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me of the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99
98화 파란(1)
신태호.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이신 습격 사태만 없었더라면, 작년 후반기 프로리그는 이 신태호라는 걸출한 신인의 등장이 화제가 되었을 것이었다.
실제로 이전부터도 실력 좋기로 유명한 연습생으로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져 있었던 그였다.
하지만 이신 습격 사태로 그의 등장과 활약이 묻혀 버렸고, 이듬해에는 환골탈태한 박영호와 최영준이라는 더 뛰어난 신인의 등장에 가려졌다.
그나마 골수팬들이나 실력 좋은 신인이라고 알아줄 뿐, 큰 인지도를 얻는 데 실패한 신태호는 프로리그에서 신지호와 엄청난 장기전 끝에 승리하고서야 비로소 자기 이름을 알렸다.
디펜스의 황제라 불리며 역시나 장기전에 일가견이 있는 신지호를 상대로 펼친 신태호의 기량은 실로 인상 깊었다.
초중반에는 신지호의 잘잘한 센스에 조금씩 손해를 입고 밀리는가 싶었지만, 후반에 들어갈수록 진가를 보여주었다.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조금도 지치지 않고 빠릿빠릿하게 플레이하는 신태호.
그날 신지호를 끝내 꺾고서 머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고는 부진하는 에이스 황병철을 대신해 팀을 먹여 살림으로서 착실하게 명성을 쌓아나갔다.
하지만 아직은 일류급 선수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을 뿐이었다.
황병철처럼 팀을 대표하는 스타로 발돋움하려면 인상적인 실적이 있어야 했다.
‘바로 지금이 기회야.’
올해로 고등학교 1학년생인 신태호는 굳게 각오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가정하여 전략을 준비해 왔는데, 바로 이신에게 걸렸을 경우도 포함되어 있었다.
팀의 바람과 달리 이신과 겨루기를 간절히 원했던 신태호.
그는 이미 신지호라는 스타를 꺾고서 크게 인지도를 높인 경험이 있었다.
게다가 황병철이 이단자라는 별명을 얻으며 스타가 된 것 역시 이신이라는 초특급 거물에게서 승리를 따내고부터였다.
제2의 이단자.
이미 화성전자의 차기 에이스로 낙점된 신태호는 이번 기회에 이신을 꺾고서 황병철의 계보를 잇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이미 기량이 예전 같지가 않은 황병철이었다.
만약 이 자리에서 이신을 이긴다면, 그건 꿈이 아니었다.
‘못 할 게 뭐 있어? 이신도 프로리그 승률이 100%였던 적은 없었어.’
마침내 게임이 시작되었다.
병영을 짓고 바로 앞마당에 통제사령부를 건설하면서 확장을 시작한 신태호. 무난한 빌드 오더 선택이었다.
그리고 정찰을 보낸 건설로봇이 이신의 본진에 들어갔다.
이신은 병영과 함께 광산에 제철소를 짓고 있었다.
일찍부터 광산에서 광물자원을 채집하려 한다면 이유는 하나였다.
‘1기갑 더블?’
바로 기갑정거장을 지어서 고속전차나 기동포탑을 일찍 생산하고서, 그 뒤에 앞마당에 확장 기지를 건설하겠다는 뜻.
신태호가 택한 1병영 더블보다 더 공격적인 빌드 오더였다.
단, 저걸 선택한 이상 이신은 반드시 신태호에게 타격을 입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앞마당에 확장 기지를 먼저 가져간 신태호에게 자원에서 밀려 갈수록 불리해진다.
‘막기만 하면 내가 유리해.’
이신이라면 분명히 고속전차로 찔러 들어올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신태호는 기동포탑을 뽑았다. 그리고 기갑부속연구소에서 포격모드 개발을 시작했다.
‘항공수송선을 타고 넘어올 수도 있지.’
이어서 무기고를 건설하고, 기계보병도 생산했다.
기계보병은 기갑정거장에서 생산되는 전투 로봇이다.
지상의 적에게 기관총을 쏘고 공중의 적에게 대공 미사일을 쏜다. 특히 대공 미사일의 사정거리가 매우 길고 강력해, 인류가 이 기계보병을 쓰면 상대는 공중 유닛을 쓰기가 매우 곤란했다.
지상으로 난입하려는 고속전차를 기관총으로 쏘고, 하늘에서 드롭을 하려는 항공수송선을 대공 미사일로 격추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신태호는 이신의 견제가 들어올 타이밍을 쟀다.
