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Beyond Fantasy Smartphones RAW novel - Chapter 205
악신강림 (4)
복부를 꿰뚫은 신기.
비명을 내지르는 조율의 여신.
그리고 그 앞에 서있는 나 자신.
이 모든 것들을 선명하게 머릿속에 되새기면서, 나는 눈앞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조율의 여신을 바라보았다.
“너, 너 대체··· 무슨 짓을 하는거야······!”
조율의 여신은 당황과 원망이 뒤섞인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항상 내 머리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던 그녀의 모습과 어울리는 광경은 아니었다.
그야 그럴 것이다.
내가 이 한순간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았는지 모를테니까.
조그마한 정보라도 에스텔에게 흘러가지 않도록 얼마나 조심해서 움직였는지 그녀는 결코 알지 못할것이다.
– “쭉 기다리고 있었다. ”
완성된 신을 죽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들의 영향력을 이 세계에서 극단적으로 줄여나갈 수는 있어도, 지상의 인간들을 움직여서 신을 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신위를 얻어 신의 자리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은 미숙한 신이었다.
그러니 계획을 세워야만 했다.
이런 내가 세워올린 보잘 것 없는 계획이라도, 그녀에게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했다.
천상에 군림하는 신을 죽인다.
신격과 이 세계의 연결을 끊어내어, 더 이상 신으로서 지상에 간섭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조율의 여신을 이 세계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는 것이 바로 내 계획의 목적이었다.
“왜, 왜 이런 짓을··· 나한테 왜 이러는거야······!”
그걸 위해서 내가 선택한 상대가 바로 풍요의 여신이었다.
에스텔은 여신들의 지상에 대한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그동안 수많은 공작들을 벌여왔다.
그리고 지금 지상에서의 전황은 교단쪽에 유리하게 기울어져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풍요의 여신과 거래하는 것을 선택했다.
내가 조율의 여신을 억누르고 있는 동안에 풍요의 여신이 아스칼론으로 마무리를 짓는 것이다.
– “카르마의 천칭을 앞에 두고서 서로간에 맺은 계약을 이행했을 뿐이다.”
신기 아스칼론의 힘은 신에게조차 닿을 수 있다.
그건 과장이 아니었다.
차원을 격상시킨 신의 성역에서 인간의 몸에 강신하고 있는 신이라면, 카르마의 천칭과 연결을 끊어내는 것도 가능했다.
게다가 조율의 여신은 나에게만 위협이 되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의 계략으로 인해 모든 여신들의 인과율이 위험한 수준으로 꼬여버렸으니까 말이다.
인과율이 꼬여버린 상태로 여신의 개입 없이 크로스브릿지가 교단을 압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풍요의 여신으로서는 내 제안을 거절할 이유따위는 전혀 남아있지않은 상황이었다.
“자, 장난하는거지? 영원히 함께하기로 했잖아······?”
– “분명히 그런 이야기를 들었지.”
풍요의 여신과 나 사이에 새롭게 맺어진 계약의 거래조건은 하나.
계약을 이행한 직후부터, 풍요의 영웅을 제외한 모든 성직자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다.
나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풍요의 영웅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전투나 약탈없이 성지에서 내보내주기로 약속한 셈이었다.
이 계약은 앞으로 100년간 지속될 것이며, 성직자들이 먼저 공격을 하지 않는 한은 100년간 평화가 이어질 것이다.
물론 계약까지의 모든 과정은 가능한 에스텔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했다.
오죽하면 아로니아와 에스타시아의 헤일로 연결을 통해 사도에게 내 명령을 전파하고, 그 이후에 다시 사도를 통해 풍요의 여신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왜 이런 짓을··· 나한테 하는거야?”
나는 그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은 채로, 나를 원망하고 있는 조율의 여신을 바라보면서 웃었다.
평소라면 결코 볼 수 없었을 표정이다.
신이라는 위대한 존재가 벼랑 끝에 몰리고 나서야 보여줄 수 있는 표정이었다.
나는 내 그림자에 묶여있는 조율의 여신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녀의 귓가에 자그마한 목소리로 혼자만이 들을 수 있도록 속삭였다.
– “그 편이 재밌을테니까.”
“뭐······?”
멍한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실로 바보같은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도 할줄 알고 있었으면서, 여태까지 숨겨왔다는 사실이 더욱 우습게 느껴졌다.
– “멍청하게 시키는대로 따라가는 것보다는, 중요한 순간에 복수하는 편이 더 즐겁지 않아?”
“너, 지금, 나를 어떻게 보고서······.”
악의에 찬 시선이 나를 바라보았다.
증오. 악의. 그리고 원망.
그 모든 것들이 지난날의 내가 그녀에게 향하던 시선이었다.
빛의 입자를 흩뿌리며 사라지기 시작한 조율의 여신으로부터 한걸음 뒤로 물러선다.
조율의 여신이 지상에 관여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크로스브릿지에 있는 여섯 신전의 터에도 이제부터 교단의 건물이 드높게 쌓아올려질 것이다.
– “이곳에서 보는건 이번이 마지막이겠군.”
나는 사라지는 그녀를 향해 웃으면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파앗—!
