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282
약먹는 천재마법사 1282화(1282/1283)
약먹는 천재마법사 1282화
인외마경(5)
쿠구구구!!!!
터미널 내부 시설을 뒤덮고 있던 살덩이의 벽이 불길에 뒤덮여 소멸한다.
적색 화염이 공간을 붉은 물감처럼 덧칠하며 그 배경을 모조리 불태우고.
이윽고 한줌 잿더미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소각해 원형으로 되돌렸다.
내부 시설은 일체 건드리지 않고, 그 위를 덮은 금술의 흔적만을 깔끔하게 지우는 비현실적인 술식 조작능력.
불이라는 매개체를 자신의 신체 일부처럼 자유롭게 다루어 컨트롤하는 압도적인 마법적성.
흩날리는 화염 속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사도를 내려다보는 청년의 팔에 장착된 배열장치.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일렌이 입을 살짝 벌렸다.
“…….”
틀림없다.
열차 안에서 노신사를 상대로 치열하게 토론을 벌이며 입에 올렸던 당사자.
아일렌이 동대륙 2사령부 인근 지역을 샅샅이 탐색하면서 찾고 있던 장본인.
사도와 술주를 살해하고, 가비행을 멈춘 첫 번째 관문의 주인으로 알려진.
동대륙 최강의 염열마법사라 불리는 초월자가, 다름 아닌-
[끄아아아아악!!!!]콰아앙!!!
무너진 에스컬레이터 파편 아래 쓰러져 있던 전 9사도가 튕기듯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전신에 불이 붙은 채 활활 타올라 나뒹굴며 기괴한 비명을 지르는 화신체의 모습.
[끄아아아……!!! 끄아, 아하하앗!!! 푸하하하하핫!!!!]비명은 신음으로, 신음은 웃음으로, 웃음은 이내 폭소에 가까운 고함으로 변했다.
전신에서 육중한 엔진소리를 터트리며 마력을 끌어올린 그가 레녹을 가리키며 광소했다.
[천번!! 네놈이 바로 그 천번……!! 만신전에서 추살 대상으로 삼은 예의 마법사였나!!!!]“…….”
[어쩐지, 묘하게 거슬리는 기운을 품고 있다 했더니…… 사도살해자 놈이었군. 그래서 찢어 죽이고 싶었던 거였어!!!!]철컥!!
녹아내리는 오른쪽 상반신을 질질 흘리며 걸음을 뗀 사도가 이죽거렸다.
[전대 10사도를 죽이고 그럴듯한 허명을 얻은 마법사라고 했나? 중앙에서 네 이름이 종종 들려 신녀님께서 불편해하신다고 들었다!!]“이번 대의 신녀는 재활용을 정말 좋아하는군.”
레녹이 사도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계위에서 추락한 최고위 사도조차 다시 써먹어 보고자 하는 건가. 뭐든 자신의 눈으로 보고 판단해야만 직성이 풀린다면 이상한 일은 아니지.”
눈앞에서 상반신 절반이 녹아내린 사도는 본래 아홉 번째 좌를 차지하고 있었던 최고위 사도.
영락해 힘을 잃어버린 지금은 계위에서 추락했으나, 본래 그만한 용력을 품고 있던 괴물임은 틀림없다.
신녀가 제국의 유물과 사도를 융합시켜 그 힘을 되살려보고자 했다면, 이 자가 여기에 있는 것도 납득이 가지만…….
“그보다는 방금 지껄였던 말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군. 연맹과의 마지막 결전이 정확하게 뭘 의미하는 거지?”
[핫, 내가 왜 그래야 하는 거냐? 견뢰에게 패배해 무릎 꿇은 마법사 따위가 어딜 감히 주제도 모르고……!!!!]9사도는 끓어오르는 듯한 전성을 울리면서도 조롱을 멈추지 않았다.
[네놈에 대한 소문은 모두 들었다. 예의 번개와 다시 싸우는 것이 두려워, 열병식에서도 대장직을 걷어차고 도망쳤다지?]“…….”
힐끗 시선을 돌리자, 멍하니 레녹을 쳐다보고 있던 아일렌이 자기도 모르게 눈을 피했다.
그제서야 이런 사도의 반응을 이해한 레녹이 돌아가는 상황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세간에는 열병식과 토벌전의 일이 알려지며, 천번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추락했던 모양.
