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781
약먹는 천재마법사 781화
유령기행(7)
복마전의 전령, 고대종의 혼혈.
마력사 위로 줄타기를 하며 허수차원을 넘어 다니는 아그네타를 보며 고민한 적이 있다.
고대종의 혼혈이 아니라, 인간의 힘과 재능만으로 허수차원을 자유로이 넘어 다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구 끝에 도달한 결론은, 허수차원에 개입하는 것은 조작술식 하나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뿐.
레녹조차 파이겐바움의 반지를 사용해 아주 잠시 몸을 피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나.
자성영역 허위계명성의 힘으로 간접적으로 다루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는 한 번도 손을 댈 수 없었던 분야.
아그네타가 사용하는 조작술식이 아니라, 고대종의 혼혈이라는 그 태생에 비밀이 있다.
레녹은 그것을 깨닫고 자신을 대신해 허수차원에 개입하기 위한 새로운 대용품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아그네타가 남기고 간 마력사 패턴을 흉내 내, 인공의체에 담아 알고리즘으로 조작한다.’
강령학부 프로젝트에서 사용하던 인공의체와, 다비가 직접 제작해 만들어낸 유사 소환술식 알고리즘.
주문연맹의 나이아브가 소환수 되기 위해 사용하던 성질변화를 차용해서 인공소환수를 제작.
마지막으로 레녹이 지닌 심상, 허위계명성의 힘을 더해 허수차원을 관측할 수 있는 힘을 안겨준다.
레녹이 그간 스쳐 지나오며 마주했던 상대의 재능과 의념.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모방해, 특징을 가져와 새로운 의미로 빚어내는 고도로 복잡한 과정.
특질계 인공소환수, 허수차원의 재단사는 바로 그렇게 탄생한 새로운 무기였다.
쿵!!
진득하게 가라앉는 늪지대 위에서 서로를 마주하는 재단사와 캄로달의 육체.
수 미터 크기의 매부리코 거인과 소머리 괴물이 대치하자, 그것만으로 지상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팔이 여덟 개. 손가락은 마흔 개. 다리는 하나도 없군……. 기동력을 희생하고 성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나.”
해머를 쥔 채로 가만히 재단사를 바라보던 캄로달이 천천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환수라기보단, 거미를 어설프게 흉내 낸 키메라에 가까워 보이는데. 딱히 전투에 특화된 느낌도 아니군. 특질계 소환수란 보통 이런 식인가?”
“미친 괴물의 눈에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레녹은 그렇게 대꾸하면서도, 내심 그 눈썰미에 감탄했다.
실제로 소환수는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는 있으나, 아그네타의 능력과 외형에 강한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개체였으니.
구체적인 정황을 전혀 알지 못한 채로도 그 본질을 어렴풋이 짚어낼 정도의 식견을 지닌 것인가.
“그럴지도. 사도들 중에서도 비슷한 형상을 취하려는 자들이 종종 있다.”
캄로달은 별다른 반응 없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오며 대꾸했다.
“외해의 신들 중에서, 달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비추는 분이 거미의 형상을 흉내 낸다 들었지.”
“아, 너희들을 장난감으로 삼아 그 의지를 내려보내는 괴물들.”
레녹이 냉소했다.
“만신의 교리를 섬긴다 자부하면서도, 그들의 외견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거냐? 한심한 일이군.”
“흐흐…… 오래전의 성전 당시에는 그리 오만하게 지껄이는 불신자들이 많았지.”
이번에는 레녹의 도발을 흘려넘기기 어려웠는지, 캄로달이 음울한 웃음을 흘렸다.
양손으로 망치를 굳게 움켜쥔 그가 자세를 낮추고 말했다.
“그 배교자들의 무덤 위에 교단의 신전을 세우고, 뼛조각을 초석으로 삼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섬기는 일이 그리 자랑스럽나?”
레녹이 싸늘한 조소를 흘리며 한 손을 들어 올렸다.
동시에 재단사도 레녹의 동작을 따라 하듯 한 팔을 들어 올려 옆으로 휙 뻗었다.
“아무리 보아도…… 시시한 의탁에 불과해 보이는군.”
특질계 소환수. 허수차원의 재단사를 제작하며 입력해 둔 명령은 세가지.
발동 전에는 허수차원에서 대기할 것.
대기 중에는 마력사를 제작해 비축할 것.
발동 후에는 술자의 명령에 온전히 복종할 것.
소환 직후 조작 자체는 온전히 레녹과 다비가 맡아 처리한다.