신기 아스칼론이 쥐어짜낸 마지막 한줄기 빛이 조율의 여신과 카르마의 천칭간의 연결을 끊어놓았다.
환한 빛무리가 흩뿌려지며 조율의 성역이 볼품없이 무너져내렸다.
조율의 신전을 장식하던 스테인드 글라스는 산산히 부서져 파편이 되었으며, 이 자리에 남은 것은 망가지고 부서진 신앙의 흔적 뿐이었다.
– “금방 다시 만나자. 에스텔.”
이제 스마트폰 너머의 세계에 조율의 여신이라는 존재는 없다.
그녀를 위한 자리도 존재하지 않으며, 그녀를 섬기는 신도들도 시간의 흐름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조차도 언젠가 완전히 빛이 바랜채로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될 것이다.
조율의 시대는 완전히 끝을 맺었다.
지금 여기에 강림한 파멸의 신에 의해서 말이다.
– “유테니아.”
에스텔을 쓰러뜨린 나는 곧장 유테니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떨떠름한 시선으로 흩어지는 에스텔을 바라보다가, 이내 내 목소리를 듣고서 고개를 들어올렸다.
“네, 위대하신 분이시여.”
– “저 녀석만 처리하고서 풍요의 신전쪽에 있는 병력들을 퇴각시키도록.”
빛이 사그라들며 너덜너덜하게 변해가는 풍요의 영웅을 가리키며 이야기하면, 유테니아가 의문을 가지고서 나에게 되물었다.
“그 말씀은······?”
– “승자의 아량으로 베푸는 자비다.”
“알겠습니다. 그게 위대하신 분의 명령이라면······!”
내 이야기를 들은 유테니아가 비로소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 있는 풍요의 영웅만 처리하고나면 더는 문제가 될만한 것은 없을 것이다.
“······.”
강신이 풀린 채로 기울어져가는 영웅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풍요의 영웅, 길포드 플라우드.
끝까지 이용만 당하다가 최후를 맞이하는 영웅의 말로는 비참한 편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녀석을 죽일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말이다.
– “덧없는 목숨이다.”
이곳에 있는 나는 악신이었다.
그리고 녀석은 영웅이었다.
* * * * * *
희미하게 번진 시선이 다시 되돌아오며, 이번에는 자취방의 옥상에 서있는 에스타시아의 모습이 시야에 담겼다.
둘로 나뉘어진 의식을 제어해 지구에 있는 육신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조율의 여신의 신격을 카르마의 천칭에서 끊어냈다고는 해도, 역행의 신격을 가지고 있는 에스텔이 여전히 지구에 남아있었다.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이 나지 않은 것이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내 모습에 에스타시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물어왔다.
“이제 괜찮나요?”
“괜찮아. 별거 아니었어.”
이마를 짚은 채로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방금전까지만 하더라도 유테니아를 비추고 있었을 스마트폰은 화면이 꺼져있는 모습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여태껏 다른 세계에 간섭하던 것은 조율의 여신에게 받은 이 신기 덕분이었으니까 말이다.
조율의 신격이 카르마의 천칭으로부터 완전히 끊어졌으니, 더는 그녀의 신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었다.
“너무 위험한 일은 하지마세요.”
“아마도 위험한 일은 이번이 마지막일거야.”
“······그런가요.”
확답할 수는 없는 이야기였다.
나라고해서 앞으로의 미래를 전부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신과 싸우는 것은 당분간은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정말 기나긴 시간이었다.
에스텔에게 속아 내 손으로 동료를 죽이고, 그 이후로도 수많은 피를 묻혀가면서 여기까지 왔다.
긴 시간속에 남은 것은 너덜너덜해진 마음과 비루해진 정신뿐이었다.
사람의 인생을 불꽃으로 표현한다면, 지금의 나는 심지가 얼마 남지 않은 촛대에 불과했다.
“자고로 복수는 한번에 끝내야하는 법이거든.”
“그게 주인님의 방식인가요.”
그렇지만 아직 이곳에서 멈출 수는 없었다.
지금의 내가 움켜쥔 기회는 나 혼자만이 쌓아올린 것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수많은 희생과 비명을 지나쳐 나는 지금 이곳에 서있다.
멸망한 세계에 쫓겨 숨어살던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가 만들어낸 하나의 신으로서 말이다.
“그러니까 끝까지 같이 어울려줘, 에스타시아.”
나는 아직 걱정이 가시지 않은 얼굴의 에스타시아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스윽.
내 손을 붙잡은 에스타시아가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서 손등에 입을 맞췄다.
길을 잃은 천사가 자신의 신에게 표하는 최대한의 경애였다.
나는 그런 에스타시아를 축복하면서, 녹이 슬어버린 난간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살벌한 풍경속에서 안식을 허락받지 못한 망자들이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주인님이 원하신다면요.”
수 년 전.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미증유의 재해가 만들어낸 세상의 풍경이었다.
그것은 역행의 신 에스텔이 만들어낸 인류의 파멸이었다.
그녀는 이 세계를 파멸시키고서 내 인생마저 하나의 유희거리로 전락시켜버리고 말았다.
