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Investment Portfolio RAW novel - Chapter (282)
금수저 투자백서 282화(282/283)
282. 자네 정말 너무한 것 아닌가!
다음날.
마포 대흥그룹 본사 회장실 소파에 박태홍 회장을 상석에 두고 박진형, 박석원 두 형제와 길성호 비서실장이 양옆에 앉아 있었다.
담배를 입에 문 박태홍 회장은 초조한 얼굴로 조금 전에 시간을 확인하고도 다시 소매를 걷어 손목시계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는데 왜 아직도 아무런 연락이 없는 거지.”
고개를 든 박태홍 회장은 다들 긴장해 있는 것과 달리 혼자 평온해 보이는 둘째 아들에게 시선을 줬다.
“혹시 우리가 원하는 것과 달리 우 회장이 끝까지 싸우는 걸 선택한 거 아니냐?”
그러자 큰형인 박진형 사장도 살짝 얼굴을 굳힌 채 말을 덧붙였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데. 도망갈 길을 터주지 않고 상대를 너무 몰아붙인 건 아닌지 모르겠다.”
길성호 비서실장 역시 같은 생각이라는 듯 머리를 주억거렸다.
반면 얼굴에 조급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 석원은 사람들의 걱정에 어깨를 으쓱였다.
“원래 주가를 생각하면 주당 2만 5천 원도 엄청 비싸게 쳐준 거야.”
“그거 말고 지분 교환 비율 말이야. 동해그룹이 가지고 있는 미도파 주식은 절반으로 확 후려쳐 놓고 맞교환할 동해 유량 지분은 현재 거래가로 계산하자고 했다면서.”
“그게 뭐가 어때서?”
같은 편이지만 너무나도 뻔뻔한 태도에 박진형 사장은 물론이고 함께 있던 박태홍 회장과 길성호 비서실장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가 기준을 상대가 엄청 불리하게 갖다 댔는데 그걸 순순히 받아들이겠어.”
“맞습니다. 저희한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이니 반발이 클 겁니다.”
박진형 사장이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하는 말에 길성호 비서실장도 금테 안경을 고쳐 쓰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래. 내가 봐도 너무 과했던 것 같다.”
심지어 박태홍 회장 역시 동의했지만 석원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턱을 치켜들었다.
“싸움에서 졌으니 손해를 보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반대로 지분 싸움에서 져서 미도파 백화점 경영권을 빼앗겼다면 상대가 우릴 봐줬겠어요?”
세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럴 것 같았으면 애초에 적대적 M&A를 시도하질 않았겠죠. 아마 모르긴 해도 더욱 가혹하게 나왔을 거예요. 막말로 상대는 그룹 전체를 통째로 빼앗아 가려고 했지만 우린 주식을 조금 비싸게 넘기는 것뿐이잖아요. 전 이 정도는 승자가 패자한테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당당한 태도에 세 사람은 잠깐 그런가 싶어 설득당할 뻔했다.
하지만 석원이 제시한 조건대로라면 동해그룹은 지금까지 쏟아 넣은 자금의 반의반도 건지지 못하는 가격에 미도파 주식을 넘기면서 동해 유량 지분은 훨씬 비싼 값을 주고 가져와야 한다는 걸 이내 깨닫곤 역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요구가 맞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당한 걸 되갚아주는 건 통쾌하지만 우 회장이 과연 이걸 수용할지 모르겠군.’
‘동해그룹이 수세에 몰리긴 했어도 끝까지 싸우자고 덤비면 우리 역시 피곤해질 텐데…….’
‘이러다 협상이 무산되고 경영권 분쟁이 길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세 사람은 각자 머릿속으로 온갖 걱정들을 떠올렸다.
이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석원은 여전히 태연한 모습으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백제 산업이 가지고 있던 미도파 지분을 우리가 매수했다는 공시가 나가고 나서 열린 오늘 장에서 주가가 폭락해 3만 원대 근처까지 내려가 버렸으니까. 그렇게 가격을 후려친 것도 아니잖아요.”
박태홍 회장은 동해 유량 주가도 같이 떨어지지 않았냐고 말을 하려다가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대충 짐작됐기에 그만뒀다.
초조한 기색을 쉽사리 지워내지 못하는 세 사람의 모습에 석원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말했다.
“손해 보는 거래가 분명하지만 동해그룹, 아니 우용갑 회장은 저희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러자 박태홍 회장이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운 채 상체를 바로 세우며 물었다.