속세에 관심을 두지 않는 고위 사도조차 그 사실을 알고 있을 정도라면, 이미 중앙전선에도 소문이 크게 났다는 뜻이겠지.
그런 레녹의 반응에 더욱 신이 난 것처럼 사도가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패배자 새끼!!! 전쟁에서 도망친 겁쟁이 주제에 사도살해자의 이름을 달고 있는 거냐!!! 네가 쌓아 올린 전공 모두가 운 좋게 이뤄낸 결과였겠지!!!]“…….”
[파워랭킹에서 순위가 하락하는 굴욕을 겪고도 잘도 중앙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니이이이!!! 부끄럽지도 않은 거냐?!!!]“괴물 따위가 헛소리를……!”
발끈한 아일렌이 노려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도의 머리가 사방에서 넘실대는 불길을 돌아보았다.
[네 화염은 두렵지도 않아!!! 보기에만 화려하고 실속 따위는 없는 힘이겠지!!! 화염마법이란 다 그런 술식이 아니더냐?!!]“모르겠군.”
사도의 조롱 섞인 포효에 레녹이 대답했다.
“처음 배울 때부터 특별한 감상을 가져본 적은 없어서. 애초에 염열마법을 얻은 것도 우연에 가까웠지.”
“…….”
“위계를 쌓아 올리며 이런저런 의미를 덧붙이긴 했지만 대부분은 즉흥적인 결과물이었어.”
아일렌이 흠칫 시선을 돌렸지만 레녹은 가만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결국 어떻게 말해도 내게 가장 우선되는 수단은 아니었다는 뜻이겠지. 그래서 그동안 이 능력을 일개 도구처럼 사용해 왔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푸하하하하핫!!!! 이제 와서 본인의 추태에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고 싶기라도 한 거냐?!!]“아니. 이제 와서 사실 그렇지 않았던 척 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레녹이 피식 웃었다.
“다만, 이전에 비해 조금 더 솔직해지기로 한 것뿐이지. 어차피 모든 마법은 내게 있어 수단의 일부일 뿐이라고 말이다.”
[무슨, 헛소리를-]“도구라면 도구답게. 무기라면 무기답게. 철저하고 확실하게 다뤄내면 충분해.”
화륵!!
주먹을 쥐는 것과 동시에 배열장치를 타고 열기가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흩날리는 불꽃을 두른 레녹이 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사도를 바라보았다.
“사도는 사도답게 짓뭉개져 있는 편이 어울리는 것처럼 말이다.”
[크하하하하핫!!!! 술사놈답게 말은 X같이 잘하는구나!!!!!]폭소를 터트린 사도가 마력을 끌어올리며 레녹을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 당장 네 혓바닥을 뽑고 머리통을 뭉개주마!!!]콰아아아앙!!!
사도의 녹아내린 상반신에서 파이프와 날개가 솟구치며 인간을 벗어난 형태로 변했다.
인외마물의 형상으로 변한 사도가 육중한 엔진소리와 함께 폭발적으로 속도를 높여 둔탁한 빛이 되었다.
대기를 터트리고 짓뭉개며 포효한 괴물이, 가속하는 시간 속에서 레녹을 향해 게걸스럽게 손을 뻗었다.
쐐애애액-!!!!
날카롭게 일어선 사도의 손아귀가, 거침없이 레녹의 목을 잡고 뜯어버릴 것처럼 일그러졌다.
목젖을 뚫고 으깨는 것과 동시에 그 위쪽에 돋아난 인간의 혓바닥을 잡고 단번에 뽑아낸다.
가속하는 의식 저편에서 사도가 망설임 없이 결과를 확신하며 전신에 힘을 준 그 순간.
“내 말을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했군.”
코앞까지 들이닥친 사도의 거체가 제 자리에서 수직으로 찍어 눌리며 바닥에 처박혔다.
쩌어어어엉!!!!
[카학?!!!]붉은빛의 충격파가 헤일로처럼 떠오르자, 등허리가 반대로 꺾이면서 척추가 부러지고 근골이 뒤틀린다.
온몸에 두드러기처럼 돋아난 징그러운 편익이 모조리 박살 나 부러지며 오염된 핏물을 줄줄 흩뿌렸다.