악신의 총애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지독한 늪과도 같은 것이었다.
“······.”
지금까지의 나는 에스텔의 장난감이었다.
그녀의 의도에 따라 상처받고, 쓰러지고, 몇번이고 마음이 무너져내렸다.
그러나 지금부터 시작될 이야기는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를 것이다.
거대한 게임판의 장기말을 움직이는 주체는 이제부터 에스텔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기도할게요.”
손등에서 입술을 떼어놓은 에스타시아가 자신의 양손을 끌어모으며 이야기했다.
펄럭.
화려하게 펼쳐진 칠흑의 날개가 사방에 검은색의 깃털을 흩날렸다.
은은하게 빛을 머금은 깃털을 흩날리면서, 에스타시아는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아아——.
천상의 천사에게만 허락된 아름다운 미성이 대기를 타고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듣기 좋은 울림이네. 이게 천사의 노래인가.”
온 마음을 담아 기도를 올리는 천사는 기적을 일으키기 마련이었다.
순백의 천사는 사람을 치유하고 마음을 안정시키며 희망의 빛을 가져다주고는 했다.
그러나 내 앞에 있는 칠흑의 천사는 파멸의 신과 계약을 맺은 파멸의 사도였다.
그녀가 올리는 기도는 더 이상 사람들을 치유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그 노래가 울려퍼지는 세계를 파멸로 몰고갈 뿐이었다.
“아아아——.”
귓가에 울려퍼지는 천사의 노래를 들으며 녹이 슬어버린 난간의 앞으로 걸어갔다.
철컹.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처럼 보이는 난간을 붙잡고서, 이미 한 번 멸망을 맞이한 세계를 바라보았다.
초라하고 무가치하다.
눈앞에 보이는 세계를 지금부터 내가 부숴버릴 생각이었다.
시작은 에스타시아가 부르는 파멸의 전주곡이었다.
파멸의 권능에 영향을 받아 무너지기 시작한 세계는 카르마의 천칭에 의한 인과율 보정을 만들어낼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두명의 악신에게 일말의 자유도 허락하지 않는 거대한 뒤틀림을 말이다.
인과율 보정에 의한 뒤틀림을 맞이한 에스텔은 고통으로 가득찬 양자택일의 선택지를 마주하게 될 것이었다.
“······이런걸 숨겨놓고서 방치형 게임이라니. 참 고약한 취미야.”
옥상에 퍼져나가는 미성속에서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 스마트폰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나는 이 자그마한 스마트폰의 액정을 통해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목도해왔다.
쓰러지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마주해왔다.
태동하는 악의 이야기를 지켜봐왔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정의를 외치며, 자신의 신념속에서 몸을 불태워갔다.
스스로 무엇이든 될 수 있다며 자신을 속이고 앞으로 나아갔다.
화려하게 타오르는 부나방이 되어, 물러설 곳이 없는 사선의 너머를 향해 달려나갔다.
– “내가 너희들의 신이 되어주마.”
불꽃처럼 타들어가는 찰나의 이야기를——.
고작해야 한순간의 유희로 남게 놔둘 수는 없다.
– “제가 당신의 위대한 이야기에 한줄로 남을 수 있게 해주세요.”
언젠가의 유테니아가 나를 향해 올리던 기도가 귓속에 맴돌았다.
위대한 이야기.
고작해야 나 따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자신의 손으로 올바른 이야기를 찾아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위대한 이야기라······.”
영웅에게는 영웅에게 어울리는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사도에게는 사도에게 어울리는 이야기가 있는 법이다.
모든 이들에게 자신의 손으로 올바른 결말을 맺게 해주어야만 했다.
결코 운명따위가 그들의 앞길을 막아서서는 안된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해줬으니까, 이제는 내가 거기에 부응하지 않으면 안되겠지.”
그것이 분명 신이라는 존재에게 남겨진 역할일 것이다.
결심을 마친 나는 지상을 기어다니는 망령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후우.
폐를 타고 가득 들어찬 공기가 기분 좋은 압박감을 선사해온다.
한계까지 눌러담은 목소리를 내뱉어, 혼자만이 방황하고 있었을 세계에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다.
“모두, 들어라——.”
신의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비좁은 방에서 구원을 쫓던 과거의 나는 없다.
외톨이가 되어 숨을 죽인채로 살아가던 한심한 나는 이곳에 없다.
자신을 얽매오던 잔혹한 운명은 스스로 파탄나 무너져내렸다.
나는 세계를 부순다.
태어나려는 신은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지금, 여기에.”
진동하는 목소리에 망령들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죽지 못해 살아가는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모인다.
비탄. 고통. 분노. 슬픔.
수많은 감정들이 얽혀 흘러내린다.
그리고 그 너머에서, 나는 자신이 쫓아야할 한순간의 빛을 마주했다.
위대한 이들의 가슴을 움직여왔을 찰나의 불꽃이 내 가슴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두려움은 없었다.
자신을 얽매는 운명따위 이제는 재가 되어 타버린지 오래였다.
“너희들의 신이 강림했다——.”
때가 되었다.
언젠가의 내가 잃어버렸던 것들을 되찾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