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68
M2A
“쟤들 장난 아닌데? 쓰읍.”
잇새로 공기를 들이키는 버릇이 나오는 건 딱 한 가지 경우였다. 흥미를 자극하는 상대를 만났을 때.
“지 PD님, 한번 섭외해 볼까요?”
M.com 소속인 지 PD는 M2A 때문에 이 자리에 와 있었다.
총책임자는 아니지만, 다른 PD가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급하게 땜빵으로 오게 됐다.
“우리 프로그램에?”
지 PD는 목소리만으로 무대를 꾸미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맞추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버츄얼 캐릭터로 모습을 가리고 나중에 탈락하면 정체를 밝히는 장수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인기가 절정일 시절에 비하면 지금시청률은 반토막도 안 되지만 그래도 여전히 M.com의 효자 프로였다.
“출연자도 나쁘진 않지. 근데 난 저 곡을 누가 편곡했는지가 더 궁금하네?”
“이원이, 흠흠. 그러니까 저기 제일 어린 남자애가 편곡했을걸요?”
“쟤? 머리에 피도 안 말랐을 거 같은데 무슨.”
“PD님 그거 못 들으셨어요? 재, 그러니까 테오라 함이원이 천재라는 얘기요.”
“천재? 널리고 널린 게 천재다, 인마.”
“진짜예요. 함이원이 테오라 데뷔 때부터 작곡, 편곡에 프로듀싱까지 전부 했거든요. 나우혁 배우가 부른 OST도 작곡하고요.”
“소속사에서 작업 한 거 아니고?”
“…하눌이요? 하눌이 언플할 줄 알았으면 제 속이! 아니, 더 잘 나갔을 거라고요.”
지 PD는 가늘어진 눈초리로 조감독을 쳐다봤다. 주변 사람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다기엔 정보가 너무 자세했다.
천재라는 것까진 어떻게 주워들었다고 해도 아이돌의 작업물을 꿰뚫고 있긴 어렵다.
소속사 이름이나 그 소속사가 어떤 식으로 일 처리를 하는지는 관심 없으면 알 수 없는 영역이었다.
“테오 어쩌구하는 그룹 좋아하는구만? 아이고, 이 화상아.”
“…왜, 왜요! 제가 제 마음대로 좋아한다는데!”
조감독은 발끈하면서도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었다.
“알았어, 알았어. 걔들 많이 좋아해라. 됐냐?”
“네, 뭐.”
“아무튼 진짜 천재라 이거고만? 적어도 애니메이션 OST를 웅장한 곡으로 위화감 없게 편곡할 만큼은.”
무대 구성도 안무도 의상도 멋있었다. 하지만 함이원과 주여주, 다크래빗이 부른 곡보다 신선하고 충격적이진 못했다.
특히 주여주가 우울함에 찌든 시니컬한 캐릭터로 보인다는 게 충격이었다. 섹시의 심볼이나 마찬가지인 그녀가.
원곡에서는 솔로 파트였던 부분을 주여주와 다크래빗이 말싸움하듯 한 소절씩 타이트하게 주고받는데도 위화감이 없었다.
편곡을 웬만큼 잘 하지 않고는 원곡의 감성을 이기기가 힘든데, 지금 보여주는 무대는 완전히 새로운 무대 같았다.
자세히 들어보면 분명히 뼈대는 유지한 채 편곡이 들어가 있는데도.
“일단 섭외해서 출연자와 PD로 만나보는 걸로 할까. 만나보면 알겠지.”
“그럼 저 섭외해도 되는 거예요?”
“그러든지.”
뛸 듯이 기뻐하는 조감독을 내버려 두고 생각에 잠겼다.
흘러내리는 안경을 추슬러 올리면서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테오라 함이원이라…. 좋은 소재를 발견했구만.”
* * *
M2A는 사고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테오라도 무대를 마치고 객석으로 서둘러 돌아왔다. 바로 이어서 신인상 시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막 뛰어오다가 카메라에 찍히는 위치부터는 느긋한 걸음으로 티 나지 않게 가쁜 숨을 고르면서 이동했다. 그러면서도 표정 관리는 기본이었다.
“우리가 제일 반응 좋았지? 내 눈에만 그렇게 보였어?”
지온이 이렇게까지 팬들 반응을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닌데?
궁금증에 대한 답은 초록 형에게서 나왔다.
“소프티한테 경쟁심을 불태우는 거 같은데? 내 착각일까, 지온아?”
