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9
그제서야 레녹은 마력을 꺼트리고 다시 술잔을 집었다.
“보다시피 실력에는 어느정도 자신이 있으니 괜찮은 일거리를 소개해줬으면 좋겠는데.”
“….꼭두새벽에 찾아온 것 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손님이잖아. 마음에 드는데.”
제니가 씩 웃으면서 대꾸했다.
“하지만 우리쪽에서도 당장 당신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는건 불가능해. 몇번 일을 같이 해보면서 적당히 신뢰를 주고받은 뒤에 우리도 좋은 의뢰인을 연결해줄 수 있는거지. 그런 의미에서 당분간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을거야. 괜찮겠어?”
“이해했다.”
“좋아. 그럼 일단 계약서를 쓰자고.”
두 사람의 합의가 끝나지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서로의 자유와 책임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허울뿐인 고용계약서를 작성한 뒤, 제니가 바 뒤편에서 두꺼운 파일집 하나를 통채로 들고왔다.
“그럼 시작해볼까? 여기까지 기어들어왔으니 딱히 가리는 일은 없을거라고 믿겠어.”
“민간인을 건드리는 것만 아니라면.”
무고한 사람을 해쳤다가 경찰이나 군의 추적을 받는 일은 피하고 싶다.
제니 역시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어지간해서는 그럴 일 없으니 안심해도 좋겠군. 먼저 이걸 봐.”
파일집을 펼치고 안쪽의 서류들을 레녹에게 밀어넣는다.
프로파일링되어 기록된 온갖 종이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십명의 사진이 종이마다 달려있고, 그 가운데 알 수 없는 숫자가 커다랗게 찍혀있다.
레녹은 한동안 그것을 내려다본 뒤에야 그 숫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현상금?”
“접근성이 좋고, 성과를 판별하기 용이한데다 보수가 바로바로 꽃힌다는 장점이 있지. 바운티 헌터가 괜히 존재하는게 아니야.”
제니는 그렇게 말하면서 서류 한장을 쭉 뽑아 레녹에게 내밀었다.
“어중이떠중이들을 가려내기에는 아주 적합한 관문이라 이거지. 할 생각 있어?”
“도시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가릴 처지가 아니군.”
레녹은 그렇게 말하면서 사진에 찍힌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눈여겨보았다.
푸석푸석한 피부에 신경질적인 인상을 가진 청년. 색이 바랜 갈색머리를 비대칭으로 쳐서 넘긴 모습으로 담배를 태우고 있다.
“이름은 테일러 에반스. 스캐빈저 출신이고, 사흘 전 31구역 항만에서 운송되는 아킬레우스 사의 보안장비를 탈취시도한 혐의를 가지고 있지.”
추적
“미수로 끝났다는 뜻인가?”
“시궁창을 떠도는 쓰레기들이 아킬레우스의 보안을 뚫었을리가 없잖아. 같이 범행을 계획했던 다른 스캐빈저들은 모두 사살되었고, 이 놈만 남아서 도주에 성공했다고 해. 아킬레우스는 이 뒤로는 손을 뗐고, 쓰레기 처리를 이쪽에 맡긴 셈이지.”
그녀의 말만 들어보면 아킬레우스라는 기업과 스캐빈저라는 조직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간극이 어마어마한 모양이었다.
“이놈이 소속되어있던 스캐빈저 지부는 진작에 발을 뺐으니 손속이 좀 거칠어도 별다른 문제는 없을거야.”
“흠….”
“현상금은 3백만 셀. 큰 금액은 아니지만, 쥐새끼 하나 잡아오는 것 치고는 그리 나쁘지 않은 금액이지. 어때?”
3백만.
일주일 전까지 몇만셀이 부족해서 허덕이던 레녹에게는 터무니없이 큰 금액이지만, 선뜻 수락하기는 망설여진다.
‘너무 막연한데.’