단 한 방의 술식으로 터미널 본관 건물 전체가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게 만드는 어마어마한 충격량.
레녹의 발아래 머리를 처박은 뒤에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한 사도가 구토했다.
“처음부터 마법의 출력과 한계 따위는 내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뜻이었다.”
[이, 씹……!! 말도 안 되는……!!!]“됐으니까 교단이 지금 이곳에서 뭘 하고 있는지 말해.”
콰직!!
부러진 날개처럼 구부러진 사도의 머리를 밟은 레녹이 시가를 태우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이곳은 중앙전선 외곽에서도 사천사화마경으로 향하는 길목이다. 너 같은 사도가 이런 곳에 죽치고 있던 건 우연이 아니겠지.”
[쿨럭!! 크에엑……!!!]“네가 말한 연맹과의 마지막 결전이란 아무래도 내가 ‘알고 있는’ 계획과 달라 보이는군. 그건 신녀가 준비하는 어떤 의식과 관련이 있기 때문일 거다.”
레녹이 알고 있는 연맹과 교단의 예정된 충돌은 주문연맹주의 ‘2사도 사냥’ 계획뿐.
하지만 교단이 그 사실을 알고 있을 리가 없으니, 이 괴물이 말하는 결전이란 다른 것임이 분명하다.
만약 우레카 나이드리가 주도하고 있다는 의식이 예의 결전과 관련이 있다면, 그건 신녀의 목적이 연맹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겠지.
“연맹과 교단의 전쟁은 오래전에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텐데. 이제 와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움직이는 이유가 뭐지?”
쿠구구구……!!!
레녹이 싸늘한 시선으로 사도를 노려보며 힘을 주자, 사도의 반대쪽 상반신이 짓눌려 뭉개진다.
사도가 저항하며 발작할 때마다 해저 터미널이 그 피해를 같이 나눠받는 것처럼 흔들렸지만, 정작 그 몸은 조금도 움직이는 일 없이.
한마디씩 말을 뚝뚝 끊으며 레녹이 마력을 끌어올리자, 근육질의 사도가 바닥에 짓뭉개지며 처박혔다.
“신녀가, 사천사화마경에서, 주문연맹을 지워 버릴 방법을 찾고 있는 건가?”
[그, 아악……!!!!]이건, 위험하다.
이런 건 사도가 알고 있는 불꽃이 아니었다.
망가지고 미쳐버린 9사도의 영혼을 근원부터 불태우는 듯한 끔찍한 감각.
실체가 있는 불꽃처럼 화신체인 그의 심신을 바닥 끝까지 짓눌러 자존심과 함께 뭉개버리는.
사도가 전해 들었던 천번의 허명에서는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교단의 신성보다 압도적인-
[몰라, 씨바아아알!!!]파앙!!!
레녹의 발아래 깔린 사도가 발작하며 땅을 내리치자, 그의 마력이 지면을 타고 터미널 바깥으로 뻗어나간다.
가히 의식의 속도에 비견되는 엄청난 전파력. 동시에 터미널 바깥에서부터 땅이 거세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
“잠깐, 설마……!!”
멀리서부터 거대한 무언가가 터미널을 향해 달려오는 듯한 섬뜩한 기척.
살덩이에 뒤덮인 수십 대의 열차가, 터널 선로를 이탈해 엄청난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콰과과!!!!!
우드드득!!!
[키에에에엑!!] [끄르르르륵!!!]기괴한 비명을 지르는 변이체들로 뒤덮인 열차가 강력한 가속을 걸고 터미널을 향해 돌진한다.
수백 톤에 준하는 금속 질량체가 사방에서 충돌하며 파편을 기관총처럼 건물 위로 튀기고.
이윽고 엄청난 속도로 가속하며 레녹과 사도가 서 있는 본관 건물을 관통했다.
콰아아아아앙!!!!
[끄하하하핫!!! 병신같은 새끼가, 내가 그걸 말해줄 것 같냐?!!]레녹을 들이받고 폭발하는 열차 파편 위에 올라탄 사도가 광소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터미널을 향해 돌진하는 열차들 위로 빠르게 몸을 옮겨타며 내달린다.
[꼴에 사도살해자라고 뽐낼 정도는 되는 듯하지만, 그것뿐이야!!! 네놈 따위는 날 죽이지 못해!!]두두두두!!!!