중요한 것은 재단사 본연의 능력과 그 존재를 통해 빅터가 전투에서 가져갈 수 있는 이점 그 자체.
그리고, 그렇게 비축되어 대규모 물량으로 쌓인 마력사를 제대로 활용하기 시작하면-
촤라라락!!
소환수의 손끝에 매달린 마력사가 늪지대 사방으로 뻗어나가 이미 죽은 마수의 시체들을 움켜쥐었다.
쩌저적……!!
수십, 수백 마리에 달하는 죽은 마수의 시체들이 마력사에 당겨져 인형처럼 일어선다.
조작계열 고유마법
근신경계 강제조작
[완구작서(玩具作庶)]망가진 것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 용도를 다할때까지 부려먹는 조작술식의 응용기예.
따지자면 인형사의 능력을 열화시켜 모방하는 식이나, 마력사를 대량으로 필요로 하는 탓에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술식이다.
하지만 재단사를 불러낸 이 시점에서 예비된 마력사 자체는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 바.
쿠구구구!!
순식간에 늪지대 사방에 죽은 마수의 시체들을 조작해, 캄로달을 포위하는 재단사의 모습.
늪지대 전체를 자신의 무대로 삼아, 거대한 인형극을 시작하는 듯한 기괴한 몸짓.
“흐하하핫……!!”
여덟 개의 팔을 교차해 자기 자신을 끌어안은 듯한 재단사의 모습에 캄로달이 광소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동시에 그의 손에 쥐여 있던 거대한 해머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사라졌다.
꽈아아앙!!
사선으로 가볍게 내리치는 그 일격. 그것만으로 뒤집힌 지면이 갈라지며 거대한 크레바스가 생겨났다.
균열 위로 피어오르는 충격파가 달려드는 마수의 시체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긴다.
촤라라락!!
사방에서 으스러지는 육편 사이로 마력사를 걸고 레녹이 거침없이 속도를 높였다.
그림자로브가 흩날리며 지면 위를 낮게 비행하듯 쏘아지고, 그를 잡아채듯 캄로달이 망치를 내리찍었다.
두두두두두!!
칙칙한 빛의 기둥이 연달아 내리 찍히며 발광하고, 그 사이를 새카만 인영 하나가 엄청난 속도로 파고든다.
사방에 펼쳐진 수십 발의 마력사가 날카롭게 일어서 주변의 모든 것을 잘라내고 사도의 육신을 휘감았다.
쩌저적!!
피부가 갈라져 피가 배어 나오고, 균형을 잃은 괴물의 몸뚱어리가 그 자리에서 크게 휘청인 순간.
균형이 무너진 그대로 몸을 반 바퀴 뒤집은 캄로달이, 전력으로 레녹을 향해 망치를 휘둘렀다.
어깨 위로 올라타 영창을 준비하던 레녹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해머 단면에 직격.
꽈아앙!!
가속해 솟구친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지상에 내리 찍혀 으스러졌다.
“……!!”
발아래 마력사를 거미줄처럼 펼치고, 탄성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충격을 받아낸 레녹의 모습.
가면을 고쳐 쓰는 그 시선 너머로 자색의 마안이 흐릿하게 빛났다.
“빠르고 정교하지만, 무게감은 없군.”
캄로달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질계 조작술식의 특징이지. 아직도 그 술식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모르겠지만 출력이 커지는 일은 흔치 않아.”
“조작술식에 대해 알고 있는 모양이군.”
“중앙전선에서 그 술식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이가 있을까.”
레녹의 말에 캄로달이 고개를 저었다.
“한낱 실뜨기를 재주 삼아 승천에 도전한 괴물이, 아르스노바에서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 아는 사람은 모두 아는 사실이지.”
“…….”
“네놈의 기예가 힘과 체급을 뛰어넘을 무언가가 없다면, 그 오만한 언행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야-!!!”
서걱!!
캄로달이 그렇게 말하며 한 발 앞으로 걸어 나온 그 순간.
소머리 괴물의 왼쪽 이마가 쩍 갈라지며 안의 내용물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뇌의 형상을 하고는 있지만, 마치 실밥이 엉킨 것처럼 이리저리 망가진 듯한 징그러운 외형.
마치 누군가 강제로 뚜껑을 열고 이것저것 손을 대다 망쳐 버린 듯한 흉측한 모습.
그제서야 레녹이 마력사를 은밀히 겹쳐, 보이지 않는 사방에 걸쳐두었음을 깨달은 캄로달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절단 술식을 중첩해 마력사를 칼날로 만들었나. 번거로운 짓을……!!”