이 도시에서 일주일을 보낸 레녹은 이곳이 얼마나 드넓고 온갖 군상들이 섞여있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당장 유흥가가 위치한 이곳 49구역만 하더라도 도서관이 있던 번화가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이런 곳에서 사진 한장만 가지고 사람을 찾기에는 너무 손이 많이 들 것 같았다. 쓸만한 정보를 찾아서 파일철을 뒤적이던 레녹은 뭔가를 발견하고 손으로 짚었다.
“여기 보면 혈액 샘플을 채취했다고 되어있는데.”
“어? 뭐…. 일단 우리가 가지고 있긴 하지.”
“받을 수 있나?”
“줄 수는 있지만… 그리 쓸데는 없을걸.”
제니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노인을 시켜서 바 뒤쪽에서 샘플을 꺼내주었다.
핏자국이 묻은 찢어진 옷자락.
레녹이 그것을 품안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가 말했다.
“어쩌려고?”
“도움이 될거다.”
“혈법사를 찾아갈 생각은 관두는게 좋아. 건당 5백만 셀 이상을 받아먹는 돈귀신들이라 본전도 찾지 못할테니까. 근데 그게 아니면 그 샘플은 신원조회할때 밖에 쓸모가 없을걸.”
아킬레우스가 괜히 그걸 넘겨준게 아니지. 라고 말하면서 어깨를 으쓱이는 제니를 무시하고 술집 밖으로 걸어나왔다.
그녀가 혈법사에 대해서 말했지만, 레녹은 굳이 그런 이들을 찾아가서 도움을 구할 생각은 없었다.
혈법 계열 고유마법에 대해서는 레녹도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 마법을 준비하는 과정이 간소하고 위력이 강력하지만 그만큼 반동이 강한 계열마법으로, 늘상 수명이 줄어드는 리스크를 안고 살아야하는 이들이다.
게임 속에서야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겠지.
생명력을 대가로 사용하는 마법인 만큼, 혈법사들이 비싸게 구는것 역시 이해가 간다.
다만 도둑놈 하나 잡겠다고 그런 이들의 손까지 빌릴 이유가 없었을 뿐.
사람의 눈을 피해 적당히 으슥한 곳에 자리잡은 레녹이 쭈그리고 앉아서 찢어진 옷자락을 땅에 내려놓았다.
“…..[블러디 체이스].”
의지를 담아 마력을 쏟아붓는것과 함께 옷자락을 중심으로 직경 1미터 정도의 마법진이 바닥에 새겨지기 시작했다.
우우웅!!
새빨간 빛으로 빛나면서 옷자락에 묻은 핏자국을 싹 빨아먹은 마법진이 은은하게 진동하더니, 한줄기 붉은 실로 변해서 뱀처럼 바닥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레녹은 그 모습을 보면서 몸을 일으켜 그 실을 따라 걸었다.
이 공용마법은 주로 마법을 사용하는 헌터 계열 직업들에게 애용받는 것으로, 주로 놓친 사냥감의 위치를 파악하거나 추적을 위해서 사용되는 마법이다.
지속시간이 길지 않은데다 혈흔이 섞여있을 경우 제대로 된 추적이 불가능하고, 거리보다는 단순히 방향만을 알려주는 식이라서 간단한 방해마법만으로 무효화되지만 상대는 그런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했다.
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한동안 걷다보니 사람들이 멀어지고 공기가 옅게 변한다. 사람의 냄새가 희미하게 변하는 어느 이름모를 공사장 옆, 폐쇄된 철도구역이 눈에 들어왔다.
잔뜩 녹이 슨 레일 위쪽에는 철도 대신, 허름한 거적때기를 입은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하나같이 정상적인 안색을 한 이들이 없고 아무렇게나 대소변을 주변에 보고 다니는지 괴상한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들어온다.
도시의 양지와 음지. 어느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낙오자들이 잠을 청하는 곳으로 보였다.
그 중에서도 철도의 어느 구석, 벽면에 등을 기댄 남자를 향해 실이 고정된 것을 확인한 레녹이 천천히 걸어 그의 앞에 섰다.
“테일러 에반스?”
“………”
죽은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는 남자를 내려다보면서 레녹이 한숨을 내쉬었다.