지금쯤 이신은 고속전차가 4기쯤 생산되었을 터였다.
‘어서 와봐.’
여유 만만한 신태호.
하지만 신태호가 예상 못 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인류 대 인류 전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빌드 오더는 1병영 더블과 1기갑 더블, 둘 중 하나.
그래서 신태호는 당연히 이신의 빌드 오더가 1기갑 더블일 거라고 판단해 버린 것이었다.
***
-2기갑! 이신 선수의 2기갑 빌드가 나왔습니다!
-아, 정말 저 빌드 참 오랜만에 보네요. 요즘 누가 앞마당을 가져가기도 전에 기갑정거장을 2개나 짓습니까?
-고속전차만 생산합니다, 이신 선수. 기동포탑 하나 없이 고속전차로 올인!
-속도 업그레이드를 먼저 했고, 이제 지뢰 개발도 완료되는 대로 행동에 나설 것으로 보입니다!
-물량이 쌓이긴 하는데, 앞마당 가져가는 게 너무 늦었어요. 기필코 타격을 입혀야 합니다, 이신 선수!
일전에도 Player_SIN 아이디로 온라인에서 신지호와 붙었을 때, 2기갑 빌드를 썼다가 낭패를 본 바가 있었다.
그 2기갑을 다시금 시도하고 있는 이신이었다.
8기의 고속전차가 일제히 출발했다.
신태호가 예상한 숫자의 2배였다.
신태호는 분명 특급 선수였다.
확실한 정찰로 이신이 공격에 나선 것을 포착해 냈다.
그런데 정찰에 걸린 이신의 고속전차 숫자가 심히 많았다.
‘씨발, 이게 뭐야?!’
기겁을 한 신태호.
이렇게 많을 수는 없었다.
‘2기갑?! 이런 미친!’
신태호는 판단이 빨랐다.
즉각 군량고 3개를 품자(品字) 형태로 연결 건설해 앞마당으로 들어서는 통로를 빈틈없이 막아버렸다.
고속전차는 건물을 파괴하는 속도가 매우 느리기 때문에, 심시티(전략적인 건물 배치)로 막아도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기동포탑과 기계보병을 배치시켰다.
이미 통로가 심시티로 막혀 버린 뒤에야 이신의 병력이 도착했다.
펑! 펑! 퍼엉!
이신의 고속전차들은 우선 군량고를 건설 중이던 건설로봇 3기부터 처치해 버렸다.
하지만 미완성된 건물들이라도 바리케이드로서의 역할은 다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우와아아아!”
“꺄아아악!”
관객들이 감탄에 찬 탄성을 터뜨렸다.
‘지뢰 비비기’로 고속전차 3기가 바리케이드를 건너 뛰어버린 것이었다.
***
여러 기의 고속전차가 좁은 공간에서 동시에 지뢰를 매설하려 하면, 그중 몇 기는 공간 부족으로 인해 공중에 떠버리는 버그(bug) 현상이 생긴다.
이때 쉬프트(Shift) 키를 누르고 장애물 뒤편을 마구 클릭하면, 고속전차 몇 기가 장애물 건너편으로 넘어가게 된다.
그것이 지뢰 비비기라 불리는 컨트롤이었다.
매우 까다로운 컨트롤이라 실전에서 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신이 바로 그것을 구사한 것이었다.
-우와! 지뢰 비비기로 고속전차를 건물 뒤로 넘겨 버렸습니다!
-기가 막혀서 말도 안 나옵니다! 간혹 시도하는 건 봤지만, 인류를 상대로 이런 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군량고 바리케이드를 지뢰 비비기로 건너 뛰어버린 이신의 고속전차 3기.
그 3기는 일제히 지뢰를 매설했다.
신태호의 기동포탑과 기계보병이 공격을 가했지만, 결국 지뢰에 휘말려 폭사되고 말았다.
이신은 지뢰 비비기를 계속 구사하여 고속전차를 안으로 넘겨 버렸다.
신태호의 군량고 바리케이드는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앞마당에서 일하던 건설로봇들이 고속전차들에게 사냥당했다.
새롭게 생산된 신태호의 기동포탑이 몰아내려 했지만, 지뢰를 마구 깔며 본진까지 휘젓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와아아!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신 선수, 계속 추가 생산된 고속전차가 도착할 때마다 족족이 지뢰 비비기로 넘겨서 안으로 침투시킵니다!