“왜 그렇게 확신하냐. 설마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기라도 한 거야?”
박진형 사장과 길성호 비서실장도 정말 그런 거냐는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M&A 이슈가 계속 불거져서 동해 상호신용금고 불법 대출 사건이 미도파 백화점 지분 매수 자금 전체에 대한 수사로 확대되는 걸 결코 원치 않기 때문이에요”
“검찰 수사를 받으면 좋을 게 없으니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냐.”
박태홍 회장이 미간을 좁혔다.
석원은 약간 실망한 듯한 박태홍 회장을 쳐다보면서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동해그룹이 노 전 대통령의 사돈 기업이었기 때문에 더욱 껄끄러울 거예요.”
그러자 순간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박태홍 회장이 눈을 크게 떴다.
“설마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미도파 백화점 주식을 매집하는 데 쓰였다는 거냐!”
박태홍 회장의 말에 박진형 사장과 길성호 비서실장 둘 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동해그룹, 아니 우용갑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숨겨둔 비자금을 몰래 꺼내 썼다면 상황이 일파만파 커질 수밖에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정말 그런 거냐?”
박진형 사장이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물었다.
“그건 나도 모르지.”
석원이 어깨를 으쓱이자 박진형 사장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그럼 방금 한 이야기는 뭐야?”
“미도파 백화점 주식을 한 주라도 더 사들이기 위해 동해그룹이 있는 돈 없는 돈 다 박박 긁어 쏟아부었잖아. 그러다 호근이 녀석이 해서는 안 될 짓도 해 버렸고 말이야.”
경영권 방어를 위해 그룹 내 여유 자금을 전부 끌어모은 건 대흥그룹 역시 마찬가지였기에 세 사람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상호신용금고에서 불법 대출을 받은 건 호근이 녀석이 벌인 행동이니 제쳐두고서라도 홍콩 페레그린 증권을 통해 연간 10% 이자에 콜옵션 조항까지 붙인 돈을 끌어다 썼을 만큼 전력을 다했다면 노 전 대통령의 숨겨둔 비자금이라고 손을 안 댔겠어.”
그럴듯한 이야기에 박태홍 회장이 눈에 이채를 떠올렸다.
“그렇지. 돈이 궁한 상황이라면 설령 다른 사람이 맡겨둔 거라도 일단 내 주머니에 들어있는 현금이 생각나지 않을 리가 없지.”
길성호 비서실장도 진지하게 머리를 끄덕였다.
“검찰 조사에서는 사돈인 노 전 대통령이 맡긴 비자금이 없다고 극구 부인했지만 정황상 돈이 흘러 들어가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 분명 이번에 꺼내 썼을 겁니다.”
그제야 어깨의 짐이 덜어진 듯 박진형 사장 역시 굳어 있던 표정을 풀었다.
“그렇다면 석원이 말대로 무리한 요구라도 동해그룹이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하하. 싫어도 억지로 우리 요구를 받아들여야 되는 우 회장 얼굴을 생각하니까 십 년 묵은 체증이 확 내려가는 것 같구나.”
박태홍 회장은 한껏 고무된 얼굴로 웃으며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때 노크를 하고 정윤경 대리가 안으로 들어와 머리를 숙였다.
“동해그룹 우용갑 회장님의 전화입니다.”
박태홍 회장은 거의 다 태운 담배를 황급히 크리스털 재떨이에 비벼서 끄며 자세를 바로 했다.
“연결해.”
“예.”
짧게 대답한 정윤경 대리가 나가고 얼마 있지 않아 탁자 위에 설치해둔 키폰 벨이 울렸다.
석원은 다른 사람들도 다 들을 수 있게 스피커 폰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날세.]내키지 않는 기색이 확연한 우용갑 회장이 목소리에 팔짱을 낀 채 앉아 있던 박태홍 회장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맞은편에 앉은 박진형 사장과 길성호 비서실장도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통화에 귀를 기울였다.
“연락을 하신 걸 보니 마음의 결정을 내리셨나 보군요.”
우용갑 회장은 잠시 말이 없다가 무겁게 다시 입을 뗐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겠나.]“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먼저 시작한 건 저희가 아니고 동해그룹입니다.”
석원이 차갑게 대꾸했다.
그러자 우용갑 회장은 끄응하고 앓는 소리를 흘리더니 마지못해 입을 뗐다.