“아.”
“착각 아니지. 뭐든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지온 형인데!”
“뭐, 그렇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지온이었지만 관심사가 어디에 있는지는 빤했다.
신인상은 일반적으로 남녀를 나누어 한 팀씩 수상하게 되는데 M2A는 국내 시상식 중 유일하게 남녀를 합쳐 한 팀에게만 주곤 했다.
그러니 M2A에서 신인상을 받는다면 성별을 뛰어넘어 올해를 가장 빛낸 가수로 인정받는 것.
지온은 아마 여기서 신인상을 받아야 진정한 신인상을 받는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도 클 텐데 왜 기대 따위 때려치우라고 할 수가 없냐? 긍정 바이러스에 나도 물들었나.”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해보는 홍오란도 기대감을 지울 수 없는 모양.
나도 마찬가지였다.
소프티의 활약은 엄청났지만, 테오라의 활약도 그에 못지않았다.
준현 형이 가져온 자료에도 테오라와 소프티는 사이에는 미세한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누가 수상하게 되더라도 인정할 수 있는 정도의 차이였다.
자료의 기준일은 11월 말. 최근 기억이 더 선명할 수밖에 없으니 막판 스퍼트를 낸 우리가 역전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혹시 상 못 타더라도 표정 관리 단단히 하고. 매너 있게 축하해주는 거 잊지 마.”
“에이, 설마 우리가 그걸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지!”
상을 못 타는 것보다 대놓고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을 때의 후폭풍이 훨씬 크다.
아쉬움이야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 감정을 전부 겉으로 드러내선 안 되는 게 연예인.
논란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상을 못 타도 반드시 훈훈하게 마무리 지어야 한다.
웃는 표정이 자연스러운지 봐달라고 급히 부탁하는데 신인상 후보가 소개됐다.
총 여섯 팀의 가수가 소개됐지만, 유력 후보는 누가 봐도 소프티와 테오라였다.
“…M.com Music Award, 신인상은?!”
그 뜸을 들이는 잠깐 사이 발가락에서부터 긴장감이 몰려왔다. 옆자리에서는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카메라가 우리가 있는 쪽으로 렌즈 방향을 돌렸다. 다른 후보가 있는 쪽도 똑같이 비추고 있을 거다.
미소 띤 얼굴로 무대 위의 사회자를 쳐다보니 카드를 펼쳐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귀에 온 신경이 집중됐다.
“?테오라! 축하드립니다.”
정말로 테오라? 진짜로…?
신인상에 대해 어느 정도는, 솔직히 꽤 많이 기대하고 있기는 했다. 그런데도 막상 그 순간이 현실로 다가오니 믿기지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멤버들을 따라 무대로 향했다. 축하의 박수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어서 무대 위에 올랐다.
트로피를 전해 받을 때까지도 얼떨떨했다. 멤버들이 없었더라면 큰일 났을 뻔했다.
어리벙벙하게 헤매는 내 모습이 전국에 실시간으로 생중계됐을 테니까.
수상 소감은 초록 형부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이 영광을 테오라를 사랑해주신 코티지에게 돌립니다. 온 힘을 다한 멤버들과 옆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분들 덕분에 이 상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부모님과 동생, 하눌 엔터 대표님과 매니저인 준형 형….”
특별한 수상 소감을 준비하지 않았다. 우리가 대상을 받을만한 대단한 가수가 아닌 이상 무난하게 묻어가는 편이 낫다면서.
초록 형은 메인 댄서인데도 속사포 랩을 하는 래퍼처럼 순식간에 감사를 전할 사람의 이름을 나열했다.
이런 수상 소감은 지루하니까 후딱 끝내버리고 넘겨주겠다고 하더니 진짜로 실행에 옮겼다.
박하 얼굴은 벌써 눈물범벅이 된데다 오열을 참는 걸로도 벅차서 다음 차례는 오란으로 넘어갔다.
“신인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사랑하는 코티지, 그리고 모든 관계자분들,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정 잃지 않는 테오라 되겠습니다! 형, 나 신인상 탔….”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던 홍오란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
“오란아….”
단 하나뿐인 가족을 언급하면서 감정이 북받쳐 오른 것 같았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보내야 했던 힘든 시간이 전부 스쳐 지나가지 않았을까.
눈물 흘리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는 고개를 숙인 홍오란을 등 뒤로 보냈다.
오늘 같은 날은 우는 모습을 보여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텐데.
