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who sees Rainbows RAW novel - Chapter (341)
무지개를 보는 천재 마법사 외전-341화 (외전 완결)(341/341)
#341. 외전3. 사랑의 색채 (8)
“나도 정확히 알고있진 못해. 일단 어떤 대상을 아끼고, 좋아하고, 계속 보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라고 알고 있어.”
레이는 일단 자신의 지식 내에서 최대한 설명했다.
─대략 이해했다. 그렇다면 내가 내가 햇살이 비쳐드는 창가 자리를 좋아하는 것도 사랑인가?
“경우가 약간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사랑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줄이 달린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도?
“아마도?”
─내가 리발과 에수아와 항상 함께 있고 싶은 마음도 사랑인가?
“그건 확실히 사랑이지.”
카트린느를 이해시킨 레이는 질문을 던졌다.
“이 사랑, 혹시 세기가 줄어든 적이 있어?”
─결코 없다. 단 한순간도. 리발의 것이든. 에수아의 것이든. 커지면 커졌지, 줄어든 적은 없다.
둘의 사랑은 변한 적이 없다.
헌데 각자의 방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다는 것은 끝까지 자존심을 버리지 못했다는 뜻일 터.
‘먼저 사과를 하지 못 했던 거겠지.’
서로 자존심을 세우다 상황이 단단히 굳어져 속절없이 시간만 흘려 보냈으리라.
어쩐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사랑이라는 조건은 갖춰져 있던 셈이었으며, 두 사람이 함께 문 앞에 서는 것이 잠금 마법 해제의 조건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인데.’
출입문 앞에서 만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잠금 마법의 해제가 불가능하다.
어떤 생각이 번뜩였다.
혹시 두 사람의 물리적 좌표가 아닌 감정 자체가 조건이라면?
‘두 사람의 감정만 출입문 앞으로 이동시키면 돼.’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시도해볼 가치는 있어 보였다.
“혹시 내가 리발과 에수아의 감정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도 괜찮을까?”
─거절한다.
“어쩌면 저택의 문을 열 수 있을지도 몰라.”
─불허한다.
“그래도 우리가 나가기를 원한다면 너도 협조를….”
하악!
아무래도 리발과 에수아에 관련된 무언가에 누군가 손을 대는 건 싫은 모양이었다.
그때 베로니카가 방에 나타났다.
“레이야, 너무 오래 돌아오지 않아서 찾았… 고양이잖아!”
빛의 속도로 접근한 베로니카가 카트린느를 끌어안고 얼굴을 부볐다.
“웬 고양이야? 웬 귀여운 고양이가 여기 있는 거야?”
하아악!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카트린느가 격렬히 저항했다.
하지만 곧 현직 집사의 자애로운 손길에 함락당해 흐물흐물해졌다.
─흐음… 따뜻해서 나쁘지 않군. 그래, 거기다. 거기가 좋군.
골골골골.
이렇게 보면 계속 적개심을 드러내도 사람의 손길이 고팠던 게 아닐까 싶었다.
이후 레이의 설명을 들은 베로니카는 눈물이 글썽글썽해졌다.
“어떡해… 너무 슬퍼… 서로 사랑했는데 왜 그런 생활을 해야 했던 거야?”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피해 카트린느가 비상 탈출을 했다.
감정을 추스른 베로니카는 진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정령님, 리발과 에수아, 두 분은 잠에 빠지기 전 서로를 굉장히 사랑하셨잖아요? 하지만 사이가 어색해져서 그 감정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보냈고요.”
─…….
“마지막 잠에 드는 순간에 굉장히 후회를 하셨을 거예요. 아, 자존심을 챙기지 말고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밀걸. 하지만 그때는 이미 상대방의 방까지 갈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었겠죠.”
카트린느는 생각했다.
정말 그랬던 것 같다고.
리발과 에수아는 잠에 들기 전 몇 년 동안은 기력이 없어 제대로 된 거동조차 힘든 상태였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울고, 허탈함을 표하고, 후회하는 모습을 반복해서 보여왔다.
당시 정령이 아니었던 자신으로서는 그들을 도울 방법이 없었었고.
“그래서 지금 저희는 두 분의 사랑이 다시 만날 수 있게 도움을 주려는 거예요. 비록 몸은 잠들었지만, 남아있는 감정만이라도요.”
