는 뜻.
마물은 병력을 삽시간에 대량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종족.
하지만 그만큼 병력의 소비량도 타 종족에 비해 높고, 따라서 마력이 기본적으로 많이 필요로 한다.
아마도 알렉산드로스가 이곳 이블 홀을 선택한 이유는 앞마당과 뒷마당에서 다량의 마력을 손쉽게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일 터였다.
하지만 같이 어중간한 마력량으로 싸운다면 오크창기병과 오크궁기병이라는 궁극의 조합으로 중반을 지배하는 오크가 유리했다.
그래서 지원자로 선택한 것이 휴먼 계약자 이신.
건물 심시티와 투석기로 협곡에서 고효율의 방어를 할 수 있는 휴먼이 있으면, 병력 소모가 많은 마물의 단점이 커버되는 것.
이신은 알렉산드로스가 당연히 그런 생각으로 자신을 불렀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투석기 따위는 필요 없다.’
알렉산드로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협곡에 틀어박혀서 투석기로 방어나 하자고 널 부른 게 아냐. 나폴레옹 녀석 말마따나 주도권을 내주고 싸우는 건 나답지도 않아.’
‘…그럼?’
‘그리핀과 마법사.’
알렉산드로스가 계속 말했다.
‘널 부른 건 순전히 그것 때문이야. 그 두 가지를 마계에서 가장 잘 쓰는 계약자는 너니까.’
‘방어적인 전략이 아니군요.’
‘당연하지. 저 넓게 트인 중앙 지역은 오크들을 위한 무대가 아니야. 바로 우리의 무대지.’
삼거리 협곡에서 나가면 다수의 병력을 용이하게 다룰 수 있는 드넓은 중앙 지역이 나타난다.
기본적으로 오크의 기마군단이 날뛰기 좋은 지형이다.
‘저기서 정면으로 크게 한판 붙을 것이다. 놈들보다 더 빠른 기동력과 더 강력한 화력으로.’
기마군단보다 더 빠른 것은 그리핀 편대.
그리고 더 강력한 화력은 바로 마법사의 파이어 스톰.
알렉산드로스는 협곡에서 수비하며 싸우는 방식보다 100배는 더 위험천만하고 호쾌한 한판 승부를 꿈꾸고 있었다.
가우가멜라에서 페르시아의 대군을 격파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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