아슬아슬하게 터미널 건물을 빗겨나가, 옆으로 활짝 트인 해저 터널을 질주하는 사도의 거체.
무너진 터미널 건물 잔해를 걷어차고 뛰쳐나온 아일렌이 다급한 어조로 소리치며 달렸다.
“도망치는 거예요!! 요격해야……!!!”
사방 일대는 수천 미터 넘게 이어지는 해저터널. 주변에는 마땅한 이동수단조차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사도가 도주에 성공하면 술식으로 요격하는 것 말고는 추적이 어려워지는 상황.
순식간에 판단을 마친 아일렌이 몸을 휙 돌렸다.
“별관 주차장이나 차고에 멀쩡한 차가 남아 있을 거예요. 제가 끌고 올 테니 그쪽은 일단 견제를-!!”
“아니.”
레녹이 손가락을 튕기는 것과 동시에 불꽃을 터트려 무너진 벽면 잔해를 밀어냈다.
선로가 이어진 터널 바깥으로 걸어 나온 레녹이 그 앞에 서 있는 물체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충분해. 타라.”
“……지금 나랑 장난해요?”
열차 수화물을 운반하기 위한 용도로 터널 근처에 버려져 있던 지게차.
제대로 된 차량은커녕, 전후좌우가 뻥 뚫려 있어서 바람이 이리저리 통하는 구조다.
속도를 내기에는 단 한 부분도 적합하지 않은 지게차를 황당한 듯 바라보던 아일렌이 물었다.
“이걸 어떻게 타고 저 괴물을 따라잡겠다는 거예요. 이미 저 괴물은 곧 가속을 받아서…….”
찰칵!!
라이터를 튕기는 듯한 소리와 함께, 레녹의 손안에 붉은빛의 마법진이 회전했다.
지게차 위에 손을 얹는 것과 동시에 차체 후면에서 화염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염열계열 고유마법
성질변화 부여현현
[점화(點火) : 48중첩] [적륜기동(赤輪騎動)] [비염신(飛炎迅)]콰아아아아아!!!!
지게차의 후면에 수십 갈래 붉은 불꽃이 폭발하는 것과 동시에, 부스터처럼 차체를 앞으로 밀어 올린다.
그 반동을 폭발력으로 삼아 제 자리에서 굉음과 함께 가속하는 지게차의 자그마한 형상.
본능적으로 가속하는 차체를 움켜쥔 아일렌의 신형이 앞으로 홱 쏠리며 끌려 나갔다.
파아앙!!!
“……!!!”
쿠과과과과!!!
무지막지한 화염을 터트린 지게차가 드넓은 해저터널 위를 엄청난 속도로 질주했다.
쏟아지는 바람이 후려치듯이 지게차에 매달린 레녹과 아일렌을 밀어낸다.
차체에 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뼈대를 잡고 있음에도 당장이라도 튕겨 날아갈 듯한 반동.
‘추진력이……!!’
이미 아음속에 인접한 해상열차를 몇 초 만에 따라잡아 꼬리를 물 수 있을 정도의 속도.
화염을 부스터로 삼아 점화를 걸어 넣은 것만으로 이 정도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 건가.
직접 올라타 있음에도 체감이 되지 않는 비현실적인 속도에 아일렌이 경악하기도 전에 레녹이 말했다.
“던져 넣을 거다. 뛰어.”
“예?”
대답은 없었다.
레녹이 충격파를 터트려 여성을 지게차 밖으로 밀쳐내는 것과 동시에 본인도 탈출.
동시에 화염을 조작해 지게차를 위로 튕겨 던져 버렸으니까.
콰아아아!!
불길을 부스터처럼 휘감은 지게차가 속도를 높여 하늘을 날았다.
가속을 이기지 못하고 양력을 받아 솟구친 지게차가 도착하는 곳은 열차 아래 위치한 바퀴.
맹렬하게 돌아가는 바퀴 속으로 지게차가 빨려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차체가 통째로 폭발하고.
이제 막 가속을 받던 열차가 중심을 잃고 그대로 땅에 고개를 처박았다.
콰아아아아아앙!!!!
살덩이로 뒤덮인 차체가 고꾸라지며 터널 사방으로 굉음과 함께 나뒹굴었다.