─…….
베로니카의 설득에 카트린느는 한참 침묵하다 답했다.
─알겠다.
“뭐라셔?”
“허락했어.”
“다행이다…!”
통역을 들은 베로니카는 다시 카트린느를 포획해 애착 인형처럼 껴안았다.
그 사이 레이는 리발의 감정을 이동시켜 보려 시도했다.
사랑, 후회, 미련, 죄책감 등.
다양한 감정이 뭉쳐있는 덩어리는 형태가 몹시 정교하고 복잡핬다.
‘쉽지 않은데.’
이동이야 가능하지만 원래의 형태가 깨질 우려가 존재했다.
한번에 다량의 마나를 움직이는 강력한 힘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아주 느린 속도이더라도 오차없이 마나를 움직일 수 있는, 여러 인원의 작은 힘이 필요했다.
“베로니카, 지금 여기에 뭉쳐있는 마나, 느껴지지?”
“응. 느껴지지. 이 정도로 응축된 마나는 어디서도 보지 못하는걸.”
“리발의 사랑이야. 후회, 미련, 죄책감도 일정 성분 포함돼 있긴 하지만, 어쨌든.”
베로니카가 운반에 참여했다.
“레이야, 그쪽을 움직여야지!”
“아니야. 그러면 균형이 깨져.”
“으음, 아무리 봐도 두 사람 손으로는 안 될 거 같은데…?”
그리네와 카론이 소환되었다.
서로가 올 줄 몰랐던 두 엘프는 상대를 보고 기겁했지만, 저택을 나갈 수 있다는 말에 자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감정의 운반 작업이 시작되었다.
“카론님! 균형이 깨지지 않게 조심해요!”
“…….”
“그리네, 지금 그쪽을 신경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
마치 커다란 유리를 한 모서리씩 붙잡고 운반하는 듯한 현장.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도 안 하는 모습에서 두 엘프가 아직 기싸움 중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곧 그런 분위기에 변화가 생겨났다.
“그래서 저희가 지금 옮기는 마나의 주인이 원래 누구냐면….”
베로니카가 저택에 얽힌 사연을 풀기 시작한 것이다.
리발과 에수아.
변치않는 사랑을 지녔지만 자존심 탓에 죽는 순간까지 서로 다른 각도로 나아가게 된 부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두 엘프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감정이 드러났다.
불안, 초조, 후회, 자책…….
그러한 감정의 동요는 복도 반대편 방, 에수아의 사랑 역시 1층 출입문 앞으로 옮길 때까지 계속 되었다.
우우웅──!
리발과 에수아.
두 사람의 사랑이 만났다.
부스러기처럼 붙어있던 후회와 미련의 감정들이 먼저 가루로 흩어져 날아갔으며.
남아있는 사랑은 서로 합쳐져 하나의 색으로 물들어갔다.
───.
끝에 나타난 것은 봄날의 꽃처럼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진한 빛을 띤 분홍색이었다.
레이는 직감할 수 있었다.
평소 끊임없이 다채로운 색으로 변화해 본모습을 알 수 없던 사랑.
그 이유는 사랑엔 많은 종류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며.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그중 연인간의 사랑이 띠는 색채임을 말이다.
모두의 고요와 침묵 속.
하나가 된 사랑은 마치 오랜 소망을 달성한 것처럼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리고.
사아아──
끝엔 입자로 흩어져 사라졌다.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다른 이들보다 일찍 여운에서 벗어난 레이가 문을 확인했다.
덜컥, 덜컥.
“오.”
잠금 마법은 그대로였다.
문고리를 뽑을 기세로 흔들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단순히 감정을 문 앞에 옮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던 듯 보였다.
‘사랑을 품은 사람이 같이 와야한다는 이야기인데.’
리발과 에수아를 이곳으로 옮긴다 하여 문이 열릴 리는 없다.
이미 사랑은 사라졌으니까.
설령 문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해도 고인들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카트린느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문을 부수는 수밖에 없었다.
역시 파괴만이 이 거친 세상에서 신용할 수 있는 유일한 마음의 양식이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적법한 만능 열쇠였다.
‘열 수 없다면.’
파괴한다.
그렇게 레이가 손에 흉흉한 돌풍을 생성하고 있던 찰나,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리네, 미안해. 내가 순간 감정이 격해져서….”
