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87
약먹는 천재마법사 687화
마녀와 마탑(1)
“그러니까 우연이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우연이요?”
란시아가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어떻게 사람이 우연으로 스튜디오 건물을 터트릴 수가 있어요?”
“…….”
레녹이 구중도래 호신술, 팔반을 따라 하다 스튜디오 건물을 폭파시켜 버린 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간 뒤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아까 그 괴현상을 재현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재해 보험을 들어놔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우리 모두 사이좋게 경찰서에 잡혀갔을 거라구요.”
스튜디오 건물에 내장된 일회성 복원마법이 아니었다면, 그 잔해가 고스란히 바깥으로 새어나갔을 터.
레녹이 헛기침을 하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보험 처리 비용은 나중에 따로 지불하겠습니다. 아니면 복원마법을 다시 걸어주는 식이라도-”
“아니, 돈은 필요 없으니까 꼭 그걸 다시 재현해 보죠.”
란시아의 눈은 이미 기대하지 않은 흥미로 보기 드물게 반짝이고 있었다.
“대체 구중도래의 어떤 부분이 그쪽의 잠재력을 이끌어낸 건지, 너무 궁금하지 않나요?”
“글쎄요…….”
레녹 역시 놀라기는 했지만, 사실관계가 아예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결백에게서 배운 투인이나, 명의 흑마법을 사용하고 남은 잔여 흑마력.
그 밖에도 레녹의 통제를 따르지 않는 아티팩트나 유물을 확인해 보면 원인으로 추정할 수는 있을 테니까.
다만 란시아와 함께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레녹 혼자 연구실에서 조사해야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이다.
구중도래의 무도술에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식으로는 의미가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을 뿐.
“흠…….”
생각에 잠긴 기색으로 레녹이 몸을 삐걱대는 모습을 관찰하던 란시아가 중얼거렸다.
“놀랍게도 각각의 동작 정확도는 상당히 높아요. 그쪽의 유연성을 생각하면 상당한 의지력이네요.”
“…….”
“다만 그에 비해 각 신체부위 간의 협응력은 엉망진창이에요. 언뜻 보기에는 정확해 보여도 리듬감이 결여되어 있죠.”
“몸을 움직이는데 왜 리듬감이라는 게 필요한지 모르겠군요.”
“인간의 육신은 기계가 아니라, 엄연히 살아 있는 생물이니까요.”
란시아가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자세를 잡았다.
설렁설렁 움직이는 것 같은데도, 레녹이 지금껏 했던 자세와는 차원이 다른 안정감이 느껴진다.
가볍게 숨을 내쉰 란시아의 허리가 튕기듯이 회전하며 팔을 내뻗은 순간.
마치 부드러운 파도가 몰아치듯, 그녀의 단전에서부터 일렁인 무형의 진동이 손가락을 타고 퍼져 나가고.
선명한 장풍이 그녀의 팔뚝을 타고 한줄기 산들바람으로 변했다.
파앙!!
그 바람으로 스튜디오 바닥에 깔려 있던 매트가 몇 장 뒤집힐 정도.
아무런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 체내 흐름을 일치시킨 것만으로도 이 정도 반동.
란시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자세를 바로잡으며 말했다.
“생체리듬과 호흡, 마력의 흐름은 감각의 영역에 가까워요. 특정한 동작을 지정해 심신을 안정시키고, 균형 잡힌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단련하는 거죠.”
“…….”
“협응력이 중요한 것도 그 일환. 거대한 흐름에 몸을 맡기기 위해서는, 각각의 신체조직이 그만큼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할 테니까요.”
틀린 말은 아니다.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이렇게?”
“이렇게는 반말이죠, 고객님?”
“…….”
땀을 뻘뻘 흘리며 자세를 잡는 레녹의 몸짓은 란시아와 비교하면 어색하기만 할 뿐.
“팔다리를 움직이는 방향이나, 균형을 옮기는 타이밍은 정확한데…… 놀라울 정도로 들어맞지 않잖아요.”
란시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차가 거의 없는 걸 보면 이해를 못 했다거나, 일부러 틀리고 있는 건 분명 아닌데…….”
고민하던 란시아가 무언가를 깨닫기라도 한 듯, 살짝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각각의 동작을 일일이 계산해서 몸을 움직이고 있는 건가요?”
“…….”
팔다리를 움직이는 동작의 타이밍과 방향은 자로 잰 듯 정확하지만, 정작 그 속도와 도달점은 일치하지 않는 모순.
그 때문에 몸이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동작을 정확하게 구현하고 있음에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란시아는 그를 통해 레녹이 큰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동작을 따로 분리해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와…….”