“…앞으로 테오라가 가는 길을 지켜봐 주세요.”
포부가 드러나는 지온의 짧은 소감은 영어로도 한 번 반복됐다.
“…그리고 우리 코티지 사랑합니다.”
눈이 붉게 충혈된 서혼 형의 감사 인사까지 끝났으니 나만 소감을 얘기하면 끝.
마이크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눈앞이 아득했다.
“…테오라가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들에게 감사 인사 전합니다. 저희를 더없이 사랑해준 코티지, 제 꿈을 응원해주신 엄마, 아빠 고맙습니다. 그리고.”
상을 타게 된다면 현오 형의 이름을 꼭 부르고 싶었다. 현오 형을 빼놓고서 지금의 나를 설명할 순 없으니까.
비록 이 세상엔 없지만, 현오 형과 내 목소리는 전해질 거라고 막연히 믿었다.
“현오 형….”
울컥 그리움이 치밀어 올랐지만, 간신히 삼켜냈다.
여기는 축하를 받는 기쁜 자리. 슬픔의 눈물은 어울리지 않았다.
현오 형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잔뜩 쌓여 있지만, 굳이 다 얘기하지 않아도 모든 마음을 담은 한마디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고마워.”
우리의 목소리는 앞으로 수많은 음악에 담길 터다. 그리고 누군가 들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영원히 남게 되겠지.
음악의 힘을 믿는 만큼 구구절절한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내가 하는 음악 속에는 항상 현오 형이 함께할 테니까.
오열하는 박하를 간신히 데리고 멤버들과 함께 객석으로 내려왔다.
* * *
오란은 트로피를 만지작거리느라 여념이 없었고, 박하는 이제 빨개진 코로 딸꾹질을 시작했다.
아닌 척 눈물을 훔치는 서혼 형과 건조함 그 자체인 초록 형은 극과 극이었다.
감정을 추스르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자꾸 다른 가수분들과 눈이 마주쳤다.
새로운 무대가 시작됐는데도 우리를 관심 있게 쳐다보는 사람이 상당했다.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을 기억해두려는 걸까?
다음날 이상한 뉴스 기사가 뜨긴 했다.
[신인 남돌 테오라 M2A 신인상과 베스트 인플루언스상 2관왕 수상해…] [M2A 스케치- 테오라 함이원 뇌쇄적인 미소] [M2A 스케치- 함이원 마성의 미소에 시청률 최고로 치솟아] [참가자도 눈을 못 떼는 미모? 레전드짤…]도대체 이게…? 아무리 어그로를 끌고 싶었어도 그렇지, 날조를 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분명 본론에는 ‘테오라가 신인상을 탔다’ 정도의 정보만 들어가 있을 테니 대충 제목만 읽고 지나갔다.
M2A가 끝나고 멤버들은 내가 프로듀서상을 놓쳤다고 아쉬워했지만, 난 딱히 아쉽지 않았다.
수많은 가수와 수많은 음악 관련 종사자들을 제치고 나서야 받을 수 있는 상이다.
이제 데뷔 1년 차인 나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상인 것이다.
딱히 상 욕심은 크지 않은 편인데, 욕망에 이글거리는 멤버들에게 동화돼서 자꾸 욕심이 생기는 것 같다.
뭐, 이번엔 못 탔어도 언젠가 받을 수 않을까?
새벽까지 이어진 M2A 시상식을 마치고 돌아와서 정신없이 잠에 빠졌다.
“잘 잤어?”
서혼 형은 이미 일어나서 운동을 다녀온 듯했다.
눈이 퉁퉁 부어서 뜨지도 못하고 나오던 박하가 화장실 문에 머리를 박는 헤프닝도 있었다.
거실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멤버들이 하나둘 일어나서 나왔다.
“아, 오늘 수능 성적표 나오는 날이네….”
“성적표?!”
화들짝 놀란 박하가 쪼르르 달려왔다.
실물 성적표는 이미 며칠 전에 학교로 전달되었겠지만, 스케줄이 바빠 온라인 조회가 열리는 오늘까지도 성적 확인을 미루고 있었다.
여러 개의 눈동자가 노트북을 켜는 내 손짓을 따라 움직였다.
“인터넷으로 성적 확인해보게?”
“응.”
나보다 멤버들이 더 긴장해 있었다.
사이트에 들어가 본인인증을 끝낸 후 거침없이 수험번호를 입력하고 확인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