철저하게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품에서 양아치에게 뺏었던 절단기를 꺼내들었다.
다이크 사의 제품을 개조했다고 했었나. 손잡이 앞뒤로 달린 버튼 두개를 동시에 누르자 절단기에서 푸르스름한 광원이 비죽이 튀어나왔다.
“오, 이건…..”
작은 광선검 같은데.
레녹이 작게 감탄하면서 그 광선을 남자의 허벅지에 꽃아넣으려고 자세를 잡은 순간ㅡ
지금까지 꼼짝도 하지 않던 남자가 몸을 옆으로 홱 틀면서 미친듯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
뒤도 돌아보지 않고 꽁무니를 빼는 테일러를 보면서 레녹이 고개를 저었다.
혹시나 공격을 해오면 받아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있었는데, 반항조차 하지 않고 도망칠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비쩍 말라보이는 주제에 달리는 속도는 꽤 빨라서 금세 시야를 벗어날 것 같았다.
짧은 시간동안 레녹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상황의 주도권은 완벽하게 레녹에게 있고, 주어진 선택지는 많았다.
직접 쫓아갈수도 있고, 예전에 하던것처럼 사일런스 마법을 걸고 사격을 가해도 괜찮다.
하지만 이 몸으로 뜀박질을 하려면 연초의 도움이 필요하고, 저렇게 멀어진 거리에 총을 쏴도 제대로 맞출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따라서 레녹이 선택한것은 세번째 방법이었다.
마력을 끌어올려 크게 일렁이면서 그대로 허공을 향해 후려갈긴다. 확실한 사고와 강한 의념이 왼손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며 희뿌연 파동이 펼쳐졌다.
[사운드 웨이브]파앙!!
레녹의 영창과 함께, 무형의 충격파가 공기라는 매질을 타고 앞으로 파도처럼 일렁이면서 퍼져나갔다.
매질을 타고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는 곧 소리의 속도.
무시무시한 기세로 뻗어나간 무형의 충격파가 순식간에 도망자를 따라잡는다.
터엉!
미친듯이 달리던 테일러가 중심을 잃고 널브러지는데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레녹은 그가 쓰러진 곳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
제니의 술집에서 나와 꽤 오랫동안 걸었더니 체력이 후달리기 시작한다. 적당히 호흡을 조절하지 않으면 또 연초에 의지해야한다.
마법 연구를 하면서 연달아 연기를 들이마셨더니 이제 정말로 다섯개피도 남지 않은 상태였다.
일이 끝나고 나면 제니에게 이런 물건을 구할 방법에 대해서 물어봐야 할것 같았다.
테일러 에반스는 두 손으로 양쪽 귀를 막은 채 부들부들 경련하고 있었다.
손가락 사이로는 시뻘건 핏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공용마법 [사운드웨이브]. 음파진동을 통해서 박쥐처럼 주변사물을 탐색하는데 쓰이는 마법이지만, 출력을 높이면 이런 위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마총사일때는 정해진 방법 이외에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지만, 레녹의 재능으로는 그냥 마법을 사용할 때 이미지를 구체화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아마 고막뿐만 아니라 달팽이관까지 모조리 박살나 있겠지.
뭐가 들리기는 커녕 제대로 걸을 수 있는 상태도 아닐것이다.
“흠.”
완전히 제압되어서 떨고 있는 테일러를 내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공용마법의 연구를 완전히 마친 뒤에 레녹이 가장 먼저 생각했던 것은 바로 스스로의 몸을 지키는 일이었다.
단순히 물리적 접근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로로 그의 안전을 위험하는 여러 시도에게서 몸을 보호하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감각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레녹도 테일러와 똑같은 짓을 당할수도 있다.
그의 연약한 육체는 이런 공격에 단 한번조차 버텨내지 못할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쓰러진 테일러의 발목을 잡고 몸을 돌린 순간.
타앙!!
총성음이 들리고, 레녹의 주변에서 마력의 역장이 번뜩이며 깨져나갔다.