평정을 잃지 않던 란시아의 얼굴에 드물게 떠오른 감탄.
“돈을 이상한데 쓰는 사람이란 건 알았지만, 이렇게 특이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처음 봐요.”
“제가 좀 유별난 편입니다.”
“칭찬은 아니지만.”
“…….”
까탈스러운 사람이다.
하지만 레녹은 내심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자세를 풀고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네?”
“문제의 원인을 알았고, 그걸 쉽게 고칠 수 없다는 사실도 알았으니까요.”
“…….”
겉으로 드러난 문제점을 보고 순식간에 그 원인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모습.
그렇게 도달한 결론이 레녹의 본질을 어느 정도 건드리고 있을 정도로 날카로운 직관.
평범한 강사는 아니었겠지. 그녀 역시 보이는 것 이상의 뛰어난 무도가이자, 전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과 레녹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협응력 자체가 문제가 되어 무도술을 더 배우기 어렵다면, 레녹의 입장에서는 오래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다.
차라리 결백이 선물해 준 심상투예기, 투인을 좀 더 가다듬어 완벽하게 사용할 수 있게 수련하는 것이 좋겠지.
하지만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수건으로 땀을 닦고 돌아서려던 그 순간.
란시아가 그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강사님?”
“무슨 소리예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자연스럽게 레녹을 다시 스튜디오 쪽으로 돌려세운 란시아가 말했다.
“이렇게 재미있…… 아니, 특별한 수강생을 가르칠 기회를 개인적으로는 포기하고 싶지 않네요.”
“…….”
방금 무언가 들려서는 안 될 감상이 들렸던 것 같은데.
레녹은 한숨을 내쉬면서도 일단 남은 시간을 확인하고 돌아섰다.
저녁에는 제니의 술집에서 약속이 있다. 그때까지는 예정된 수강시간을 채우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니겠지.
“좋습니다. 뭐 생각나는 해결책이라도 있으십니까?”
“간단하죠.”
란시아가 씩 웃었다.
“자꾸 동작을 머리로 계산하게 되어 협응력이 떨어진다면, 계산을 못 하게 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예?”
순간, 레녹의 어깨를 잡은 란시아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일단 생각을 하지 못할 만큼 몸을 열심히 굴려보고 난 뒤에 다시 시도해 보죠.”
* * *
49구역. 제니의 술집.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시끌벅적한 바의 테이블.
술집을 찾아온 손님들의 시선에는 절묘하게 가려져 보이지 않는 카운터 뒤쪽 룸.
레녹은 그곳에 앉아 팔뚝을 걷어붙인 채, 조심스럽게 파스를 덧대고 있었다.
코르실 제약회사에서 제작한 활력부여술식이 내장된 물건으로, 근육통과 관절염에 특히 효과가 강한 물건.
제약회사가 파산되어 사라진 지금은 부르는 게 값일 만큼 음지에서도 쉽사리 찾아보기 어려운 물건이다.
한껏 정신을 집중해 파스를 덧대는 레녹의 표정은 마치 섬세한 조각을 깎아내는 예술가와도 같았다.
근육의 통증이 느껴지는 부위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한정된 수량으로 최대한의 통증을 경감시키기 위한 계산.
착!!
마력사로 밀리미터 단위로 위치를 조정해 손목 끝까지 파스를 덧댄 레녹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우…….”
“대체 뭘 하고 왔길래 온몸에 붕대질을 하고 있는 거야?”
카운터에 비스듬히 돌아앉은 제니가, 레녹을 돌아보지 않은 채로 물었다.
“네가 이런 식으로 구르다 오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에 있는 일 같은데.”
“……많은 일이 있었지.”
결국 레녹은 수강시간이 끝날 때까지 란시아를 따라 생각 자체를 하지 않기 위한 체력운동에 동참했다.
체내 협응력을 기를 수 있다는 그녀의 제안에 속는 셈 치고 넘어가 주었지만, 그만큼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해야 할까.
벌써부터 온몸에서 뻐근한 근육통이 조금씩 밀려오고 있었다.
오늘 밤에 진통제를 먹고 잠들지 않았다간, 내일 침대에서 일어서지 못할 수도 있다.
그나마 란시아의 말대로 아주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아야겠지.
손가락 관절을 매만지며 고통이 덜해진 것을 확인한 레녹이 그제서야 제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것보다, 조금 더 정신을 집중하는 게 좋겠군.”
제니는 레녹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양손을 모으고 무언가 집중하려는 듯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성공시킬 만큼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이렇게?”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
입을 꾹 다물고 눈을 감은 채, 양손을 덜덜 떨고 있는 제니의 모습.