파팟!!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앞으로 기울어진 캄로달의 다리가 그대로 레녹을 후려갈겼다.
발길질에 짓눌리는 것과 동시에 캄로달의 전언이 귓가로 들려온다는 이현상.
점멸로 피해 으스러진 이끼 위로 미끄러진 직후, 기다렸다는 듯 해머가 땅을 으깨며 따라붙었다.
드드드득!!
아예 단면을 땅에 처박고 휘두르는데도, 그 힘과 속도에 지면 전체가 준동할 정도의 괴력.
레녹이 일전에 상대했던 질리언이 생각날 정도의 괴력과, 엄청난 체급.
그렇기에 조작술식으로 상대하기에는 더욱 까다로운 상대임이 틀림없다.
파바바밧!!
늪지대 사방에 펼쳐진 마력사를 타고 거미처럼 빠른 속도로 비행과 점멸을 반복하는 레녹과.
이동과 동시에 레녹을 따라잡으며 초고속으로 공방을 이어나가는 캄로달의 모습.
쿠과과과!!
스쳐 지나가는 가벼운 충격만으로 늪지대 호수 일대가 들썩이며 그 물과 진액을 토해냈다.
한계를 넘어선 초인들의 격돌에 눈치를 보며 숨어 있던 마수들이 불쌍한 비명을 지르며 사방에서 굴러다니고.
내리 찍히는 마력사의 비와 해머의 단면을 피하지 못하고 으깨져 죽어나갔다.
[이럴 수가…….]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전투에, 신녀의 영혼조차 시선을 떼지 못할 정도.
캄로달의 힘이야 알고 있지만, 사도술식을 전력으로 운용하는 화신체의 전투를 일개 술사가 따라붙고 있다는 사실은 가히 경악스럽다.
특질계 술사. 그것도 전투에 응용하기 지극히 어렵다는 조작술식을 사용해 육탄전을 수행하고 있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
심지어 캄로달의 맹공에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공방의 주도권을 빼앗아오려고 하기까지 한다.
촤라라락!!
저공비행과 점멸을 병행해 이동할 때마다 그 자리에 수십 가닥의 마력사가 비산해 펼쳐지고.
마력사를 매개로 한 고유마법과 성질변화를 난사해 예측이 불가능한 수준으로 궤적을 비틀어버렸다.
찰나의 심리전에서 이기기 위해 마력사 수백 다발을 내다 버리고, 즉시 재단사에게 마력사를 공급받아 재전개.
캄로달 역시 자신의 몸을 잡고 베며 당기는 마력사를 모조리 인지하자마자 쳐내고 있지만.
사도의 육신이 붙들리는 일순조차 극한까지 쪼개서 의미 있는 결실로 만들어낸다.
쩌저저적!!
목숨을 두고 줄타기를 하는 듯한 정신없는 고속 전투. 사도의 육체가 움직이는 방향과 무게중심을 실시간으로 관측.
마력사를 걸자마자 균형을 절묘하게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인력과 장력을 조작해 어긋 내고.
쉴 새 없이 균형을 부수고 신체 말단을 잘라내, 마침내 사도의 거체를 끈적한 늪지대 아래 처박은 순간.
[꾸워어어어!!!]레녹의 폭탄에 머리가 녹아내렸던 두꺼비 마수의 시체가 그대로 캄로달의 육신을 집어삼켰다.
꿀꺽!!
뻐어어엉!!
“오오오오오!!!”
내장을 훤히 드러낸 마수의 가슴팍이 폭발하며 소머리 사도의 신형이 뛰쳐나온다.
갈라진 이마 사이로 진액을 줄줄 흘리며 사도가 괴성을 내지르자, 그 진동만으로 늪지대가 벌벌 떨렸다.
나무 위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레녹이 앰플을 꺼내 들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뇌가 반쯤 박살 나고도 그 정도로 행동이 이어지는군. 사도의 육체 내구성은 다들 그런 식인가?”
“원래 이번 임무에 투입되어야 할 사도는 아니었지……!!”
캄로달이 호수 위로 망치를 내리찍자, 수면이 폭발하다 그 충격으로 수분이 증발해 사라진다.
발 아래서 괴성을 지르는 마수들을 짓밟고 으깨며 도약한 캄로달의 어깨가 사방의 나뭇등걸을 분쇄.
드드드득!!
그대로 나무 수십 그루를 늪지대 아래로 부러뜨려 밟으며 대꾸했다.