흩날리는 열차 파편 사이로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지는 변이체들의 모습.
그 사이로 전신을 금속체로 변화한 사도가 튀어올라 포효했다.
[푸하하하핫!! 끝났다, 병신들아!!!]콰아아아!!!
가슴에 박힌 엔진을 회전시킬 때마다, 온몸에 파이프와 날개가 돋아나며 인간을 벗어나는 괴물의 형상.
괴성을 지른 사도가 전신에서 거센 엔진음을 내뿜으며 홀로 가속했다.
지금까지의 도주가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 자유롭게 터널 위를 주파하는 모습.
하지만 아일렌은 추락하는 와중에도 그 모습을 보자마자 표정을 굳혔다.
‘처음부터 도망칠 생각이 아니었어. 그렇다면 일부러 시간을 끈 이유는……!!’
콰과과과과!!!!
사도의 거체가 해저 터널 천장과 벽면 사이를 미친 듯이 질주하며 짓밟고 깨부순다.
터널 외벽을 따라 난 균열 위로, 충돌하며 폭발한 열차 파편이 틀어박히면서 충격을 더하고.
금이 간 터널 외벽 사이로, 바닷물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며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쏴아아아아아아!!!!!
광대한 해저 터미널 본관 위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바닷물.
레녹과 아일렌이 동시에 그 전조를 인식하고 시선을 들어 올린 순간, 사도가 거침없이 움직였다.
엄청난 속도로 저공비행을 개시해 반 바퀴 선회. 지금까지의 가속을 힘으로 삼아 떨어지는 레녹을 들이받고.
강렬한 공명과 동시에 레녹의 신형을 엄청난 속도로 터미널 별관 건물에 처박아버렸다.
쩌어어어어어엉!!!!
별관 건물을 지탱하는 기둥과 철골이 부러지며 건물이 제 자리에 주저앉는다.
별관 근처에 있던 VIP 전용 주차장에서 스포츠카들이 충격으로 앞으로 튀어나왔다.
[내가 섬기는 종말은 메말라 붙은 날개. 태양을 집어삼키고 불타 말라붙은 몸으로 신이 된 재앙의 현신이니.]쾅!!
흙먼지가 폭발하며 무너지는 건물 앞에 내려선 사도가 파이프와 날개가 튀어나온 몸을 꿈틀대며 말했다.
[나는 불타는 것을 먹고, 날개를 잃은 대가로 무엇보다 빠르게 가속한다.]“그래서 아까부터 이곳에서 인간을 장난감으로 삼아 수작을 부리고 있었군.”
쿠웅!!
떨어지는 철근을 한 팔로 잡아 움켜쥔 레녹이 대꾸했다.
정륜결계와 신격결계가 동시에 작동하며 육체를 보호하고 근력을 보강.
느릿하게 철근을 옆으로 잡아 던져버린 레녹이 불이 꺼진 시가를 던지며 말했다.
“터미널을 무대 삼아 공양의식을 벌인 것도 네가 섬기는 외신의 힘을 최대한으로 끌어내기 위해서였나.”
[크크큭, 그렇다면 어쩔 거냐.]구부정하게 몸을 숙인 사도가 비웃듯이 어깨를 들썩였다.
[이제 네놈의 불꽃은 더 이상 내게 큰 위협이 되지 못할 텐데.]“…….”
쏴아아아아아!!!!
사도가 때려 부순 터널 외벽의 균열이 빠르게 퍼져나가며, 바닷물이 쏟아져 내린다.
천장에서 떨어지던 물줄기가 거세지며 소나기처럼 변해, 사방 일대 타오르는 열기와 뒤섞였다.
레녹에게서 거리를 벌려 도주를 선택했던 사도의 진짜 목적.
그것은 이 해저 터미널 전역을 일부 붕괴시켜 두 사람을 이 자리에 수장시켜버릴 생각이었던 것.
[염열계 마법의 특성은 열기를 통한 확산과 증폭. 그를 통한 출력과 스케일의 증폭에 있지.]사도가 느긋하게 말했다.
[주변이 물로 덮인다고 염열마법을 사용하지 못하지는 않겠지만, 바다를 모두 불태우지 않는 이상 네놈이 자랑하는 열기의 확산은 억제당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럼 네놈의 선택지 역시 극히 좁아질 터.]“…….”