그녀의 엄지와 검지 사이로 새파란 마력의 원이 떠올라 느릿하게 회전하고 있다.
키이이잉……!!
레녹이 실재하는 마법체계로 구축해낸 영구기관 우로보로스.
아주 오래전에 시도하고 그만두었던 수업을, 레녹은 제니를 통해 다시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제대로 된 마법사가 아닌 제니가 우로보로스 마법체계를 완벽하게 익히는 것은 불가능한 일.
애초에 레녹과 같은 초월적인 직관이 없다면, 아무리 뛰어난 천재라 해도 마법체계를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레녹이 굳이 시간을 내어 제니에게 이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이유.
한 번이라도 제대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절체절명의 순간에 목숨을 구해줄 수 있는 방패가 되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파직……!!
“푸하아……!!”
손끝에서 맴도는 빛의 고리가 사라진 순간, 두 눈을 번쩍 뜬 제니가 숨을 마구 몰아쉬었다.
“이, 이거 생각보다 너무 힘든 것 같은데. 제대로 된 수련법이 맞는 거야?”
“대답하지 말란 게 숨을 쉬지 말라는 건 아니니까.”
레녹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집중력이 아니라 체력을 먼저 길러야 할 것 같은데.”
“…….”
째릿 레녹을 흘겨본 제니가 이내 코웃음을 치며 팔짱을 꼈다.
“뭐, 좋아. 어쨌든 감은 대충 잡았어. 아무리 나라고 해도 몇 번 연습하다 보면 혼자서도 해낼 수 있다고.”
“그래. 그러기 위해 연습을 하는 거니까…….”
레녹은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런데 조든은 애초에 무얼 하든 연습이 별로 필요 없어 보이는군.”
카운터와 룸을 사이에서 마법을 연습하던 제니 옆에서, 조든이 신중한 얼굴로 메스를 들어 올린다.
그의 앞에 놓여 있는, 성인 남성만 한 거대한 참치 덩어리.
“…….”
두 눈을 감은 조든이 메스를 쥐고 가볍게 참치의 배 위에 칼날을 가져다 댄 그 순간.
쩌저저적!!
참치의 뱃살이 살결을 따라 가지런히 갈라지며 순식간에 도마 위에 도열했다.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던 다른 고객들이 요란하게 휘파람을 불며 박수를 쳤다.
“오오오!!”
“내가 본 참치 해체쇼 중 최고인걸!!”
“영감, 언제 이런 재주를 익혀온 거야?!”
조든이 태연하게 메스를 닦으며 말했다.
“한점에 10만 셀씩 받지. 다들 줄을 서도록.”
“비싸!!”
“미친 바가지 아니냐?!”
“해체쇼를 보여준 값이라고 생각하게.”
음지에서 파는 물건에 값이 더 붙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입이 쩍 벌어질 가격.
경악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리면서도 고객들이 착실하게 줄을 서서 참치 뱃살을 구매한다.
못 미더운 기색으로 대뱃살을 한점씩 입에 넣은 사람들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돈값은 하는군.”
“그래. 가끔은 이런 안주도 먹어볼 만하지.”
옆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레녹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술집의 컨셉이 갑자기 좀 변한 것 같지 않나?”
“저번 파티에서 난 이 사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어.”
제니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값싼 인건비, 터무니없는 순익률, 법의 바깥에 위치한 시장과 여물지 않은 전문인력까지…… 미래는 바다에 있다. 우리는 발칸 수산업의 지배자가 될 거야!!”
“…….”
그 값싼 인건비에 해당하는 누군가는 아직도 참치잡이 배에서 시달리고 있을 것 같았지만, 레녹은 깊게 생각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니는 그런 레녹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탐욕스럽게 웃었다.
“음지의 유통망을 우리가 완전히 쥐고 나면, 본격적으로 해상 유통망을 만들어 물고기를 납품한다…… 준비는 모두 끝났어. 에이전트를 통해 중앙의회에 미리 로비만 넣어놓으면 완벽해.”
“듣기만 해도 뒤가 구려 보이는 말만 한가득이군.”
“VIP들에게도 반응이 오고 있어. 부자들의 관심을 끌어내면 프리미엄을 확보하는 건 일도 아니야. 브랜드를 아예 새롭게-”
듣든 말든 신나서 혼자 떠들기 시작한 제니를 두고, 레녹도 생각에 담겼다.
‘프리미엄이라…….’
하이레아에게 비밀회선으로 연락을 넣어두기는 했지만, 아직 답신은 오지 않았다.