“연맹의 접합술주에게 덤볐다가, 패배해서 한번 해부당했거든. 덕분에 살짝 미쳐 있던 정신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지.”
“…….”
연맹과 교단의 재전에 투입되었다, 패배해서 실험체가 되어버린 사도란 말인가.
그 의미를 깨달은 레녹이 순간 침묵한 사이 캄로달이 웃었다.
“특질계 술사라 그런지 아주 지독하게 손을 썼어. 교리조차 이해하지 못할 수준이라, 어쩔 수 없이 의미를 다할 수 있는 곳에 쓰기로 한 것뿐.”
“없느니만 못한 변명이군. 교단의 실수를 내게 보고라도 하고 싶었나?”
“나는 변명을 하려는 게 아니다. 네놈 같은 금단의 재능을 살려둘 수 없는 이유를 말해주는 것뿐이지.”
캄로달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선천적으로 뒤틀린 태생, 저주받은 삶과 불우한 환경. 철저하게 망가진 재능 위에서 피어나는 악의 꽃. 바로 그것이 특질계 술식의 본질이 아니더냐.”
“…….”
“살아서도 죽어서도 이해받지 못하는 해악만을 남기는 힘. 특질계 술사라면 지겹도록 듣고 있겠지?”
파앗!!
그 순간, 캄로달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엄청난 속도로 도약해 사라졌다.
레녹조차 잠시 놓쳐 버릴 만큼 덩치에 비례하지 않는 초고속의 기동.
자신을 노리고 있음을 직감한 레녹이 허공에 떨어지며 점멸로 위치를 바꿔버린 직후.
“잡았다……!!”
캄로달이 공중에서 몸을 틀어, 쥐고 있던 해머를 그대로 던져 버렸다.
쐐애애액!!
엄청난 속도로 투척된 해머가 레녹을 터무니없이 빗겨나갔다.
레녹을 노린 것이라곤 믿기지 않는 허술한 공격. 그 방향 끝에 위치한 대상이 무엇인지 레녹이 깨달은 찰나.
늪지대 한쪽 구석에서 마력사 수천 가닥을 조작하던 재단사의 머리 위에 거침없이 해머가 내리꽂혔다.
으지지직-!!
그 자리에서 지면이 폭발하며 나뭇등걸이 으스러지는 충격.
흔적도 없이 박살이 나버린 소환수의 기척 위로, 캄로달의 거체가 한 번 더 강하했다.
콰아아앙!!
동시에 사방에 비처럼 쏟아져내리던 무수한 마력사 다발이 거짓말처럼 뚝 끊겨 버렸다.
“허수차원의 재단사라고 했나? 네놈의 소환수. 능력이 지나치게 강하더군.”
본체를 잃고 끊겨나가 출렁이는 무수한 마력사의 장막 사이로 캄로달이 숨을 씨근대며 돌아선다.
“일개 소환수가 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응당 희생해야 할 것도 있겠지.”
잔해 사이로 떨어진 해머를 주워든 캄로달이, 혈혈단신으로 선 레녹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지나치게 빈약한 내구도. 소환된 지점을 멀리 벗어나지 못하는 저열한 기동성.”
“…….”
“술자와 소환수의 역할이 반대라는 것을 빨리 알았다면, 진작에 전투가 끝났을 텐데.”
본래 소환술사와의 전투에서는 소환수가 아니라 술자를 노리는 것이 정석.
하지만 재단사는 전투나 공간점유에 특화된 소환수가 아니라, 술자를 보조하고 촉매를 공급하는 역할에 가깝다.
하물며 공방이 교환되는 사이에도 레녹과는 달리 소환된 위치에서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마력사 조작에만 몰두하는 그 모습.
캄로달은 그 잠깐의 격돌 사이, 소환수의 약점을 인지하고 즉시 목표를 바꿔 버린 것이다.
후웅!!
부러져 망가진 나뭇등걸의 끝자락.
더 이상 마력사를 걸 수도 없을 만큼 부서진 잔해 사이로 캄로달이 레녹을 향해 해머를 겨누었다.
“그 미욱한 삶을 낙원에 바치거라. 그것으로 네 원죄를 그분께서 용서해주실 테니.”
그것은 분명 레녹에게 교단에 귀의하라거나, 교주를 섬기라는 권유는 아니다.
캄로달은 애초에 신녀처럼 레녹을 회유할 생각 따위는 없다. 단지 거슬리는 이단을 이 자리에서 치우고 목적을 완수하기만 하면 그뿐.
정신없는 전투 와중에 조작술식의 원리를 꿰뚫어 보고 허를 찌르는 지성.