어디선가 날아온 총격에, 레녹이 사전에 준비했던 배리어 계열 마법이 반응했던 것이다.
한번의 구현으로 상시적용이 가능한 계열의 배리어라, 총탄 한번으로 박살날 만큼 연약했다.
하지만 레녹이 그 공격에 반응할 잠깐의 시간을 벌어주기에는 충분하고도 남았다.
배리어가 터져나간 순간, 레녹의 사고와 마력이 동시에 움직이면서 새로운 역장을 짜올렸기 때문이다.
이전보다 수십배는 단단한 장벽을 완성하는데 걸린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이 정도라면 대전차로켓을 맞아도 잠깐은 버틸 수 있다.
안전에 대한 확신이 서는 순간 레녹은 연초를 무는것과 동시에 빠르게 마력을 사방으로 퍼트려서 인기척을 찾기 시작했다.
느릿하게 몸에 쌓여있던 피로를 잊어버리고,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저격을 당했음에도 레녹의 머릿속은 차분하기 그지없다.
앞으로의 미래와 생활에 대한 걱정으로 복잡했던 마음도 목숨이 걸린 상황 앞에서는 싸늘하게 가라앉는다.
감성과 두려움을 젖혀두고 마법사로서의 이성과 강인한 정신력이 수면위로 떠올라 레녹을 가득 채우는것이다.
‘없어.’
그간 늘어난 마력량을 아끼지 않고 풀어서 반경 1km부근을 싹 훑었는데도 부랑자들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상의 거리를 두고 저격을 감행했거나, 아니면 단순한 마력감지로는 찾을 수 없을만큼 괜찮은 수단을 사용해서 기척을 숨겼거나 둘 중 하나.
어느쪽이든 까다로운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 두 귀를 막고 떨고 있는 이 남자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단 말인가?
쓰러진 테일러를 맴돌던 레녹의 눈동자가 어느순간 그의 머리 부분을 향해서 정확하게 고정되었다.
‘그러고보니 총격이 쏘아진 부분은 배리어의 하단이었어. 처음에는 단지 날 제압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이 쓰러진 누군가의 두부를 정확하게 노린것이라면 어떨까?
합리적인 가정을 설정한 순간 곧바로 추론이 이어진다.
결론이 도출되는것은 순식간이었다.
‘테일러 에반스의 입을 막으려고 손을 썼군.’
아마도 스캐빈저라는 조직 쪽이겠지. 아킬레우스 사의 귀에 들어가서는 안될 후일담이 그의 머리통 어딘가에 들어있는것일까.
그렇다면 레녹이 테일러를 찾아낸 후에 저격이 들어간것도 이해가 간다.
바운티헌터가 따라붙은 상태에서 표적이 제거되면 대부분의 헌터는 그걸 그대로 들고가 자신의 성과로 자랑할것이 분명하니까.
스캐빈저가 입을 막으려고 했던 그 사실조차 그대로 묻혀 사라질 터.
하지만 레녹은 자신의 눈앞에서 대놓고 총격을 시도한 이 저격수를 가만히 놔둘 생각이 없었다.
일에 나선 순간부터는 일처리는 단호하고, 손속은 잔혹하게 유지해야한다.
적어도 레녹은 ‘반’이라는 인간을 그렇게 만들 작정이었다. 잔혹하고 냉정한 인간이라고 알려질 수록, 그의 돈벌이를 방해하는 이들 역시 적어질테니까.
마음을 굳히자마자, 레녹은 그대로 품안에서 권총을 꺼내 테일러의 머리를 쏘아버렸다.
타앙!!
거친 총성음과 함께 꿈틀거리던 테일러가 즉사했다.
제니는 가능한 한 생포를 선호한다고 했지만, 바꿔말하면 굳이 살아있을 필요도 없다는 의미일 터.
물론 이렇게 된다면 테일러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후일담’은 영원히 묻혀버리게 되겠지만…. 레녹은 그딴 비밀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것은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눈 저격수를 찾아서 응징하는것 뿐.
이 모든것은 그를 위한 과정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