그 사이에 최대한 기계도시와 상원에서 얻은 수확들을 정리해야겠지.
마탑 창설에 대한 권한을 승인받기는 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떤 조건과 자산을 요구하는지도 알아보아야 한다.
‘카이세의 흔적을 추적하는 일도 다시 시작해야 할 테고…….’
승천문의 정보를 손에 넣는 것으로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아직 카이세의 묘지를 찾지는 못한 상황.
아직 외겁도시와 군령도시 중 어느 한쪽을 특정하지 못했다.
아르망의 분신능력을 옆에서 지켜본 레녹으로서는, 화신의 구현능력을 군령도시에서 좀 더 가다듬고 싶은 것도 사실이지만.
당장 손에 넣은 오로크니어의 질량술식 연구도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한 시점에서 굳이 일을 늘릴 수는 없는 노릇.
하물며 명이 남긴 전언에 따라 해야 할 일도 몇 가지 더 있다.
판데모니엄의 목적을 레녹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는 만큼, 중앙전선에 대해 정보를 미리 수집해두고 싶은 생각이 있다.
하지만 레녹이 지금껏 보고들은 중앙전선에 대한 정보들은 전부 청의 눈의 도움을 받아 확보했던 것 뿐.
‘중앙전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좋겠지만…….’
“반?”
“……잠깐.”
웃으면서 제니의 야심 찬 계획을 듣고 있던 레녹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술잔을 내려놓은 레녹의 시선이 닫혀 있는 술집의 문 쪽으로 향한 그 순간.
끼익!!
문이 열리고 그 저편에서 누군가 걸어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또각, 또각.
오랜 여정에 지친듯한 몸짓과는 달리, 걸음소리는 날카롭다.
먼지가 내려앉은 외투와 어딘가 나른해 보이는 몸짓과는 반대로 선명하게 빛나는 붉은 머리칼.
무표정해 보이는 얼굴은 언뜻 보기에는 살벌하게 느껴지는 묘한 인상이다.
굳이 티를 내지 않으려고 해도, 자연스레 풍겨 나오는 짙은 살기.
전장에서 아주 오랫동안 종사했던 군인들에게서 간혹 느낄 수 있는 기시감에 가깝다.
“…….”
그녀가 빈자리를 찾아 자리를 잡는 와중에도 술집은 여전히 떠들썩했지만, 레녹은 느낄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술을 마시며 제 할 말만 떠들어대는 이 자리의 모든 프리랜서와 용병들이, 조용히 그녀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니 역시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조용히 고개를 기울이고 속삭였다.
“반, 저 여자…….”
“그래.”
그녀의 전신에서 타오르듯 흘러나오는 뜨거운 마력 그 자체.
7레벨을 넘어 숱한 전장에서 경험을 쌓고 스스로를 단련한 완성자의 기세.
레녹은 그녀가 술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 기척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블레이버 마탑의 다섯 갈래 염주들 중 하나이자, 중앙전선에서 오랫동안 싸워오며 살아남은 베테랑.
뛰어난 실력의 염열계열 성위마법사이자, 포격술식에 특화된 전장의 화력술사.
포화의 마녀. 타티아나 치글렛이 제니의 술집에 찾아왔던 것이다.
“내가 직접 가서 이야기하지.”
레녹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그 순간.
[마스터.]품 안에서 조용히 다비가 레녹에게 신호를 보냈다. 하이레아의 답신이 도착했다는 의미.
잠깐 고민하던 레녹이 그 자리에서 조용히 품 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다비의 도움을 받아 휴대폰 통신망 자체를 암호회시킨 비밀회선. 하이레아 역시 이 회선이 빅터의 것이라고만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야기는 들었어. 다만 지금 당장은 아니야. 저쪽에서 아직 준비가 안 끝났거든.]답신은 의외로 그리 길지 않았다.
[대신 그사이에 당신에게 맡기고 싶은 일이 있는데 들어보겠어? 중앙전선 쪽에서 재밌는 일이 하나 들어왔거든.]레녹이 메시지를 넘긴 순간, 잠시 그 손가락이 멈췄다.
[포화의 마녀가 선대 마탑주의 봉황전(鳳凰殿)을 들고 도주했어. 얼마 전에 발칸 근처에서 목격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했지.]“…….”
[현재 중앙전선의 워메이지와 용병들이 그녀를 추적하고 있어. 사살 아니면 생포. 할 생각 있다면 연락 줘.]레녹이 그 문구를 읽자마자 술집 저편으로 시선을 들어 올린 그 순간.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선 다른 용병들이 타티아나를 향해 접근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