[…… 자네 조건대로 하도록 하지.]마침내 기다리던 대답이 나오자 상체를 키폰 쪽으로 내민 채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박진형 사장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곁에 있던 길성호 비서실장 역시 크게 반색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박태홍 회장은 얼굴 가득 미소를 감추지 못한 채 한결 여유를 찾은 모습으로 기쁨을 드러냈다.
석원도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가 다시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대답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오후 중으로 비서실장을 자네한테 보내겠네.]우용갑 회장은 길게 대화하기 싫은지 빨리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
수화기 뒤에서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을 우용갑 회장의 얼굴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했다.
“저도 빨리 마무리를 짓는 것이 좋으니까 그렇게 하시죠. 아. 그런데 지분 교환은 그렇게 정리하는 걸로 하고 홍콩 페레그린 증권이 가지고 있던 채권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참고로 채권을 제가 인수했다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말을 듣자마자 우용갑 회장의 얼굴이 구겨지는 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원하는 것이 뭔가?]우용갑 회장이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현금으로 전부 상환받는 게 가장 좋겠지만 현재 동해그룹 자금 사정으로는 힘들 테니 현물로 대신 주시죠.”
석원이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이미 한번 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우용갑 회장은 또 무슨 수작인가 싶어 잔뜩 경계하는 태도로 되물었다.
[현물이라면 뭘 말하는 건가?]그러자 석원이 미리 염두에 두고 있던 걸 입에 담았다.
“서초동 신사옥 부지와 경기도 판교에 있는 물류 창고 정도면 얼추 액수가 맞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말을 들은 우용갑 회장은 이를 부득 갈며 성난 목소리로 고함쳤다.
[자네 정말 너무한 것 아닌가!]서초동 사옥 부지는 다른 재벌 그룹들에 꿀리지 않는 멋들어진 새 본사 건물을 지으려고 우용갑 회장이 몇 년 전에 사들였던 땅이었다.
우용갑 회장이 사무실 한편에 47층 높이의 신사옥 축소 모형을 만들어두고 매일 들여다볼 만큼 염원하는 숙원사업이었다.
그런데 그런 땅을 냉큼 가져가겠다고 하니 열이 뻗칠 수밖에 없었다.
우용갑 회장이 강하게 반발하자 석원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싸움에서 저희가 졌다면 우 회장님은 모든 걸 다 가져가려고 하셔놓고 겨우 이걸 가지고 너무하다고 하시는 겁니까.”
[으음.]폐부를 찌르는 말에 우용갑 회장은 아무런 반박을 못하고 침음성만 흘렸다.
“싫으시다면 현금으로 상환하시면 됩니다.”
석원이 상관없다는 듯 툭 내뱉었다.
물론 그럴 능력이 없다는 걸 알고 내던진 말이었다.
우용갑 회장은 한참 동안 아무런 말이 없다가 이내 분을 겨우 눌러 참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동산으로 상환하도록 하지.]“좋습니다.”
[이제 더 남은 것이 없겠지?]우용갑 회장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석원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고 문득 생각났다는 듯 덧붙였다.
“참. M&A에 실패한 만큼 계약서에 적힌 조항에 따라 5년치 이자를 보장해 주셔야 된다는 것도 잊지 않으셨겠죠.”
[…… 알고 있네.]우용갑 회장이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석원은 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됐습니다.”
우용갑 회장은 대답도 하지 않고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러자 숨을 죽이고 통화를 듣고 있던 박태홍 회장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무릎을 쳤다.
“하하하! 서초동 사옥 부지는 우 회장이 애지중지하던 땅인데 그걸 가져오다니! 오늘 밤잠은 제대로 잘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들은 구속된 데다가 M&A에 쏟아부었던 막대한 자금도 거의 다 날려 버리고 마지막엔 아끼던 땅까지 내놓게 만들며 동해그룹을 흔들어 놨으니 우용갑 회장의 울화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박태홍 회장이 크게 통쾌해하는 것을 보면서 형인 박진형 사장도 머리를 절레 가로저었다.
“같은 편이라서 다행이지 내가 널 상대해야 됐다면 정말 학을 뗐을 것 같네.”
나란히 앉아 있던 길성호 비서실장 역시 석원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끄덕였다.
석원은 앞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들었다가 커피가 식어 있는 걸 보고 다시 내려놓으며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말했다.
“처음부터 확실히 본보기를 보여야지 다시는 우릴 우습게 보고 덤비지 않는 법이야.”
“그래. 그렇지. 백번 맞는 말이다.”
박태홍 회장은 누구보다 든든하게 느껴지는 둘째 아들을 보면서 흐뭇하게 웃었다.