사도 역시 천번의 화염을 고작 이 정도 환경의 변화만으로 완벽하게 억제할 수 있다 생각지는 않았다.
저 괴물 같은 마법사라면 설령 물속에서라도 지옥 같은 화염을 피워내 자신의 영혼을 불태우려 하겠지.
하지만 터미널에 흘러들어오는 바닷물은 계속해서 늘어날 테고, 이해의 바다를 통째로 증발시키지 않는 이상 끝없이 이어진다.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고 해도 바닷물과 사도를 동시에 마법으로 태우다 보면 신경이 깎여나가는 것은 피할 수 없을 터.
[터미널의 구조상 아직은 버티고 있지만, 곧 있으면 터널 전체에 물이 차올라 숨 쉴 공간도 없어질 거다. 그때가 되면 네놈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어깨를 뚜둑거리며 사도가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듯 음습한 웃음을 터트렸다.
[네 목을 뽑아낸 뒤 만신전에 들고 갈 거다. 암리타를 죽인 사도살해자의 수급을 가져가면 신녀님께 받은 은혜를 보답할 수 있겠지.]“…….”
[내가 망가지며 잃어버린 아홉 번째 사도의 자리도 돌려받을 거다. 그 미쳐 버린 지네보다는 내가 더 쓸모가 있을 테니까. 크하하하핫!!!]“……그런가.”
레녹이 걸음을 옮겼다.
“세간에 퍼져 있다는 소문.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나쁘지 않은 것 같군.”
[뭐?]“여기까지 와서 도망치기는커녕 날 죽여 보겠다고 거꾸로 덤벼들다니…… 다른 사도들이 너와 같다면 앞으로는 일이 조금 편해지겠어.”
쏴아아아아!!!!
머리 위로 폭포처럼 떨어지기 시작한 바닷물을 맞으며 불꽃이 일렁이는 손을 펼쳤다.
레녹의 손에 잡힌 불꽃이 떨어지는 물길 속에서도 힘을 잃지 않고, 더욱 거세게 타오르며 빛을 발했다.
화르르르륵!!!
[뭐, 뭐냐.]“내 불꽃이 그렇게나 두렵다면 다른 걸 보여주지.”
직전의 전투로 인해 레녹의 불꽃에 희미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던 사도가 흠칫한 찰나.
타오르는 화염에 휘감긴 손을 앞으로 내민 레녹이 살짝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마침 괜찮은 무대가 된 것 같군.”
화아아아악……!!!
손안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극한까지 열기를 높여가며 눈부시게 타오른다.
한계를 넘어 초월에 이른 불꽃이 이내 본연의 성질을 잃고 ‘깎여나가면서’ 상반되는 속성만을 남긴다.
염열계열 고유마법
성질변화 탈각현현
쩌저저적……!!!
폭주하는 전격마법의 통제를 되찾고, 초월성을 손에 넣은 시점에서 강해진 건 견뢰의 신분만이 아니다.
마법의 출력조절 능력을 수복하고, 술식에 대한 이해도가 한층 더 깊어진 시점에서 손에 넣은 가능성.
첫 번째 관문에서 명에게 배운 술식의 극예(極藝)를 이 자리에 다시 한번 구현한다.
한가지 속성의 극에 달해 깎아내고, 상반된 성질만을 정제해 가공해내는 초월의 신기.
흑마법과 전격마법으로만 사용해 왔던 탈각의 기예를 염열마법으로 재현해서만 다룰 수 있는 힘.
죽은 외신, 차가운 혜성의 가능성을 품은-
[……냉기?]사아아아악!!
어느새, 레녹의 손안에는 푸르스름한 냉기가 휘감기며 흘러나오고 있었다.
폭주하는 화신체와 마법으로 인한 반동도, 토벌전을 위해 여력을 아껴둘 필요도 모두 사라진 이 순간.
천번의 평가를 듣고 교단의 목적을 짐작한 시점에서 남은 일은, 눈앞의 괴물에게 새로운 술식을 전력으로 때려 박아 실험해 보는 것뿐.
“덤벼.”
싸늘한 냉기를 움켜쥐며 레녹이 걸음을 내디뎠다.
“너희 교단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신의 힘을…… 잠깐 보여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