“아냐. 사과를 해야할 건 나야. 또 안 좋은 버릇이 나와버렸어.”
돌아보자 카론과 그리네가 어색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각자의 그릇에 빛나고 있던 사랑이 분홍색으로 물들었고 일부가 흩어져 나와 문으로 빨려들었다.
철컥!
“…….”
순간 열려버린 문.
레이는 돌풍을 흐트러뜨렸다.
*
다시 돌아온 리발의 방.
창밖 지상에는 벤치에 앉아 행복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엘프 부부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레이는 시선을 회수했다.
그리고 지정석처럼 리발의 무릎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 카트린느를 보며 물었다.
“정말 우리와 함께 갈 생각이 없어?”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리발과 에수아의 곁이다.
레이는 고민이 되었다.
이 정령에게 말해줘야 할까.
두 사람은 사실 잠에 든 게 아니라 죽은 것이며 저택에 머무는 건 네 생각보다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할 수도 있다고.
─두 사람은 죽은 것인가?
레이는 깜짝 놀랐다.
“죽음에 대해 알고 있었어?”
─그래. 사실 알고 있었다. 정령이 된 후로 저택에 존재하는 많은 책을 탐독했으니까. 죽음이란 개념도 당연히 접했다. 단지 두 사람이 정말 죽은 것인지 확신이 없었던 것인데, 네 반응을 보고 알게 되었다.
이미 죽음의 개념을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빠를 터였다.
“그래, 두 사람은 죽었어. 수명이 다 해서.”
─넌 죽은 자의 곁을 지키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아예 의미가 없지는 않아. 다만 앞으로의 네 삶을 생각하면….”
그때 베로니카가 옆에서 옆구리를 콕 찔렀다.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궁금한 눈치였고, 레이는 통역을 해주었다.
베로니카가 대화에 참전했다.
“의미가 없지는 않아요. 저는 다만 리발과 에수아 두 분이, 카트린느님이 평생 저택에 살다 생을 마감하는 미래는 절대 원치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셋이 다 함께 저택 밖으로 나가는 게 꿈이었다 하셨잖아요.”
베로니카의 설득은 레이의 것보다 훨씬 감성적이었고, 카트린느는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저택을 떠나 갈 곳이 없다. 한번도 나가본 적 없는 바깥 세상에 적응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이고.
“저희 저택으로 오셔서 지내시면 돼요. 정령은 아니지만 고양이 친구도 하나 있어요! 까만 아이인데, 네로라고, 또 적응은 저희가 도와드리면 돼고요!”
짧지 않은 시간 이어진 설득.
마침내 카트린느는 리발의 무릎 위에서 내려와, 베로니카의 다리에 머리를 비볐다.
이후 카트린느의 요청으로 두 사람은 저택을 돌았다.
─마무리를 짓고 떠나고 싶다.
마무리란 유지 및 보수를 해오던 저택 내 모든 보존 마법의 해제를 뜻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와해될 마법들이나, 직접 끝을 내고 떠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마나의 화학 작용으로 오랜 세월 강제로 상태가 유지되던 것들.
그 모든 것이 이제껏 유예되었던 시간의 흐름을 맞이했다.
사아아──
급격히 낡고, 바스라지고, 허물어졌으며, 끝엔 마나로 흩어져 사라졌다.
리발도, 에수아도.
저택의 액자도, 기둥도, 모두.
카트린느는 그럴 리가 없음에도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흩어지는 마나들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모든 작업이 끝났을 때.
원래 저택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푸시이이──
일행은 버스에 탑승했다.
부부는 여전히 대화를 나눴으며.
고양이는 계속해서 소녀의 품을 파고들었다.
“그럼 출발할게.”
“좋아!”
베로니카는 레이 옆에서 힘차게 외쳤다가 운전대 접근 금지령을 떠올리고 후다닥 뒷자리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레이는 생각했다.
베로니카의 그릇에 자리한 사랑이 방금 분홍빛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고.
‘베로니카가 누구를 좋아하나?’
그 대상이 누군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랑이 퍽 아름다운 감정임엔 틀림없었다.
비쳐드는 햇살에 온기를 느끼며, 레이는 액셀을 밟았다.
– 외전 완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