-아니, 무슨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도 아닌데 계속 꾸역꾸역 안으로 들어옵니다!
-지뢰 비비기는 규정상 반칙 행위로 등록된 게 아닌데요, 그건 저렇게 자유자재로 마구 써먹을 수 있는 플레이가 아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저건 꽤나 논란이 될 것 같습니다.
-아, 정말 경기를 한 게임씩 치를 때마다 화제가 되는 이신 선수네요.
그야말로 난도질을 당한 신태호는 잔뜩 썩어 들어간 표정으로 GG를 선언했다.
-GG!!
-MBS가 1승을 따내며 순조롭게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웬만해서는 장기전이 되어 버리는 인류 대 인류 전이 이렇게 일찍 끝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것도, 상대는 만만한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화성전자의 미래를 책임질 차기 에이스 신태호였습니다!
부스에서 걸어 나온 이신.
“이신! 이신! 이신! 이신!”
추종자들이 열렬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슈퍼 플레이를 선보인 승리였기에, 기세는 확실하게 MBS에게로 쏠렸다.
팀원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서 팀 벤치에 앉은 이신.
카메라가 계속 이신을 비추며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자리로 돌아와 한숨 돌린 이신은 옆에 찰싹 붙어 앉아 있는 주디를 불렀다.
“주디.”
“네, 코치님.”
“방금 게임하다가 전략이 하나 떠올랐어. 지금부터 내가 가르쳐 줄 테니까 황병철 상대로 써.”
“네.”
이신은 주디에게 빌드 오더를 읊어주기 시작했다.
주디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열심히 이신의 말을 듣고 머릿속에 입력했다.
같이 듣던 방진호 감독이 기가 차서 이신에게 물었다.
“그걸 게임 중에 떠올렸다고?”
“예, 고속전차 쓰다가요.”
“…진짜 천재냐, 너?”
“그런 것 같습니다.”
뻔뻔스럽게 바로 동의하는 이신.
방진호 감독은 재수 없다는 듯이 이신을 쳐다보았다. 천재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으니, 더 재수가 없었다.
***
2세트에 출전한 정다울은 괴물 플레이어 오창수를 만나 접전 끝에 승리를 거두었다.
화성전자로서는 2세트에 신족이 나올 거라고 예상, 신족의 천적인 괴물을 낸 것이었다.
하지만 정다울은 이신의 의도대로 대괴물 전의 스페셜리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이며 오창수를 잡아냈다.
결점이 많지만 괴물에게는 강한 특이한 신족 플레이어인 정다울의 개성을 활용한 엔트리의 성공이었다.
스코어는 2 대 0.
간신히 3세트에서는 1승을 챙겨 스코어를 2대 1로 만들었지만, 화성전자는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직 4, 5, 6세트가 남았다.
이중 한 번이라도 져도 스코어는 3 대 3. 에이스 결정전으로 결판을 짓게 된다.
…에이스 결정전에는 틀림없이 이신이 나온다.
그럼 화성전자는 황병철을 낼 수밖에 없는데, 황병철의 최근 상태로는 이신을 당해낼 확률이 매우 희박했다.
그렇다고 다른 선수를 내자니, 또 이신을 피해 황병철을 도피시켰다고 팬들의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황병철과 이신을 붙게 하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였다.
져도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형편없이 져 버리면 팬들의 실망은 또 얼마나 크겠는가?
어떤 선택을 하든 좋지 않은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병철아, 너 반드시 이겨야 한다.”
“알고 있습니다.”
감독의 말에 황병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병철도 이제 갓 데뷔한 신인에게, 그것도 외국에서 온 여자애에게 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여자에게 진다니, 그 얼마나 큰 굴욕이란 말인가?
아무리 이신이 직접 공들여 키운 제자라 해도, 실력이 검증된 선수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신은커녕 이신의 제자에게조차도 패배해 버리면, 그건 너무나 심한 추락이었다.
그때는 이신이 너무나 머나먼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러한 두려움을 안은 채 황병철은 부스로 올랐다.
주디는 이신에게 들은 전략을 테스트하느라 준비 시간이 30분이나 걸렸다.
관객들이 빨리 시작 안 하냐고 성화를 부렸지만, 다행히 준비하는 데 시간제한은 없었으므로 주디는 만반의 태세를 마치고서 4세트에 임할 수 있었다.
주디 대 황병철.
인류 대 괴물.
맵은 왕가의 계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