다른 사도의 육신을 조종하면서도, 그 전투방식을 능숙하게 모방하는 무력.
쓸모가 없어진 사도마저, 교단에 필요한 일을 위해 끝까지 이용하는 그 집요함까지.
8사도의 본체를 직접 마주한 적이 없음에도, 그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이것이 귀도 교단에서 한 자리수 번호를 짊어진 사도.
수십만 명이 섬기는 교단 내부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특기전력의 힘인가.
레녹이 보았던 2사도가 그러했듯, 다른 한 자릿수 사도들 역시 캄로달에 비견되는 괴물이겠지.
“글쎄. 용서라는 게 뭔지 난 잘 모르겠군.”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해머를 바라보며 레녹이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적어도 너희들이 섬기는 교주는 그런 일에 관심이 없을 것 같은데.”
서걱!!
그 순간, 해머를 움켜쥔 캄로달의 손가락이 모조리 잘려나가며 망치가 떨어졌다.
어디선가 솟구친 마력사가 손가락이 잘린 단면을 파고들어, 근신경계 사이로 의념을 때려 박았다.
쩌어엉!!
주입하는 것만으로 순간 사도의 육신 전체가 마비될 정도로 강렬한 의념.
그것이 소멸시켰다 확신한 특질계 소환수, 재단사의 마력사라는 것을 깨달은 캄로달이 레녹을 노려보았다.
“이해할 수 없군……. 그 잠깐 사이에 재소환에 성공했다고?”
“다시 소환하는 게 아니다.”
레녹이 웃었다.
“허수차원 너머로 대피시켰던 것뿐이지.”
후욱!!
그 순간, 레녹의 머리 위로 균열이 열리더니 허수차원 너머로 재단사가 튀어나왔다.
주름진 매부리코를 흔드는 기괴한 얼굴과 외형. 흉측하게 일그러지고 비틀린 웃음.
여덟개의 팔 위로 매인 수천 가닥의 마력사가, 어느새 사도의 육신을 완벽하게 구속하고 붙들어 매고 있었다.
“실재하는 몸으로 허수차원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면, 어떤 물리적인 압박에서도 자유롭지 않겠나?”
아직 레녹에게는 불가능하나, 아그네타의 마력패턴을 빌린 재단사에게는 가능한 흉내.
캄로달의 공격이 재단사에게 향한 그 순간, 레녹은 소환수를 즉시 허수차원으로 옮겨 공격을 회피시킨 것이다.
소환수의 기척이 사라진 직후 캄로달은 재단사가 소멸했다고 오판.
재단사의 존재가 전투에서 완전히 배제된 그 순간, 레녹은 미리 준비했던 술식을 순서대로 꺼내 들었을 뿐.
“재단사는 보조 능력에 치우친 소환수지만, 마냥 조작술식의 보완만이 가능한 건 아니다.”
우우웅……!!
재단사의 몸에 달린 여덟 개의 팔이 서로를 마주 보고, 각자 다른 수인을 맺기 시작한다.
조작계열 고유마법.
한없이 극도로 정교한 조작을 필요로 하는 조작마법의 4중첩 공명영창.
그것도 영창마다 다른 주문을 섞어 출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는 예열.
본디 있을 수 없는 조건을 충족시킨 특질계 마법은, 당장 레녹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는 공능을 손에 넣도록 만들어준다.
키이이이잉……!!
수인을 맺는 여덟갈래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것은, 은하수를 떼어다 만든듯한 남색의 발광체.
반시계 방향으로 격렬하게 회전하는 그것은, 당장이라도 뚜껑이 열려 사방으로 비산할 것만 같다.
아직 레녹 자신이 직접 다루지는 못하는 아공간 조작 술식의 정수.
아공간 자체를 임의의 가상 질량체로 삼아 투사하는 발사주문.
발동 직후 폭발적으로 확장해 공간 전체를 도려내는 빛의 회전.
온몸이 마비된 사도의 미간에 그것을 겨눈 레녹이 고개를 치켜든 채 웃었다.
“사도술식치고는 시답잖은 힘이군. 신녀를 되찾고 싶다면, 다음번에는 더 쓸 만한 육체를 가져와야 할 거다.”
“……!!!”
“아니면 촉수가 달린 네 징그러운 본체라도 상관없겠어.”
캄로달이 그를 보며 무어라 외치려던 순간.
[초찰나 : 아공탄(亞空彈)]군청색의 빛이 사도의 머리를 휘감고 회전하며, 공간 전체를 통째로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